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산행

2016.06.05 칠선계곡

지리99 수야 2016. 6. 5. 21:01

칠선계곡

 

독오당 77차 정기산행

날짜: 2016년 6월 5일 (일요일)

산행자: 다우,에스테야,귀소본능,수야 (4명)

걸어간 길: 백무동-하동바위-제석봉-주능선-천왕봉-칠선계곡-창암사거리-백무동

산행시간: 06시 36분~18시 51분 (12시간 15분), 거리: 16km

 

2016-06-05 칠선계곡.gpx

 

2016-06-05 칠선계곡.gtm

 

 

백무동(白武洞).

천왕봉의 북쪽 관문인 백무동은 원래 천왕봉을 섬기기 위한 무당 촌으로 이루어졌다는 설이 있다.

전국 무당들의 우두머리가 천왕봉 성모사(聖母祠)를 받들고 있었기 때문에

이곳에는 언제나 100명의 무당진을 치고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100명의 무당이란 뜻으로 백무동(百巫洞)이라 불렀다.

백무동과 무당 관련설로 "무당 출구설"도 있다.

지리산의 산신 성모(聖母)가 천왕봉에 살고 있었다 한다.

그 성모가 100명의 딸(일설에는 8명)을 낳아 세상에 내려보냈는데

100명의 무당이 8도로 퍼져나간 출구가 백무동이라는 것이다.

또, 이 골짜기는 언제나 안개가 자욱하게 끼어 신기가 어려 있어 흰 안개라는 뜻의

백무동(白霧洞)으로 일컬어지기도 했다.

그러나 현재는 이도 저도 아닌 백무동(白武洞)으로 쓰고 있다. -최하수 저서 에서-

 

에스테야 형님이 산행기를 쓰기로 했다.

부상자 둘과 트레킹 후유증 미회복 상태의 대장님.

매우 불량한 상태의 우리가 체력적, 육체적 악조건을 모두

감수하고 칠선으로 가는 까닭은 오로지 에스테야 형님 때문이다. 

음산하기는커녕 활기에 찬 백무동은 사람들로 북적인다.

다른 때 보다는 이른 시간 출발을 한다.

 

백무동 정규등로의 돌길은 팍팍한 긴 지루함이 머릿속에 각인 되어 있다.

하물며 하산 시 소진된 체력으로 이 길을 내려오기란 참으로 부담스럽다.

오래전 본능과 함께 오밤중에 내려왔던 기억이 오르는 길에서 자꾸 생각났다.

그나마 오름길이고 산행 초반이라 마음이 조금 여유롭다.

칠선으로 올라 백무동으로 내려오기는 하였으나

백무동에서 올라가는 것도, 칠선계곡을 내려오는 것도 나는 처음이다.

에스테야 형님은 칠선계곡에 대한 기대와 의지가 넘쳐났다. 

하여 언제 변심해 버릴지도 모를 우리의 공모가 두려운 나머지

형님은 참샘까지 먼저 올라왔다.

참샘에서 쉬어간다.

반달곰과 마주쳤을 때 먹을 것을 주지 말란다.

그것도 절대로.

곰과 마주친다면 먹을 것을 주어야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침착한 사람이 몇이나 될는지?

설혹 그렇게 침착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고 하더라도, 

먹을 것이라도 주고 그 자리를 벗어나야 하는 것은 아닐까?

언제 어디서 누구에게나 친절한 에스테야 형님은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좋은 하루가 되시라 인사를 건넨다.

그리고 올라가는 산길 내내 쓰레기를 보이는 대로 주워 담는다.

그 봉투에 간식으로 먹은 껍데기를 담아 주며 우리는 말 한다

"아이고 훌륭하여라. 청소산행 때는 쓰레기 줍지 말고 그냥 올라가이소"

 

겁대가리 없는 새 한 마리가 바짝 사람 곁으로 다가온다.

본능의 말대로 사진을 찍으라고 포즈까지 취해준다.

 

요즘 자꾸, 새대가리가 되어가는 것 같아서...

<새대가리.>

처음엔 닭대가리였다고 한다.

그러던 것이 나중에는 일반적으로 새대가리로 통칭되었다.

