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골
일시:2018년 10월 21일 (일요일)
산행자: 연하님, 노을님, 나비부인님, 최규다님, 들풀님, 수야 (총 7명)
걸어간 길:남산마을 - 신기동 -큰홍골 -느진목재 -왕시루봉- 섬진강전망대-통천문 -작은홍골-남산마을
산행시간:07시 23분 ~16시 09분 (휴식 점심시간 포함 8시간 45분 ) 오룩스맵 기록 8.7km
이른 시간 화개장터에서 아침을 먹었다.
전날 내려와 밤새 차에서 쪽잠을 자고도 규다와 들풀님은 밝은 표정으로 반가워했다.
늘, 이런 모습이 안타깝고 미안하다.
다음부터는 창원으로 와서 편하게 같이 자고 오자는 제의 했지만 자기 편한 대로 하겠단다.
아침을 먹고 두 대의 차로 연곡사 피아골 방향으로 달리든 차는 왼쪽으로 커브를 틀었다.
연곡사 가기 전 평도 마을에서 다리를 건너 좁은 도로를 조금 따르다 보면 남산마을이다.
남산마을 뒤로 홍류동으로 불리는 계곡은 왕시루봉에서 발원해 내려오는 짤막한 골짜기다.
건너 피아골에 비하면 짧고 간략한 계곡이라는 말이다.
홍류동이라는 이름은 대체로 단풍이 붉게 물드는 곳에 붙는 이름이니 아마 그럴 것으로 짐작하였다.
100년 정도 되었다는 홍류동 각자가 있는 곳까지 차로 올랐다.
산행 준비를 마치고 배낭을 메고 홍류동 각자 바위로 가까이 내려가 보았다.
홍류동 글씨가 있는 바위 부근은 너른 반석으로 여름날 여러 명이 놀기에 그만일 것 같았다.
주차한 길에서 짧은 철계단을 만들어 놓아 계곡으로 쉽게 내려설 수 있었다.
제법 쌀랑한 날씨에 겉옷을 겹쳐 입었다.
계곡에서 다시 걸어 나와 포장길 임도를 따라 한참을 오른다.
산 위로 아침 햇볕이 내리고 있었다.
몸이 가는 길이 있고
마음이 가는 길이 있다.
몸이 가는 길은 걸을수록 지치지만
마음이 가는 길은 멈출 때 지친다.
오늘
몸보다 마음이 먼저 길을 나서는 것은
불원천리 먼 길도 마다치 않고 오로지 친구와 함께하기 위해 달려와 준
내 친구가 있기 때문이었다.
왕시루봉과 내려올 작은 홍골을 먼저 눈으로 익혔다.
그늘진 계곡이 작은 홍골이다.
피아골 단풍축제가 11월이라고 하드니 아직 단풍은 아래로 내리지 않았다.
이곳의 단풍은 좀 더 있어야 제대로 익을 모양이었다.
이 짧은 가을과 함께 쑥부쟁이와 이별도 곧 올 것이다.
살다가 이별할 일이 생기거든 너무 슬퍼하지 마라.
인연은 만났다가 헤어지기도 하는 것이다.
인연은 그런 것이다.
가는 인연 잡지 않고, 오는 인연 막지 않는 것
그게 순리에 따르는 인연이다.
인연은 억지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살다가 행복한 일이 생기거든
너무 잡으려 애쓰지 마라.
무엇이든 잡으려 하면 달아나고
꽉 쥐고 있다고 다 내 것이 아니지 않든가.
살아 보니 그렇지 않든가.
죽을 것 같았던 힘든 순간도 지나고 보면 별 것 아니더라.
인생 그거 별거 아니더라.
초반 산길은 또렷하였다.
고도를 높여 갈수록 희미해져 가든 길은 너덜지대를 통과 하면서 보였다 사라졌다 했다.
아니, 사라진 것이 아니라 너덜지대 산길이 늘 그렇듯 잘 보이지 않았다.
살다 보면 한 치 앞이 보이지 않는 막막한 날들도 수 없이 많다.
그래도 대부분의 사람은 묵묵히 살아내고 견디어 낸다.
온 사방 숲으로 둘러싸여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산길을 오르고 올라 보면
사방 가슴 시원하게 뚫린 높은 곳 조망터가 나타나 지금까지 걸어온 힘든 순간을
일순간에 잊게 하지도 않는가.
일찍 시작한 산행이라 시간적 여유가 많았다.
