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산행

2019.06.09 우번대

지리99 수야 2019. 6. 6. 19:38

우번대

 

행동팀82-지리61차

일시:2019년 6월 9일 (일요일)

산행자:의령4명, 함안1명, 창원3명 (총 8명)

걸어간 길:목교-상선암 -토굴 -우번암 - 천은사골-목교

산행시간:08시 19분~13시 50분 (5시간 30분)

 

2019-06-09 우번암.gp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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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독오당 산행 때 귀소본능이 차를 세우고 천은사 매표소가 없어진 기념으로

사진을 찍어야 한다고 우리를 저렇게 세우고 사진을 찍었습니다.

그때 걸었던 길과 오늘 걷는 코스가 거의 유사합니다.

다만, 독오당 산행과 달리 오르는 길과 하산 방향이 바뀌었고, 종석대를 가지 않았다는 게 다릅니다.

 

 

노고단으로 가는 861번 도로를 오르다 상선암 들머리가 있는 도로변 작은 공터에

두 대의 차를 세우고 산행을 시작합니다.

산행 채비를 서둘러하고 재빨리 산으로 들어갑니다.

올라오는 길 중간중간 돌탑들이 보입니다.

농담 삼아 근심 걱정 있는 사람은 그 무게나 크기만큼 돌을 올리고 가자고 했습니다.

그리고 홀가분하게 다 내려놓고 갑시다 했지요.

이럴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미 쌓인 돌탑에 작은 돌멩이 하나씩을 올리는 게 거의 일반적입니다.

그런데 어떤 한 양반이 자기 몸 만한 돌 하나를 낑낑거리며 찾아옵니다.

허걱! 이기 머꼬?.

와 이라노 어이?.

머시고 와?.

다들 한 마디씩 하게 되었지요.

팀장님이 거들어 기어코 돌탑 하나를 놓았습니다.

이후 그 양반 엄청 가벼워졌는지 아무도 따라갈 수가 없도록

맨 앞에서 내 뺍디다.

효과 만점.

 

 

울창한 숲 사이로 햇볕이 쏟아져 내립니다.

새소리와 바람소리 흔들리는 나뭇잎 소리에 산보하듯 가볍게 걸어갑니다.

이 길을 혼자 천천히 걸으면 어쩐지 나 자신과 참 많이 화해할 수 있을 것 만 같은

느낌적인 느낌이 새록한 그런 산길입니다.

지난번 독오당 산행에서 이 길로 내려가면서

가을에 혼자 이 길을 꼭 걸어 보아야겠다고 생각했었습니다.

 

 

산행지를 정하고 이동해 오는 동안 비가 잠시 내렸습니다.

오후부터 내린다고 예보된 비가 일찍 시작할 것 같아서

원래 계획한 산행지를 버리고 짧게 산행하기로 했습니다.

언제 비가 내릴지 모르니 후딱 해 치우자 했지요.

그런데 산행을 시작하니 뜻밖에 비가 그치고 해가 나왔다 들어갔다

오락가락합니다.

비는 올 것 같지 않습니다.

천천히 걷고 느긋하게 산행하기로 합니다.

 

 

출발하고 한 번 쉬고 상선암에 바로 도착합니다.

적막하도록 고요합니다.

우리 일행의 대화와 분주한 발소리만이 절집에 울려 퍼집니다.

 

 

 

 

인기척을 내어 보지만 스님의 기척이 없어 출타한 줄 알았습니다.

 

 

이 사진을 보는 순간 에스테야 형님에게 들었든 <상선약수>가 생각났습니다.

그날, 그러니까 3월 독오당 산행 당시 상선암 이름에 무슨 뜻이 있을까라는 물음에

서슴없이 에스테야 형님이 상선약수 뭐 그런 거와 연관이 있는 것이 아닐까?라고

했는데, 그것은 모르겠고 상선약수라는 말을 공부하게 되었지요.

상선약수(上善若水):최고의 선은 물과 같다.

가만히 물을 들여다보는 은의님을 보면서 그 말이 생각났습니다.

저분 저러다 무슨 득도 이런 거 하는 건 아니겠지요.

 

일행들의 행동과 말로 조금 소란해 지자.

안 계신 줄 알았든 스님이 방문을 열고 조용히 쉬었다 가라는 말과 함께 방문을 닫아버립니다.

어쩐지 그만 물러나야 할 것 같은 느낌이 확 듭니다.

물 한 모금씩을 마시고 서둘러 절집을 돌아 나갑니다.

지난번 스님과는 다른 스님이 계시네요.

 

 

해우소를 지나 계곡 쪽으로 난 길을 따라 걸음을 바삐 옮깁니다.

