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은산막
독오당 85차 정기산행
일시:2017년 7월 2일 (비 내리는 일요일)
산행자:다우님, 엉겅퀴님, 에스테야님, 귀소본능님, 수야 ,산유화님, 규다님, 들풀님 (8명)
걸어간 길:쌍계사 주차장-소은산막 왕복
대장님은 이번 산행에서 지리산길6.0에 단천골 왼골과 큰골이 바뀌어 표기된 부분을
산행을 통해 자연스럽게 바로잡고 싶어 했다.
그러나 비는 분명히, 확실히, 올 것이기 때문에 단천골 산행은 변경되어야 마땅하다.
대장님은 침묵하였으나 그 침묵은 동의에 준하는 대답으로 우리는 인지하였다.
사실, 조금은 대장님의 하명에 불복하는 만행이 있었음은 인정한다.
가지 않은 길
- 로버트 프로스트 -
노란 숲 속에 길이 두 갈래로 났었습니다.
나는 두 길을 다 가지 못하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하면서,
오랫동안 서서 한 길이 굽어 꺾여 내려간 데까지,
바라다볼 수 있는 데까지 멀리 바라다보았습니다.
그리고, 똑같이 아름다운 다른 길을 택했습니다.
그 길에는 풀이 더 있고 사람이 걸은 자취가 적어,
아마 더 걸어야 될 길이라고 나는 생각했었던 게지요.①
그 길을 걸으므로, 그 길도 거의 같아질 것이지만.
그 날 아침 두 길에는
낙엽을 밟은 자취는 없었습니다.
아, 나는 다음 날을 위하여 한 길은 남겨 두었습니다.②
길은 길에 연하여 끝없으므로
내가 다시 돌아올 것을 의심하면서…….
훗날에 훗날에 나는 어디선가
한숨을 쉬며 이야기할 것입니다.
숲 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다고,
나는 사람이 적게 간 길을 택하였다고,
그리고 그것 때문에 모든 것이 달라졌다고.
이 시는 ‘길’을 소재로 하여 인생에 대한 성찰을 담은 시이다.
인생의 두 갈래 길 중 어느 하나만 선택해야 하는 상황에서
사람이 덜 다닌 길을 선택하며 미지의 세계에 대한 호기심을
추구하는 주체적인 모습을 보여 준다.
이후 자신이 가지 않은 길에 대한 아쉬움과 미련을 드러내지만
자신의 선택이 만들어 낸 인생의 모습을 그대로
수용하는 자세를 보여 줌으로써 선택에 책임지는
삶의 자세가 중요함을 암시하고 있다.
또한, 아래의 경우와 같이 산행지를 선택하거나 변경해야 하는
상황과도 매우 흡사하고 유사하다.
따라서 이 시를 인용해 독오당의 차원높고 수준있는 지성인으로서의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글의 앞머리에 올렸다.
시(詩)에 밑줄 친부분 ①은 아마도 지리산꾼으로서 갖추어야 할
기본적 소양이며, 마음 자세 일 것이다.
다우 대장님과 산유화 누나가 추구하는 이상과 일치하는 부분이다.
하지만 우리는 ②와 같이 미래 지향적인 희망을 품음으로
다음 산행지 선택의 폭을 넓히려는 굳건한 의지를 가졌다.
그것을 불순한 일기와 접목하는 예술적인 기교를 가미함으로
산행지 변경에 대한 성숙한 산꾼의 모습을 잘 보여 주었다고 생각한다.
"다음날을 위하여 한 길을 남겨"두는
이 아름다운 마음을 가슴 깊이 새겨 볼 일이다.
소은산막 가는 길
쌍계사 주차장에서 산행을 준비하는 동안 빗방울이 떨어진다.
요즘 독오당은 산행 출발 전 비가 오면 놀고,
산행 출발 후 비가 오면 어쩔 수 없이 간다.
차 한 대를 사이에 두고 황장산과 소은산막이 나뉜다.
울 대장님 은근히 황장산이 땡겨서 산유화 누님과 작당을 한다.
아무것도 모르는 에스테야 형님도 실실 그쪽으로 간다.
규다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말없이 등산화만 신고 있다.
이런 경우를 우리는 전문용어로 전략적 모호성이라 한다.
1차 협상: 엉겅퀴,수야,귀소본능은 소은산막에 가서 먼저 밥해놓고 기다린다.
나머지는 황장산을 갔다가 소은산막으로 온다.
황장산으로 가기 위해 차에 시동을 걸고 규다가 운전석에 앉았다.
끌려가는 안타까운 표정이 역력하다.
마지막으로 대장님이 본능을 설득하기 위해 온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대장님이 오히려 본능에게 설득을 당해
몇 사람 되지도 않는데 갈라지지 말고 다 함께 가자고 한다.
아주 바람직하다.
합의:소은산막에 가서 술 한잔하고 낮잠도 자고 놀고 온다.
서울사람들은 비옷도 입지 않았다.
50 넘어 비 맞으면 뼈 삭는다는 내 공갈도 안 통한다.