덕분에 가끔 쉬며 걸어 올랐다.
그 짧은 휴식 시간에 이 사람들 무엇을 하는지 모르겠지만
뭘 보라고 하는 것 같고, 보아 주는 것 같은 그 참 묘한 분위기다.
하필이면 나한테 이 순간을 찍혀 버렸을까?
이렇게 나무가 엉겨 붙은 것은 처음 보는 것이라 다들 한참을 보았다.
버섯이라 둥, 옹이라는 둥 답도 없는 말들이 부딪혔다.
서로 좋아서 붙었는지, 한 놈만 좋아서 매달렸는지 모르지만, 저것은 저것들의 운명이다.
느진목재로 올라서는 마지막 구간은 제법 힘을 쏟아부어야 했다.
경사진 길 산죽을 헤쳐 올랐다.
짧았지만 다들 가쁜 숨소리를 내뱉어야 했다.
느진목재로 올라서고 왕시루봉 방향으로 다시 오름길이 시작되었다.
가끔 붉은 가을이 내린 단풍을 보았다.
왕시루봉으로 오르는 능선길 전망 바위에 올라섰다.
탁 트인 조망은 없었으나 갑갑하게 길만 보고 걷다 나뭇가지 사이로 살짝씩 보이는
능선들이 드러나는 조망은 시원함을 안겨 주었다.
고도가 높아질수록 단풍은 자주 모습을 드러냈다.
사랑과 재채기는 속일 수 없다.
어김없는 계절도 마찬가지이다.
계속되는 오름길
한참 앞선 규다는 옆 전망 바위를 보지 못하고 지나쳐 홀로 올라 가버렸다.
나와 뒤따라 오는 사람들은 옆 전망대로 올라갔다.
규다를 불렀지만 들리지 않는 모양이었다.
나중에 보니 혼자서 얼마나 내 뺏는지 왕시루봉에 배낭을 벗어두고 다시 내려와 기다리고 있었다.
전망 바위를 오르는 곳에는 쪼개진 바위가 있었다.
가운데 낀 바위가 함양 독바위의 그것과 비슷해 보였다.
전망대에 올라서자 한순간 세상이 확 열리는 듯 지리산이 송두리째 눈앞에 펼쳐졌다.
이럴 때는 탄성이 저절로 나오게 되어 있는 법이다.
세상을 처음 보는 듯 우리의 눈은 바쁘게 산을 파고들었다.
상봉과 남부능선 안당재 바깥당재 불무장등 통꼭봉과 황장산능선이 펼쳐졌다.
조망은 시원함과 함께 상쾌한 기분을 데려왔다.
지금까지 걸어온 숨찬 걸음은 어디에도 남아 있질 않았다.
오로지 이 순간에 몰입되고 있었다.
이런 기분, 이런 느낌은 중독성이 강하다.
누군가를 이쁘다 이쁘다 하면 모두 이쁜 점만 보인다.
누군가를 밉다 밉다 생각하면 늘 미운 점만 눈에 보인다.
이렇게 상대성인 것은 내 마음에서 그 한 사람에게 문을 열기도 하고
문을 닫아 버리기도 하기 때문이다.
나를 마음에서 닫아 버린 사람의 마음을 내가 돌이킬 수는 없다.
마음에 빗장을 단단히 걸어 잠근 사람의 마음을 내가 어쩔 수 있겠는가.
다만 그런 사람도 나는 미워도 원망도 하지 않아야겠다.
어쩔 수 없는 일이라면 어쩔 수 없는 것이다.
내가 누군가에게는 이쁜 사람으로, 어떤 사람에게는 미운 사람으로
남겨지는 것은 엄밀히 말하면 그들의 마음이다.
사는 게 다 그렇고 그렇더라.
이런 뜬금없는 말을 한다고 무슨 일이 있는가 추측하거나 달리 생각하시지 말라
단지, 인생 별거 없다 그러니 죽고 사는 문제가 아닌 다음에야
주위에 일어나는 크고 작은 일에 대해,
조금 더 넓은 마음으로 이해하고 살자는 취지를 설명하기 위해 끌어온 말일 뿐이다.
앞뒤 맞지 않는 논리일지라도 하고자 하는 말의 본질과 맥락만 이해하고 보시면 좋겠다.
반야봉과 주능선을 배경으로 손가락 하트를 날리는 이 사람들이 좋다.
이런 시간, 이런 순간이 나는 참으로 좋다.
지리산은 중독성이 있다.
