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산행

2019.06.02 작은 통신골

지리99 수야 2019. 6. 2. 13:08

작은 통신골

 

 

일시:2019년 6월 2일 (일요일)

산행자:연하님,노을님,손상식님,산친구님,최규다님,들풀님,귀소본능님,수야 (8명)

걸어간 길;중산리-칼바위-유암폭포-통신골-작은통신골-주능선(호구당터)-장터목대피소-중산리

산행시간:06시 52분~18시 31분(11시간39분) 12.25km

 

2019-06-02 작은통신골.gp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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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유지족(吾唯知足)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나 오(吾), 오직 유(唯), 알지(知), 족할 족(足)

나 스스로 오직 만족함을 안다.
현재에 만족할 줄 알고, 지금 가진 것에 만족함을 안다.

뭐 대충 그런 말이지요.
머리로는 쉽게 이해가 되며 받아들이지만, 실제로 쉽지 않은 말이기도 하지요.

한동안 무거운 마음으로 지냈나 봅니다.

이런저런 일들을 탈탈 털어내려 애를 쓰다 보니, 문득 오유지족이라는 말이 탁 걸립디다.

그리고 생각이라는 걸 좀 오래 했지요.

생각을 많이 한다고 해서

별로 나아질 것도, 좋아질 것도 없는 일상이지만

그 변함없는 일상을 맞이하는 마음은 한결 가벼워집디다.

마음을 조금 바꾸고, 생각을 바꾸니 조금은 그리됩디다.

마음을 바꾼다는 것도 뭐 그리 대단한 게 아니라

조금 단순하게 생각한 것뿐이지요.

될 수 있으면 현실에, 지금에, 만족하려는 마음을 가지려 합니다.

안 되는 것은 안 되는 것이요.

어쩔 수 없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것이라 생각하기로 합니다.

 

독오당 정기산행입니다만

귀소본능과 저만 산행할 수 있답니다.

규정에 의해 독오당 산행은 회차를 채우지 못합니다.

규다부부와 의령팀 그리고 함안의 연하 형님까지 가세하여 

독오당 정기 산행을 대신하여 여덟 명이 산에 듭니다.

이렇게 동행을 해 줄 사람들이 있으니

그동안 그래도 그리 외면받거나 모나지 않게 살았다는 생각에

감사하는 마음이 듭니다.

이 또한, 오유지족이라는 말에 적용하여 보니 기쁘고 반가운 만족입니다.

 

 

산행하기 좋을 만큼 아침 날씨는 선선했습니다.

오랜만의 만남이라 그동안의 안부를 서로 이야기하며 함께 걸었습니다.

저 사진 속 맨 후미의 한 사람은 우리 일행이 아니군요

사진을 올리고 나서 자세히 보니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산행기에 사용된 대부분의 사진은 귀소본능이 찍은 것으로 사용합니다.

본격적인 산행을 시작하며 단체로 찍혀 줍니다.

이사진은 노을님이 귀소본능과 역할을 바꾸어 찍은 사진입니다.

 

 

정말 오래간만에 주능선의 등산로를 따라 걸어봅니다.

그동안 주능선을 멀리서 바라보는 산행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얼마 걷지 않아 배낭을 멘 등에는 땀이 축축 해집니다.

이 길은 올라갈 때와는 달리 하산 때는 참 지루하게 느껴지더라고요.

이 날도 여지없이 그랬지요.

 

 

 

 

칼바위에서 한숨을 돌립니다.

그냥 이렇게 만나고, 얼굴 보는 게 좋다며 먼 길을 달려오고,

같은 길을 같이 걷고 같이 웃으며 함께 할 수 있는 소중한 친구입니다.

지리산으로 인해 맺어진 소중한 인연이지요.

사람 관계의 깊이라는 게 결코 시간에 비례하지는 않습디다.

만난 지 하루도 안 된 사람이 한없이 편안할 때가 있는가 하면

평생 갈 줄 알았던 사람도 한순간 한없이 멀어지기도 하더란 말입니다.

