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왕봉-세존봉
지리구구 중부경남팀 정기산행
일시:2018년 9월 30일 (일요일)
산행자: 백산,솔바우,연하,봉정,봉정지기,노을,최옥희,최정남,황순진,김은의,성주숙,수야(12명 출발)
산행중: 황순진님 지인 (2명 합류), 하산 동행: 영트기,영트기지기 (하산완료 기준 총16 명)-존칭생략
걸어간 길:순두류 자연학습원-로타리 대피소- 천왕봉-천왕봉굴-천왕봉-로타리 대피소-세존봉-중산리
사람은 처음부터 어떤 목적이나 목표를 가지고 태어나지 않는다.
태어나 살다 보니 목적이 생겨나고 목표를 향해 걷게 된다.
삶이 그러하듯 지리산을 오르는 내 걸음도 그러하다.
다시 내려갈 산을 나는 왜 오르는가.
나를 향해 수백 번도 넘게 묻고 또 물었다.
그 질문을 이제 나는 하지 않겠다.
치열하게 지리산행을 하고 나면 분명해지는 한 생각이 있기 때문이다.
살아 있는 나에게 내가 살아 있다는 사실을 의심할 수 없이
분명하게 일깨워 주는 것이 또 있을까.
걷고, 걸을수록 그것은 더욱 선명하고 명확해진다.
그것만으로도 내 질문의 답은 이제 충분하다.
후회 많은 날이었지만, 살아온 모든 날처럼,
나는 오늘도 그렇게 살겠다.
모든 날, 모든 순간
나는 지리산을 오르듯 남은 온 생을 또 그렇게 살아 내겠다.
순두류로 가는 첫 버스에 줄을 서서 올랐다.
버스는 혼잡했다.
이른 시간 사람들은 저마다 열심히 살아가고 있었다.
버스 기사는 여섯 명이 타면서 여섯 명 다 요금을 내지 않았다는 이유로 구불구불한 산길에서
예민하게 반응했고, 여섯 명 중 한 명만 요금을 내지 않은 손님은 내릴 때 주겠다고 했다.
말하는 자의 정확한 뜻과 듣는 자의 오류가 계속 충돌했다.
우리는 다 이해하고 알아듣는 말의 뜻을 버스 기사는 해석하지 못했다.
말이란 것이 듣고 싶은 대로만 듣는 사람에게는 통하지 않는다.
먼저 받아들이겠다는 마음 없이 자기주장을 고집하면 소통은 되지 않는 법이다.
중경팀 12명이 천왕봉을 향해 걸었다.
처음으로 중경팀 산행에 참여한 봉정님 부부로 인해 분위기는 한층 고조 되었다.
단풍은 아직 아래로 내려오지 않았다.
날씨는 기대 이상으로 화창하고 청명했다.
가벼운 마음은 걸음조차 가볍게 한다.
도란도란 주고받는 여러 소리가 산속으로 퍼져나갔다.
팍팍한 돌길이지만 오름길은 완만하여 헐떡이지 않았다.
이 길을 오르는 것이 얼마 만인지 아득히 기억되었다.
선선한 바람이 자주 불었다.
땀 범벅이 되지 않을 만큼 적당한 기온은 산행하기에 매우 적절했다.
여러 근황과 서로 간의 안부는 오래 이야기되었다.
고도를 높여 갈수록 이야기는 핵심만을 찾아 줄었고 조금씩 이야기는 잦아들었다.
쉬었다.
때론 앉아 쉬기도 했고, 서서 쉬기도 했다.
단숨에 치고 올라 점령하듯 올라야 할 이유가 없었다.
정규등로의 딱딱한 지루함은 아직은 별로 느껴지지 않았다.
산꾼들답게 걸음은 생각보다 빨랐다.
휘적휘적 올랐다 싶었는데 로터리 대피소에 닿았다.
배낭을 내리고 휴식다운 휴식을 했다.
여기를 지나면 어디며, 무엇이 있는지를 다들 알고 있었다.
누가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수차례 이 길을 다 걸었다는 말이다.
앞선 선두의 대장님도 그래서일까
다른 때와 달리 말씀이 별로 없었다.
산은 이제 유복해지기 시작하고 있었다.
본격적으로 단풍을 뒤집어쓰면 산은 더욱 유복해질 것이다.
지천으로 핀 야생화는 시들기도 하고 피어나기도 했다.
꽃향유를 나는 배초향과 헛갈렸다.
팀장님은 꽃 이름 석 자중에 한 자는 맞았다며 그래도 내 편을 들어 주었다.
법계사는 이렇듯 늘 지나치는 곳이다.
몇 번 들어가 본 곳이라 굳이 오르는 길에서는 들어갈 마음조차 잘 먹지 않는다.
