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산행

2018.10.14 수곡골

지리99 수야 2018. 10. 14. 14:21

수곡폭포


행동팀 지리산 53차 정기산행

일시:2018년 10월 14일 (일요일)

산행자:연하님,물봉님,노을님,귀소본능님,최정남님,성주숙님,수야 (총 7명)

걸어간 길:대성1교-수곡옛길-수곡골-수곡폭포-대성주막-의신-신흥옛길-대성1교

산행시간; 07시 44분~15시 18분 (7시간 35분 7.7km)




정신없이 지나가는 시간 앞에서


"시간은 우리의 삶을 야금야금 갉아먹어 우리를 죽음 앞으로 데려간다."

나이라는 걸 먹고 보니 먹으면 먹을수록 시간이라는 놈은 속도를 내기 시작한다.

지난 10년은 속절없이 쏜살처럼 날아 흩어져 버렸다.

불행하게도, 이런 식이라면 내년은 올해보다 더 짧고,

앞으로 10년은 지난 10년보다 더 빨리 지나갈 것이다.

100년을 더 산다 한들 체감시간이 찰나에 지나지 않는다면 무슨 의미가 있겠나 싶다.

지금 정신없이 지나가는 시간에 브레이크를 걸 수도 없지 않은가.

기분 좋게 ,느릿느릿 흘러가게 할 수도 없지 않는가.

앞으로 지나갈 세월이, 먼 훗날 풍요롭고 영원한 기억들로 채워지기나 할까?

치열하게 살아 내었다는 스스로의 대견함이라도 움켜쥐어야 겠다.

정신없이 지나가는 시간 앞에서 나는 이 하루, 이 시간만이라도 같이 걷는 사람들과 함께 웃고 싶다.

이 환한 웃음의 조각들이 속절없는 시간 속에 다 흩어진다 해도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

이것이 내가 선택한 나답게 사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세월아 가라

나는 그저 웃으며 따라가리라.


산행

대성1교에 우리를 내려놓고 두 대의 차는 휑하니 떠났다.

단천마을에 한대를 주차하고 한대는 다시 돌아올 것이었다.

수곡골을 올라 단천지능을 타고 내려와 단천마을에서 산행을 마치는 계획을 했다.

두 운전자의 배낭을 메고 대성1교 뒤로 난 길을 따라 조금 들어갔다.

도로에서 보이지 않는 곳에 배낭을 내리고 조금 기다라자 두 사람이 바로 올라왔다.


처음 단천마을에서 수곡골로 넘어가는 길을 그렸으나,

수곡 옛길을 따라 수곡골로 붙는 것이 수월하겠다 싶어 이 길을 걷게 되었다.

초반 길은 선명하고 유순했다.

경작지로 표기된 지점까지 걷는 동안 몸이 풀리며 열이 오르기 시작했다.


앞장선 나는 거미줄이 연신 걸리적거려 스틱으로 계속 거미줄을 걷으며 걸었다.

산행하기에 좋은 날씨다.

대성골의 물소리는 가까웠다 멀어졌다 길을 따라 계속 좌측에 있었다.


한 비탈 급커브를 돌자 약간의 오름길에서 갈대님의 표지기를 만난다.

예전 이분의 산행기를 복사해서 길을 찾아다니곤 했었다.

한 번도 뵌 적 없지만 반가운 마음으로 표지기를 대면했다.


산행대열은 지정하지 않아도 알아서 각자 자기 위치를 확정했다.

이분은 의령에서 오신 물봉님이다.

의령에서 한의원을 하시는 한의원 원장님이시다.

의령에서는 침술로 이미 유명하시단다.

독오당 에스테야 형님에게 강력한 라이벌이 등장한 것인가.

물봉님은 약초 산행을 오래 하셨단다.

각종 약초와 버섯을 묻는 데로 즉답해 주신다.

중경팀으로서는 큰 산꾼을 이리 또 얻게 된다.


