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수대
독오당 107차 정기산행
일시:2020년 6월 7일 (일요일)
산행자:다우, 귀소본능, 수야
걸어간 길:성삼재 주차장-무넹기-노고단 대피소-노고단 고개- 노고단- 송신탑-문수대-돼지령(비목)-노고단고개-주차장
산행시간:08시 06분~15시 25분 (7시간 19분) 11.05km
산행 전 대장님이 벙개를 치는 바람에 오랜만에 모였다.
대장님 빼고 술은 우리끼리 신나게 마셨다. 썪어마시고, 말아 마시고, 그냥 마시고....
코로나19 때문에 이제 해외는 못 가실 거고 그 꽁알 만한 공은 다음에 치고, 지리산 가자고 살살 꼬드겼겠다.
체력이 되니 안되니 하시더니 자리에서 일어날 무렵
지금쯤 라일락 향이 끝내줄 거라면서 그럼 그 꽃이나 보러 가자고 하신다.
대신 살살하잖다.
1년 넘게 산을 안 갔다고 엄살을 미리 피우지만 우린 다 안다.
산에 가면 이 영감쟁이 젤 빠르고 젤 잘 걷는다는 사실을.
살살 그 좋지.
6월 7일 산행 당일 아침 8시, 산행을 시작하며 힘들면 내려가 버릴 거란다.
그리고 이 양반 화장실로 가더라.
본능과 둘이 천천히, 진짜 참말로 살살 걸었다.
살살 하자는 바람에 귀소본능의 배낭도 작은 것으로 바뀌었다.
참말로 살살할 작정으로.
날씨가 그리 화창 하지는 않았다.
전날 우박이 내렸다는 뉴스도 있었고 비도 왔다고 했다.
적절하게 더웠고 삐질삐질 땀이 솟았다.
산책을 나온 듯 가벼운 차림의 사람들이 더 많았고, 배낭을 메고 스틱과 등산화를 갖춘 우리가
오히려 눈길을 끌만큼 산꾼은 드물었다.
붉은 병꽃이 제 계절을 마음껏 피어내고 있었다.
저 아래로 세상은 이미 많이 낮아 있었고, 운무에 가려 답답해 보였다.
흐린 날 있으면 맑은 날도 있는 법, 비는 언젠가는 그친다.
산 아래 일들을 가져오지 않으려고, 애써 때어 놓으려고 머리를 흔들었다.
뒤돌아 보고 기다려 가며 천천히 걸었는데 아직도 올라오지 않는 대장을 여기서 멈춰 기다렸다.
설마 진짜 다시 내려 가버린 건 아니겠지.
2km도 안 걷고 뭔, 말도 안 되지.
그렇겠지, 그쟈.
이 계단을 오르지 말고 빙 둘러가면 요 위에서 만나겠지 가자.
출사를 나온 사진동호인들 뒤를 따라 걷는다.
설명을 해 가며 사진을 찍는 분들 뒤에 서서 같이 들어 보지만 도통 모르는 말이다.
귀소본능은 알아듣는 것 같았지만, 나는 재미가 없다.
이걸 보고 본능은 매발톱이라 하고 나는 붓꽃이라 했다.
하릴없이 네가 맞니 내가 맞니 서로 우기다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어 검색을 하니 창포로 나온다.
스마트폰은 더 믿지 못하겠다.
나중에 대장도 붓꽃이라 했는데 본능은 아직도 매발톱이라고 굳건히 믿고 있을지 모르겠다.
좌우지간 귀소본능이 센 놈은 틀림없다. 그 굽히지 않은 일관성과 고집 하나는...
무너미 즉, 물이 넘친다.
물이 고개를 넘어 흐르게 인위적으로 만든 수로를 말한다.
옛날에 구례군 화엄사 아래 섬지뜰에 가뭄이 들어 남원으로만 흐르던 노고단의 물을 사이좋게 나누어서
구례 쪽으로 수로를 만들어서 섬지뜰(섬진강과 지리산의 뜰)은 풍요로운 뜰이 되었다.
그리하여 무너미고개, 무너미....무넹기가 되었단다.
노고단 대피소 아래 개울이 흐르는 이지점에서 족히 20분은 넘게 놀았을 거다.
이 양반이 왜 이리 안 오나 하며 걱정이 되기 시작할 때 전화가 온다.