마을을 지나 산길로 접어들자
땀이 줄줄 흐른다.
비보다 땀으로 더 많이 젖는다.
도저히 못 견디고 우의를 벗는다.
뼈 삭기 전에 삶겨서 익어 죽을 지경이다.
산행이 고팠는지 이 사람들 뒤는 신경도 안 쓰고
앞 만 보고 잘 걷는다.
이렇게 빨리 가봐야 할 일도 없는데 말이다.
빗방울이 멈추었다가 떨어지기를 반복한다.
건너편 황장산이 구름에 가렸다 다시 나온다.
쌍계사 건물 뒤쪽 배수로 길을 따라간다.
맨 뒤에 걷는 나는 아무도 모르게 한 번 미끄러졌다.
쪽팔려서 얼른 일어났다.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다.
에스테야 형님이 알았으면 신이 나서 좋아했을 것인데
보지 못했어 다행이다.
비가 올 것 같아 집에서부터 카메라를 두고 왔다.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기가 영 불편하다.
빗방울이 화면에 묻으니 작동도 잘 안 된다.
나 못지않은 얍삽함을 기본으로 갖춘 에스테야 형님 역시
산행 출발 때 카메라를 차에 두고 오는 치밀한 잔머리를 반듯하게 실행했다.
산행기의 사진은 귀소본능이 무거운 배낭을 메고 땀을 뻘뻘 쏟으며 찍은 것이다.
성실한 놈은 어디를 가도 표가 난다.
복 받을겨.
계곡을 건너간다.
앞에 걷는 규다는 내가 신경이 쓰이는지 '여기 미끄럽다 조심하라'는 말을 수십 번도 더 한다.
며칠 전 내 걸음에 맞춰서 천천히 산행을 같이하자는 친구의 연락을 받았다.
독오당 정기 산행이라 친구가 합류하기로 한 것이다.
언제 봐도 참 멋진 친구다.
이건 스마트 폰으로 내가 찍은 사진이다.
이 사진을 찍을 때 저 삐딱한 배낭 커버를 산행기에 써야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사람이 반듯하지 못하니 매달린 배낭이 고생이다.
저 삐딱함의 극치를 좀 보소.
묵자 바위에 먼저 도착한 엉겅퀴 형님이 앉아서 기다리고 있다.
영감탱이 걸음은 겁나 빠르다.
이 글씨는 암호라 했다.
이 글을 풀면 청학동으로 가는 비밀이 풀린다고 엉겅퀴 형님이 말했다.
또 한 번 계곡을 건넌다.
맨 뒤에서 따라가는 나는 뒷모습만 찍는다.
산유화 누님이 복숭아를 깎아 준다.
나는 복숭아를 먹지 못한다.
행동팀에서는 이럴 때 '성질이 더러워서' 그렇다고들 말하는데
누님은 복숭아 대신 참외를 깎아주신다.
이런 걸 보고 '심성이 참 곱다'라고 일반적으로 표현하지 아마.
사람들아 좀 배워라.
사랑 한 방 날리라는 본능의 주문에 이런다.
손가락으로 할 수 있는 표현이 참 많다.
독오당 우리만 있었다면 다른 것을 했을 것이다.
개망초도 꽃인데 이건 좀 아니지 말입니다.
들풀님이 딱인데 걸음이 얼마나 빠른지.
소은산막이다.
도착하자 빗방울이 굵어진다.
엉겅퀴 형님이 중간에 그렇게 예언했다.
도착하면 한바탕 본격적으로 비가 내릴 것이라고.
영감탱이 점점 도사가 되어 간다.
비 오는 광경을 바라보며 잠시 앉았다.
마루에 누가 놓고 간 쌀과 얼마 전 도솔산인님이 두고 간 쌀도 그대로다.
내외명철(內外明徹)
안과 밖이 사무쳐 밝음
안이 밝으면 밖도 밝다
안과 밖을 가로막는 벽이 사라지고 안과 밖이 통한다는 의미.
에스테야 형님이 장장 10분 가까이 내게 설명한 글이다
이렇게 간단하게 해도 내 다 알아듣는다.
요즘 둘이 뭔가 있기는 있는데...
뼈다구 그림 있는 옷도 같이 입고...
둘이서 소곤소곤 대기도 하고....
11시도 안 되었다.
이제 뭐 하지 라는 말에 엉겅퀴 형님은
슬슬 시작하자고 한다.
타프를 차에 두고 온 탓에
규다의 비옷으로 타프를 대신한다.
규다는 끓이고 나는 굽는다.
산유화 누나와 들풀님이 쌈을 씻어 온다.
인자 시작하자.
자, 한 잔 부어 봐라.
어이, 한 잔 받아라.
자, 자, 함 대봐라.
산유화 누님이 규다가 술을 먹는 것은 처음 본단다.
친구 좋다고 본전도 나오지 않는 산행을 따라서 온 규다는 그런 친구다.
친구가 좋아 못 먹는 술이지만 함께 마셔주는...