 

 

상선암에서 불과 5분여 정도에 이 토굴이 있고

토굴 뒤 산 쪽으로 길을 따라 우번암으로 가는 길이 있습니다.

스님이 수행하는 곳인지 공부하는 곳인지 모르겠으나

누군가 기거하는 흔적이 뚜렷합니다.

 

 

산길 지도에는 붉은 실선으로 2 지점에서 끊어진 트랙으로 있지만,

지난번에 2 지점에서 1 지점으로 내려왔고,

이번에는 역으로 올라가면서 확인하게 되는 길입니다.

길이 뚜렷하고 명확함으로 지도 트랙에 반영되어도 전혀 문제가 없을 것 같습니다.

선답자의 표지기가 여럿 있고 뒤이어 독오당 표지기도 적당한 간격으로 걸었습니다.

 

 

안개가 자욱하게 숲을 덮어 잠시 몽한적인 분위기가 연출됩니다.

 

 

상선암 토굴에서 우번대로 오르는 능선길은 이제까지의 산책길은 잊어야 합니다.

그렇다고 그리 험한 길은 아닙니다.

개인적인 차이가 있으나 된비알의 오름길이 계속 이어지고

한바탕 땀을 쏟지만, 그리 많이 힘들거나 길지 않음으로 감당할 만한 오름길입니다.

 

 

 

흐린 날씨 탓에 조망은 없지만 비가 내리지 않는 게 어딘가 싶습니다.

걸음 빠른 은의님이 조망터에 먼저 올라서서 후미를 기다립니다.

 

 

오랜만에 산에 들어온 여사님들은 오름길에서 조금 힘들어하고

낙오병 처리 담당 연하 형님이 역시나 후미에서 잘 챙겨 올라옵니다.

 

 

윗옷을 바지에 넣지 말고 빼고 입으시라 했습니다.

바지 속에 윗옷을 넣고 허리띠로 아래위를 구분하면 꼰대.

윗옷을 바지에 넣지 않으면 그래도 아저씨 정도는 쳐 준다고 했더니 바로 그리 합니다.

단순히 셔츠를 바지에서 뺏을 뿐인데 이 아저씨 10년 8개월은 젊어 보입니다.

이 형님, 요즘 애들 말로 딱 각입니다.

인싸각!

 

큰 숨 몇 번 몰아쉬고 나니 우번암으로 들어가는 길목에 도착합니다.

저 위쪽으로 종석대가 보이련만 짙게 내려앉은 구름으로 아무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깨달음을 얻으면 종소리가 들린다는 종석대를 알려주자

가파른 오르막을 올라오는 동안 하도 힘들어 아까부터 이미 종소리가 들렸다고 합니다.

종석대 종소리를 들었다는 이 양반을 보살이라 하루 종일 불렀습니다.

우번암에 조용한 걸음으로 들어서자 스님의 낭랑한 염불소리가 들려옵니다.

스님의 독경이 끝날 때까지 배낭을 내리고 조용히 쉬었습니다.

 

 

스님께 합장으로 인사를 드리자 온화한 웃음으로 일행을 맞아주십니다.

지난봄 독오당 산행에 찍은 사진을 가져왔습니다.

처마 밑 더덕이 올라오는 걸 암자를 비운 사이 누군가 손을 댄 모양입니다.

속이 많이 상하시다 합니다.

올라오면서 미리 준비 한 과일을 들고 두 사람이 법당을 다녀옵니다.

스님의 표정이 한없이 밝고 맑아 천진함마저 느껴졌다고 암자를 나온 후 말들을 합니다.

상선암에서와 비교가 되네요.

점심을 이곳에서 해 먹고 가라 하셨지만 점심을 먹기엔 너무 이른 시간이라

이런저런 대화를 한동안 나누고 우번암을 물러납니다.

 

 

석간수를 뜨고 뒤편 작은 바위에 새겨진 <지리산 선종대>를 사진으로 담았습니다.

예전에 계셨든 스님이 새긴 것이라 하셨습니다.

 

 

우번암을 되돌아 나와 계곡 방향 천은사 골로 하산을 합니다.

종석대에 오를 생각은 애초에 아무도 없었습니다.

짧고 간단하게 산행하자는 계획도 있었지만 워낙 조망이 없으니

올라가 보아도 얻을 것이 없지 싶습니다.

 

 

크고 굵은 소나무들이 이런 상처를 드러내고 있었습니다.

내려오는 길 계곡의 넓은 한 곳에서 점심을 먹었습니다.

일찍 시작한 산행이고 짧은 거리라 산행은 빨리 마무리되었습니다.

하산 후 몇 군데 가고 싶은 곳을 말했더니 모두 그러자고 합니다.

 

 

 

매천사

구례군 광의면 수월리 매천사에 들였습니다.