회자정리(會者定離)라, 만남과 헤어짐이 세상사 법칙이고 진리이겠으나

한평생 수많은 만남과 헤어짐, 그 인연 중에 어떤 사람을 만나느냐에 따라

우리의 인생은 크게 변하기도 합니다.

원래 그런 사람이란 없습니다.

사람이라는 게 그때그때 자기 자신이 놓인 상황에 따라 생각과 마음이 변하기 마련이지요

절대 그런 사람이란 것이 없듯이

원래 그런 사람도 없는 것이지요

내가 혹은 그 사람이, 서로에게 어떤 존재냐에 따라

나도 상대도 달라지는 것이니 말입니다.

이 친구와의 인연이 얼마나 허락된 것인지 알 수 없으나

나는 언제나 변함없이 지금처럼 깊이 나누고, 넓게 안아주며, 오래오래 하고 싶습니다.

 

 

흔들리는 출렁다리를 건너 더 깊이 산으로 들어갑니다.

녹음은 6월의 싱그러움 그대로 짙었고

그 산을 걷는 나는 콧노래가 나올 만큼 마음이 편안해집니다.

 

 

철계단을 오르며

숨소리도 약간씩은 거칠어집니다.

 

 

홈바위에서 배낭을 내려놓고 쉬었습니다.

시시껄렁한 이야기조차 나눠 먹는 과일맛처럼 달달합니다.

연하 형님의 입담은 시원한 바람을 맞이 하듯이 웃음꽃을 피우게 합니다.

유쾌하고 기분 좋은 산행입니다.

 

 

수많은 돌탑 위에 작은 돌 하나를 올려놓습니다.

무슨 염원을 담거나 소원하지 않았습니다.

그냥 그 행위 자체에 마음이 편할 뿐입니다.

저 앞으로 보이는 통신골을 바라보며 걸어야 할 길을 가늠합니다.

카메라를 들이밀고 이쪽을 보라고 하는 귀소본능의 말을 잘 듣습니다.

연하 형님은 어딜 가셨지?

항상 뒤에서 혼자 뭘 하는지 늘 찾아야 합니다.

 

 

 

 

카메라 든 놈이 하라는 대로 했지요.

 

 

 

 

유암 폭포에서 카메라 질로 또 한참을 보냅니다.

 

 

저런 자세로 사진을 찍으면 실물보다 더 잘 나올 듯.

누님 이리 보시 오잉~

 

 

 

 

보기 좋네요.

이건 연출이 아닙니다.

귀소본능의 예리한 순간포착에 잡혔을 뿐이지요.

 

 

아침을 먹지 않고 일찍 시작한 산행입니다.

통신골로 들어서고 나서 허기를 채우기로 애초에 계획을 했지요

그러다 보니 아침도 아닌 그렇다고 점심이라고 하기엔 너무 이른 끼니를 먹었습니다.

이럴 때 먹는 끼니는 용량을 초과하기 십상이지요.

배를 채우고 가파른 골을 치고 오르는 일은 여간 힘든 일이 아니지요.

한숨 늘어지게 자고 갔으면 좋겠다고들 합니다.

이럴 땐 벌떡 일어나 앞장을 서야 합니다.

그리 했습니다.

 

 

 

 

 

 

 

 

숨 가쁘게 오르다 잠시 쉬는 사이 저 밑에서 두 사람이 올라옵니다.

우리를 보자 납작 엎드려 살피더군요.

그 심정 잘 알지요.

안심하고 나오시라 했더니 이분들 걸음이 정말 빨랐습니다.

꼭 맑은소리팀 산행을 보는 듯했습니다.

어느 사이 우리를 앞질러 사라져 버리더군요.

 

 

 

 

 

 

고도 1,350 부근에서 앞서가는 손 원장님과 들풀님에게 좌측으로 가야 된다고 소리로 알립니다.