법계사를 지나고 금줄을 넘어 조망터 들었다.
모두 펼쳐진 조망 앞에서 얼굴에는 꽃 같은 웃음이 맑게 피었다.
대국(大國)은 하류(下流)라 했다.
노자의 도덕경에 그런 말이 있단다.
여기서 하류는 강이나 내가 흘러내리는 아래쪽을 말함이다.
대인(大人)도 하류(下流)다.
이건 내가 위에 말을 표절했다.
하류는 상류의 작은 골짜기 모든 물을 다 받아 준다.
넓은 마음, 넓은 아량으로 넉넉히 품고 보듬어 낸다는 것이다.
더 많은 글로 중언부언 하지 않아도 퍼뜩 이해되고 알아들을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대인을 만나면 그에 감동한다.
내가 선생님으로 모시는 백산 선생님은 하류다.
대인의 반대는 소인이다.
심한 표현으로 소인배라고도 한다.
낮은 다른 표현으로는 쪼잔, 쫌생이 뭐 그런 말도 있다.
살아가는 경륜이 쌓일수록 하류, 대인의 마음이 되어야 한다.
대인의 면모가 되지 않는다면
짧게 말해 쪽팔리게라도 살지 말아야 한다.
나 스스로 걸림이 없다면 당당할 수 있다.
나는 또 높은 곳에 서서 쪽팔리지 않고 당당하고 싶다 염원했다.
살면서 가장 고통스러운 것 중 하나는 사람의 힘으로 좌우할 수 없는 일들이다.
그중에서도 사람과의 인연이 그렇다.
인연이란 게 어찌 내 힘으로만 지속될 수 있겠는가.
최근 금농 선생님은 어머님을 멀리 보내며 이 비슷한 심정을 토로하셨다.
작년이 맘때 지리 산꾼 마등자님이 그랬다.
조문을 하러 가서 유족으로부터 전해 들었든 그의 치열햇든 삶이 오랫동안 내게 각인되어 있다.
형님이라는 호칭 그 한마디에도 그토록 고마워했든 분이었다.
피할 수 없는 것이 아니라
진실로 피할 수 있는 것을 피하지 않는 것이 운명이라 했다.
푸른 하늘에 낮달이 선명한 가을날 나는 때때로 그리운 사람들을 그리워했다.
지긋지긋한 세상의 걱정은 이 산을 넘지 못할 것이다.
적어도 내가 이 산에 머무는 동안만이라도 그랬으면 좋겠다.
산에서 꿈꾸는 삶의 생각은
장대한 자연에 비해 소박하다.
그저 여기 오늘 내가 존재함에 감사할 뿐이었다.
멀리 남해의 섬들이 눈으로 들어차고 섬과 섬을 연결하는 다리까지도 보였다.
넓고 멀리까지 보이는 청명함에 조망은 충분한 즐거움이 되었다.
조망터 벼랑 끝에는 일출봉이라 새겨져 있었다.
하산을 문창대 방향 세존봉으로 잡았다.
오름길에 바라본 하산 방향 문창대는 굳건했다.
굳건하여 단단해 보였다.
각오한 길은 각오 된 만큼 견딜 수 있다.
피할 수 없는 것이 아니라 진정 피할 수 있는 것을 피하지 않는 것 처럼
저 길로 걸어 내릴 것이다.
계단을 오르는 솔바우님을 뒤에서 소리쳐 불렀다.
왕성하게 산행을 이어가는 솔바우님은 중경팀의 산행 대장이시다.
묵묵히 지리 곳곳을 누비는 열정은 쉽게 따라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대단한 산꾼이시다.
또한 바로바로 올라오는 산행기는 부지런하고 성실한 성품이다.
선생님 뒤로 하늘이 유달리 아름다웠던 순간이었다.
사진은 눈으로 보이는 순간을 다 구현해 내지 못했다.
앞서간 일행은 앉아서 후미를 기다려 주었다.
12명의 걸음 속도는 다 다르고 체력도 그렇다.
앞선 자는 뒤를 기다려 함께 오른다.
바람직하고 온당한 행동은 착하고 온당한 사람이 한다.
즉, 저 두 사람은 착하고 바람직한 사람들이다.
자꾸 뒤돌아 멀리 바라보았다.
상봉에는 구름이 빠르고 넓게 깔렸다.
올라서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 수 있겠다는 생각들을 말했다.
세차게 지나가는 바람이 눈으로도 보이는 것 같았다.
그와 달리 남쪽의 아래는 평온하기 그지없었다.
좁은 계단 구간을 올랐다.
앞사람 뒤꿈치만 바라보며 꾸역꾸역 오르는 계단은 장딴지에 깊이
힘이 들어가게 했다.
제 계절을 피워내는 구절초와 산오이풀이 길가에서 환했다.