언제 어디로 어떻게 우리를 앞질러 갔는지 대피소에 먼저 올라가 있단다.
빠르게 다급하게 서둘러 대피소에 도착하니 제법 많은 사람들이 분주하게 움직인다.
대장님은 우리가 대장과 걸음을 맞추기 위해 빙 둘러 간 사이 그 잠시 잠깐의 틈에 빠른 걸음으로 질러 온 것이었다.
간식을 먹으며 대장은 초반에 힘들어 죽는 줄 알았다며 우리가 믿지도 않을 엄살을 한참 피웠다.
대피소에서 바라본 노고단 방향은 안갯속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귀소본능이 미리 예약을 하고 폰으로 받아 온 QR코드를 들이밀자 차단기가 열였다.
한라산에서 이 것을 올 겨울에 경험하면서 지리산도 이런 식으로 되는 게 아닌가 했는데 예상이 맞아간다.
복주머니난 (개불알꽃, 요강꽃)
개 불알을 닮았다고 하여 개불알꽃으로, 뿌리 주변에서 오줌 냄새가 난다고 요강꽃이라고도 한단다.
멸종위기식물로 보호종이다.
말이나 소가 아니라 개가 그 크기에서 아주 적절하다는 이유로 이름 한 번 기막히게 잘 붙였다고 우리끼리 떠들었다.
노고단(老姑壇)
길상봉(吉祥峰)이라고 불렀던 노고단은 늙을 노(老), 시어머니 고(姑), 제단 단(壇)를 써서
신라시대 시조 박혁거세의 어머니인 선도성모를 지리산의 산신으로 받들고
나라의 수호신으로 모셔 매년 봄과 가을에 제사를 올리던 곳으로 전해진다.
제사는 현재 대피소 부근에 선도성모의 사당인 남악사를 세워 올렸는데
지금은 화엄사 앞으로 옮겨와 구례군민들이 해마다 곡우절을 기해 약수제와 함께 산신제를 올리고 있다.
남악사의 유래는 삼국사기에 기록으로 남아 있다.
돌탑은 1962년에 청학동에서 단군을 숭배하는 단신 교인들에 의해 100일간의 정성으로 세워졌다고 한다.
이 정성이 이어져 내려와 지금의 노고단(1,507m)의 상징물이 되었다.
노고단을 오르며 지나온 노고단 고개를 내려다보니 안개가 자욱하게 깔렸다가 이내 사라지곤 했다.
노고단 대피소도 안갯속에서 어렴풋이 위치가 가늠되었다.
전망대에 서서 대장님은 계속해서 살피고 자세히 바라보더니 이리 말한다.
"있다 아이가 저 송신탑 벽 있는데 까지 그냥 냅다 뛰는 거다.
뒤에서 부르든 뭐라 하든 뒤도 돌아보지 말고 무조건 가는 거다. 셋이 동시에 들어가자! "
나는 뛸 준비를 끝내고 목책 안으로 이미 몸이 들어가 있었고, 주춤거리든 본능도 어쩔 수 없는 듯 넘어 들어왔다.
역시 대장은 빠르고 날랬다.
분명 내 뒤에 있었는데 나를 추월해 내달렸다.
뒷머리로 피가 한꺼번에 쏠리는 듯 따끔거렸지만 <개가 짖어도 기차는 간다!>
이런 강건하고 강인한 의지로 두어 번 넘어지면서도 신속하고 정확하며 완벽하게 목표지점에 이르렀다.
우린 이미 다 알고 있었다. 시작하면 이 영감쟁이 젤 빠르고 젤 잘 걸을 것이라는 것을.
문수대로 들어가는 길로 온전히 들어서고 나서 대장은 엉겅퀴 형님도 같이 오자고 했어야 하는 건데 그러지 못한 것에 많이 아쉬워했다.
아주 오래전 처음 문수대를 찾아들어오며 이 길을 몰라 공단에 전화를 해서 직원에게 물어보았다는 이야기도 했다.
지금 같으면 말도 안 되는 일이지만 그땐 그랬단다.
너들 지대를 통과하며 잠시 저 멀리 앞을 바라본다.
왕시루봉 능선이 보일락 말락 흐릿하게 안개에 가려있었다.
문수대 돌담을 지나 들어서는데 텐트 한 동이 보였다.
