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산행

2019.07.14 제석봉골

지리99 수야 2019. 7. 14. 19:30

제석봉골

 

행동팀84-지리63차

일시:2019년 7월 14일 (일요일)

산행자:연하님, 노을님, 손원장님, 최정남님, 최옥희님, 수야, 수야지기, 예서방 (8명)

걸어간 길:백무동 주차장- 창암사거리-칠선폭포-대륙폭포-제석봉골-하동바위길-소지봉-참샘-하동바위-백무동

산행시간:06시 06분~18시 53분 (12시간 46분) 12k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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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선골을 가 보고 싶다는 말을 몇 번 듣고

결코 만만하지 않은 길을 이리저리 궁리하고 생각하다 오늘 이 코스를 잡았습니다.

주차장은 텅텅 비어 있는데 차를 세우자마자 주차비를 받으려 멀리서 아저씨 한 분이 달려옵니다.

부지런하고 책임감 넘치는 모습에 기꺼이 두 손으로 공손히 주차비를 드립니다.

산행 준비를 마치고 백무동 주차장에서 6시를 조금 넘긴 이른 시간 산행을 시작합니다.

 

 

펜션을 지나 산길로 들어가며 오름길이 시작됩니다.

인민군 사령부 터를 지나 고도 680 부근에서 두지터 방향으로 잠깐 길을 지나처 와버렸습니다. 

이럴 땐 돌아가는 게 가장 빠른 길인 줄 알면서도 앞에 놓인 길이 하도 반듯하고 조금만 진행하면

창암 4거리 길과 만날 것 같아 계속 가기로 합니다.

뻔한 길을 놔두고 쓸데없이 알바를 합니다.

이 와중에 쓰러진 나무를 밟고 넘든 저는 순식간에 하늘과 땅이 번개같이 화면이 바뀌는 경험을 합니다.

이 찬라의 짧디 짧은 순간에

바로 곁에 있던 손 원장님이 넘어지는 나를 잡으려 달려오는 것이 보였고

한 바퀴를 더 굴러가면 머리가 지나온 바위에 닿겠구나 하는 거리 계산까지 했습니다.

뭐, 설마 그런 생각까지 했을까 하시겠지요?

그게 말입니다, 참 신기하게도

배낭이 바닥에 먼저 닿게 몸을 비틀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고 실제 몸도 그렇게 반응을 하더라니까요.

스틱까지 휘어지며 잡아챈 손 원장님 덕분에 한 바퀴 반을 굴러 간신이 일어섭니다.

쪽팔리지 않으려고 덤덤하게 무심하듯 일어나 살펴보니 이곳저곳에 상처를 몇 군데 입었습니다.

그중에 왼손 손가락 마디 하나가 손등 방향으로 꺾여 올라 와 버렸습니다.

탈골이 일어난 손가락을 잡아 제자리에 돌려 넣고 움직여 보니 움직일 만합니다.

부러지지 않은 게 천만다행입니다.

손가락은 부기가 다 빠지지 않아 아직도 조금 불편합니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지만 산신령님이 보살펴주신 덕분에 그만하기 다행이라 여깁니다.

또한, 이 장면을 손 원장님만 보았으니 그나마 덜 쪽팔리게 되어 더 다행입니다.

창암 사거리까지 그야말로 비지땀을 한 바가지 쏟아냅니다.

온몸이 다 젖고 배낭까지 축축해질 무렵 창암 사거리에 도착합니다.

 

 

 

먼저 올라온 예 서방과 손 원장님이 일행을 기다립니다.

예 서방은 노을님 둘째 사위로 이 팀과 벌써 몇 번 산행을 하며 아줌마들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있습니다.

특히나 아내는 "우리 예 서방"이라 부르며 아주 꿀이 뚝뚝 떨어집니다.

창암 사거리에서 창암산 방향  망바위로 올라갑니다.

 

 

망바위에서 준비해 온 아침을 먹습니다.

희뿌연 가스로 인해 칠선골과 주능선의 영봉들이 신비로운 모습으로 다가옵니다. 

맑은 모습의 조망도 좋지만 어슴푸레한 풍경도 또 다른 감탄을 자아내게 합니다.

우리가 올라갈 방향을 눈으로 먼저 읽어봅니다.

 

 

칠선계곡 본류로 내려섭니다.

우리 일행을 앞질러지나 간 제법 많은 사람들이 저 앞에서 왁자한 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폭포의 우렁찬 소리가 벌써부터 시원함으로 밀려옵니다.

