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신지곡 우골
행동팀104-지리81
일시:2020년 05월 24일 (일요일)
산행자:연하, 에스테야, 황순진, 김은의, 권영구, 이순애, 최정남, 최옥희, 이종철, 최미희, 김민서, 둘렘이, 수야 (13명)
걸어간 길:백무동-첫나들이폭포-가내소폭포-한신지곡-팔팔폭포-천령폭포-지곡우골-주능선-연하북능-백무동
산행시간 :07시 49분~18시 49분 (10시간 59분) 13km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다.
모든 선택의 책임은 자기 자신이다.
따라서 인생은 누구를 원망해서도 안 되고, 원망할 수도 없는 철저히 자기 책임이 원칙이다.
누구도 대신해 줄 수 없는 자신의 인생이므로.
나는 산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선택과 결과도 자신이 책임져야 하는 것이라고 배웠다.
내 삶에 모든 책임이 당연히 그런 것처럼, 그것은 당연히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한신 지곡을 떠올린 날 연하 형님이 지곡 우골을 말씀하신다.
한신 지곡은 수차례 올라 보았지만 우골은 아직 미답이다.
무조건 콜!
단출하게 꾸려질 줄 알았든 산행팀은 13명의 적지 않은 인원이 동행을 하게 된다.
집결장소인 백무동 주차장까지 약속 시간 내에 도착 하기엔 애당초 출발 때부터 틀렸다.
과속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다.
딱지가 달아 온다면 그 또한 약속시간을 지키지 못한 내 책임이니 감당해야 할 내 몫이다.
180km을 넘나들며 달려고 달려 아무 일 없듯이 주차장에 들어가니 산행 채비까지 마친 9명이 기다리고 있다.
이럴 땐 처음부터 '미안합니다'를 외치거나, '우짜라고 배 째라'는 뻔뻔함으로 나가는 방법뿐이다.
에스테야 형님은 차에서 내리며 인사하기에 바쁘다.
다행히 그것 때문인지 약속시간 늦은 것에 대한
아무런 추궁이 없는 것에 은근슬쩍 안심이 되고, 그저 에스테야 형에게 감사하며 배낭을 울러 멘다.
안부를 묻는 인사는 걸으면서 한동안 이어지고 몸이 다 풀리는 첫 휴식까지 계속된다.
한신계곡은 통상 첫나들이 폭포 위쪽을 지칭하고, 그 아래쪽은 백무동 계곡으로 부르는 것으로 알고 있다.
내가 알고 있는 것이 정확한지는 모르겠다.
혹여, 오류가 있다면 지체 없는 조언을 부탁드린다.
한신계곡 본류는 세석고원과 이어진다.
덕평봉, 칠선봉, 영신봉, 촛대봉, 삼신봉, 연하봉의 여러 준봉에서 발원한 물이 지리산 북쪽 이 계곡으로
모두 흐르기 때문에 언제나 수량이 풍부하다.
한신지 계곡은 제석봉과 연하봉에서 흘러내려 크고 작은 폭포를 거치며 한신계곡과 가네소폭포에서 만나
백무동 계곡이 된다.
한신지 계곡과 한신계곡에는 그 깊이와 수량에 어울리는 폭포가 많아 폭포의 왕국이라 해도 무리가 없을 듯하다.
이렇듯 백무동 계곡은 한신 골과 한신 지곡, 큰샛골, 흔히 평전 막골이라 부르는 작은 샛골까지 포함된
수량이 모여들어 첫나들이 폭포 부근에서 합류하며 계곡을 이룬다.
올라가는 길, 생각보다 사람이 없다.
긴 줄로 늘어 선 일행의 걸음은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걸음으로 온통 수다스럽다.
날씨는 맑다.
맑은 날씨 탓인지, 초록빛 신록과 맑은 물소리 덕분인지 기분들이 무척 좋다.
공터 삼거리, 잠시 걸음을 멈춘다.