산도, 사람도, 여기서 행하여지는 일련의 상황도, 그 중독성을 부각시킨다.
애써 그것에서 빠져나오려 애쓸 필요도 없는 이 충만한 재발성 중독은
내 삶의 소중한 일부이다.
이것도 숨길 필요도 없는 진정한 내 마음이다.
좋은 사람과 좋은 시간 보내기도 바쁜데 굳이 좋지 않은 일에 오래 머물러 있을 필요는 없다.
지나간 시간은 지나간 것으로 충분하다.
인생 뭐 있다고.
내가 슬픈 것은
마음만 바꾸면
언제든 행복할 수 있는 걸 알면서도
아프고, 절망하며 살아가는 것이라고 누가 그랬다.
그렇다. 그게 그리 쉽지 않지만, 마음만 바꾸면 된다.
생사를 넘나드는 기로에 서 있는 사람의 기도는 소박하다.
비록 평생 일어서지 못한다고 할지라도
살아 숨 쉬고 있음 그 하나가 간절한 기도의 제목이 되기도 한다.
남의 가슴에 틀어박혀 있는 큰 아픔보다 내 손끝에 작은 가시의 찔림이
더 아픈 것이기에 다른 이의 아픔의 크기를 가늠하긴 어렵지만 더는 자신만의
생각과 판단으로 스스로를 절망의 늪으로 밀어 넣는 일은 말아야 한다.
마음만 바꾸면 언제든 행복할 수 있다 하지 않는가.
살아 있음 자체가 행복인 사람도 있지 않은가.
너 나 없이 따지고 보면 아주 다르지 않은 삶
홀라당 까놓고 보면 생각하는 만큼 인생이 그리 대단하거나 웅장한 것도 별로 없다.
306호나 406호나 밥 먹고 잠자고 사는 건 비슷비슷 하다는 말이다.
인생 뭐 그리 대단한 게 있다고.
왕시루봉 정상에서 점심을 먹기에는 아직 이른 시간이었다.
섬진강 전망대를 지나 점심을 먹기로 했다.
왕시루봉 정상에 발을 딛고 기념사진을 찍었다.
사진 찍는 사람은 사진에 없다.
왕의강 전망대에 당도했다.
작년 8월 규다와 지소골로 올라 이곳에 왔었다.
두 번째 같이 보는 전망이다.
60억km 넘게 떨어진 곳에서 촬영한 지구의 모습을
1990년 2월 우주선 보이저 2호의 카메라가 태양계를 벗어나기 직전 명왕성 궤도 근처에서
촬영해 "햇빛 속에 떠도는 먼지"와 같은 작은 점 같은 지구의 모습을 보내왔다.
이 보일락 말락한 지구의 모습을 보고 칼 세이건은 "창백한 푸른점"이라 이름했다.
그리고 이렇게 적는다.
멀리서 보면 지구는 아무런 관심도 끌지 못할 곳이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다르다.
다시 이 빛나는 점을 보라.
그것은 바로 여기, 우리 집, 우리 자신이다.
우리가 사랑하는 아는 들어본 모든 사람이 그 위에 있거나 있었다.
우리의 기쁨과 슬픔, 수천의 종교와 이데올로기, 경제 이론, 사냥꾼과 약탈자, 영웅과 겁쟁이,
문명의 창조자와 파괴자, 왕과 농민, 서로 사랑하는 남녀, 어머니와 아버지,
아이들, 발명가와 개척자, 윤리 도덕의 교사, 부패한 정치가, '슈퍼스타'와 '초인적 지도자',
성자와 죄인 등 인류 역사의 모든 것이 여기에,
이 햇빛 속의 떠도는 먼지 같은 작은 천체에 살았던 것이다.
장군과 황제들이 이 작은 점의 한 귀퉁이를 아주 잠깐 지배하려고
흐르게 했던 유혈의 강을 생각해 보라.
또 이 작은 점에 어느 한 구석에 주민들이
그의 구별할 수 없는 다른 한 구석 주민들에게 저지른 잔인한 행위를,
그들은 얼마나 자주 서로 오해했고, 서로 죽이려고 얼마나 날뛰었고,
얼마나 지독하게 서로 미워했는지 생각해 보라.
우리의 거만함, 자신의 중요성에 대한 과신,
우리가 우주에서 어떤 우월한 지위에 있다는 망상은
이 엷은 빛나는 점의 모습에서 새로운 도전을 받게 되었다.
