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북산.
일시:2015년 3월 8일.
산행자:수야.
걸어간 길:경남 함안군 여항면 주동리 버드네마을 -서북산농원-여항산둘레길-감재고개-
서북산-국시듬 삼거리-국시듬-여항산둘레길 갈림길-약수터산장-둘레길-서북산농원-주차(원점)
산행시간 거리:11시 49분~15시 35분(3시간46분) 8.2km
갓데미.
각데미.
어릴 때 우리는 그렇게 불렀다.
정확하게는 모르고 여항산이 갓데미산 인 줄로만 알았다.
갓데미산과 여항산이 동일한 산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난 뒤
언젠가 가보아야겠다는 생각을 오랫동안하고 있었다.
일요일 먼 산을 가기에는 늦은 시간이다.
에라 모르겠다.
일단 집을 나선다.
가까운 곳으로 가서 몸이라도 풀고 오자는 마음으로 차를 몰고 나간다.
함안을 향해 달리다 고속도로변에 차를 세우고 오룩스로 대충 훑어보고
나머지는 현장에서 부딪쳐 해결하기로 하고 서북산으로 간다.
함안군 여항면 주동리 봉성저수지 위로 네비의 김양이 친절히 안내한다.
버드네마을 버스 회차로 공터에 주차하고 혼자서 마을 위로 난 길을 따라 산으로 올라간다.
서북산 농원으로 올라가는 길
경고 현수막에는 등산로가 아닌 개인 소유로 출입을 금한다고 되어 있다.
철문이 열려있어 그냥 통과하고 길을 따라간다.
서북산을 향해 오르다 뒤돌아본 앞쪽 산.
맨 좌측 봉화산이고 다음 봉우리가 대부산이다.
대부산 우측으로 능선이 계속 되다가 철탑이 있는 602봉의 봉우리에서
이곳으로 내려 오는 산줄기가 이어진다
지난번 여항산 산행 때 저 봉화산에서 여항산까지 한 바퀴를 머릿속에 그렸는데
오늘은 그 중간을 잘라 맛보기로 한다.
서북산 농원 철문을 지나 지그재그 임도를 따라 계속 오른다.
흉물스럽게 방치된 이유가 있겠지만, 폐건물이 몇 군데 보인다.
오름길 좌측으로 오래된 등산안내판에는 갈밭골이라 이라고 적혀있다.
가을 분위기 같은 갈대 길을 지나 계속 임도를 따른다.
서북산 농원을 가로질러 올라온 길과 여항산 둘레길이 만난다.
혼자 올라온 이곳에서 산악자전거 라이딩을 하는 두 사람을 만나고 잠시 인사를 나눈다.
두 사람이 자전거로 내려간 좌촌 쪽의 반대방향인 법륜사 방향 둘레길을 따라 50여 미터를 가다
둘레길을 버리고 삼거리의 능선 길로 올라간다.
둘레길에서 능선으로 올라오면 감재고개에서 사거리를 만난다.
서북산이 0.9km라고 적혀있는 방향으로 오름을 계속한다.
혼자서 여유롭게 걷는 앞에 부부 두 사람이 앞서고 있다
이분들을 앞질러 제법 경사가 있는 산길을 올라 가는 동안 땀이 난다.
된비알이 벅찰 즘 정상에 선다.
정상은 헬기장이다.
밋밋한 봉우리에 헬기장이 정상으로 여항산 방향 한 귀퉁이에 정상석이 서 있다.
삼각점에 서서 웨이포인트를 찍고 정상석 앞에 선다.
서북산(西北山).
행정구역상 경남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북면이다.
지명은 마산 합포구 진북면의 서북단에 위치 한데서 유래되었다 한다.
여항산에서 뻗어 내린 남릉이 진북면과 진전면의 경계선을 따라 흘러내리면서 이룬 산봉이 서북산이다.
고도는 738.5m이다.
서북산의 서릉은 진전면의 산역 속으로 흐름을 파묻고
국도 건너편의 적석산과 마주하면서 대정골까지 산자락을 들이밀고 있다.
서북산이 갓데미산이다.
함안을 대표하는 산은 여항산(770m)이다.
지금은 낙남정맥 최고봉을 내세우며 등산객을 부르는 명소지만,
한국전쟁 당시 여항산 일대는 가장 치열했던 전쟁터였다.
하루에도 몇 차례 주인이 바뀌었다는 이곳은 당시 마산을 지키는 최후 방어선이기도 했다.
1950년 8월 마산을 둘러싸고 파상공세를 퍼부은 부대는 인민군 6사단이었다.