들어가는 입구, 그곳에는 낭랑한 아가씨 목소리가 앵앵거리는 사이렌 소리를 준비하고 대기 상태다.
피할 수 있는 상황은 더 이상 위협이 되지 않는다.
놀랍도록 일사불란하다.
지계곡으로 들고 걸음은 분주히 계곡을 오른다.
앞 선 사람이 뒷사람을 올려주고 잡아주며 열어 나가는 길.
어엇! 소리와 함께 순진 형님이 장딴지를 손으로 잡는다.
순간적으로 디딘 한쪽 발에 무리가 가며 쥐가 났다고 한다.
그런 줄로만 알았다.
잠시 쉬고는 괜찮다고 하길래 그런 줄로만 알았다.
본격적으로 지계곡을 오른다.
연하 형님은 무지 바쁘다.
금방까지도 뒤에 있더니 언제 이 앞에 와 있다.
용띠들이 계곡을 만나더니 승천할 기세로 거침없다.
걸음이 느리거나 체력이 약한 것이 아니다.
은희 님은 지리산 세상이 온통 신기할 뿐이다.
이곳저곳, 이것 저것, 보고 듣고 알고 싶은 것이 많아 잠시 뒤에 있을 뿐, 걸음이 워낙 빨라 어느새 따라붙는다.
계곡을 치고 오르는 계곡 치기는 온몸의 근육들이 다 사용되는 바람에 에너지 소비도 그만큼 많다.
쉴 때마다 먹을 것이 넉넉히 도 나온다.
앞서서 어디까지 가버렸는지 불러도 대답 없는 연하 형님만 쫄쫄 굶고 우린 먹을 거 먹어 가며 올라간다.
난 그리 배웠거든.
목마르기 전 먼저 마시고, 배 고프기 전 먼저 먹고, 지치기 전 먼저 쉬어라.
원래 이런 건 배운 대로 해야 한다.
그림 같은 장면 장면을 만날 때마다 시간은 지체되지만
눈으로 보고 소리 내 감탄하고 사진으로 남기는 작업은 계속 반복되지만 하나도 지겹질 않다.
계곡을 거슬러 오르는 것은 미끄러지지 않기 위해, 능선을 오르는 것보다 더 많은 신경이 쓰이는 일이다.
온몸이 사용되고 신경도 많이 쓰이고 조심해야 하는 것도 많지만 그만큼 매력적인 일이기도 하다.
능선과는 또 다른 바람 맛, 머릿속까지 투명해지는 듯한 맑은 물소리
한 고개를 넘을 때마다 나타나는 폭포와 소들, 휘돌고 감돌며 물들이 만들어 내는 하얀 포말,
울창한 양 숲 사이로 벌어진 하늘빛, 작고 앙증맞은 야생화들, 목표지점으로 가장 빠르게 근접할 수 있는 장점 등등
계곡을 타고 오르면 치르는 대가에 비해 얻는 것이 더 많기에 소비되는 모든 수고로움 따위는
당연히 얼마든지 감당 해 내는 것이다.
중경팀에 최연소 산꾼이 들어왔다.
이쁨은 기본으로 깔고 상큼 발랄 온갖 수식을 다 가져다 붙이고 싶을 정도다.
바로 중경팀의 딸이 되어 버렸다.
내 예감으로는 이런 식으로 나가면 지리 구구의 딸도 되지 싶다.
이 산행기 첫 사진을 자세히 보았다면 알겠지만 요 딸을 한가운데 세웠다.
잘 키운 딸 하나 열 아들 안 부럽다 아잉!
잘 다듬어서 지리 산꾼으로 만들자. 카면서
본인 의사와는 전혀 상관없이 우리끼리 결심하였겠다.
한 번 힘든 경험을 하고 나면, 사람은 그다음에는 웬만한 것은 견디는 저항성이 면역처럼 생기는 법이다.
첫 산행을 하필이면 한신 지곡으로 따라나선 이 아가씨 모두의 걱정과는 달리 잘 오른다.
