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골
행동팀111-지리86
일시:2020년 08월 30일 (일요일)
산행자:연하, 손원장, 권영구, 이순애, 최미희, 황순진, 김은의, 최정남, 성주숙, 수야 (10명)
걸어간 길:추성산장-국골-날끝산막골-두류봉-국골사거리-두류능선-추성동
산행시간:05시 22분~17시 55분 (12시간 33분) 11.34km
새벽 일찍 추성 주차장에 도착하였다.
진주에서 권영구 형님 부부가 우리 차 뒤를 따라 같이 도착하였고, 의령에서 출발한 차도 곧 도착하였다.
코로나 19 영향인지 주차장은 텅 비어 있었다.
어둠이 남아 있어 천천히 산행 채비를 하고 10명이 국골로 향했다.
화살표가 그려진 길을 따라 올라갔다.
나중에 두류능선을 따라 내려올 길과 국골로 올라가는 갈림길에서 지난번 칠선계곡 산행 때의 기억을 되짚었다.
이 길이 그때 밤중에 내려온 길 임을 다들 금방 알았는데 왜 나는 기억이 나지 않는지 모르겠다.
이제 술도 끊어야 할 모양이다.
국골(國谷)은 가락국 마지막 임금 구형왕의 피난처였다는 설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피난 차 들어온 가야의 왕이 신라에 저항하기 위해 나라를 세웠다는 데서 지리산 지명중 유일하게 나라 국(國)을 쓴다고 한다.
피난 당시 인접한 두지터는 가야국의 식량창고였으며, 광점동 얼음터는 석빙고 터였다.
국골은 고도 1,050m 부근까지 오르면 좌우 두 개의 골짝으로 갈라진다.
예전엔 국골 좌골과 우골로 불려지든 것이, 정확한 지명으로 지리구구를 통해 소개되면서 날끝산막골과 선골로 불리고 있다.
하봉과 두류봉 사이 동부 능선에 올라붙는 좌측 골을 <날끝산막골>이라 하고 우측 골을 <선골>라 한다.
우측 선골로 따라 오르면 초암 능선 촛대바위 아래 안부에 올라서게 된다.
계곡이 곧추섰다고 <선골>이라고 한다.
그곳은 그야말로 긴장감이 팽팽한 골짜기라 했다.
아직 이곳은 올라보지는 못했다.
좌측 골은 오르는 동안 폭포가 연달아 나타나는데, 지리산 깊은 계곡의 비경에 감탄을 금하지 못할 만큼 그 풍경이 압도적이었다.
능선 상의 날머리에 산막이 있었다고 <날끝산막골>로 부른다.
계곡은 머금은 물을 토해 내느라 우렁차게 소리를 내며 흘러가고 있었다.
한차례 짧은 휴식을 하며 김밥으로 아침을 해결했다.
땀이 벌써 옷을 다 적신 상태라 윗옷을 벗고 등목을 한차례 했다.
정신이 번쩍 들만큼 시원했다.
며칠 전 내린 비로 수량이 아직 적당하게 흘렀다.
흐르는 계곡의 물에 햇볕이 반사되면서 빛났다.
계곡을 따라 발걸음들이 분주히 움직였고 그 소리는 골을 따라 위로 먼저 올라가고 있었다.
계곡을 횡단하여 건너가기도 하고 다시 건너오기도 하며 고도를 차츰 높아져 갔다.
언제나 그렇듯 손 원장님은 뒷모습 조차 자주 볼 수 없을 만큼 날쌔게 저 앞에서 걸어 올랐다.
올려다보는 곳곳이 역시 국골 다움으로 가득했다.
최미희 님의 걸음도 거침없이 과감하고 빨랐다.
연이어 한 주 동안에 벌써 몇 번째 산행이라 했다.
계곡 좌측으로 길게 비단 같은 폭포가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오르는 길에만 집중하다 지나칠 뻔 한 곳을 은의님이 먼저 가까이 다가가 카메라에 담고 있었다.
내가 찍는 사진은 언제나 눈으로 직접 보는 사물을 다 담아내지 못한다.
실력이 없음은 물론이고 굳이 위험을 감수하거나 가까이 갔다가 다시 돌아오는 번거로움을 나는 인내하지 못하는 까닭이다.
갑자기 높다란 장애물이 앞에 놓이면 앞선 사람들이 길을 안내했다.
거의 대부분은 손 원장님과 영구 형님이 선발대로 나아가서 길을 찾아냈다.
사람의 가치는 그 사람이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무엇인가에 따라 결정된다.
만나는 어떤 인연도 가볍게 여기지 않고, 물질과 금전에 비교하여 사람을 분류하지 않고
사람을 사람으로 먼저 우선하며, 주어진 어떤 길에서 건, 결정된 것에는 불평불만 없이 묵묵히 걸어내는 최선을 다하는 사람들.
