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두산-바래봉
행동팀118- 지리91차
일시:2021년 01월 10일
산행자:연하, 에스테야, 권영구, 황순진,이종철, 최규다, 최정남, 최옥희,최미희, 김은의, 들풀, 성주숙, 수야 (13명)
걸어간 길:구인월 마을회관-흥부골자연농원-덕두산-바래봉-용산
산행시간:08시 44분~15시 34분(6시간 50분) 10.71km
해가 바뀌었다.
한 해가 바뀌면 어린 사람은 한살이 더 해지지만 나이 든 사람은 한살이 줄어든다.
뒤 돌아보면 한 살이 더해져 있었고, 앞을 바라보니 속절없이 한 살이 줄어 버렸다.
되찾을 수 없는 게 흘러가 버린 세월이다. 무참하고 인정사정없다.
시인 백무산은 삽 한 자루 들고 트인 들판에 나섰다가 난데없는 소낙비를 만나고 난 뒤
빗속을 걸으며 삶이 소낙비처럼 난데없다고 했더라.
코로나 19의 난데없는 자욱함이 너무 오래고 길다.
이 난데없음을 견디는 것이 지루함을 넘어 암울하고 참담하다.
그러나, 그래도
삶은 계속되어야 하고, 내 삶의 연속에는 지리산이 있음으로 산으로 가는 것은
난데없는 세상에서 그나마 난데 있는 일이다.
07시 40분
아침을 먹고 나 온 식당에서 덕두산을 바라보았다.
누구에게는 높아 보였고, 누구에게는 그다지 높게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가 본 적이 있는 사람과 가보지 못한 사람의 차이는 그렇게 다를 수도 있다.
08시 29분
구인월 마을회관으로 차들이 속속 도착했다.
이 시간은 늘 소란스럽다.
오랜만에 만나는 인사가 그렇고 스패치와 스틱이 말썽을 부리며 정돈되는 과정이 그렇다.
같이 하자고 강요하거나 요구 한 적 없는 산행은 책임도 스스로 지겠다는 각오가 필수적으로 수반되어야 한다.
스스로 감당할 것을 각오하고 모여든 감당 못 할 사람들이 열 세명이다.
이들은 이 추운 날 뭐하러 이렇게 산을 오르려 할까....
09시
도로를 따라 걷는 동안 몸이 서서히 풀렸다.
지리산 둘레길이 굽어져 내려오며 만나는 이곳을 지나 흥부골 휴양림 안으로 들어갔다.
09시 15분
휴양림 펜션을 지나 골을 따라 덕두산으로 향했다. 본격적인 산길로 들어갔다.
얼마 전 에스테야 형님은 이 코스를 걸었단다.
뽀드득거리는 눈 밟는 맛이 제법이었다.
미희님은 눈이 설탕 같다 했고, 나는 밀가루 같다 했다.
배고파 본 적 있는 자와 여유 있는 자의 표현이 다르다고 강조하였다.
먹혀들 리가 없는 논리가 되었다.
직립으로 바짝 세우지 않은 길은 무리 없이 걷기에 좋았다.
작년 금농 선생님과 둘이서 이 길을 한 번 올랐다.
몸으로 밀고 나간 경험이 있는 산길은 다시 그 길에 들어서면 빠르게 기억을 해 낸다.
북 스마트(Book Smart) 보다 스트리트 스마트((Street smart)가 산에서는 언제나 월등하고 우수했다.
어디 산 뿐이겠는가, 삶을 통해 얻어진 모든 것들도 늘 그렇다.
책을 통해 배우는 지식보다 현장의 경험이 우선 한다고 나는 믿는다.
내 삶을 반추 해 본 즉, 경험보다 선명하고 강렬한 배움은 없었다.
경험을 한 후에도 반복적으로 같은 실수를 거듭한다면 그것은 그 사람의 우둔함이다.
09시 42분
산 위에서 부터 찬란히 햇볕이 은총처럼 쏟아져 내렸다.