천령 폭포(10시 44분)
다리를 절룩이며 올라오는 순진 형님의 상태가 자꾸 걸려 묻고 또 물었다.
그리고 아직 올라가야 할 길이 많고 내려와야 할 길도 많이 남았으니 안되면 여기서 다시 내려가는 것도 괜찮다 했다.
선택은 형님이 하시라 했다.
견딜만하니 그렇게 결정했을 것이고, 충분히 자신이 있으니 올라가기로 선택하였을 것이지만,
다른 사람들에게 작은 민폐 조차 주지 않으려고 이 형은 하산 완료까지 괜찮다는 말을 수 없이 했다.
자신으로 인해 혹시라도 다른 사람에게 피해가 되지나 않을까 내색하지 않고
아무 일 없듯이 끝까지 같이 한 형님은 나중에 병원에서 근육 파열이라는 진단을 받았단다.
이 형을 보면서 그런 생각을 했다.
하고 싶은 의지가 분명한 사람은 어떻게 하든 방법을 찾는 법이고
아무것도 하기 싫은 사람은 어떻게 하든 구실을 찾아내는 법이다.
인생의 모든 선택과 결정과 결과는 자기 책임 원칙이다.
중경팀 막내, 중경팀의 딸 김민서.
한신 지곡이 연하 북능이 어떤 길인지 알았다면 분명 따라나서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모르기 때문에 따라나섰지만
그 또한 스스로 오르고 스스로 내려와야 하는 자신이 선택한 길이다. 누구도 대신해 줄 수 없는 자신의 산이다.
멋 모르고 부딪치며 경험하고 이겨 내는 것은 역시 젊기 때문이며 그때 누릴 수 있는 특권이기도 하다.
이 아름다운 아가씨 "아직 멀었나요"를 오르며 내리며 수없이 물었지만 묻는 사람 전부의 답은 다 똑같았단다.
"응, 이제 조금만 더 가면 돼! 이제 거의 다 왔다."
힘들고 힘들었지만 너무너무 좋았다며 한 번도 얼굴 찡그리지 않고 활짝 웃는 김민서는 참 예뻤다.
산에서의 모든 선택과 행동, 그 결과는 자신이 책임지는 것이 원칙이다.
두 용띠는
이 골짜기로 승천을 할 모양으로 잘 오르고 잘 걷고 잘 간다.
한신계곡의 한신이라는 지명은
영신봉 아래 한신 바위에서 그 이름의 유래를 찾을 수 있다.
한신 바위의 한신은 중국 삼국시대의 명장이었던 한신(韓信) 장군의 이름에서 왔다.
중국 장군의 이름이 어째서 지리산 바위에 까지 붙은 것일까?
그 자세한 내용은 지리 구구 지명탐구방 가객님의 글을 참고하시기 바란다.
옛날 어느 나라 왕이 현인들을 불러 모아 놓고 명령을 하였다.
"모든 백성들이 다 잘 살 수 있는 성공 비결을 적어 오너라"
현인들은 그날부터 연구하고 토론도 하여 마침내 백성들이 잘 살 수 있는 비결서 12권을 왕에게 바쳤다.
왕은 그것들을 다 읽어 본 다음 "좋은 비결이 실려 있긴 하지만 열두 권이나 되는 이 책을 어떻게 모든 백성들에게
나누어 주는가? 너무 방대하니 이것을 줄여 오라" 다시 명하였다.
현인들은 연구하고 토론하여 그것을 절반으로 줄여 여섯 권으로 다시 만들어 왕에게 바쳤다.
그러나 왕은 그것도 많으니 다시 줄여 오라고 하였다.
그다음 두 권으로 대폭 줄여 왔으나 왕은 더 줄여 오라 하였고 마침내 한 권의 책으로 왕에게 받쳤다.
그런데 왕은 한 권의 책도 백성들이 읽기에는 너무 긴 글이니 더 줄여 오라 하였다.