이에 미 제25사단은 여항산·필봉·서북산·야우산·옥녀봉을 잇는 능선에 진지를 세워 맞선다.
미군 25사단과 인민군 6사단은 몇 차례 전투를 벌인다.
산에서 버티는 인민군도 산을 되찾으려는 미군도 모두 처절했다.
전투는 적과 아군이 구분 없는 소모전이었다.
8월 18일 인민군 6사단은 대대적인 공격을 펼친다.
사흘 동안 이어진 여항산 전투에서 미군과 인민군은 19차례나 고지를 뺏고 뺏기는 백병전을 펼친다.
9월 중순까지 이어진 전투에서 입은 피해는 미군과 인민군 가릴 것 없이 막대했다.
오죽하면 여항산 탈환에 지친 미군은 산을 가리켜 '갓 뎀(God deme)'이라고 내뱉기 일쑤였다.
여항산을 부르는 다른 이름인 '갓데미산'은 이렇게 나왔다.
이 산의 격전에서 희생된 공산군과 아군의 백골이 산적하였다
하여 ‘백마산’ 이라 불리기도 한다는 이야기가 있다.
이후 군인은 물론 경찰까지 동원한 총력전으로 미군과 국군은 인민군이 마산으로 진입하는 것을 막아낸다.
하지만, 치열한 전투는 더 큰 비극을 낳는 원인이 되기도 했다.
1950년 7월부터 함안 일대에서 미군 폭격과 경찰, 지방경비대가 벌인
민간인 학살은 이곳 사람들에게 깊은 상처를 남겼다.
지난 2005년 '한국전쟁전후 민간인학살 진상규명 범국민위원회'가
엮은 〈한국전쟁전후 민간인학살 실태보고서〉를 보면
함안 지역에서 벌어진 민간인 학살 사건은 9건, 희생자는 수백 명에 이른다.
흔히들 여항산을 갓데미산이라 알고 있거나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정확하게 현지인들의 증언에 의하면 갓데미산은
여항산이 아니라 서북산이라고 한다.
여항산과 서북산의 거리는4km 정도 떨어져 있다.
아마 주변 산중 여항산이 최고봉이고
여항산과 같은 줄기로 이어지다 보니 서북산을 여항산과 동일한 산으로 보고 그렇게 불린 것 같다.
갓데미산이 정식 명칭이 아니라 별것은 아니지만,
이왕이면 근원을 바로 알면 좋겠다.
전적비가 여항산이 아닌 서북산에 세워진 이유도 여기에 있는것 같다.
서북산전적비.
전적비를 뒤로 두고 여항산 방향으로 산줄기를 타고 간다.
멀리 여항산의 모습이 우뚝하다.
봉화산에서 대부산을 거처 602봉의 줄기를 차고 서북산에서 여항산까지 환종주
산행궤적을 그리며 계획한다.
희뿌연 날씨 탓에 조망이 별로지만 함안 시내의 모습도 보인다.
조망이 트인 날이면 지리산까지도 보일듯하다.
봉화산과 대부산 뒤 상투봉과 우측의 광려산 대산, 그 뒤로 무학산이 아련하다.
큰 나무가 아직도 없을 정도로 격전의 흔적은
깊은 상흔으로 남아 있는 서북산이다.
서북산에서 바라 본 별천.
서북산에서 여항산 방향으로 가다가 별천 방향 사거리로 길을 잡는다.
아마 이 길로 내려가면 서북산 농원 위의 둘레길을 만나지 싶다.
응달의 사면 길은 아직 녹지 않은 눈이 제법 쌓여 미끄럽다.
조금 내려오니 바로 표지판이 연이어 안내한다.
늦은 점심을 해결하고
둘레길 봉화산 방향을 따른다.
봉화산 방향으로 가다 보면 둘레길을 처음 만났든 서북산 농원 갈림길과 만날 것이다.
약수터 산장을 지나고
지그재그의 둘레길을 오물오물 잡아 먹으며 걷는다.
봄.
물이 오른다.
생명의 기운이 움튼다.
둘레길에서 다시 산행 시작점인 서북산 농원의 임도 길로 다시 내려온다.
층층으로 된 계단식 다랭이 논을 좌측에 끼고 우측의 마을은 고요하다.
산길에서 만났든 부부가 먼저 내려가고 있다.
뒤돌아 본 서북산 농원의 철문.
짧은 시간의 산행이 끝나고 주차 한 곳의 버스 회차로에 원점 회귀한다.
일요일 아주 짧고 간결한 숙제 하나를 풀었고
다음에 갈 길을 미리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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