밝은 햇살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따사롭게 느껴졌다.
추위에 떨어 본 적이 있으면 따사로운 햇볕이 얼마나 감사한지 알게 된다.
굶주려 본 사람의 밥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밥이 같지 않은 것과 같다.
겹겹이 껴입은 옷을 벗었다.
고도가 높아질수록 눈은 점점 많이 쌓였고 하얀 세상이 깊어져 있었다.
승진시험을 치르느라 열공한 들풀님은 7개월 만에 산에 들었다.
한결 가벼워진 그녀의 미소는 전 보다 더 밝았다.
모든 면에서 승진은 지금 보다는 좋은 조건이 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일 것이다.
모두 진심으로 축하했고, 감사 해 했다.
참으로 신비로운 것은 죽을 것 같은 슬픔과 힘든 일이라 할지라도, 지극히 사소한 기쁨에 의하여 위로가 된다는 것이다.
큰 슬픔과 고통이 인내되고 극복되기 위해서 반드시 동일한 크기의 커다란 기쁨이 필요한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작은 기쁨이 이룩해내는 역할은 참으로 놀랍다.
그렇다. 저 아무것도 아닌, 쌓인 눈을 바라보며 감탄하고 좋아하는 것.
불안한 미래를 끌어와 고민하지 않고, 지난 것을 돌이켜 후회하지 않으며,
지금 현재 이곳, 여기 작은 것에 오롯이 집중하여 느끼는 사소한 기쁨이야 말로 위로 이상의 위로가 되었다.
10시 30분
완만하게 오르든 길이 약간 고개를 세우고 있었다.
능선을 향해 오르막으로 생겨난 길을 따랐다.
아이젠을 착용했으나 오르막에서는 발이 헛바퀴 돌듯이 자꾸 미끄러졌다.
11시 05분
능선에 올라서자 회초리로 후려치는 것 같은 칼바람이 얼굴을 때렸다.
노출된 살갗이 시렸다.
삼거리 고갯마루에서 한차례 휴식을 하는 동안 모두 다시 옷을 입었다.
11시 26분
1,150m 덕두봉에 도착했다.
지리산 태극종주길에 만나는 첫 정상이기도 하고, 마지막 정상이 되기도 하는 곳이다.
조망조차 없는 그저 평범하게 높은 산.
덕두산(德頭山)이라고 해야 하는지 덕두봉(德頭峰)이라고 불러야 하는지 모르겠다.
둘 다 혼용되어 불려지고 있는 산이었다.
나는 '여여(如如)하다'는 말이 참 좋다.
불교 용어인 이 말은 원래 산스크리트어 '타타타'(tatahta)의 의역으로
'물건, 사람, 어떤 것, 그 본연의 모습 그대로'라는 뜻이라 한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대로 한결같다. 변함없다. 그 정도 까지만 나는 이해하며 알고 있다.
사람과의 관계에 있어서
그 사람과 무던해지고 편해져서 이제는 재미있지 않다고 눈 돌리지 않아야 한다.
서로에 대해 잘 알고, 익숙해져서 그날이 그날 같아도
순간의 셀렘에 속아 그 사람을 잃는 실수는 하지 말아야 한다.
나는 이 좋은 인연들이 항상 如如 하였으면 좋겠다.
바래봉으로 가는 능선길에는 눈이 많이 쌓여 있었다.
오늘도 열 일하는 은의님은 앞에서 걷다가 또, 뒤에서 따라오며 여러 모습을 담았다.
이 사진은 뒤에서 은의님이 찍은 것이다.
바래봉까지 별로 멀지 않았든 길이 눈을 밟고 가는 오늘은 멀었다.
길이 멀다고 느껴지자 급격한 배고픔이 밀려왔다.
배가 고파서 먼 것인지, 멀어서 배가 고픈 것인지 알 수 없었다.
바래봉을 향해 가는 길 마지막 고개를 오르고 있을 때 산유화 누나로부터 카톡이 왔다.