길은 산모롱이를 따라 구불구불 이어지며 계속되었다.

수곡골로 붙는 과정은 예상보다 길고 멀었다.

달리밭골을 옆에 두고 또 한차례 휴식을 했다.                 

<사진:귀소본능>


대성주막이 얼마 남지 않은 곳에 경작지를 통과했다.

두릅나무가 심겨 있고 고사리밭도 있다.

철망을 쳐 놓았지만 잘 찾으면 우회하여 지나갈 수 있었다.

경작지를 지나 계곡으로 내려서며 산행코스를 다시 의논했다.

생각보다 이 길에서 시간을 많이 보냈다

단천지능으로 하산은 어쩌면 무리일지 모른다는 의견이 슬슬 나오기 시작했다.

일단, 수곡폭포까지 가서 수곡골을 오를지 말지를 결정하기로 했다.

대성주막을 지나 의신으로 가는 정규등로의 사람들이 보였다.


대성주막으로 나 있는 트랙을 따르지 않고 수곡골을 좌측에 끼고 계곡을 올랐다.

길이 분명하고 또렷했다.

수곡폭포가 저 멀리 보이는 곳에서 계곡을 건너 다시 올랐다.

곧이어 시원한 소리와 함께 폭포가 나타났다.


물봉님은 먼저 올라 배낭을 벗고 있었다.

걸음이 민첩하고 가벼웠다.

오랫동안 산행을 꾸준히 해 온 산꾼의 모습이 여실히 드러났다.<사진:귀소본능>


언제나 산행의 후미를 책임지는 연하형님이 따라붙었다.<사진:귀소본능>

<사진:귀소본능>


폭포는 시원스레 물줄기를 쏟아부었고, 그 시원한 광경을 여러 각도에서

사진으로 담으려 한동안 분주했다.


2010년 8월에 독오당이 샘골을 올라 수곡골로 하산했었다.

그 이후 8년 만에 이곳에 다시 왔다.

8년 전의 기억이 아직도 맑은데 세월이 참으로 빠르다. <사진:귀소본능>




C

인생은 B와D 사이의 C이다.

Birth 탄생과 Death 죽음 사이에 Choice 선택이다.


먼저 시작은 귀소본능이었다.

모두 사진을 찍느라 정신이 없을 때 폭포 가까운 곳으로 건너가기 위해 폴짝 뛴 그의 선택은

그곳으로 시선을 집중시킬 만큼 큰소리가 났다.

귀소본능과의 오랜 산행 중 많은 넘어짐과 미끄럼, 엉덩방아 찧기, 입수 등을 보았고,

나의 경험도 비슷했었지만

이번에는 예전의 여러 정황과는 사뭇 달랐다.

멀리서 전체 동작을 지켜본 내 무릎이 찌릿할 만큼 데미지가 느껴졌다.

폭포의 물기가 묻어있는 미끄러운 바위에서 착지의 발은 힘을 받지 못했고

넘어지면서 아픈 무릎에 충격이 온전히 간 것 같았다.

본능이 요즘 들어 무릎이 좋지 않아 힘들어했었든 터라 더군다나 그랬다.

설상가상으로 몸을 추스른후에는 시계가 사라진 것을 뒤에 알았고

그곳을 샅샅이 수색했지만 찾을 수 없었다.

다행히 크게 다치진 않아서 모두 안도했다.

넘어지기 전 사진을 그 자리에서 판독해 본 결과 시계는 수곡폭포 전 걸어온 길

어딘가에서 사라진 것이었다.

다시 찾으러 가기에는 막연했고, 막막했다.

수곡옛길 어딘가에 누워 있을 시계의 처량함을 애써 외면하며 본능은 그래도 사진을 찍었다.

혹시, 이 길을 걷게 되거들랑 그래서 외로이 나뒹굴고 있는 시계를 보시거들랑

그 외로움을 외면 말고 주인의 손목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인도해 주시길.