매천사는 매천 황현(1855~1910) 선생의 위패를 모신 사당이다.

황현 선생은 한말의 순국지사이자 시인이며 문장가이다.

전라남도 광양에서 태어났으며 어려서부터 시를 잘 짓고 재질이 뛰어났다.

1894년 동학농민운동·갑오경장·청일전쟁이 연이어 일어나자 위기감을 느끼고,

경험과 견문한 바를 기록한 『매천야록(梅泉野錄)』·『오하기문(梧下記聞)』을 지어 후손들에게 남겨 주었다.

1905년 11월 일제가 강제로 을사조약을 체결하여 국권을 박탈하자

김택영과 국권회복 운동을 시도하였으나 실패하였다.

1910년 8월 일제에게 강제로 나라를 빼앗기자, 절명시 4편과 유서를 남기고 아편을 먹어 자결하였다.

1962년 건국훈장 국민장이 추서 되었으며 이건창, 김택영과 함께 한말삼재(韓末三才)라고 불린다.

생전에 살았던 곳에 그의 후손과 지방 유림들이 1955년에 세운 이 사당은

앞면 3칸·옆면 1칸 규모로,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人)자 모양을 한 맞배지붕이다.

 

매천사 창의문

 

 

문이 잠겨 있어 안으로 들어갈 수가 없어 담장 너머로 들여다보았습니다.

매천 황현 선생 묘정비가 있고, 유물전시관 현판도 보입니다.

 

 

쌍산재

매천사를 둘러보고 쌍산재로 갔습니다.

운조루와는 전혀 다른 고택입니다.

입장료가 5000원입니다.

대신에 커피나 차 한잔을 무료로 주는데 이게 어찌 보면 차 값을

강매하는 것 같은 느낌이 살짝 듭니다.

시간적 여유가 있을 때 한 번은 들려 볼 만한 곳이긴 합디다.

비밀의 정원이라 하길래 들려 보았는데 볼 만한 곳이 많습니다.

 

 

 

 

 

 

 

 

 

 

 

 

 

 

사락당

네 가지 즐거움을 주는 집이라 이해하면 맞습니까?

네 가지나 즐거운 집이라는데 이 분들 그리 즐거워 보이지가 않고

너무 근엄하신 것 같습니다.

 

 

 

 

 

 

한문을 모르는 저 같은 사람을 위해 기둥 주련 아래 한글로 해석이 있습니다.

 

 

당몰샘

쌍산재 입구 옆에 당몰샘이 있습니다.

여기 물이 좋다기에 한 바가지 들이킨 연하 형님은 물에서 미역 맛이 난다고

하셨는데 아무도 동의하지 않았습니다.

이곳이 장수 마을로 꼽히는데 깨끗한 환경과 이 당몰샘 덕분이라고 합니다.

至尊至味 최고의 물맛이다 뭐 그런 말이겠지요.

 

 

 

운조루(雲鳥樓)

전라남도 구례군 토지면에는 운조루(雲鳥樓)라는 고택이 있다.

지리산 자락의 산과 연못으로 둘러싸여 풍수지리적으로

금환낙지(金環落地) 즉 하늘에서 옥녀가 금가락지를 떨어뜨리는 형상이라는

명당자리에 조선 영조 때 낙안군수 유이주(柳爾胄)공이 지은 전통 양식의 양반 가옥이다.

운조루(雲鳥樓)라는 이름은 중국의 도연명(陶淵明)이 지은

귀거래혜사(歸去來兮辭)에서 따온 글귀인데 “구름 위를 나는 새가 사는 빼어난 집”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운조루는 들어 가보지 않은 몇 사람만 들어가고 나머지는 바깥에서 구경을 했습니다.

 

 

 

 

운조루가 널리 알려지게 된 것은 주인이 가진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의 철학 때문일 것이다.

운조루에는 유명한 뒤주가 하나 있는데, 이 뒤주의 아래쪽에는 타인능해(他人能解)라고 쓰인 마개가 있다.

타인능해(他人能解), 다른 사람 즉 누구나 마개를 열 수 있다는 의미이다.

운조루를 만든 유이주는 마을의 배고픈 사람들이 언제든지 와서 뒤주를 열어 필요한 만큼

쌀을 가져갈 수 있도록 하였다.

통나무를 깎아 만든 이 뒤주에는 두 가마니 닷되의 쌀을 담을 수 있으며,

운조루의 주인은 뒤주가 비워지면 다시 쌀을 채울 것을 명했다고 한다.

뒤주의 위치도 주인의 눈에 잘 띄지 않는 곳에 두었다는데

그것은 가난한 이웃들의 불편한 마음을 헤아린 배려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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