닭의 특성 중 하나가 마당에서 모이를 쪼아먹고 있다가 매 등 맹금류가 하늘에 떴다 하면

혼비백산 줄행랑을 쳐 구멍이라면 작든 말든 무조건 머리를 들이미는데,

숨느라고 숨은 것이 몸통은 그대로이고 그야말로 대가리만 감추곤 한다.

그것을 보고 미련하고 쓸데없는 짓을 하는 사람을 놀리는 말로

"닭대가리"라고 하기도 했던 것이 나중에 "새대가리"가 된 것이다.
또 다른 설로는 닭, 새, 붕어 등의 기억이 매우 짧아

금방 듣고도 잊어버리는 사람을 빗대어 그랬다는 이야기도 있다.


하지만 영리한 새들도 있다.
-누벨칼레도니 까마귀는 도구를 만들어 사용할 정도로 영리하며,

일부 대영장류를 능가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앵무새는 과학적 연구에서 언어능력과 인지능력을 갖추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3~6세 정도 어린아이의 지능과 비슷한 것이라고 한다.

-까치류의 지능도 높다는 것에 재미있는 설이 있는데, 옛말에 까치가 울면 손님이 온다는 말이 있다.

이는 옛날 사람이 적었던 마을에 모든 사람의 얼굴을 까치가 기억하고선

낯선 사람이 마을에 오면 울곤 했기 때문이라나.

-비둘기는 최근의 연구에서 숫자 지능이 영장류인 원숭이와 비슷한 수준이라는 것이 밝혀졌다.

 

참샘에서 휴식을 하고 조금씩 몸이 풀리며 땀이 쏟아진다.

여유만만하게 앞서서 걷는 에스테야 형님은 이 길만은 잘 안다는 당당함이 가득하다.

숲을 뚫고 들어오는 햇살이 환상적인 장면을 연출한다.

걸음을 멈추었다.

이 눈 부신 빛을 감상했다.

남아 있는 내 인생에도 간혹 한 번씩은 이런 빛이 내리비추었으면 좋겠다.

찬란하게.

 

바람이 불었다.

 

눈을 감았다.

 

파릇한 소리가 지나간다.

 

난 지리산의 이런 바람 소리가 참 좋다.

눈을 뜨고 바라본 바람은 흔들림으로 출렁이고 있었다.

흠뻑 땀 흘린 뒤 마시는 시원한 맥주의 첫맛 같다.

지리산 바람 맛은 이래서 좋다.

그야말로 살아있는 맛이다.

살아 있음을 몸으로 확인하는 순간이다.

 

자주솜대(자주 지장보살)

지장보살은 부처 입멸 부터 미륵불 나타날 까지의

부처 없는 세상에서 육도(六) 중생() 교화한다는 대비보살().

천관() 쓰고 가사() 입었으며, 왼손에는 연꽃, 오른손에는 보주() 들고 있는 모습으로

지옥도 단타, 아귀도 보주, 축생도 보인, 수라 도 지지, 인간 도 개장,

천상 도 일광() 통틀어 이르는 이다.

자주솜대에 지장보살이라는 이름이 붙은 이유는  

옛날 기근 시에 절에서 솜대로 죽을 쑤어 아사 직전의 사람을 구했던 구황식물이기에 붙은 이름이라 한다.

 

주등로를 따르던 길에서 제석봉 코끼리 바위 방향으로 잠입을 시도한다.

잠입 직전 오고 가는 사람들 눈치를 보고 있는데 뒤통수에다 대고 사진을 찍으라고 자꾸 말을 하는

에스테야 형님에게 한 방씩을 날리고 들어간다.

"아 좀 됐고,빨리 넘어오기나 하소!."

자연스럽게 하라는 말에 아주 자연스럽지 못하게 자세를 잡아준다.

음. 바지를 새로 샀구만.

 

코끼리 바위에서 바라본 장터목대피소.

등로의 오고 가는 사람들 소리가 작지만 들리는 곳이다.

 

어제 내린 비에 샤워한 깔끔해진 자락이 신록이다.

만지면 아가씨 속살 같이 보드라울 것만 같다.

아가씨 속살이 보드라운지 우짠 지는 나도 모르는 일이다.

그래 본 적이 없으니...ㅠ

그래도 그냥 그럴 것 같다.

 

 

"본능아! 반야가 빤스 벗는다!."

나는 구름이 내려가는 야시꾸리한 반야를 바라보며 황급히 그렇게 말이 튀어나왔다.