중경팀의 산쟁이들이다.
고도가 점점 올라가는 만큼 쏟아지는 땀은 더욱 진하게 흘러내렸다.
새벽 일찍 집에서 출발하느라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한 상태의 몸이 이렇게 땀을 쏟아 내자
개운해지며 제대로 작동하기 시작했다.
반가운 이름의 표지기가 보였다.
뵙지 못한 지 제법 되어 가는 것 같다.
사회적 거리두기를 강하게 다시 해야 할 만큼 좋지 못한 상황이 이어지다 보니 지인들을 만나는 것조차
쉬운 일이 아닌 일이 되어버렸다.
올해 5월은 그렇게 지나 가버렸고, 코로나 이전의 세상으로 언제쯤 돌아갈 수 있을지 알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우연히라도 산에서 형님을 만날 수 있기를 기대해 보았다.
하늘을 향해 높이 자라난 나무를 이끼가 붙잡고 같이 오르고 있었다.
식물은 빛 에너지를 이용하여 필요한 영양분을 스스로 합성하는데 이 과정을 광합성이라고 한다.
광합성은 잎에 있는 엽록체 안에서 일어난다.
엽록체 안에는 녹색 색소인 엽록소가 들어 있는데 이 엽록소 때문에 식물이 녹색으로 보인다.
엽록소는 광합성에 필요한 빛을 흡수한다.
한정된 장소에 머물며 햇볕 보는 일 없이 갑갑하게 있다가 이렇게 산에 가는 것만으로도 숨통이 트인다고 말하는 사람들에게는 도
식물처럼 햇볕을 받는 이 산행을 광합성이라 해야겠다.
골짝을 따라 끝이 보이지 않는 작은 폭포들이 연속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그 광경을 바라보는 이는 누구나 절로 탄성이 흘러나왔다.
떨어지는 물줄기를 응시하는 바위가 내 눈에는 돌고래 같아 보였지만, 보는 사람마다 다 다른 표현을 했다.
그렇다 같은 길을, 같이 걸어도 만인부동으로 느낌과 생각, 감정은 만인이 같지 않는 것이다.
자신의 삶은 언제나 자신이 지배하여야 하듯, 산행에서의 느낌이나 감정 또한 그러한 것이 당연하다고 나는 생각했다.
날끝산막골로 들어서면서부터 폭포는 자주 나타났다.
그것들은 전부가 다른 모습으로 우리들의 걸음을 자주 멈추게 하였다.
결국에는 견디지 못하고 그 속으로 헤집고 들어가는 만행을 자행하는 자들이 생겨났다.
산꾼 권영구 이순애 님 부부
국골을 아니, 지리산행을 언제나 제일 잘 즐길 줄 아는 김은의 님
뒤 돌아본 계곡 저 너머로 서북능선이 눈에 들어왔다.
시야가 멀리 트이면서 마음속에 갑자기 환한 밝은 빛이 가득 들어차는 것 같았다.
마음을 갉아먹는 잡념들이 타는 모닥불에 물을 뿌렸을 때처럼 순식간에 사라졌다.
앞을 봐도 뒤를 봐도 좋았다.
산행지를 국골로 정한 것은 진정 탁월한 선택이었다.
고도 1,250 부근을 오르면서부터 폭포들이 더 자주 나타났다.
꼭꼭 숨겨둔 비경을 속속들이 들여다보는 즐거움도 더 많아졌다.
고도 1,520m 근처 이 폭포에서 배낭을 내렸다.날끝산막골 상단의 마지막 폭포였다.
이곳에서는 좀 더 오래 머물렀다.
천상의 세계에 오른 듯 황홀함도 오래 남았다.
날끝산막골 최상단부를 조심히 올랐다.
주능이 코 앞으로 곧추서며 다가오고 있었다.
11시 55분 두류봉에 올라섰다.
올라온 국골이 길게 아래로 한눈에 들어왔다.
칠선계곡과 국골을 양편으로 가르는 초암 능선도 구름이 살짝 걸린 채 선명하였다.
"우리가 저기로 올라온 거가?" 스스로를 대견해하며 몇 사람은 신이 났었다.
주능선을 따라 두류 능선으로 하산길을 잡아 나갔다.
걷다 보면 또다시 별안간 길을 막아서는 높은 암봉과 자주 마주치기도 했다.
세상의 어떤 것이든 내가 손에 넣으려 하는 것들은 언제나 저항했다.
산에서도 예외 없이 강하게 저항했다.
더 높이 오르고자 할수록 길이 가파르게 저항했고, 더 멀고 길게 걷고자 하면 몸이 험하고 거칠게 저항했다.
그 저항들을 이겨내고 얻게 되는 것이나, 쟁취하게 되는 것은 그래서 더욱 성취감이 깊고 짜릿했다.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스스로의 걸음으로 얻어지는 이런 성취감은 중독성이 매우 강해서 좀처럼 놓을 수없게 되었다.