진도사골로 올라 온 백현 아우는 어제부터 여기 있었단다.
이 넓은 지리산에서 사전 약속 없이 만나니 반갑지 않을 수 없더라.
시원한 물 바가지씩을 뜨 마시고 물병도 채웠다.
적당하게 인사를 나누었고 배낭을 다시 메고 문수암을 나와 갈 길을 걸었다.
산길 한 구간에 라일락 향기가 진하게 퍼지고 있었다.
문수대에서 주능선 돼지령으로 나가는 길, 이 구간에는 털개회나무 꽃이 만개하여 있었다.
바람결에 실려온 그녀의 머릿결에서 나든 그 향이 이랬나?
정확히 기억되지는 않지만 어딘선가 분명 맡아 본 향기는 참 좋은 냄새였다.
꽃을 본다는 게 이런 것이구나.
마음은 지향없이 안온하였다.
개다래 정도는 이제 확실히 구분할 줄 안다.
이건 쥐다래란다
흰 잎 끝이 붉은 건 쥐다래라고 대장이 알려 주었다.
본능과 내가 뒤에서 걸으며
"쥐, 개는 그나마 좀 낫네, 소 다래, 돼지 다래, 염소 다래, 말 다래는 좀 이상하다 아니가?"
점심을 먹고 주능선으로 나가는 길은 약간 숨이 찼다.
본능과 둘이서 나누어 마신 것이 양과는 상관없이 질적으로 우수했다.
제법 센 놈을 상대했다는 사실은 걸어가면서 한참 후에야 깨달았다.
길이 헛갈리는 지점에서 대장님은 기억을 정확히 소환했고, 우린 그 길을 걸어 나오며 트랙을 획득했다.
산행 후 대장님은 더 정확한 트랙을 내게 보내왔다.
그것은 나보고 산행기를 쓰라는 압력이고, 트랙도 올리라는 말이다.
주능선 돼지령 비목
1965년경에 여수에 사는 고등학생 셋이서 천왕봉에서 노고단 쪽으로 몇일에 걸쳐 동계 종주를 하던 도중
돼지평전 부근에서 구조를 요청하며 헤매다가 조난사를 당하는 안타까운 일이 있었다.
그 후 몇 년 뒤 구례의 연하반산악회 <우종수>님등이 그들의 넋을 기리기 위해 밤나무로 비목을 만들어
간단하게 [비목 조난산악인] 만 새겨 더욱 절절하게 어린 산꾼들의 가여운 넋을 달래주었다.
거친 숨을 몰아 쉬며 종주능선을 걷다가 풀섶에 묻힌 비목 앞에 잠시 서 있노라면
지리산 답게 꾸밈없이 순박한 비목에 숙연해져 주능을 떠돌고 있을 어린 영혼들로부터 오히려 위로 받게 된다.
<지리99 -지리박물관 -문화유적 명소방 꼭대님 계시글을 옮겨옴>
노고단 고개를 향해 주능선을 걸어 나갔다.
대장님은 일년 넘에 산을 타지 않아 힘들 것이라 걱정을 하였지만 전혀 그렇게 보이지 않았다.
다리가 풀린 우린 뒤에서 흐느적거리며 걸었고, 대장은 꼿꼿하게 잘만 걸었다.
물론 산행 때문에 다리가 풀린 건 아니지만, 대장님이 다음부터는
살살하자는 그 말조차 하지 않을까 싶어 살짝 걱정이 되었다.
큰앵초
함박꽃
유럽을 제패한 황제 나폴레옹은 죽을 때
"내생에 행복한 날은 6일밖에 없었다"고 고백했다 한다.
그러나 눈이 멀어 볼 수 없었고, 귀가 먹어 들을 수 없었던 헬렌 켈러는
"내 생애 행복하지 않은 날은 단 하루도 없었다"고 말했다 한다.
행복의 척도는 생각하고 느끼는 관점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다.
우리는 행복해지기 위해서가 아니라 남들에게 행복한 것처럼 보이기 위해 너무 많이 애를 쓰고 산다.
보여지는 것에 전혀 신경 쓰지 않고 보낸 이 하루가
먼 훗날 돌아 보면 무척 행복한 날이었다고 기억되길 나는 빌었다.
대장 함께라서 고맙소.
엄지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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