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산행

2017.06.04 대판골

지리99 수야 2017. 6. 6. 19:19

대판골-긴장등

 

일시:2017년 6월 4일

산행자:다우님, 엉겅퀴님, 에스테야님, 귀소본능님, 수야 (5명)

걸어간 길:심원-대판골-큰대판골-주능선 (1,411봉)-긴장등능선-한숨약수-심원

산행시간:07시 52분~16시 24분 (휴식,점심포함 8시간 30분)

독오당 84차 정기산행

 

2017-06-04 지리산 큰대판골.gpx

2017-06-04 지리산 큰대판골.gtm

 

 

나를 업고 가겠다는 독오당을

내가 업고 내려올 뻔한 이야기

 

할 것인가, 말 것인가? 시도해야 하는가, 포기해야 하는가?

용감하든 그렇지 않든 우리는 대부분 하지 않는 쪽을 선택한다.

고민하는 내내 '불확실하다'와 '실패할 것이다'라는 문장이

머릿속에서 무서운 경고처럼 떠다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불행'을 선택한다

실패가 두려워 '하지 않는 것'을 택하면

아무것도 아닌 인생을 살아가게 된다.

"행동이 항상 행복을 가져다주지는 않는다.

하지만 행동 없는 행복은 결코 존재할 수 없다"

 

"걱정하지 마라

우리가 누고! 독오당 아이가! 안되면 돌아가면서 너 하나는 업고 내려온다"

사람은 거짓말을 한 번 들으면 부정하고

두 번 들으면 의심하고

세 번 들으면 믿게 된다.

물론 업고내려 온다는 말을 다 믿지는 않았지만

뭉그망설이는 마음이 싹 사라진다.

나를 위해 코스도 일부러 이곳으로 잡았다는데 가야지.

그래, 가야지 가보자 까짓거.

그러나

아, 그러나

그런데

아, 그런 데에~

업혀 내려오는 호사는커녕 까딱 잘못 했으면 내가 오히려 업고 내려올 뻔했다.

결국은 큰대판골에서 대판 나자빠 지지 않았다.

긴장등에서 초긴장만 한 것은 아니다.

한숨약수에서 안도의 한숨을 돌렸으니,

독오당 복귀 신고는 그런대로 제대로 한 셈이다.

 

2017년 6월 18일을 기해 심원마을은 영원히 사라진다.

이 사진은 아마도 심원마을에서 찍는 마지막 사진일 것이다.

대판골로 출발 전 자연스레 웃는 두 영감탱이와 웃지 않는 부자연스런 쪼매 영감탱이와

아주 부자연스러운 한 놈을 귀소본능이 찍다.

(누가 그러지 않던가 '영감탱이'는 경상도에서 친근감의 표현이라고.)

 

심원마을을 출발하자마자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 폐가가 나온다.

이 빈집 문짝 없는 화장실로 급히 엉겅퀴 형님이 방향을 잡는다.

저쪽에 자세를 잡은 다우 형님과 이쪽에 자리 잡은 에스테야 형님이

바지 지퍼를 내리는 순간이었을 것이다.

"어이쿠" 하는 소리와 함께 진도 2.0의 큰 울림이 들린다.

스마트폰의 긴급재난 문자가 오지 않는 것으로 보아 지진은 아니다.

으아~ 소리가 나는 쪽으로 일제히 시선이 쏠린다.

엉겅퀴 형님이 머리를 움켜잡고 떼꾼한 모습이다.

낮은 화장실 입구의 천장을 사정없이 부숴버릴 기세로 받은 것이 분명했다.

그리하지 않아도 철거는 잘할 것인데,

독오당 아니랄까 봐 독하게, 아주 심하게, 많이 심하게 머리를 부딪쳐 신음했다.

잠시 후 살펴본 머리에는 일자 모양의 깊고 긴 스크레치가 선명했다.

보는 것만으로도 머리가 띵 했다.

다행히 빠르게 회복되어 농담도 주고받았지만 데미지는 상당했을 것이다.

산행을 시작하자마자 업고 내려갈 뻔한 첫 번째 상황이다.

에스테야 형님의 한마디에 다소 진정이 된 엉겅퀴 형님은 그 특유의 씩 웃는 미소를 지었다.