뒤에 들었지만 뻗어서 자는 내 옆에서 부채로 모기도 쫓았단다.
수야라는 사람이 평소에 얼마나 건실하고 옹골차게 바른 사람이기에
친구가 그렇게 대할까.
에스테야 형님은 수야를 그렇게 생각해 볼 일이다.
그런 말이 있지 않던가
그 사람을 알려면 그 친구를 보라.
비가 좀 더 강해진다.
비가 강해질수록 술맛도 더 좋다.
굽는 안주가 끝나고 끓이는 안주가 시작된다.
여행에서 가져온 대장님의 호루찹찹한 맛있는 술이 나온다.
샴페인 비슷하지만 제법 알콜이 섞인 것이 맛있다.
규다가 자리를 넓히는 공사를 하고 따닥따닥 붙어 앉는다.
처마 밑으로 앉은 우리는 괜찮은데
비를 모아서 맞은 산유화 누나는 급기야 우의를 입어야 했다.
그래도 꿋꿋하게 술잔은 돌아간다.
개가 짖어도 기차는 간다.
공룡 뼈다구 그려진 비싼 옷을 입고 온 에스테야 형님의 바지는
역시 물방울이 스미지 않고 동글동글 굴러간다.
산유화 누님 위로 한 바가지 고인 물이 쏟아지며 물벼락을 맞는다.
옆에 앉은 에스테야 형님은 공룡 뼈다구 윗도리가 다 젖어서 몸에 착 달라붙은 것이
표시가 나는데도 "물이 스며들지를 않네, 뽀송뽀송 젖지를 않네!!"
즐겁기 그지없다.
황장산 안 간 것이 얼마나 다행이고 대장님아.
긴 여행 여독이 풀리지 않은 대장님은 마루에 먼저 누웠다.
그렇든지 말든지 우리는 계속 마시고 먹고 또 마신다.
엉겅퀴 형님이 그랬었다.
비 오는 날 소은암에서 한 잔 묵고, 운무 뭉실뭉실 피어오르는 기막힌 풍경이나 보러 가자고.
정말이지 좋다.
영감탱이 좋은 거 너무 많이 알고 있다.
부지런히 따라 다니면서 전수 받아야 되는데...
배불리 먹고 슬쩍 자리를 잡고 한잠을 잤다.
집에 가자는 말에 잠이 깨고 정신을 차린다.
어찌하다 보니 얌체같이 나 혼자 자리를 다 차지하고 누웠는가 보다.
잠깐만 눕는다는 것이, 미안하게시리...
역시 술 먹었을 때 머릿속에 잠시만 눕자는 유혹이 오면 조심해야 한다.
오늘 아침 독오당 집합장소에서
이 세상의 번뇌와 고통을 밤새 술로 승화 시킨 후
길바닥에 누워 자는 어떤 놈을 보면서 그런 이야기를 했었다.
많이 마신 날 걸어가다가 잠시만 앉았다 가야겠다 싶고
앉으면 잠시만 졸다 가자는 생각이 든다.
그때가 가장 위험한 순간이다.
그때 잠시라도 누워버리면 감당하기 어려운 쪽팔림이 오래오래 간다.
차라리 전봇대와 심오하고 의미 있는 깊은 대화를 시도하는 것이 천만번 났다.
깨끗하게 정리를 하고
출발을 하려고 할 때 화장실을 다녀온다며 잠시만 기다리라는 에스테야 형님의 스마트폰을
발견하고 모두가 한마음으로 숨기기로 공모를 한다.
한참 가다가 스마트폰 찾으러 가는 에스테야 형님을 상상하며 이 즐거운 작전에
하나같이 순식간에 모두가 아주 적극적으로 동참한다.
접시꽃이 화사한 소은산막을 이제 내려간다.
활인령에서 스마트 폰을 찾으러 가야 하는데
이 형이 그 뭐 누군가 가지고 있을 거라며 반응이 별로다. 재미없게시리
화장실에서 다 들었던 것 같다.
오히려 우리 모두를 속인 것은 자기라고 뿌듯해 하는 것 같다.
재미도 없이 작전은 끝나고
산유화 누님과 들풀님은 불일폭포 쪽으로 가고 우리는 벗으러 간다.
별로 차갑지 않은 계곡에서 옴팍지게 벗고 논다.
어지간해서는 물에 잘 안 들어오는 대장님도 퐁당 한다.
벌거벗고 단체 사진도 찍으며 좀 오래 놀았다.
나가는 길은 쌍계사로 당당히 걸어나간다.
작은 글씨로 빽빽한 진감선사 탑비를 보았다.
산유화 누님과 들풀님이 도착하고 근처 식당에 들어가 시원한 맥주를 한 잔씩 한다.
헤어지는 아쉬움을 이렇게라도 달래야 한다.
잘 생기고 멋있는 예의 바른 내 친구 규다가 재빨리 계산 했단다.
이 친구 참.
거기다 차에 또 한 보따리를 실어 놓았다.
그런 규다는 내 친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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