우리 행성은 우주의 어둠의 크게 둘러싸인
외로운 티끌 하나에 지나지 않는다.
『창백한 푸른 점』 -칼 세이건-
우주에서 지구를 바라보듯 하지 않아도 그 느낌이 무엇인지 와 닿는다.
저 멀리, 멀리 바라볼수록 넓고 광활한 세상에서 나는 작은 점에도 미치지 못한다.
내가 전체이고 전부인 것처럼 살아도 결국 작은 티끌에도 미치지 못하는 아무것도 아닌 존재인 것이다.
그런데도 죽기 살기로 이기려 들고, 죽을 듯이 나를 강조하며 살아간다.
미워하고, 시기하고, 질투하고, 오해하고, 폄하하고, 이간질하고...
그러지 말아야 할 일이다.
인생 뭐가 있다고.
그저 이 높은 곳을 아직도 굳건히 오를 수 있고
같은 곳을 같이 바라볼 수 있는 누군가가 있고, 마음을 알아주는 사람이 있고
기쁨도 슬픔도 나눌 수 있는 사람이 내게 있다면 그것보다 더 큰 무엇이 필요하겠는가.
무엇을 더 바라겠는가.
나의 소박하기 짝이 없는 희망은 그래서 쉽게 이룩될 수 있는 것들이다.
다시 이곳에서 세 번째도, 네 번째 또 이렇게 같이 서서
도도하고 유연하게 변함없이 흐르는 저 강을 같이 보자 친구야.
처음 본 사람인데도 느낌이 좋은 사람이 있다.
상대방이 말할 때 진지한 자세로 들어주는 사람
조용히 미소를 보이면서 공감을 나타낼 줄 아는 사람
차 한잔을 마주해도 편안한 분위기가 느껴지는 사람
지금 나는 그런 사람들과 지리산에 있다.
이 정도면 내 만족의 필요조건은 충분하지 않는가.
인생 뭐 있다고
삶이 고달파도 인생의 벗 하나 있다면
시/이채
그리 자주 세상이 나를 속이지는 않지만
가끔 속일 때면
다 잊어 버려 라는 말로
가슴까지 촉촉이 눈물 맺히게 하는
이슬 같은 벗 하나 있다면
어쩌다가 마주치는 벼랑끝에서도
덥석 두 손을 잡고
포기 하지마라 라는 말로
다시 뜨는 내 안의 작은 불빛
등잔 같은 벗 하나 있다면
왠지 쓸쓸하고 허전할 때
한 줄기 바람처럼 단숨에 달려와
힘 내 라는 말로
인간적인 따스함을 느끼게 하는
햇살 같은 벗 하나 있다면
인연이 깊다 한들
출렁임이 없겠는가마는
그 모습 그대로
변함 없이 그자리에 서 있는
바위처럼 믿음직한 벗 하나 있다면
세상이 만만하더냐
사람이 만만하더냐
그 무엇 하나 만만하지않아도
내가 너인듯 싶고
네가 나인듯 싶은
내 마음의 풍경 같은 인생의 벗하나 있다면
지리산길 지도에는 점선으로 트랙이 표시되어 있는 전망대 직전 작은 홍골로 내려가는 길을 버리고
전망대 아래 봉애산 방향으로 가파르게 난 길을 따라 내려갔다.
멈칫거릴 만큼 경사가 있어 단단히 조심해 내려갔다.
통천문 아래에서 점심을 먹었다.
시간이 여유로웠고, 꺼내놓은 음식은 넘쳐났다.
규다가 꺼내놓은 산삼주가 바닥을 보이고 쓰러지자, 안동소주가 당당하게 서서 또 나왔다.
정작 술도 먹지 못하는 친구가 저렇게 싸 짊어지고 온 것은
다른 사람을 생각하는 그의 마음이다.
그 마음에 감복하여 몇 잔이 빠진 안동소주는 내 배낭에 들어가 얌전히 자리를 잡았다.
통천문의 좁은 구멍을 빠져나갔든 두 형이 다시 돌아 나왔다.
길이 없었기 때문이다.
봉애산 능선을 따르다 트랙에는 없는 곳으로 째고 내려갔다.
급하게 쏟아지는 비탈을, 너덜을 지나 계곡 가까이 접근하자 길이 나타났다.
험한 길이지만 짧아서 막연하지 않았다.
서로가 있어 불안하지 않았다.
흔들리는 돌 하나도, 미끄러운 지점도 알려주며 서로 의지하고 믿었다.