들풀님은 지칠 줄 모르고 앞장서서 거침없이 나아가고 힘들어하지도 않았습니다.

하산 때까지 계속 그랬지요.

운동을 열심히 한다고 하더니만 확실히 대단한 체력이라 놀랐습니다.

작은 통신골로 길을 꺾어 진입하고 쉬었습니다.

의령에서 한의원을 하시는 손상식 원장님은 몇 번 산행을 같이 해서 잘 압니다만

거침없는 준족의 산꾼입니다.

약초에 관해서도 자세하게 잘 가르쳐 주시니 얻어 배우는 게 많습니다.

 

 

 

 

이 작고 아담한 폭포를 넘어 작은 통신골이 본격적으로 시작됩니다.

끝까지 치고 오르면 주능선의 제석봉 옆 호구당 터로 붙지요.

 

 

멋있네.

귀소본능은 다른 사람들은 다 이리 한 컷씩 잡아 주면서 난 왜 안 찍어 줄까요?.

치명적 매력 덩어리라고 스스로 그렇게 떠벌리고 다녔는데 모델로서는 부적합했든가 봅니다.

뭐 솔직히 그 부분은 인정합니다.

이런 비주얼은 나올 수가 없으니 말입니다.

 

 

이 친구랑 같이 사진에 찍힐 땐 비교가 되기 때문에 바짝 신경을 써야 합니다.

딱 봐도 비교되지 않습니까?

 

 

고도 1,500 부근을 지나면서부터 좌측 능선을 넘어갈 곳을 호시탐탐 노립니다.

원래 계획이 그랬거든요.

그런데 모두들 염불보다 잿밥에 관심이 쏠려 넘어야 할 곳을 지나쳐 버립니다.

결국 그냥 끝까지 오르기로 합니다.

 

 

 

 

이 친구는 뭘 해도 다 배우 같어.

 

 

 

 

기어오르고 서서 오르고 땀을 쏙 빼며 오르고 오릅니다.

통신골다운 산행다운 맛이 제대로 납니다.

 

 

 

 

 

 

눈앞으로 성큼 다가와 금방이라도 닿을 듯 한 정상이 보이는 것만큼 짧지가 않습니다.

프로이드라는 사람이 그랬답니다.

애매모호한 것을 견디는 것이 어른이다라고.

그리 오래 살아본 것은 아니지만 살다가 보니 그런 생각들이 듭니다.

인생에서 무슨 커다란 의미를 찾기보다는

내가 내 인생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는가가 더 중요하더란 겁니다.

그것이 남이 볼 때 비록 보잘것없다 할지라도 스스로 만족할 수 있는 것이면 만족이 됩디다.

지리산행은 그래서 멈출 수 없는 내 삶의 하나의 의미라 할 수 있습니다.

 

 

 

 

 

 

 

 

일출봉이 저만큼 밀려 있습니다.

주능을 지나는 사람 소리가 생생히 들립니다.

바짝 세운 골짜기 끝을 향해 쉬지 않고 힘을 내어 올라갑니다.

 

 

주능선에 올라서고 불어오는 바람에 몸을 식히며 앉았습니다.

 

 

간발의 차이로 입장료를 면했습니다.

운빨이 좋은 날입니다.

 

 

유시민 작가의 책<어떨게 살 것인가>에

놀고 일하고 사랑하고 연대하라.

그런 글이 있습니다.

깊이 공감하는 내용이라 몇 번 인용하기도 하고 써먹은 내용이지요.

 

잠시 풀밭에 앉아 쉬는 동안 지나가는 사람들 사이로 유달리 걸음이 느린 한분이 눈에 들어옵니다.

착하기 그지없는 규다는 배낭을 열어 팀장님이 맛이라도 보라고 안겨준 망개떡을 그분께 나눠 줍니다.

올해 85세로 백무동에서 올라오셨답니다.

1년에 두 번 상봉을 오르신다고 합니다.

이렇게 시작된 어르신의 산상 강의에 한동안 다들 빠져듭니다.

