지리산 산행

2020.08.23 허공 달 골

지리99 수야 2020. 9. 10. 16:36

허공 달 골-사립재 골

 

 

 행동팀110-지리95

일시:2020년 08월 23일 (일요일)

산행자:최정남,최옥희,김은의,둘렘이,수야 (5명)

걸어간 길:광점동-어름터-두류암 승탑-허공달골-산청독바위-새봉-곰샘-사립재-사립재골-어름터-광점동

산행시간:06시~17시 20분 (11시간 20분) 12.11km

 

 

 

 

죽는 날까지 자신이 가야 할 길을 선택하는 것이 삶이다.

따라서 자신이 걸어가는 길에 확신을 가져야 한다.

마음이 담긴 길을 걷는 사람은 행복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행복과 나란히 걷는다.

행복은 목적지가 아니라 여정에서 발견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류시화 시인-

 

 

어름터에서 두류봉 인근으로 뻗어있는 골짜기를 흔히들 '허공 다리골' 이라 부르는데,

[골짜기가 넓어 허공에 걸린 달이 아름답게 보이는 골]이라 하여 '허공 달 골'이라 한다고 했다.

근본도 알 수 없는 허공 다리골 보다 훨씬 운치 있고 멋있는 이름이다.

지리구구 지명 탐구 방에서 이 지명을 알고부터 나는 [허공 달 골]을 고집한다.

태풍이 지나 간 흔적들이 깊이 남았다.

다리 위 콘크리트 일부가 떨어져 나가고 굵은 철재 난간이 엿가락처럼 휘어져 있었다.

걷는 길에서 한껏 즐거움에 몰입하는 은의님은

작은 꽃들과 산세와 길 주위의 모든 것에 매료되어 맨 후미로 쳐질 만큼 혼자서 보아야 할 것이 많았다.

류시화 시인이 말한 것처럼 목적지가 아니라 걷는 여정에서 행복을 발견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어름터 독가를 향해 가는 길가의 이 범종은 오래전에도 보았든 것이다.

새벽 동이 트기 직전에 울려 퍼지는 그 우렁차고도 은은한 종소리로 중생의 혼미한 잠을 깨워주고

열띤 머리를 식혀주며, 불안한 가슴을 어루만져 주는 본래 있어야 할 곳인 제자리를 찾아 가면 좋을 텐데....

 

 

어름터 독가에는 제법 많은 사람들이 텐트까지 치고 자리를 찾지 하고 있었다.

우리가 바라보는 경계의 눈빛과 별반 다르지 않은 시선으로 그들도 우리를 주시했다.

불편한 시선은 못 본 척 외면 한 체 멈추지 않고 과감하게 계곡을 건너, 가야 할 길로 묵묵히 들어갔다.

이런 건 그동안 독오당 대장님에게서 듣고 보고 배운 것이다.

시작하기 전 두려우면 하지 말아야 한다.

그러나 결심했다면 두려워하지 말란 말이지.

호부 밑에 견자 없는 법이다.

 

 

독가에서 계곡을 건너 오른쪽으로 오르면 향운대로 갈 수 있는 길이다.

이 향운대 길을 지나치고 좌측에 계곡을 두고, 계곡 옆 길을 따라 사립재 골과 합쳐지는 지점까지 쉬지 않고 걸었다.

어김없이 얼굴에 확 달려 붙는 거미줄은 앞서 누구도 지나가지 않았다는 증거였다.

 

 

허공 달 골과 사립재 골 합수지점에서 잠시 쉬었다.

배낭을 멘 등과 얼굴은 땀이 비 오듯 흘렀다.

땀을 조금 식히고 난 뒤, 허공 달 골로 들어갔다.

계곡을 따라 조금 오르자 계곡 옆으로 길이 열였다.

 

 

오래전 올라 본 길이다.

그럼에도 기억은 소환되지 않았다.

인정하기 싫지만 몸과 함께 머리도 세월을 이기지 못하는 게 자꾸 뚜렷해지는 것만 같다.

처음 가보는 길처럼 생소하고 낯설었다.

거미줄이 이번에도 귀찮게 얼굴을 계속 덮쳐 왔다.