바래봉을 올랐다가 샘에서 기다리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바래봉 샘까지 내려갔다가 다시 바래봉을 오르고, 덕두산으로 돌아가야 하는 길은 오르막 내리막 길이 너무 길고 멀었다.
말들이 무성하였다,
무성한 말들은 엉키지 않고 쉽고 빠르게 한 가지로 절충되었다.
내게 코스를 수정하는 것이 어떠한가 하는 은근한 압박으로 들이밀었다.
다시 덕두봉으로 돌아가는 애초의 계획은 수정되었다.
바래봉 정상에는 사람이 많았다.
줄을 서서 사진을 찍기 위해 기다리고 있었다.
빠르게 통과하였다.
흐렸다.
먼 곳은 보이지 않았다.
높은 자리에 오르면 누구나 다 잘못을 빌고 싶어 진다고 시인 고두현은 그랬는데
저 많은 사람들도 그러한 것인가 싶었다.
빠르게 걸어 바래봉 샘에서 산유화 누나와 청호님 내외분을 만났다.
사람이 많아 인사를 나누는 시간도 길었다.
절집에서는 밥을 공양이라고 한단다.
공양의 뜻은 '우리 이웃의 모든 사람들에게 필요한 어떤 물건이나 참다운 진리의 가르침을 베풀어주는 것'이라고 한다.
저 바래봉은 스님들의 밥그릇, 공양 그릇인 바리때를 엎어놓은 모습과 닮아 그렇게 붙여졌다고 했다.
공양에는 다른 뜻도 포함되어 있단다.
공양은 누군가의, 어떤 것의 희생으로 얻어지는 것이다. 쌀의 희생으로 밥이 얻어지는 것이 그것이다.
우리의 삶은 무릇 누군가, 무엇인가의 희생이 있어야만 영위되는 존재라 할 수 있다.
이 많은 식구가 먹을 순댓국을 규다가 마련했다.
무거운 것을 나누어지고 온 희생들이 보태졌다.
식사는 느긋하게 오래 화목하였다.
우리가 도착도 하기 전 이미 식사를 마치고 추위 속에서 기다린 산유화 누나와 청호님이 먼저 내려가셨다.
주차장에서 기다려 주신 청호님 차를 타고 구인월에서 차 네 대를 회수하였다.
고맙고 감사한 인사를 미처 드리지 못했다.
14시
용산 주차장으로 내려가는 길은 아주 편안했다.
걸음들이 가볍고 빨랐다.
15시 34분 산행 종료
많은 사람들이 걸어 오르고, 내려오고 있었다.
애들에게 비닐포대를 빌려 한 번씩 미끄럼을 탔다.
애들보다 더 신이 났다.
하산 후 새해 첫 산행에서도 예외 없이 불취무귀(不醉無歸)하였다.
같이 산을 가겠다고 장도의 밤을 달려온 친구,
비록 잠깐이지만 얼굴이라도 보자며 짧지 않은 시간을 매서운 혹한에서 기다려 준 분들.
무거운 짐을 서로 지고 가겠다며 다툼 아닌 다툼을 하는 분들.
내가 아닌 다른 사람들을 위해 정성을 담아 음식을 준비하는 분들.
내게는 과분하게 늘, 고맙고 감사한 인연이고, 소중한 인연이다.
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라고 하였다.( 정현종 詩 방문객 중-)
나의 어마어마한 인연들에게 깊이 감사드리며 오래도록 지금처럼 여여(如如)할 수 있길 소원하였다.
'지리산 산행'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21.01.31 서진암-백장암 (0) | 2021.03.17 |
---|---|
2021.01.24 손싯골 (손씨골) (0) | 2021.01.30 |
2020.12.13 언양골 (0) | 2020.12.26 |
2020.12.06 함양독바위 (0) | 2020.12.16 |
2020.11.29 석산골 (0) | 2020.12.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