씻고 난 뒤 반야는 그만큼 다급히 야했다.

 

코끼리 바위.

어디를 봐서 코끼리 모습인지 모르겠다고들 한다.

나 역시 그렇긴 하다.

이 푸른 지리의 풍광 앞에서 그냥 갈 수는 없는 일이라 맥주를 딴다.

엉겅퀴 형님이 계셨다면 천왕봉을 향해 술잔을 진설하고 엎드려 구시렁거릴 시간이며 위치이다.

갈증이 적당한 목구멍을 타고 흐르는 술맛은 황홀이다. 

삶도 간혹 이래야 한다.

욕심도 벗어 버릴 수 있고, 무겁고 버거운 마음도 잠시 내려놓을 수 있는 달달한 여유 말이다.

지리산을 오르는 이유가 또한 이것이다.

여기가 그 지리산이다.

이곳에서는 살아 있음에 감사 하고 싶어진다.

 

일출봉.

몇 해 전 독오당 산행 때 일출봉에 숨겨둔 술병을 이야기했다.

에스테야 형님은 일출봉에서 아주 먼 거리의 반야 비트와

헛갈려 한참을 또 이야기한다.

다 듣고 난 뒤

'형님! 그거는 저기가 아니고 쩌어기 저다!"

 

흠씬 흘린 땀을 식히는 휴식은 달달하다.

 

 

제석봉을 넘어 주등로로 나아간다.

지천으로 깔린 것 중에 점심에 먹을 몇 장을 본능 배낭 옆구리에 찔러 놓는다.

새대가리 비슷므리해진 내 기억과 마찬가지로 모두 그것을 잊어버리고 말았다.

다 같이 새대가리가 되어 감이 다행이다.

다우 형님이 박새라고 알려 주었다.

이놈의 새는 어디가 대가리지?

 

제석봉 고사목은 이제 허망하다.

 

세월은 허망하다.

추억은 가슴에 묻고, 떠나간 버스는 미련을 버려야 한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은 언젠가는 죽어 소멸하게 되어 있다.

 

하늘이 울어도 울지 않는다는

하늘의 기둥 천주(天柱)

천왕봉이다.

내 마음속으로 들어온 40대 그때부터 1915의 높이 만큼

나는 저 산처럼 당당하게 살고 싶었다.

 

지척으로 다가온 상봉을 향한 길은 정체된다.

앞서서 나간다.

아직은 발목도 별 이상이 없다.

아직 까지는 버티며 살 만하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한가.

나는 아직 괜찮다.

 

함양에서 올라와 산청을 내려본다.

 

약속된 자리에서 다시 확실한 증거를 확보한다.

사전모의가 있었던 줄도 모르고 해맑은 에스테야 형님은 산행기를 쓰겠다는 약속을 뜻밖에 쉽게 한다.

녹취 파일은 이렇게 만들어졌다.

혹시라도 다음 산행기가 올라오지 않을 시는 지상파 공중파 종편의

모든 방송과 함께 지리구구에서 에스테야 형님의 생생한 목소리를 듣게 될 일이다.

 

하늘로 통하는 문으로 들어갔다.

사람이 사람을 막고, 사람이 사람을 비껴간다.

하얀 사람과 검은 사람이 함께 걷고 있었다.

아이와 어른이 함께 걷고, 여자와 남자가 또 함께 걸어 나를 비켜 지나간다.

가장 공평하게 주어지는 길다.

 

잠시 다른 곳에 눈을 돌렸다 돌아오면 조금 전의 모습은 이미 변해 있었다.

이 세상 가장 단호한 진리는 변하지 않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변했다 하여 슬퍼하지 말아야 할 일이다.

독오당에서는 오는 놈 막지 않고 가는 놈 잡지 않는다.

추억은 가슴에 묻고 지나간 버스는 미련을 버려야 한다.

 

천왕봉을 코 닿을 곳에 두고 칠선으로 내려선다.

계단은 선녀가 하늘에서 내려오는 경사만큼 급하게 내렸다.

먼저 내려선 에스테야 형님과 뒤에 넘어오는 범법자들을 기다린다.

산행기를 얼마나 잘 쓸려고 하는지는 몰라도 쉴 새 없이 에스테야 형님은

내 뒤에서 박고, 앞에서 박고, 옆에서도 박아 댄다.

꼼꼼하게 자아알~ 박는다!!.