 

 

길은 계곡과 다시 만나고 시원한 작은 소와 폭포들을 만나면서 배낭을 내리고 또 쉬게 만들었다.

간혹은 아주 또렷하게 기억되는 것들도 있다.

뽓대 형님이 그러셨거든

나무꾼은 힘들면 쉬고, 산꾼은 경치가 좋으면 쉬는 거라고....

 

 

산으로 들기 전, 아침 일찍 의탄교 다리에서 잠시 엉겅퀴 형님과 만났다.

형수님께서 챙겨 주신 커피와 곶감을 건네주시며, 남자가 나 혼자 뿐임을 보고는 좋겠다고 웃으셨는데.

이 상황을 좋아해야 할지 모르겠다.

딱히, 별로 대접받는 것도 없고, 좋을 것도 없는데 말이다.

요구사항은 많고, 잔소리들도 엄청 많을 뿐이다.

말 한마디 잘못했다가 배 터지게 욕을 네 배로 먹기도 했다.

 

 

길은 산죽 사이로 잠깐의 오름길을 지나 석상용 장군 묘를 지나며 듀류암 승탑에 닿았다.

이곳에 도착하자 깊이 가라앉아 떠오르지 않든 기억이 샘물처럼 솟았다.

맑은소리팀과 독오당이 우연히 어름터 독가에서 만나 같이 걸었든 길이었다.

정석 형님이 특유의 그 몸놀림으로 춤을 여기서도 추었고, 막걸리를 잔도 없이 병나발 불었든 곳이었다.

찾아보니 2013년 일이다.

 

 

다시 한번 계곡 가까이 붙었든 길은 이제 물소리와 점점 멀어지며 능선을 향해 있었다.

 

 

건너가는 실 계곡으로 잠시 햇살이 내렸다.

날씨는 흐렸다 개였다를 반복하고 있었다.

 

 

쓰러진 나무에서는 그 생명을 다하고, 또 다른 생명이 새롭게 탄생하며 피어오르고 있었다.

숲은 끊임없이 숲의 질서로 윤회를 하고 있었다.

3억만 년 전부터 그래 왔고, 앞으로도 숲은 스스로의 힘으로 자정 하며 그렇게 지탱될 것이다.

그것이 숲이다.

그것이 자연이고 순리이다.

순리를 따라가야 한다. 역행하면 문제가 생긴다.

그런 생각을 했다.

코르나 19는 어쩌면 침 튀겨가며 시끄럽게 말로서만 살지 말고, 싸우지 말고,

말하는 것, 먹는 것 조심하며 살라는 경고일지 모른다는....

 

 

쉬엄쉬엄 별로 어렵지 않게 능선에 올라 서고, 능선을 따라 새봉을 향해 걸었다.

어느 사이 웅장한 모습의 산청 독바위가 보였다.

 

 

독바위 아래 두 사람이 머물고 세 사람은 로프를 잡고 그곳에 올라갔다.

독바위 위에 올라서자 아래와는 사뭇 다른 또 다른 모습의 지리산이 펼쳐졌다.

구름이 산 능선을 따라 올라오다 흩어지기도 하고 뭉치는가 싶다가도 옅어지며

산을 잠시 보여 줄 듯하다 감추어 버리기를 반복했다.

그 현란한 모습에 저절로 '와아' 하는 함성이 터져 나왔다.



 

 

그곳에서는 아래에 있는 사람들을 잠시 잊어버린 체 머물러 있었다.

이런저런 말 없이 독바위 아래의 사람과 위에 있는 사람들은 나름의 방식대로 각자의 시간을 알아서 즐겼다.

자세를 잘 잡았고, 사진을 계속 찍었다.

 

 

올려다본 하늘에 하얀 하트 구름이 피어났다.

 

 

​사라지기 전 하트 구름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자며 서둘렀으나

정작 카메라를 들이대자 구름은 금방 흩어지며 사라져 버렸다.

 

 

점심을 먹었고 느긋하게 쉬었다.

금농 선생님이 주신 당귀 향이 은은한 곡차가 참 잘 어우러졌다.

물인 줄 알고 옥희 누나가 벌컥 삼켜 버린 한 모금을 제외하고 혼자서 다 비워버렸다.