인간은 대개 길을 가면서 동반자가 있길 소망한다.
어떤 인간은 동반자의 짐을 자신이 짊어져야만 발걸음이 가벼워지고
어떤 인간은 자신의 짐을 동반자가 짊어져야만 발걸음이 가벼워진다.
길을 가는 데
가장 불편한 장애물은 자기 자신이라는 장애물이다
험난한 길을 선택한 인간은 길을 가면서
자신의 욕망을 버리는 일에 즐거움을 느끼고
평탄한 길을 선택한 인간은 길을 가면서
자신의 욕망을 채우는 일에 즐거움을 느낀다고 소설가 이외수가 그랬다.
살면서 어떤 잘못된 상황이 와도 잘못의 원인을 남 탓으로 돌리며 살지는 말아야 한다.
그 인과는 나의 선택이었고 내 인생이고 나의 삶인 것이기 때문이다.
내 선택의 결과가 어찌 남의 탓이겠는가.
내선택에 대한 책임은 나에게 있는 것이다.
싫은 것은 선택하지 말아야 했고, 하지 말았어야 한다.
남의 선택에 동조도 아니고, 반대도 아닌 어정쩡한 자세로 있다가
일이 잘못되면 원망하는 것은 자기 삶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는 것이다.
그런 것을 비겁하다고 말하는 것으로 나는 알고 있다.
쪽팔리게, 비겁하게는 살지는 말아야 한다.
붉게 물든 단풍 앞에서는 두 여인은 소녀같이 함박웃음으로 사진에 담겼다.
길이 험해서 더 즐길 만 했고, 험하고 거칠어서 맞서고 싶어지는 마음이 강하게 일었다.
길 없는 길을 걷는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지만, 피할 수 없다면 즐기자는 마음이었기에
몸의 피곤함 만큼 마음의 흡족함도 따랐다.
계곡의 물소리가 점점 크게 다가오자
물소리에 뒤지지 않는 웃음소리도 크게 퍼졌다.
작은 홍골 하단부에 이르러 길은 유순해지기 시작했다.
합수부의 계곡을 건너는 것을 마지막으로 시작한 곳으로 돌아왔다.
친구가 있어, 동행이 있어 든든했다.
가을 산을 한 아름 안고 내려온 마음은 풍족했다.
인생길 내 마음 꼭 맞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난들 누구 마음에 그리 꼭 맞겠는가
살다 보면 멀어져 가는 사람도 있다
온 것처럼 가는 것이니 그저 그러려니 하고 살자.
누가 비난했다고 분노하거나 서운해하지 말자.
부족한데도 격려하고 세워주는 사람도 있지 않던가
인생은 결국 가는 것
그러려니 하고 살자.
제대로 단풍이 물들면 다시 한번 또 올라 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아직 많이 남은 저녁 시간 뒤로 작은 홍골이 멀어져 갔다.
가끔 전화 넘어 힘들다는 푸념도 털어놓고
허허 웃는 일도 전해주는 친구와의 산행이 내게는 짧기만 했다.
먼 길 피곤함을 견디며 가야 하는 친구가 안쓰러웠지만, 쉬이 놓아 주고 싶지도 않았다.
친구야
인생 뭐 있겠나.
걸어온 길처럼 그렇게 또 걸어가면 될 일이다.
삶은 사는 게 아니라 살아지는 것이다.
주어진 길 묵묵히 때론 열정적으로 그렇게 그렇게 가는 것이다.
아직 오래 걸어야 할 길들, 때때로 좋은 인연들과 같이 계속 걸으면 될 일이다.
그 길이 지리산 어디가 되든 함께라면 상관없다는 자네의 말처럼
같이 걸어 보자.
올라갔었든 길과 내려온 길이 만났다.
처음 내려간 계곡의 차가운 물에 발을 담갔다.
머리까지 찌릿해지는 차가움이 전해졌다.
저녁이라도 먹여 보내야 한다는 현명하고 바람직한 형들 마음을 규다가 받아들였고,
형들보다 먼저 계산대에 선 나는 연하 형님에게 밀려나고 말았다.
연하 형님의 완력은 참으로 온당했고 합당 했으므로 힘을 별로 주지 않은 체 나는 쉽게 밀려 나와 주었다.
그리해야 하는 것이 아우의 온전한 처사라 생각했다.
가을이다.
부디 아프지 말고
이 가을도, 다가올 겨울도 내내
아무 탈이나 걱정이 없이 모두 평안하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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