 

 

처음으로 칠선폭포를 마주한 몇 사람은 감격합니다.

어디 그 사람들만 그럴까요.

줄줄 흐르는 땀에 대한 보답이라도 하듯 폭포 주변에 서자 마음은 청량함으로 가득 해집니다.

세상을 향해 찌르고 싶은 각진 말들이 가득했든 마음은 벌써 어디론가 다 사라져 버렸습니다.

"이거거든!"

"이래서 이 산에 오는 거라!"

 

 

빨치 산행으로 단련된 손 원장님은 준족입니다.

산야초며 약초뿐 아니라 그의 산에 대한 경험과 해박함을 나는 배우는 중입니다.

 

 

칠선폭포 위로 올라 배낭을 내리고 잠시 쉬기로 합니다.

굳이 더 위로 올라가자는 연하 형님의 말에 따라 폭포 조금 위쪽으로 몇 걸음을 더 올라갑니다.

간식을 나누어 먹고 대륙폭포를 향해 다시 일어섭니다.

 

 

대륙폭포에서 한 번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합니다.

시간을 여기에 많이 주어도 좋을 만큼 대륙폭포에 매료되었다는 말이기도 하지요.

폭포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 내려서다 디딘돌이 빠지며 한 사람이 엉덩방아를 찧어 잠시 모두를 긴장하게 합니다.

다행히 다치지는 않았지만 보나 마나 멍이 들기는 했을 것입니다.

이후 모두 조심한다고 했지만 어쩔 수 없이 넘어지고, 미끄러지고, 자빠지고 잡목에 맞기도 하며

대부분 멍이 들고 피가 나고 작은 상처를 입었습니다.

칠선은 오늘 우리에게 쉽게 길을 내어 주지 않을 작정인가 봅니다.

 

 

대륙폭포에서 다시 돌아 나옵니다.

칠선계곡 본류를 버리고 제석봉 방향의 골을 따라 오릅니다.

제석봉 골입니다.

제석봉 골은 계곡 상단부 고도 1,250 부근에서 다시 좌우로 나누어집니다. 

좌골을 따라 끝까지 오르면 제석봉 턱밑에 도달합니다.

2011년 9월에 독오당과 올라갔었지요.

이후 8년 만에 올라가는 길입니다.

오늘은 그 좌골이 아니라 우골을 올라갈 계획입니다.

칠선폭포와 대륙폭포를 보고 난 이후 제석봉 골 초입의 이 작은 소폭을 보며

"아이고! 새첩다!"라고 누군가 그러더군요.

새첩다는 작고 귀엽다, 이쁘다 뭐 그런 말입니다.

진짜 새첩지 않나요?

 

 

제석봉 골 초입에는 작고 아기자기한 소폭포들이 걸음을 자주 멈추게 합니다.

 

 

 

 

물기를 한껏 머금은 바위를 지날 때마다 다른 날과는 달리 많이 조심하고 긴장을 합니다.

진행시간은 느리지만 안전한 것이 최고가 아니겠습니까.

오늘 산행시간은 많이 길어지겠지만 그래도 괜찮습니다.

"조심조심 천천히" 서로를 격려합니다.


오래된 나무들은 끊임없는 구조조정을 통해 성장한다고 합니다.나무는 씨앗의 영양분을 활용해 제일 먼저 떡잎을 냅니다.이 떡잎이 최초의 광합성을 담당하며 키를 키우고 다시 본잎을 만듭니다.이제 떡잎은 사라지고, 본잎들이 더 힘차게 광합성을 합니다.나무는 새로운 잎의 노동에 의지하여 점점 뿌리와 줄기를 키우고 넓히며 새로운 가지와 잎들을 만들어 성장을 지속합니다.그렇게 새롭게 시도하고 다시 버리는 생활을 계속함으로써 5년, 10년, 100년, 때로는 1000년 너머에 이르기까지 제 삶을 살아갑니다.나무는 병에 걸려 회생이 불가능해진 가지도 가차 없이 버립니다.또한, 광합성량보다 호흡량이 많아 나무 전체의 효율을 떨어뜨리는 가지도 버립니다.그렇게 무수한 잎과 가지와 줄기를 버림으로써 나무는 자신이 매 순간 조금씩 성장한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때로는 공들여 뻗었던 소중한 잎과 가지를 버리거나 잃어야 하는 것이 인생입니다.우리의 삶도 버림과 상실 없이는 이어질 수 없음을 받아들이게 됩니다.<숲에서 길을 묻다> - 김용규 -

 

오를수록 계곡과 숲은 원시림으로 우거져 있습니다.