 

건너 하봉방향에는 모자를 벗었다 썼다를 반복한다.

쭈욱 긋고 내려간 생채기가 여실히 들어나 쓰리다.

술 깬 쓰린 아침과 같이 저 산도 쓰라려한다.

 

주목.

지리산 주목 중에 아마도 가장 오래된 주목이 이 주목 나무를 지나면 또 있다고

대장님이 알려주신다.

붉을 주(朱),주목이란다.

붉게 활활, 붉게 진하게, 붉게 끓어 오르듯, 붉게 살았나 보다.

 

 

너도 옥잠화

 

물소리가 들리기 시작하더니 계곡으로 떨어진다.

급경사를 올랐던 기억을 이야기한다.

대장님도 군대 휴가 중 멋모르고 올랐던 지난 추억을 말한다.

지리산을 다니는 중 가장 살 떨렸던 순간이었다고 회상한다.

 

 

한가하게 점심을 먹었다.

한가하게 천천히 내려갔다.

한가하게 예상한 시간에 도착할 것이고, 집으로 가는 길에

한가하게 금농할배집(강호원님) 근처로 가서 같이 저녁을 먹을 궁리를 했다.

 

이제는 별일 없을 것 같은 긴장이 풀릴 때쯤.

갑자기 우리 등 뒤에서 나타났다.

겁나 빨랐고, 확실한 사냥감을 찾아 달려온 성과에 그들은 만족하는 듯 보였다.

곰보다는 덜 위험 했으나 마주쳤을 때 먹을 것을 주어도 해결될 수 없는 상황이 벌어졌다.

특별보호구역이라 특별하게 대우를 하려 했다.

특별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양은 받아들여졌다.

결국, 신호위반을 안전띠 미착용으로 마무리했다.

77차 정기산행은 7선에서 칠칠하지 못했다.

 

 

사진 때문에 에스테야 형님은 맨 후미로 처진 후

앞사람을 따라만 와도 될 일인데 어디로 내려서야 할지를 몰라 이리저리 왔다 갔다를 한다.

엉거주춤 어찌어찌 내려선다.

조금만 더 멀리 우리가 가버렸더라도 아마 그 애절한 목소리로

"수야~ 본능아~ "를 불렀을 거다.

 

 

칠선폭포에 당도한다.

대장님과 나는 앉아서 쉬었고

본능과 에스테야 형님은 칠선폭포를 갔다 온다.

 

"꿩의 다리가 맞지예 형님!. 맞는 거 같네."

 

샘으로 떨어져야 하는데 니미럴 기도 터다.

귀소본능이 앞서서 대나무밭을 헤쳐 나가 다시 길 위에 선다.

훌륭하고 갸륵한 본능이 내게 묻는다

"햄 발목은 괘않심꺼?"

12시간 가까이 오르고 내리는 산길에 괜찮을 수가 있겠는가.

"뭐, 견딜 만하다. 니는 괘않나?"

"찌릿찌릿 해도 괘않심더."

습하고 음산한 인민군 사령부 터를 지나며

갑자기 이 말이 튀어나올 뻔 했다.

"뭣이 중헌디~!"(영화 곡성)

 

백무동으로 돌아왔다.

길은 멀고, 시간은 오래 걸렸다.

갈아입을 옷을 챙겨 계곡으로 갔다.

멋모르고 들어간 물속에서 하마터면 냉동상태로 집으로 배달될 뻔했다.

대장님은 포기 선언을 하고 후다닥 나갔고

본능은 홀딱 벗고는 셀카를 찍어대고 꼬릿한 눈으로 우릴 몰카 질 했다.

알이 쪼그라든 차가운 물 속 뒤의 짜릿하고, 개운함은 그 이후로도 한참 동안 상쾌했다.

깔끔하기 그지없는 밤이 내렸다.

모히또에 가서 몰디브 한 잔 하고 싶어졌다. (영화 내부자들)

 

한동안 힘겨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리고 또, 한동안 지리산을 가슴으로만 품어야 하는 시간이 올 것 같습니다.

그 시간 동안 지리산과 단절할 수 없기에

그동안 올리지 못한 산행기를 천천히 하나씩 풀어 올릴까 합니다.

지난 산행기가 올라오더라도 양해를 미리 바랍니다.

에스테야 형님은 반칙이라고 강력히 주장 하더이다 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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