​편안하고 여유로운 그녀들의 만족에 나도 저절로 따라 만족하였다.

 

 

조개골과 새재가 발아래로 잠시나마 어렴풋이 보였다.

 

능선을 따라 새봉을 지나고 사립재로 향해 바쁘지 않은 걸음으로 꾸준히 걸었다.

 

 

곰샘에는 물이 맑게 흘렀다.

물맛이 시원하고 달달하니 참 좋았다.

수통에 남아 있는 물을 다 버리고 새로 물을 받았다.

 

 

사립재에서 내려가는 골은 길이 없었다.

아니, 희미하고 느닷없는 그곳은 걸어가는 전체가 길이라 해야겠다.

지리산의 여느 너덜길과는 전혀 다른 모습의 이 길은 무척 유순했다.

급하게 내리 꼽거나 쏟아지는 내리막길도 아니며 미끄럽지도 않아 힘들지 않았다.

긴장하며 스틱으로 몸무게를 분산해 가며 걸음을 옮기지 않아도 되는 부담 없는 길이었다.

 

 

누군가 쌓아놓은 돌탑 위에 돌 하나를 더 올렸다.

 

 

이 나무는 빵빵한 근육질로 물구나무를 서고 있는 사람 형상으로 보였다.

 

 

정말 쉽고 부드럽게 어름터까지 내려섰다.

하산길이 무척이나 마음에 든다며 네 사람은 힘든 기색이 전혀 없었다.

 

 

어름터 독가엔 아침에 보다 더 많은 사람이 모여 있었다.

일반 차량으로는 올라올 수 없을 것 같은 이곳에 사륜구동 차 두 대로 올라온 것을 알 수 있었다.

계곡 가까이에 솥을 걸어 놓고 불을 피워 대는 것이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독가를 지나 더욱 느긋하게 느린 걸음으로 길을 따라 내렸다.

길가엔 점점 물러가는 여름을 지키는 야생화가 간혹 불어오는 바람에 흔들렸다.

 

 

어깨에 가시가 박힌 은의님을 손톱으로 수술 중이다.

몇 번을 뽑았는데도 여전히 남아 불편했는지 저렇게 여러 번을 반복해서 뽑고 뽑았다.

어깨 살을 훤히 들어내야 하는 치료가 필요했으므로 나는 자리를 피해 주어야 했다.

길을 따라 천천히 혼자 터벅터벅 걸었다.

 

 

삶은 모든 과정과 순간순간이 목적지이다.

자신이 걸어가는 길에 있는 것들에 관심이 없는 사람은 목적지에 도달해서도 행복하지 못하다.

 

 

우리가 인생에서 많은 것을 놓쳤다고 생각하지만, 우리가 가장 많이 놓친 것은 '지금 이 순간들'이라고 했다.

<새는 날아가면서 뒤돌아보지 않는다 -류시화->

 

 

여기까지 먼저 내려와 이곳에서 일행을 기다렸다.

그늘에 앉아 한동안 계곡을 바라보며 멍 때리기를 하는 동안 나른한 행복감이 찾아들었다.

국골을 올라 어름터로 내려온 한 무리의 산꾼들이 지나가고 네 사람도 내려왔다.

멀리서 걸어오는 네 사람은 마냥 즐거운 표정으로 행복한 웃음소리를 냈다.

그 웃음들은 밝고 투명하였다.

 

걷고 땀 흘리며 숨찬 지리산에서의 모든 목적지들이 다 행복하였다.

머리가 지끈거리는 세상의 잡다함과 고민스러움을 다 잊게 만드는 이 산행 자체가 행복하였다.

내가 내 발로 걸어야만 얻어지는 꿈속 같은 조망 앞에서 무척 행복하였다.

걸음 뒤로 멀어지는 산길에서의 순간순간들이 또한 그러했다.

'행복하니까 지리산을 간다'고 말하는 형님이 계신다.

명료한 이 한마디가 유달리 오늘, 가슴 깊이 공감으로 와 닿았다.

아직도 많은 날을 걸어야 한다.

남겨진 인생이라는 먼 길을 걸어야 할 나의 배낭에

이제는 버려야 할 것과 새로 넣어야 할 것들이 조금씩 자세히 보이기 시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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