"자주 그래사서 행님 머리카락이 없는 거 아입니꺼"

사진은 문제의 그 빈집이다.

 

한바탕 요란한 오줌을 단체로 시원하게 갈기고 산길로 든다.

앞장을 선 엉겅퀴 형님과 다우 형님 두 영감탱이가 뒷모습도 보이지 않게 내뺀다.

복귀 산행이라고 천천히 살살 가자는 말은 순 거짓말이었다.

'수야 니 함 죽어봐라' 하는 것 같다.

사정없이 날아간다.

거기다 맨 뒤에 서겠다는 나를 대열 중간에다 굳이 끼워 넣는 에스테야 형님의

심보로 보아 자기들끼리 작당 모의가 있었던 게 아닐까

슬슬 의심되기 시작한다.

몸도 안 풀린 상태에서 대열을 따라잡기에 땀이난다.

 

방아골 합수부를 지나고 계곡을 넘는다.

기다려 준 형님들과 만나고 다시 진행한다.

길은 그런대로 선명하지만 우거진 나뭇가지가 시야를 많이 가린다.

좌측의 계곡 방향은 제법 높이가 있으니 몸에는 힘이 들어가게 되어있다.

맨 앞의 엉겅퀴 형님은 또다시 내뺀다.

아래 사진은 대장님이 산신령님께 기도하는 모습이 아니다.

아까 엉겅퀴 형님과 비슷한 지진인듯한 소리에

휘둥그레 앞을 살핀다.

내 앞에서 걷던 다우 형님이 지진의 진원지이다.

'어 읔!' 소리와 함께 고개를 푹 숙이고 있다.

부러진 굵은 나뭇가지가 길 중앙에 삐죽 나와 있었다.

숲에 가려 보이지 않은 그것을 전혀 의심 없이,마음놓고 인정사정없이

아주 용감무쌍하게 몸으로 받은 것이다.

독오당 아니랄까 봐 독하게, 심하게, 많이 심하게 가슴으로 받은 것이다.

그것도 속도를 붙여서 정통으로.

비슷하게라도 받쳐 본 사람은 상상이 되리라.

숨이 꽉 막히는 망치로 가슴을 맞은듯한 충격을.

사진은 그 순간을 찍으려고 의도한 것이 아니다.

앞서가는 모습을 찍으려고 하다가 딱 그 순간에 우연히 얻어걸린 것일 뿐이다.

해서 형수님은 혹시라도 절대로 저의 본심을 의심하지 마시라.

진짜로 거짓 없이, 사심 없이 진실이다.

하산 마지막에 씻을 때 보니 붉은 자국이 아주 선명했다.

혹시, 형수님 보셨으려나?

다우 형님은 "갈비뼈 안 뿔라짓는지 모르것다!" 라고 했다.

의사는 아니지만, 갈비뼈가 부러지지는 않은 것 같았다.

뭐 아직 입원했다는 연락이 없는 걸 보면 확실하지 싶다.

자기가 의사이니 자기가 알아서 하겠지 뭐.

나 하나쯤 못 가면 업고 가겠다고 하던 독오당을

내가 업고 내려갈 뻔한 두 번째 상황이다.

이런 상황이 더는 없을 것 같지만 이 정도로 끝나지 않는다.

 

영감탱이 둘이 초반부터 심하게 데미지를 입더니

홀린 듯 길을 잠시 놓치고 능선 사면을 치고 올라 트랙과 일치를 시킨다.

쉬지 않고 걸어 작은 대판골 합수부에서 쉬어간다.

수량이 부족한 계곡이지만 얼마 만에 안겨보는 지리산인가.

사실 내가 어리광과 엄살을 부리기는 해도 이번 산행지는 대장님의 배려인 걸 다 안다.

잠시 달달하게 쉬고는 다시 출발한다.

이제부터는 지리산길 지도 트랙에는 없는 길이다.

큰대판골을 계곡 치기로 오른다.

간혹 계곡 옆으로 우회의 길을 따라가지만 계곡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갈라서듯 서로 다른 길로 가는 저 두 사람은 분명 사랑하는 사이다.

나무와 나무 사이엔 적당한 거리가 필요하다.