모두들 어르신의 말씀에 감동과 공감을 느낍니다.

산꾼들이라 더더욱 그런지 모릅니다.

35년째 산행을 하신다니 50대에 산행을 시작하신 어르신은 서울에서 홀로 버스를 타고 오신다네요.

같은 연배의 친구들 누구도 같이 산행을 할 사람이 없으니 홀로 다니신답니다.

인생이 그리 대단하지도 않더라

후회하지 말고 하고 싶은 것은 하고 살라

자신만의 걸음으로 걸으라

남들 의식하지 말고 내게 맞는 속도로 산행도 삶도 살아라

그런 말씀을 하십니다.

이 분의 말씀을 대충 요약하면 위 <놀고 일하고 사랑하고 연대하라> 딱 그런 내용입니다.

규다가 다가와 내게 그랬습니다.

우리도 저 나이에 산을 다닐 수 있을까.

그럴 수 있을까요?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제석봉 전망대에서 상봉을 뒤에 놓고 사진을 찍습니다.

카메라 든 놈이 시킨 일입니다.

 

 

 

 

 

 

올라온 길이 아스라이 보입니다.

여러 번 올라 보았으니 익숙한 느낌마저 드는 골짜기이지만

그래도 골짜기는 가팔랐고 길었습니다.

 

 

다시 배가 고파옵니다.

밥 먹으러 갑니다.

걸음이 빨라집니다.

 

 

배고플 때 먹는 밥이야 말로 황후의 밥상이 부럽지 않은 법이지요.

연하 형님이 그럽디다.

높은 곳에 서서 배불러 내려다보니 아무것도 부러운 게 없다.

명언처럼 들리더군요.

참, 연하 형님은

이번부터 산행기를 쓴다고 선언하신 걸로 기억이 됩니다만

하루빨리 수려한 문장과 글을 볼 수 있는 약속 이행을 촉구합니다.

 

 

나눠 주는 거 좋아하는 우리 팀장님은 옆 테이블과 저 뒤의 사람들에게 연신 음식과

성인음료를 막 퍼다 줍니다.

옆 테이블 부부는 그 고마움에 감사하고 고맙다는 말을 수없이 합니다.

산장에 숙박을 하면서 준비도 없이 올라 온 상태라 너무 고맙다고 하네요.

규다가 무겁게 지고 올라온 노리끼리한 액체는 병 갈이를 하고

알딸딸한 기분을 선사합니다.

내 팀장님 한테 그랬지요

"막 주면서 아무나 막 주면서 와 나는 안주노?"

 

 

하산합시다.

 

 

규다와 들풀님 손 원장님은 빠른 걸음으로 앞서 내려갑니다.

하산 도중 뜻밖에 백산 선생님과 마주칩니다.

이럴 때 참 반갑지요.

산장에서 주무시고 일출 사진을 찍으러 간다고 하십니다.

만남을 뒤로하고 길고 지루한 하산길을 오래 걸었습니다.

 

 

먼저 내려간 귀소본능과 함께 이분들은 아침 그곳에서 이런 사진을 남겼더군요.

함께 저녁도 먹지 않고 올라 간 친구에게 뒷날

고맙다는 톡을 보냈더니

별 말을 다한다 그런 말은 서로 하지 말자 합니다.

사람 관계의 깊이라는 게 결코 시간에 비례하지는 않습니다.

 

 

우천 선생 추모비가 있었든 곳이 휑합니다.

 

 

야영장 표지석 뒤 안쪽으로 옮겨져 있습니다.

 

 

추모비를 옮긴 이유를 공단 사무소에서 물어보았습니다.

제단을 만들기 위해 유족과 산악회가 합의해 옮긴 것이라 하드만요

뭐 그렇다고 하니 그런가 보다 하기는 합니다만

어찌 보면 구석으로 내몰린 느낌이 살짝 드는 게 불편한 마음은 저만 느끼는 것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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