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산행

2015.02.01 세걸동릉

지리99 수야 2015. 2. 4. 17:53

세걸동릉.

일시:2015년 2월 1일 (일요일)

독오당 63차 정기산행.

산행자:에스테야님,귀소본능님,수야 (3명)

걸어간 길:부운마을-상부운-부운치-서북능선-세동치-세걸동릉-부운.

산행시간:08시 26분 ~16시 20분 (7시간 54분).

 

 

멀리 까지 보였다.

없이 맑은 날씨는 먼 곳을 바라볼 수 있게 했다.

덕유산의 향적봉과 서봉이 가까이 다가온 이 하루 동안 지리 품속은 매우 따뜻했다.

덩달아 우리도 따뜻한 사람들이 되었다.

 


2015-02-01 지리산 세걸동릉.gpx

2015-02-01 지리산 세걸동릉.gtm

 

 

부운마을에서 산행을 시작했다.

차에서 내려 등산화를 갈아신고 스패치를 하는 동안 손끝이 아려왔다.

휑하니 빈 길 위에서 들어감을 알리고 무사히 돌아오길 빌었다.

누가 가라고 해서 가는 길이 아니다.

스스로에 대한 만족만이 보상인 이 산에 설 때마다 늘, 나는 거침 없고 싶었다.

최소한 여기 산에서 만은 거침없는 마음으로 걷고 싶은 욕심이라 해야 더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하늘이 맑았고 우리도 맑았다.

 

임도를 따라 오르며 서서히 몸이 풀리고 열기가 올라오기 시작했다.

아리든 손끝은 장갑을 벗어도 될 만큼 이미 훈훈해져 있었다.

부운마을에서 부운치까지 3km의 이정목은 이제 2.2km 거리를 알리고 있었다.

고작 800m를 잡아먹었을 뿐인데 세동치샘 근처에 가서 점심을 먹자고 경로를

설정하며 점심 먹을 이야기를했다.

 

헐떡이며 오르는 경사가 아니다.

꾸준한 느린 걸음으로 올랐다.

엊그제 내린 눈은 적당하여 발의 감촉이 즐거웠다.

몇 사람의 앞선 발자국이 찍혀 있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날씨는 더욱 포근해져 왔다.

웃을 벗었다.

그런데도 땀이 흐르기 시작했다.

 

푸른 하늘빛이 보이기 시작한 어느 순간 서북능선을 올라타고 있었다.

부운치를 뒤로 하고 세걸산 방향으로 오름길을 올랐다.

조망터에 올라서고 사방을 향해 카메라를 들이대기 시작했다.

맑았다.

더 가까이 많이 또렷한 산 위에서 본 산들은 살아 꿈틀대는 듯 느껴졌다.

 

지리산 천왕봉이 삼정산을 안고 눈앞에 있었다.

 

지금보다 절실한 나중이란 없다.

나중이란 영원히 오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눈앞에 와있는 지금이 아닌

행여 안 올지도 모를

다음 기회를 얘기하기엔

삶이 그리 길지 않다.

드라마<응답하라1997>중에서

 

잠시 그런 생각을 했다.

미안하다, 사랑한다는 말

다음으로 미루지 않기로... 하여,

오늘 절실하게 치열하게 살아내고 싶다.

 

합천의 황매산이 또렷했다.

넘어 가야산도 조망으로 들어왔다.

언제부터인가 높은 곳에 서면 산들의 이름이 점점 알고 싶었고

차츰 알아져 갔다.

 

새해부터는 아우들의 놀림에 강력 대응 하겠다던 에스테야 형을 또 놀려먹었다.

놀림의 실체가 된 우리 뒤에 바래봉을 형은 앞에 있는 줄 착각했었다.

바래봉이 손에 잡힐 듯 가까웠다.

뒤로 덕유산도 가까워 보였다.

주변의 산들을 귀소본능이 설명해 주었다.

 

가야 할 세걸산 방향으로 만복대도 히끗한 머리를 보였다.

잎이 진 산에 밀가루를 뿌린 듯 적당한 적설은 입체적으로 산들의 몸매를

속속들이 드러나게 했다.

나신의 맨몸은 햇볕에 눈이 부셨다.

선글라스 속에서 훔쳐보는 산은 섹시했다.

 

에스테야 형은 비싼 캔맥주를 나누어 주었다.

진한 맥주 맛은 여느 때 마시는 밋밋함이 아니었다.

한동안 캔맥주 하나로 여유를 마시고 자유를 마셨다.

 

천왕봉을 배경으로 맥주 맛을 즐기는 모습을 담아야 한다고 설정했다.

모델과 작가는 한동안 되지도 않는 난리를 치고 있었다.

 

바래봉 쪽에서 비박 짐을 멘 몇몇 산꾼이 오고 있었다.

자리를 정리할 때쯤 그들과 같이 걸었다.

또한, 가야 할 세걸산 방향에서는 대열이 줄지어 우리를 향해 오고 있었다.

 

서로 비켜가기 힘든 좁은 길에서 계속 밀고 오는 산악회의 많은 인원이 다 지나가길

무한정 기다릴 수 없어 귀소본능과 함께 한동안 억지로 밀고 나갔다.