너무 가까이 붙으면 한정된 영양분을 나눠 먹어야 하기에

튼실하게 자랄 수 없다.

고슴도치와 고슴도치 사이엔 적당한 거리가 필요하다.

너무 가까이 붙어 있으면 뾰족한 가시 때문에

서로에게 상처를 줄 수 있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적당한 거리가 필요하다.

서로 그리워할 만큼의 거리 서로 이해할 수 있을 만큼의 거리

서로 소유하지 않고 자유를 줄 수 있는 거리

그 거리를 유지해야만 관계가 더 오래갈 수 있다.

하여,

붙으면 떨어지는 저 둘은 내 감시가 없었던 그동안에

얼레꼴레리가 된 게 아닐까??

 

아 쒸~ 따라 오지마!

사랑하기 싫다니까 왜 자꾸 따라 오는겨 왜.(사진:귀소본능)

 

 

고도 1,000m.

홀랑홀랑 사뿐사뿐 올라간 엉겅퀴 형님은 도사처럼, 신령님처럼 내려보며 웃는다. 

형님은 언제나 그렇듯이 막걸리 한잔을 진설하고 궁시렁궁시렁 산신령님께 빈다.

그 궁시렁을 잘 들어 보면

오늘 이 지리산에 들은 모든 사람이 안전하고 즐겁고 복되게 산행할 수 있게 해 주십사 하는 거다.

얼음이 동동거리는 달디단 막걸리를 한 잔씩 돌려 가며 마신다.

일자로 벌겋게 금이 간 머리로부터 절을 받은 걸리 맛이 기가 막힌다.

 

마가목

 

아직은 그래도 물이 흐르는 계곡을 따라 풍도목을 넘고, 기고, 안고, 사랑뽕 하면서 오른다.

올라타고 빨리 넘어오지 못하는 귀소본능의 짧은 다리를 보면서

요상시런 행동이라고 한마디씩 한다.

"비비지 마라.

1분 이상 그 자세로 있으면 의심해야 된다"는 등.

그 장면 아깝게 사진을 놓쳤다.

풍도목을 정상적으로 넘는 울 대장의 저 우아함을 함 보소. (사진:귀소본능)

 

고도 1,200m를 넘으면서 물길이 끊긴다.

계곡도 형태를 잃어 가면서 저 위 먼당이 주능선임을 안다.

길이 있는 것도 아니요 없는 것도 아닌 고도 150 정도를 오르니 주능선이다.

주능에 나오기 직전 당귀를 아주 열심히 따는 에스테야 형님이

내 배낭 옆구리에 쑤셔 넣어둔다.

 

돼지령과 임걸령 사이 1,411봉 헬기장에 똑 떨어진다.

남쪽 피아골 방향의 서상대로 내는 길이 있는 곳이다.

먼저 도착해 시원한 홍시를 잘라 놓고 기다리는 엉겅퀴 형님을 만난다.

 

이봐라. 이거.

둘은 분명히 얼랭꼴랭한 사이가 맞다.

배낭도 커풀배낭이다.

사진 찍는 폼 좀 보소.

 

확 열린 하늘과 슝 다가온 상봉의 자태를 보면서

다들 각자가 알아서 즐기는 시간이다.

 

나는 이제 정상에 연연하지 않는다.

지리산 주능선의 어떤 봉우리 그 정상을 반드시 오르겠다는 목표를 이제는 정하지 않는다.

오르게 되면 오를 것이요, 오르지 못해도 상관없다는 뜻이다.

정상에 무엇이 있겠는가.

모든 정상은 허공을 이길 수 없다.

사랑하는 그대를 그쯤에 두고 바라보는 것이 얼마나 황홀한지

이제야 나는 안다.

나이가 들면 이해되는 것이 자꾸 생긴다.

확 잡아 땡겨 본 상봉 (사진:귀소본능)

 

반야봉이다.

산행 시작 전 달리는 차에서 산 나그네 당수님, 티나 형수님과 통화를 했다.

오늘 저곳으로 가신다고 했다.

티나 형수님은 3주 연속 반야봉 산행이라 하셨다.

같이 산행하기를 종용하였지만 극구 민폐가 될까 사양하셨다.