지리산을 한 번도 안 간 사람은 있어도, 한 번 만 가는 사람은 없다 할 만큼.
죽어도 좋다는 말, 이 말만큼 좋다는 것을 강렬하게 표현할 수 있는 말이 있을까?
헉헉대는 가뿐 숨을 내쉬며 올라선 곳에서 내려다 보이는 산은 완벽히 소독이 된 듯이 참으로 청정하고 상쾌했다.
아래를 보아도, 위를 올려다 보아도 좋았다.
"죽어도 좋을 만큼 좋다!"는 말이 나도 모르게 새어 나왔다.
산에 오른 사람들이 맑고 투명하게 웃었다.
절벽 끝 낭떠러지 근방에 가까이 다가서면
짜릿짜릿하고 시큰시큰한 환장할 것 같은 느낌으로 가슴이 뛴다.
팔딱팔딱 가슴이 뛰는, 살아 있다는 완벽한 증거 앞에서
지금 내게 주어진 삶이 얼마나 감사한지 급박하게 느껴지곤 한다.
그 감사함만으로도 충분히 활짝 웃어도 되는 일이다.
지리산 높은 곳에서는 산아래의 계절을 앞질러 가을꽃이 벌써 피어나고 있었다.
몇 개의 가을꽃이 이곳을 벗어나는 걸음 뒤에서 꽃잎을 흔들었다.
두류 능선 하산길은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자 크게 힘을 빼지 않았다.
간혹 산줄기 위 치솟은 웅장한 바위와 만나게 되었다.
그 모습은 바위의 무게감으로 장중했으며, 위로 뻗치는 기상으로 장쾌했고, 군더더기 없는 담백함으로 수려하였다.
그런 곳에서는 언제나 모여 사진으로 남기고 싶어 했다.
죽어도 좋을 만큼 좋은 곳은 곳곳에서 그 모습 들을 구름으로 살짝 감추기도 하고 보여주기도 하였다.
지도에 따르면 이 아래가 성안이다.
대궐터가 있고 말 달릴 평전도 저 아래 어디쯤이다.
그래서일까 오래된 기왓장이 즐비했다.
거침없이 내리든 능선이 임도와 잠시 만나게 되었다.
임도 아래 집 한 채가 바로 보였다.
길은 잠시 임도로 내려서야 했다
자칫 능선을 따르든 그대로 걷다가는 다른 방향으로 벗어날 수도 있었다.
임도로 내려서자 말자 길은 다시 추성동으로 산속에 열려있었다.
곧 다시 임도를 만나게 되고 그 길을 따라 내려서면 곧장 아침에 올라간 길과 합류되고 주차장으로 도착되었다.
맨 앞에서 걸어가고 있는데 저 아래에서 멧돼지 소리가 요란하게 들렸다.
얼마 떨어지지 않은 거리, 그놈은 놀라서 어디로 가야 할지 방향을 정하지 못한 채 소리만 내고 있었고
그런 그놈을 노려보며 걸음은 정지되었다.
일렬로 대열을 갖춘 10명이나 되는 쪽수에 안 되겠다 싶었는지
억울하다는 듯 사면을 따라 산죽 사이로 요란한 소리를 내며 그놈은 빠르게 뛰어 사라져 갔다.
흔히 보는 그런 멧돼지가 아니라 흰색의 멧돼지였다.
새벽 고속도로에서는 갑자기 나타난 새끼 고라니로 깜작 놀라기도 했었다.
마지막 임도로 내려서는 곳은 잡풀이 무성하여 조금 헤치며 나왔지만 길은 온전히 살아 있었다.
이 곳이 산길의 끝 지점이었다.
하도 많은 사람들이 지나다녀서 그런지 백구는 지나가는 사람에게 별 관심이 없어 보였다.
세상 귀찮은 듯 멀뚱멀뚱 쳐다만 보았다.
개팔자...
주차장에 도착하자마자 갈아입을 옷을 들고 모두 계곡으로 달려갔다.
하루 종일 달궈진 몸에 열기를 시원한 계곡물로 식혔다.
여름 산행의 대미는 역시 계곡물에 몸을 푹 담가 주어야 진정한 마무리가 되는 것이었다.
매우 무척 깊이 사랑하는 사람은 보고 있는데도 보고 싶어 진다고 한다.
그곳을 걷고 있으면서 그 산이 그리워지는 것과 같다.
그리움은 다른 어떤 것으로 대체되지 않는다. 그리움의 대상인 꼭 그것이어야만 한다.
그래서 그리움은 외로움이나 고독함과는 다르다.
보고 있어도 보고 싶은 사람처럼, 죽어도 좋을 만큼 좋았든 국골에서 점점 멀어지면서
우리는 지리산을 벌써 그리워하고 있었다.
다음에는 어디로 갈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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