착한 에스테야 형은 마주 오는 사람들에게 좋은 하루가 되시라 꼬박꼬박 일일이 인사를 하며

길을 비켜주고 기다려 주었다.

참으로 모범적이고 착한 형님이시다.

목적을 염두에 두지 않는 편안한 형님이다.

그래서 나는 형님이 좋다.

속으로 무슨 생각을 할까 짐작하지 않아도 되는,

알면 알수록 더 편안해지는 사람.

이유가 없이 좋아지는 그런 형이다.

생색을 내거나 내세우지 않는 사람

좋을 때나 힘들 때나 계산 없이

술잔을 맞대어 주고 이야기를 들어 주는 편안한 형님이 참 좋다.

 

능선으로 불어온 바람이 눈을 쌓아 올렸다.

옆길에서 조금 헛디디면 푹 빠지는 높이로 허방을 만들어 놓아 서로 마주 비켜설 때 한 발이 빠지기도 했다.

 

운봉들은 하얀색으로 빛을 내고 있었다.

아주 멀리까지 시야가 열린 탓에 광주 무등산의 송신탑마저도 보였다.

꿈틀대는 산맥들이 몸속의 핏줄처럼 불거져 있었다.

마치 힘이 오를 대로 오른 청춘의 한때, 빠빳한 그 아침 같다고 나는 생각했다.

 

세걸산이 바래봉을 업고 있는 것도 같고, 바래봉이 세걸산을 안고 있는 것도 같았다.

내려가기로 한 동릉은 이미 우리에게 길을 내어 줄 각오로 그 굴곡을 다 보여 주고 있었다.

 

나 이전에 수많은 이가 지나간 길이다.

아무리 가파른 길이라도 누군가는 앞서 지나간 길이다.

어두운 시기 남의 상처는 별거 아니라고 말하면서

내 상처는 늘 별거라고 여기는 이기심.

끊임없이 이해받길 원하고

조금을 부풀려 엄청남으로 과장하는 엄살의 나는 부끄러워지기 시작했다.

가파른 길에 지나간 수많은 발자국은 삶의 자국 같았다.

 

 

세동치샘 근처에서 점심을 먹었다.

추위에 벌벌 떨면서 먹는 밥이 아니라서 좋았다.

겉옷을 입지 않아도 될 만큼 포근했다.

에스테야 형이 내놓은 소고기를 포식했다.

술은 딱 적당히만 먹었다.

한 시간 반이 넘도록 천천히 먹고 쉬었다.

 

하산길 세걸산 동릉으로 내려갔다.

세동치샘이 맑은 물을 끊임없이 쏟아내고 있었다.

 

세걸산 동릉까지 세걸산의 사면을 따라갔다.

사면길은 제법 많은 눈이 쌓였고 간간이 러셀을 해야 했다.

귀소본능이 앞서서 길을 터고 나갔다.

 

새로 내린 눈은 앞선 발자국이 하나도 없었다.

선답의 귀소본능은 길을 정확히 잘 찾아갔다.

세걸동릉은 첫걸음인 나와 에스테야 형은 이 길을 경험한 본능의 뒤에 섰다.

후미의 나는 그가 깊숙이 빠진 발자국을 피해 갈 수 있어 한결 수월했다.

수년 전 동행하지 못한 산행 때 매달아 놓은 독오당표지기가 매달려 있었다.

호진이랑 옥자님도 이 길을 안내하고 있었다.

 

나무 높은 곳에 매달린 겨우살이에 욕심을 가진 본능은 자꾸만 입맛을 다시며 쳐다보았다.

몸무게가 작게 나가 가볍다는 논리에 의해 어쩔 수 없이 나는 나무를 타고 올라야 했다.

결국, 귀소본능의 배낭은 약간의 배를 불렸다.

 

경사의 내림길은 미끄러웠다.

눈이 미끄러웠고 눈을 피해 짚은 낙엽 또한 미끄러웠다.

어느 사이 대열이 나이순으로 이루어졌고

본능의 엉덩방아 횟수를 내가 갱신했다.

에스테야 형은 나의 엉덩방아 횟수를 또 갱신하며 맨 후미에서 아이구 소리를 연신 냈다.

 

세걸동릉은 지루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나긋나긋하지도 않았다.

능선길은 내림 기준으로 한 번씩 좌측으로 방향을 틀었고 그 방향을 잘 찾아야 했다.

오름길을 이 방향으로 잡지 않은 귀소본능의 선택이 탁월했다고 생각했다.

마을이 빤히 보이는 곳에서 마지막 선 채로 쉼을 하고 내려갔다.

 

아침에 주차 한 곳으로 원점회귀를 했다.

발자국 없는 눈 위에 잠시 주저앉았다.

그것은 안도였고

또한 마음을 다잡는 휴식이었다.

 

가야 할 길과 못다 한 책임과 다 못 한 사랑을

여전히 나는 갈망한다.

그래서 지금 나는 다시 일어나야 한다.

지리산이 늘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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