환자 상태인 나도 있다 하였지만, 천천히 즐기길 원하시어 오붓하시라 전했다.

아마 모르긴 해도 우리와 같은 마음으로 안전한 산행을 빌어 주실 것이다.

 

반야봉 우측으로 삼도봉을 거치며 가파르지 않은 선을 따라 시선을 주면

유독 봉긋해 보이는 탐스러운 저곳은 불무장등이다.

반야봉을 흔히들 풍만한 여인네 엉덩이에 비유하지만,

저곳은 처녀 젖가슴 같다고 대장님이 말다.

처녀 젖가슴을 본 지가 족히 한 20여 년은 넘어 분명하게 기억이 잘 안 나지만

그런 것 같기는 하다.

어떠한가 비슷하지 않은가.

너무 자세히 들려다 보지 마시라.

그냥 그렇다는 말일 뿐이다.

 

노고단이다. (사진:귀소본능)

 

오른쪽 저넘 짝다리 짚은 거 좀 보소.(사진:귀소본능)

 

주능선에는 사람이 많다.

최근 지리산에서 가장 많은 사람을 만난다는 엉겅퀴 형님은 또 내뺀다.

긴장등능선 초입을 지나쳐 간 엉겅퀴 형님을 잡으러 대장님이 따라갔다.

에스테야 형님은 대장님, 엉겅퀴 형님과 함께 오신다며 긴장등 들머리에 기다리고

본능과 나 젊은것들 둘은 긴장등으로 긴장하지 않고 진입한다.

이제 한동안 내 몸은 산행시 경로우대 급이다.

내려가는 중 대장님으로부터 전화가 온다.

헬기장에서 만나자고 한다.

이리되면 길치인 에스테야 형님은 큰일 난다.

차라리 업고 가는 게 낫다

지 맘대로 아무데나 가버리면 찾지도 못한다.

전화를 걸어 들어오라고 한다.

우리 뒤 몇 사람이 따라갔다는 말에 긴장등에서 바짝 긴장한다.

엉겅퀴 형님을 만나 긴장을 하며 다가오는 사람들을 바라보니 박짐이다.

그 사람들과 무작정 따라 내려가는 에스테야 형을 불러세운다.

박을 하고 오는 사람들과 인사를 어색하게 나눈다.

우리는 동시에 머리를 굴린다.

저 사람들의 목표도 한숨약수다.

빨리 가자.

자리를 빼앗길 수 있겠다.

쓰러진 풍도목을 우회하며 희미하지만, 그런대로 걸을만한 길이다.

속도를 붙인다.

에스테야 형이 물었다.

발목은 괜찮나?

패전을 실감하면서도

퇴로가 없어 앞으로 나갈 수밖에 없는 전사처럼

앞으로 나아가야 할 도리뿐이니 어쩌겠는가.

엄살을 피울 때가 아니다.

분명 업고 가지도 않을 것이고...

 

한숨약수에 도착하자 주변 청소를 한다.

쓰러진 나무를 치울 방법이 없다.

다음에 올 때는 톱을 가지고 오겠다고 대장님이 말했다.

나는 그때는 안 올 것이다. 속으로 생각했다.

나도 안 올 것이라고 하는 에스테야 형님의 마음속이 보였다.

답이 딱 나오는 본능은 말없이 눈만 껌벅껌벅한다.

 

자리를 잡고 판을 펼친다.

내 배낭에 찔러 준 당귀를 씻어오고 술부터 한 잔씩 돌린다.

아직 고기가 익지 않아

제일 먼저 본능이 당귀를 입에 문다.

그 순간 누군가 이거 당귀가 아닌 것 같다 한다.

본능을 보니 이 성질 급한 넘이 벌써 삼켜버렸다.

아, 이거 오늘 진짜 업고 가야 하는 거 아닌가 싶다.

아니나 다를까 목구멍이 쎄하고 톡톡 쏜단다.

저 넘은 업고 갈려면 낭패다.

얼른 술을 디립다 맥인다.

다행히 별 이상은 없었다.

업고 내려갈 뻔한 세 번째 사연이다.

한의사인 에스테야 형님이 본능을 완전히 보낼려고 머리를 쓴 것은 아닐까.