그만큼 사람의 발자국이 덜 하였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그대로 계곡을 따라 오르기도 하고 막히면 계곡의 좌우로 돌아 올라갑니다.

 

 

 

숲 속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참으로 신비롭습니다.

이리저리 나무를 타고 오르며 삶을 지탱하는 넝쿨도, 발아래 작고 초라하여 잘 보이지 않는

아주 작은 풀잎 하나에도 그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습니다.

어떤 생명은 비옥한 곳에서 그리고 또 어떤 것은 척박한 곳에 뿌리를 내리는 숙명을 타고났지만

자신의 환경을 억울해하거나 분노하지 않습니다.

이 숲 속의 모든 생명체는 그들 모두가 주어진 자리를 받아들이는 것으로부터 삶을 시작하고 있습니다.

삶을 수용하지 않고 열 수 있는 하늘은 없고 시작하지 않고 넘을 수 있는 벽은 없습니다.

예전에는 성가진 잡목과 잡풀로만 여겼든 숲을 이렇게 조금 다른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된 것은

요즘 읽고 있는 책<숲에서 길을 묻다> 때문입니다.

그게 그렇더구만요.

수긍하고 공감하고 이해하면서 바라보니 예전과는 달리 그렇게 보이더란 말입니다.

이 또한 망구 제 생각 일 뿐입니다.

 

 

 

 

 

 

 

 

중부경남팀의 표지기를 달았습니다.

물론, 이후 알바 구간에는 이 표지기는 없습니다.

길이 확실한 곳에만 달았다는 말 입죠.

이 표지기는 팀장인 노을님의 제안으로 제작이 되었고, 비용 전부를 연하님이 기부하여 만들었습니다.

미루어 짐작하건대 연하 형님의 마음은

후답자를 위한 작은 보탬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배려의 마음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훌륭하기 짝이 없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실천이라고 저는 아낌없는 찬사를 보냈습니다.

망구 니 생각이다 할지 모르지만, 뭐 그렇더라도 좀 그렇다고 해 줍시다.

 

 

산 꼭대기에 오르면 행복할 거라 생각하지만 정상에 오른다고 행복한 건 아닙니다.

어느 지점에 도착하면 행복해지는 그런 곳은 없습니다.

같은 곳에 있어도 행복한 사람이 있고

같은 일을 해도 즐거운 사람이 있습니다.

같은 곳, 같은 일을 해도 불행한 사람도 있습니다.

무엇이든 즐기는 사람에겐 행복이 되지만

거부하는 사람에겐 불행이 된다고 합니다.

정말 행복한 사람은 모든 것을 다 가진 사람이 아니라

자신이 가진 것에 만족해하는 사람

하고 싶은 일이 있는 사람

갈 곳이 있는 사람

같이 함께 할 수 있는 사람이 곁에 있는 사람이 아닐까 합니다.

 

 

 

 

정확한 폭포의 이름을 저는 모릅니다.

사람들이 다이아몬드 폭포라고 부르기도 하고

또 어떤 사람들은 이 폭포를 염주 폭포라 하기도 한답디다.

 

 

장인어른은 사진을 찍을 때 꼭 사위와 한번 더 찍었습니다.

앞서 가든 사위가 미끄러지자 밑창이 닳은 사위의 등산화를 벗겨 바꾸어 신습니다.

자기 발에는 작은 사위의 등산화를 말입니다.

차가운 거 같으면서도 따뜻하고 무심한 거 같으면서도 속 깊은

그 장인의 마음이 다 보입니다.

 

 

이곳에서 점심을 먹었습니다.

쉽게 허락되지 않을 것 같든 길이지만 함께 걸으니 나아가 집니다.

혼자서는 빠르게 지칠 길이지만 함께 걸으니 없든 힘도 생깁니다.

 

 

 

 

 

폭포 바로 좌측으로 로프가 있습니다.

로프가 있으니 길이 있다는 믿음을 강하게 합니다.

로프를 잡고 오르는 경사가 거의 수직으로 장난이 아닙니다.

또한 수직의 경사에 이끼가 미끄러워 남자들이야 어떻게든 되겠는데

이 아줌마들이 오를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중경팀의 여전사가 탄생하는 순간입니다.

딱 한 번의 설명을 듣고는 들은 대로 시키는 대로,  

몸을 뒤로 반듯이 세우고 90도의 경사를 올라버립니다.

조교의 시범을 뛰어넘는 완벽한 자세입니다.