가까웠다.
눈으로 먼저 닿은 지리산 천왕봉은 구름이 가렸다 벗겨지길 반복했다.
산은 아직도 완전한 가을을 입지 않고 있었다.
가까워서 더욱 멀게 느껴지는 구간을 걸었다.
12명도 구름처럼 흩어졌다 모이기를 반복하며 산을 올랐다.
변화무상의 여러 모습이 시시각각 보였다.
온 세상을 덮어 버릴 것 같은 낮은 구름이 자주 지나갔고
하늘이 열리는듯한 맑음도 순식간에 보이곤 했다.
사랑하되 집착이 없어야 하고
미워하더라도 거기에 오래 머물러서는 안 된다.
사랑이든 미움이든 마음이 그곳에 딱 머물러 집착하게 되면
그때부터 분별의 괴로움은 시작된다.
사랑이 오면 사랑을 하고 미움이 오면 미워하되
머무는 바 없어야 한다.
인연 따라 마음을 일으키고 인연 따라 받아들여야 하겠지만
집착만은 놓아야 한다.
용띠 동갑내기 두 분은 같이 서서 같이 하늘을 우러러보았다.
긴말하지 않아도 서로 통하는 친구의 모습이다.
곁에 있는 것만으로 충분하다는 듯 보였다.
내 삶에 힘든 어떤 순간에 나는 지리산을 만났다.
지리산은 그런 내게 다른 각도의 시선으로 삶을 살게 해 주었다.
힘든 삶을 버티게도 해 주었고,
그리고 좀 더 나은 생각으로 살게 해 주었다.
적어도 내가 지리산을 만나기 전보다 훨씬 그러하다고 나는 믿는다.
산길과 인생길의 비교가 유독 내게 많은 것은 그래서 일지 모른다.
막히고, 돌아 우회하고, 주저앉고, 포기하고, 다시 일어나고, 그 길 위에 서고
길을 잃고, 길을 다시 찾고, 오도 가도 못하는 곤란한 지경에서 부들부들 떨리는 손발로
버티기도 하는 이 모든 과정이 삶의 여러 모습과 닿아 있었다.
아득하지만, 막막하지만, 걷다 보면 올라서고 걷다 보면 도착하더라.
소리로도 이미 감지되는 세찬 바람이 천왕봉을 넘어 불어오고 있었다.
계단 아래에서 옷을 꺼내 입었다.
상봉에 도착한 사람들은 세찬 바람 속에서 분주해 보였다.
우리가 올라서자 구름이 걷혔고 맑은 모습의 능선이 그대로 드러났다.
멀리 반야봉이 또렷했다.
사방 둘러 모든 것이 적절하고 바람직하게 푸른빛으로 조망되었다.
천왕봉 정상석을 중경팀이 쟁취하고 단체 사진을 찍었다.
많은 사람이 뒤엉켜 내 카메라의 순서에는 빠진 분들이 많았다.
로터리 대피소 부근에서 합류한 의령의 두 분도 봉정님도 백산선생님도 사진에는 없었다.
하늘을 받치는 기둥, 천주 각자 앞에도 섰다.
천왕봉굴을 다녀오자고 팀장님이 말했다.
머뭇거림 없이 앞장을 섰다.
천왕봉 아래 중봉 가는 길가에는 구절초와 야생화가 화원을 이루고 있었다.
날카로운 능선을 따라 걸음은 세찬 바람을 뚫고 나아갔다.
짧은 구간이지만 짧지 않은 길을 꺾어 돌아 그곳으로 계속 걸었다.
황금능선의 에스라인이 부드럽게 흘러가고, 발아래로 지리산의 능선이 펼쳐졌다.
가을 색이 물드는 산하는 아래로 그 기운이 향하기 시작하고 있었다.
삶이 막막할 때 높은 곳에 서서 멀리 바라보고 있노라면
표현되지 않는 무언가가 가슴 저 아래서부터 솟구친다.
그래, 걸어야겠다.
나는 계속 걸어야겠다.
하루에도 몇 번씩 우리는 우리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위험의 경계에 놓일 때가 있다.
느끼지 못할 뿐이고, 모르고 지나갈 뿐이다.
매일 매일 우리는 위험천만한 세상에 위험천만한 걸음을 내디디고 있는 것이다.
지나고 나면 안도의 한숨을 깊이 내뱉기도 한다.
아슬아슬하다. 삶이 또한 그러하다.
그러나, 그렇다 하여 가만히 있을 수만은 없다.
멈춘다는 것은 그 위험의 모든 순간을 감수하며 걷는 것보다 더 위험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위험해 보이는 길일지라도 조심히 따라가는 이 산길에서의 이유도 같다.
살아 있으므로 행하는 대단히 위험하지만 멈출 수 없는 길을 우리는 같이 걸었다.