하긴, 꽃 이름, 나무 이름, 나물 이름, 약초 이름 제대로 아는 게 없으니

그럴 리는 없을 것이다.

 

일본도로 머리를 맞은 것 같은 형도

망치로 가슴을 맞은 것 같은 형도

또렷한 길 놔두고 사방천지 왔다 갔다 하는 분간 없는 형도

뭔지도 모르고 급하게 목구멍으로 넘기고 보는 본능도

안 아픔 시로 아픈 거처럼 얍삽한 수를 부리는 놈도

이제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한숨약수에서 밥을 먹는다.

인간의 삶은 언제나 밥과 사랑이

원한과 치욕과 고통보다 먼저다.

그래서

밥을 먹는다.

술을 마신다.(사진:귀소본능)

 

세상 이야기가 깔리고 정치, 사회, 문화의 주제가 넘실난다.

갈비를 뜯고, 삼겹살을 쌈 싼다.

중국 술, 한국 술, 주종이 이야기처럼 막 섞인다.

산행기를 쓰겠다는 에스테야 형님의 확답을 받을 때까지

나는 집요하게 물고 늘어진다.

다음은 본능이 차례다.

곧 귀소본능의 그 찬란하고 수련한 산행기를 다시 볼 수 있으리라.

뇌섹남, 요섹남이라고 하는 말이 유행이다.

산섹남! 산에 가는 섹쉬이한 남자, 산행기 쓰는 섹시한 남자.

얼마나 좋은가 에스테야 형님과 귀소본능을 이제 산섹남의 대표로 만들어 보자.

 

약수를 청소한다.

아주 깨끗이 깨반하게 물론 경로 급인 나는 안 했다.

 

(사진:귀소본능)

 

청소했다고,욕 봤다고, 찍었다.

좀 섹시하네.

 

표시 난다.

연출한 거,억지로 웃는 거 다 표시 난다.(사진:귀소본능)

 

한숨약수에서 내려오며 다우 형님 표지기가 없는 곳에

촘촘히 독오당 표지기를 매단다.

독초인지 약초인지 먹고도 살아있는 귀소본능이 바람직하게

잘 매달아 둔다.

기특하기 짝이 없다.

내 생각에는 아까 그게 독초라 할지라도

저넘은 약초로 몸속에서 변화시킬 넘이다.

 

수야:아이고 발목이야 나는 더 못 가것소 업고 간다 안 했나 내 좀 업고 갑시다.

에스테야: 나는 못 들었다. 절대로 안 들린다....

다우:여기서 거리가 얼마나 될까 한 사람씩 돌려 업고 가면....

엉겅퀴:허 참 그 고민되네. 내삐릴 수도 엄꼬 우짜지.... (사진:귀소본능)

 

가지 않을 수 없던 길

 

                                 도종환

가지 않을 수 있는 고난의 길은 없었다.
몇몇 길은 거쳐오지 않았어야 했고
또 어떤 길은 정말 발 디디고 싶지 않았지만
돌이켜보면 그 모든 길을 지나 지금
여기까지 온 것이다.
한번쯤은 꼭 다시 걸어보고픈 길도 있고
아직도 해거름마다 따라와
나를 붙잡고 놓아주지 않는 길도 있다.
그 길 때문에 눈시울 젖을 때 많으면서도
내가 걷는 이 길 나서는 새벽이면 남모르게 외롭고
돌아오는 길마다 말하지 않은 쓸쓸한 그늘 짙에 있지만
내가 가지 않을 수 있는 길은 없었다.
그 어떤 쓰라린 길도
내게 물어오지 않고 같이 온 길은 없었다.
그 길이 내 앞에 운명처럼 파여 있는 길이라면
더욱 가슴 아리고 그것이 내 발길이 데려온 것이라면
발등을 찍고 싶을 때 있지만
내 앞에 있던 모든 길들이 나를 지나
지금 내 속에서 나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오늘 아침엔 안개 무더기로 내려 길을 뭉텅 자르더니
저녁엔 헤쳐온 길 가득 나를 혼자 버려둔다.
오늘 또 가지 않을 수 없던 길
오늘 또 가지 않을 수 없던 길 

 

 

(사진:귀소본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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