마침내 한 페이지로 줄여 왕에게 다시 받치니, 왕은 못마땅해하며 한 페이지를 어찌 백성들이 다 외우겠는가
더 줄여 오라 다시 명하였다.
현인들은 할 수 없이 그 한 페이지의 글 중에서 가장 핵심이 되는 글귀 한 마디만 적어 왕에게 받쳤다.
왕은 그것을 받아 읽어 보더니 무릎을 치며 그제야 만족하였다.
그 한마디는
"세상에 공짜는 없다" 이 한마디였다.
11시 47분
아무리 올려 봐도 계곡의 끝은 아직 보이지 않는다.
왜 갓냉이
그 맑고 쾌청하든 하늘이 얼굴빛을 바꾸더니 점점 어두워지기 시작한다.
우리 일행과 같은 방향으로 오르는 세 사람의 산꾼을 먼저 올려 보낸다.
그분들과 다시 만나고, 좁은 골짜기 점심을 펼쳐놓은 사이로 비켜간다.
그분들이 비켜 가야 하는 우리에게 미안해하고, 어쩔 수 없이 지나가야 하는 우리는 더 미안해하며
인사를 주고받는다.
그리고 그분들과 얼마 떨어지지 않는 위치에 일행이 다 앉을만한 공간을 잡고 우리도 점심을 먹는다.
12시
점심상은 늘 그렇듯이 푸짐 풍성하였다.
후둑후둑 소리가 나기 시작하고 식사가 거의 끝날 무렵 본격적으로 비가 시작된다.
서둘러 정리를 하고 주능선까지 비를 맞으며 올라간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
내 걸음으로 걸어 올라야만 하고, 나의 발로 내려와야만 하는 것이 산이다.
점점 굵어지는 빗방울과 함께 사방은 안갯속이 되어버린다.
맨 앞에서 오르는 나는 아무도 모르게 발이 빠져 이미 등산화 속에는 물이 차 있었다.
처음에는 안 젖 어려 우의도 입고 물이 많은 곳을 피해 발을 옮겨 딛고 다니다 한번 젖어 버리고 나니
시원하게 비도 그냥 맞게 되고 철철 흐르는 물을 피하지 않고 지나가니 오히려 편해졌다.
이왕 버린 몸이 된 것이다.
14시 02분
한신 지곡 우골 마지막 사태 지역을 오른다.
14시 37분
빗속 골짜기를 기어올라 아무 이상 없이 주능선에 모두 올라선다.
14시 40분
연하북능 들머리로 빠르게 들어간다.
나도 옥잠화
하산길은 능선을 따라 천천히 쉬지 않고 꾸준한 걸음으로 계속 걷는 방법으로 걸었다.
생각보다 길은 험하지 않았지만 빗길에 몇 번씩 엉덩방아를 찧었다.
17시 40분
주등로에 다시 합류하고 백무동까지 축축한 걸음으로 걸었다.
비를 맞아 몸은 눅눅했지만 처음 출발 때처럼 모두 여전히 웃음은 맑고 밝았다.
산행 후
김민서 님은 다리에 여기저기 생긴 멍들을 단체톡으로 보여주었다.
그래도 너무 좋았다는 말과 함께.
외로움은 다른 어떤 것이나, 다른 대상으로 대체할 수 있지만
그리움은 그 그리움의 주체인 그 사람, 또는 그 대상이 아니면 안 된다.
우리가 언제나 좋은 관계로 남아야 하는 것은 그리운 사람이 되어야 하는 까닭이기 때문이다.
돌아서면서부터 다시 그리워지는 산,
지리산은 내게 늘 그리움이다.
그리움
-나 태 주 -
가지 말라는데
가고 싶은 길이 있다.
만나지 말자면서
만나고 싶은 사람이 있다.
하지 말라면
더욱 해보고 싶은 일이 있다
그것이 인생이고 그리움
바로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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