천왕봉굴 답사는 선두와 후미가 확연히 나뉘어 이루어졌다.
애써 뜻을 해독하고 싶지 않은 글이 새겨져 있었다.
누군가 청소를 했는지 굴 안팎은 정갈했고 깨끗했다.
황금능선 건너 장당능선과 웅석봉 달뜨기 능선이 또렷했다.
돌아 나오는 좁은 능선에 연하 형님이 마중을 나와 있었다.
내려왔다 다시 올라가는 산길은 무척 힘들다.
세찬 바람에 봉정님의 모자가 돌아 오지 못할 곳으로 높이 솟구쳤다 사라졌다.
가을은 가을답게 맑고 푸르게 거기에 있었고, 가끔 우리는 올려다보았다.
하산길을 바라보았다.
감당하지 못할 것을 감당해야 하는 것이 삶의 길이라면 감당하지 못할 것은 없다 하더라.
저곳을 통해 내려가고 나는 감당하지 못할 것 없는 세상과 다시 마주할 것이었다.
밥을 먹었다.
세상의 어떠한 것도 뒤로 밀쳐놓고 물병으로 가장한 맑은 것을 서로의 잔에 몇 번이고 나누었다.
난해하고 해독되지 않는 세상일은 잊고 즐김을 즐길만한 시간이었다.
이런 시간은 항상 빠르게 흘러간다.
모든 충만은 역시 배부터 불러야 하는 법이다.
식사가 끝날 무렵 영트기님과 형수님이 함께 내려오고 있었다.
작정하지 않은 난데없는 만남은 참으로 난데없이 반가웠다.
같이 하산하기로 했다.
뒤돌아 바라본 높은 천왕봉은 우리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는듯하였다.
억세고 빡빡한 길이었다.
산죽을 헤쳐 나아갔고, 급경사의 쏟아지는 산길을 밟아 내리기도 했다.
미끄러져 엉덩방아를 찌었고, 다리가 후들거리기도 했다.
인생의 성공은 부의 있고 없음이 아니고, 지위의 높고 낮음 유무에 달린 것이 아니라
얼마나 치열하게 살았느냐이다.
이 치열은 몰입이다.
얼마나 그 현실에 몰입하느냐에 달렸다.
일본의 건축가 안도 다다오가 한 말이다.
몰입할 수 밖에 없는 산길을 온 정신과 몸으로 몰입해 내렸다.
그러므로 오늘의 산행은 성공이었다.
하산길만큼은 치열했다.
그 치열함이 끝났을 때 언제 흘러갔는지 각오한 시간은 이미지나 있었다.
사람의 관계란
우연히 만나 관심을 끌게 되면 인연이 되고 공을 들이면 필연이 된다.
3번 만나면 관심이 생기고
6번 만나면 마음의 문이 열리고
9번 만나면 친밀감이 생긴다 했다.
한 달에 한 번, 2년을 넘게 만났으니 중경팀은 이제 이쯤 되면 필연의 인연이고
운명의 인연이라 해도 과언은 아닐 터이다.
내게는 아주 특별하고 사랑하는 중경팀에게 아랫글을 바친다.
우리 이랬으면 좋겠습니다.
참 좋은 만남으로 맺어진 언제까지나 변치 않는
마음으로 살면 좋겠습니다.
가슴을 열어 놓고 언제나 만나고픈
그런 인연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사소한 오해들로 등 돌리지 않고
오랜 시간 동안 함께 할 수 있는
그런 인연이었으면 좋겠습니다.
같은 눈으로 같은 마음으로 같이 볼 수 있는
그런 인연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서로 작은 비밀이 되어 가슴에 묻은 채로
좋은 나날이 계속되면 좋겠습니다.
무언가 기대하기보다는 주어도 아깝지 않을
그런 인연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서로를 소중하게 여기며 서로의 영혼을
감싸 안을 줄 아는 그런 인연이었으면 좋겠습니다.
가끔은 그대와 마주하는 듯한 마음으로
편안한 인연이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먼 훗날 그것이 희망이고
생명이었고 좋은 인연으로 끝까지
함께하면 좋겠습니다. (퍼온글)
안녕(安寧)은 편안'안' 자에 편안할'녕' 자를 쓴다.
국어사전에는 "아무
만날 때도 헤어질 때도 우리는 안녕이라는 말을 쓴다.
안녕하셨습니까, 안녕히 가십시오.
그동안 아무 탈이나 걱정 없었는지, 아무 탈이나 걱정 없이 잘 가시라는 뜻이다.
나를 싫어하는 이도, 나를 멀리하는 이도, 좋아하는 이도 그리고
이 글을 읽는 모든 인연들에 전한다.
모든날, 모든 순간
'지리산 산행'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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