 

 

두 번째 도전자도 이길로 성공적으로 올라갔습니다.

 

 

로프 구간에서 생고생을 한 아내를 데리고 반대편 우회길을 찾아 일행과 다시 만납니다.

로프 구간을 오르는 것에는 완전한 실패를 했다는 뜻입니다.

그래도 산행 내내 씩씩하게 따라 오르고 밝게 웃는 그대가 내 눈에는 예쁩니다.

 

 

산속의 모든 작고 세세한 소리까지 다 듣겠다는 듯 귀를 쫑긋 세운 이것의 이름은 무엇일까요?

 

 

노란 선을 따라 제석봉 골 우골로 올라갈 계획이었으나 뜻대로 되질 않습니다.

계곡을 따라 오르든 길은 오를수록 희미해지더니 사라져 버렸습니다.

쓰러진 나무와 잡목으로 도저히 진행이 불가하고 더 이상 길을 찾기도 힘이 듭니다.

우리처럼 알바로 지나간 흔적이 즐비한 한 곳을 따라 망바위 부근으로 무조건 치고 오르기로 합니다.

손 원장님과 번갈아 가며 앞에서 길을 잡아 치고 오릅니다.

그야말로 개고생입니다.

앞서 흘린 땀의 양보다 더 많은 땀을 쏟아붓고서야 1499봉 거북바위 부근 주등로에 올라섭니다.

 

 

주등로에 올라서자 살 것 같습니다.

몰골들이 말이 아닙니다.

간간히 내리는 비까지 맞았으니 오죽하겠습니까

이 와중에도 전부 예 서방을 챙깁니다.

한 마디씩 격려를 합니다.

 

 

참샘에서 물 한 바가지씩을 마십니다.

시원하다 못해 찌릿함 마저 느껴집니다.

 

 

주등로의 길이 빨치 산행보다 더 힘들고 지치게 합니다. 

힘 빠진 상태에서 백무동 정규등로를 내려와 보신 분은 아시죠

그 돌길의 아리아리한 느낌을.

예 서방의 걸음걸이 속도가 자꾸 떨어집니다.

스틱으로 장단을 맞추어가며 연하 형님이 노래까지 불러 줍니다.

올라가니 올라지고 걸으니 걸어집니다.

힘든 산행이지만 눈은 호강했다며

힘든 만큼 성취감과 만족도가 높았다고 좋았다고 합니다.

다음에는 진짜 칠선을 가자고 넌지시 말을 던져 봅니다.

당연히 가야지 합니다.

 

 

 

바위를 뚫고 자라는 나무

 

바람 세차게 불어가던 날

내 어미 나를 보내며 기도하셨으리라

너는 부디 그늘지지 않는 땅에 달(達)하라

 

숲에서 일어나는 일은 모두 하늘의 뜻

커다란 바위, 한 줌 고인 흙 위에서 바람은 멈추었다

나도 멈추었다

 

빛은 찬란했으나 흙은 목마른 곳,

나를 붙잡은 바위 위에서 나는 울었다.

이끼가 부여잡은 물만이 내 목을 적시는 삶

나의 선택은 늘 사막처럼 가난했다.

 

비바람에 넘어지지 않기 위해 키를 낮추었다

바위 위에 뿌리를 박기 위해 단 하루도 허리를 펴지 못하였다

바위를 뚫고 내 삶을 세웠을 때

 

산과 내 어미, 미소 지었다

나는 바위를 뚫고 자라는 나무다.

<숲에서 길을 묻다 - 김용규->

 

 

 

욕망을 가진 모든 존재는 길 위에 서게 됩니다.

모든 길은 욕망이라는 이름의 또 다른 표현입니다.

길이란 항상 지금 서 있는 이곳에서 장차 서 있고 싶은 저곳에 닿기 위해 필요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길은 곧 욕망이자 희망입니다.

오늘 이 길에서 깨지고 멍들고 피나고 아파도 또 이 길 위에 설 생각을 합니다.

잃어버려야 다시 찾을 수 있는 길, 불분명하고 흐릿하며 막막하지만 결코 놓아 버릴 수 없는 길.

살아가는 동안 삶에서 맞닥뜨린 수없이 많은 길과 이 산길은 언제나 흡사했습니다.

그래서 나는 늘 이 길에 또다시 서고 싶어 합니다.

꿈틀거리며 쏟아 오르는 욕망이 아직 내게는 많이 남아있기 때문입니다.


지리산

가슴이 떨릴 때 다니자.

다리가 떨릴 땐 늦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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