시간상 단천지능을 내려가는 애초의 계획은 무리라 판단했다.

모여서 의논을 한 결과 여기서 점심을 느긋하게 먹고 의신으로 나가 서산대사길 <신흥옛길>을 걷기로 했다.

수곡폭포 조금 아래 올라오면서 보았든 자리에서 점심을 먹기로 했다.

물봉님과 두 여성분은 아래로 먼저 내려가고, 나머지도 따라 내려가려고 할 때

또 한 번 폭포 소리보다 더 우렁찬 소리가 들렸다.

제법 높아 보이는 바위 위로 올라서기 위해 오르던 연하형님이 벌러덩 바위 아래에 누워 있었다.

소리가 얼마나 크던지 아까 귀소본능의 소리는 오히려 작게 느껴졌다.

연하 형님은 본능과는 다르게 민첩하고 재빠른 동작으로 아무 일 없다는 듯이 벌떡 일어났다.

다행이었지만, 나중에 꺼내놓은 코휄은 형님의 체중을 받아 내느라 찌그러져 있었다.

배낭이 먼저 충격을 흡수하는 바람에 다친 곳 없이 무사했지만,

지켜본 사람들은 가슴이 철렁하는 순간이었다.

시간이 지나고 웃으며 놀리는 타임에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 이해가 안 간다는

무수한 우리의 핀잔을 들어야 했지만 정작 연하행님은 웃기만 했다.

맨날 국수만 먹어서 다리 힘이 없어 그랬을 거라는 놀림에도 웃기만 했다.

웃으며 장난스레 말했지만 산행 중, 매 순간 조심하지 않고 행하는 행동이,

한순간의 선택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느끼게 했다.


귀소본능이 가져온 송이로 밥을 했다.

노을형님이 가져온 쇠고기를 구웠다.

느긋하게 밥을 먹었다.

법으로 금지되었지만 몇 잔 가볍게 마셨다.

송이 향과 절묘하게 맞아떨어진 고기 맛은 더없는 포만감을 주었다.

포만감에 웃음은 잦았고, 여러 말들이 흩어지며 더 많은 웃음을 끌어왔다.

무심한 듯 툭툭 내뱉는 연하형님의 농은 즐거운 분위기를 더욱 고조시켰다.

단풍 구경과는 거리가 먼 산 아래를 맴도는 걸음이지만 가을의 깊이 만큼

산행은 깊고 그윽하도록 즐거웠다.

지나온 걸음은 멀어져서 갔고, 걸어야 할 길만 앞으로 다가왔다.


대성주막 쪽으로 내려갔다.

또렷한 길을 따랐다.

길은 오차 없이 목표한 곳으로 우리를 데려다주었다.



출입금지를 거꾸로 읽었다.

지금입출. 지금 들어오고 나가라.

그래서 우리는 지금 나가는 길이다.

떨어진 밤을 주웠다.

밤은 여기저기 즐비했다.


마을을 벗어나며 단체 사진을 찍었다.

당연히 사진 찍는 자는 보이지 않는다.

늘, 그가 사진을 찍었고, 그가 원하는 일이다.

우리는 그가 시키는 대로 했을 뿐이다. <사진:귀소본능>

<사진:귀소본능>


가을은 이미 깊었고 빨랐지만, 산 아래로 단풍은 많이 멀리 있었다.


정규등로를 걷는 귀소본능의 무릎은 다행히 괜찮았다.

연하형님의 시시때때로 뜬금없는 농담이 괜찮았고

바위 위에서 떨어져도 다치지 않아 괜찮았고

아무도 고집 피우지 않고 코스를 변경해서 괜찮았고

푸짐한 점심이 괜찮았고

같이 걷는 이 사람들이 내 맘같이 괜찮아서 괜찮았다.


걷고자 했었든 단천지능을 눈으로만 기억시켰다.

