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통신골
일시:2016년 5월 22일 (일요일)
산행자:행동팀 4명
걸어간 길:중산리-칼바위 유암폭포-통신골-작은통신골-병기마터골-병기막터교-홈바위-중산리
이른 아침 다람쥐 두 마리가 거리낌 없는 애정행각에 정신이 없다.
"이 사람보다 더 사랑할 사람이 없겠구나"
하고 사랑하면 그게 운명이고
"이 사람밖에 없다." 하고 사랑하면
그게 또 운명이 되는 거란다.
운명이란게 그런 거란다.
칼바위에서 쉬어 가자고 배낭을 내린다.
쉬는 곳이 정해져 있거나, 미리 정하지는 않지만 이쯤에서는
왠지 꼭 한 번 쉬어야 할 것 같다.
2013년 6월 상가 식구들과 지리산 첫 산행으로 통신골을 올랐다.
멋모르고 무작정 따라 오른 상가 식구들은
통신골이라는 전혀 새로운 모습의 지리산에 흥분하고 들뜬 나머지
준비해간 음식들을 그냥 매고 다녔다.
하산하며 로터리 대피소에 들러 소고기도 굽고, 전복도 삶고,
소주도 한잔한다는 계획으로 대피소에 자리를 잡았었다.
배낭을 풀고 불판을 설치하며 각자 자기 일에 열중했다.
이 광경을 위에서 지켜보든 공단원이 급하게 우리 쪽으로 다가왔다.
"어머니!" 하고 집사람에게 다가오더니 배낭에서 끄집어낸 비닐 봉투를 뒤집어 쏟았다.
이런...니미...이거....조오옷 됏따!!!
통신골을 기어 올라오면서 곰 발바닥과 몇 가지를 꺽어 모아 짐이 제일 가벼운 집사람 배낭에다
넣었는데 그걸 거기서 무심결에 꺼내놓았던 것이었다. 아무생각없이.
공단원은 카메라부터 들이대더니 사진을 찍었다.
지금부터 "국립공원 관리공단법에 의해..." 로 시작되는 말에 집사람은 사색이 되었다.
임산물 체취는 검찰청으로 이관되어 벌금이 엄청나다는 둥, 하여튼 발발 떨고 있는
동네 아줌마들을 고양이 쥐잡듯이 몰아붙였다.
어느 사이 동네 아줌마들은 모두 울며불며 한 번만 봐 달라며 통사정으로 매달리고 있었다.
성질 같아서는 확 성깔 한 번 보여 주고 까짓것 벌금 내버릴까도 했지만, 꾹 참고 아줌마들의 애끓는
호소에 기대를 걸고 있었다.
울며불며 빌고 빌어, 사정하고, 매달려서인지
그날 집사람 혼자 계도장 하나를 받고 일은 마무리가 되었다.
그날 이후 바싹 쫄아서 산행 때마다 집사람은 절대 아무것도 체취 하지 않는다.
사실 그 날도 집사람이 채취를 한 것은 아니었다.
가지고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주범이 되었던 것이었다.
아무리 그래도 공단직원들 앞에서 그걸 꺼내놓는 경우가 있을 수 있는냐며
경찰서에 들어가 장물을 펼쳐 놓는 거랑 뭐가 다를 수 있냐는 핀잔을 받곤했다.
통신골 하면 행동팀의 지리산 첫 산행지이며,
그날 그 일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잊지 못할 장소이다.
이제는 웃으며 이야기하는 추억이 된 그 통신골을 다시 간다.
잘하면 통신골 앵초도 볼 수 있고, 제대로 수확도 좀 해보자는 나의
꾐에 빠져...
계곡의 물소리는 지리산의 맥박인냥
힘차게 흐른다.
시원한 흐름이다.
법천폭포를 보여 주려는 내 욕심과는 달리
일행은 그냥 올라가기를 바란다.
다음으로 미루고 법천폭포는 다음을 기약한다.
홈바위는 깊고 길게 그 이름을 확인시키는 바위홈이 선명하다.
배낭을 또 벗는다.
우러러본다.
주능선은 하늘과 가깝고 천왕봉은 상봉답게 위용으로 솟았다.
위에서 아래로 흘러내린 돌들이 물과 세월에 씻겨 지리의 영역 안에 있었다.
유암폭포에서 또다시 쉰다.
흐르는 땀을 식히며 마시는 물 한잔은 감로수다.
통신골로 들어간다.
통하고 통하고 통해야 마땅한 세상은 불통이다.
작금의 오늘뿐만이 아니라 오래전 옛날부터 그러했을 터이다.
조용히 은밀히 신속히 통신골로 들어간다.
인기척 없는 골을 어느 정도 오르고 난 뒤 한숨을 돌리며 휴식을 한다.
휴식 중에 불쑥 나타난 너덧 명의 산꾼에 한 번 놀라고 난 뒤
또다시 아래에서 사람 소리가 두런두런 들린다.
가까워질 수록 아는 사람인 게 확인된다.
유키님이다.
보스님이다.
묻기도 전 유키님은 '여기는 동네 오빠!'라며 일행을 소개한다.
통신골에 앵초가 있는지 항상 이맘때 올라온다는 설명도 이어진다.
체력이 안 되는 사람은 빠지고, 통신골에 오기 위해 많이 노력했다는 보스님은 표정이 한없이 밝다.
병풍바위골로 올라간단다.
짧은 만남에 짧은 구간을 동행한다.
좌측의 작은 통신골이 이내 보이고 우리는 좌측으로 길을 잡는다.
병풍바위골을 오르는 유키님 일행의 걸음도 가볍고 산뜻해 보인다.
안전하게 산행하라는 인사를 나눈다.
꼭 만나야 할 사람은 만나고
스치고 지나야 하는 것들은 지나간다.
떠나야 할 사람은 떠나고
남아야 할 사람은 남겨진다.
세상의 순리는 그러하다.
엇갈려 헤어지는 길
서로를 마주 찍는다.
작은 통신골로 들어간다.
가녀린 물줄기가 차라리 오르기 쉬워 고맙다.
멀리서 우리의 모습을 유키님이 잡았다.
세상이
나를 힘들게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나로 하여 무거운 것임을
세월이 나를
쓸쓸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나로 하여 외로운 것임을 알아간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밥그릇을 그만큼 비우고서야
알아가는 진리들이다.
2014년 맑은소리 팀과 작은 통신골을 올랐을 때 승덕 형님이 매어 둔 로프다.
그 로프를 잡고 올라간다.
산행목적을 달성한다.
국공에 걸려 빌어야 했던 그 날 압수당한 것보다 더 많다.
병기막터골을 따라 내려오는 길은 빨치다.
작은 통신골에서 능선을 살짝 넘어 병기막터골에 닿았다.
스틱의 아랫부분이 빠져 찾으러 한차례 길을 되돌아 더듬었다.
계곡을 따라 좌우로 또한 계곡을 그대로 따르며 내려갔다.
빨치길 치고는 그리 험하지는 않았다.
병기막터교 바로 아래에 정확히 떨어지고 등로를 따라
아무 일 없듯이 걸어 내려간다.
산행의 목적은 충분히 초과하여 달성했으니 만족이다.
지리산은 설렘이다.
지리산은 생동이다.
지리산은 행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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