울긋불긋 기대했든 단풍이 멀어 아직이었지만 산바람을 들이키는 이것만으로도 충분하다 했다.


마음을 따라 자주 웃었다.



의신에서 얼음과자를 한 봉지씩 물었다.

버섯도 사서 배낭에 넣었다.

장난치며 노닐며 사진을 찍고 웃음은 계속 난무했다. <사진:귀소본능>


서산대사길로, <의신~신흥> 옛길로 이름이 지어진 길은 우리의 수다함을 다 받아주었다.

산책하듯 걸었다.

재미있었다.

마음을 따라 웃음이 계속 따라왔다.


물봉님에게 버섯과 나무와 약초 이야기를 물었고 막힘없는 답을 들었다.

힘들지 않아서인지 유독 그녀들이 많이 웃었고 즐거워 했다.


시작한 그곳으로 돌아왔다.

계곡을 건너기 전 또 밤을 주웠다.

나는 밤을 줍지 않았다.

안 줍는다는 핀잔을 받았지만 모른 척했다.

나는 밤보다 낮이 좋다는 썰렁한 개그는 맥도 못 추고 계곡물에 흘러갔다.


누군가 빠지기를 잔뜩 기대하고 순간포착을 기다렸다.

한발 한발을 옮겨 놓는 저들의 선택은 신중했다.

나의 기대는 무참히 무산되었다. <사진:귀소본능>






돌아오는 길

허수아비 축제가 있는 하동 악양으로 갔다.

작년에도 이 때쯤 들렸던 기억이 났다.

작년에는 보지 못했던 것들이 있었다.

또 시키는 대로 포즈를 취했다. <사진:귀소본능>


동정호에 분수도 만들었고 대나무로 다리도 만들어 놓았다.


마음을 따라 많이 웃었다.


제법 스릴있는 다리를 건너왔다 갔다를 했다.

<사진:귀소본능>


가장 귀여운 포즈를 취해 보라 했더니 이 모습이다.


본성이 밝은 사람은 어떤 경우에도 그 밝음을 잃지 않는 법이다.

밝은 본성을 지닌 사람들과 있으면 같이 밝아진다.

함께한 사람들의 밝음에 영향을 받아 같이 밝아졌다.<사진:귀소본능>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나를 사랑하게 만들 수 없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사랑 받를 만한 사람이 되는 것뿐임을


사랑은 사랑하는 사람의 선택에 달린 일

내가 아무리 마음을 쏟아

다른 사람을 돌보아도 그들은 때로

보답도 반응도 하지 않는다.

신뢰를 쌓는 데는 여러 해가 걸려도

무너지는 것은 한순간임을

나는 배웠다.


삶은 무엇을 손에 쥐고 있는가가 아니라

누가 곁에 있는가에 달려 있음을

우리의 매력이라는 것은 15분을 넘지 못하고

그다음은 서로를 알아가는 것이 더 중요함을


다른 사람의 최대치에 나를 비교하기보다는

나 자신의 최대치에 나를 비교해야 함을

삶은 무슨 사건이 일어나는가에 달린 것이 아니라

일어난 사건에 어떻게 대처하는가에 달린 것임을


그리고

내가 원하는 사람이 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린다는 것을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언제나

사랑의 말을 남겨 놓아야 함을

나는 배웠다.

<사진:귀소본능>

<사진:귀소본능>


불취무귀(不醉無歸)

취하지 않는 자 집으로 돌아가지 말라.

조선 22대 정조임금의 건배사라 한다.

술은 먹지도 못하는 사람과, 안 먹는 사람과, 술 먹는 사람이 함께 잔을 들었다.

아무렴 어떤가. 술 먹지 않은 사람도 술 취한 듯 기분 좋은 날이었고

지리산에, 가을에, 무엇보다 웃음 가득한 밝은 사람에 흠뻑 취했으니

자, 이제 집으로 돌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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