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산행

2015.01.04 형제봉

지리99 수야 2015. 1. 8. 14:26

형제봉.

 

독오당 62차 정기산행.(2015년 신년산행).

일시:2015년 1월 4일(일요일)

산행자:산나그네님,에스테야님,귀소본능님,수야.

걸어간 길:한산사-고소산성-신선대-형제봉1.2봉-수리봉능선-청학사.

산행시간:08시 44분~16시 51분( 8시간 06분).

 

2015-01-04 지리산 형제봉.gpx

2015-01-04 지리산 형제봉.gtm


 

나는 희망한다.

미안하다는 말, 고맙다는 말, 사랑한다는 말 아끼지 않고

먼저 할 수 있길 희망한다.

비록 확신에 찬 희망의 날들이 아닐지라도

내 앞에 주어지는 나날을 충실히 살아내길 희망하고

마음에 여유를 가지고 세상과 마주할 수 있길 희망한다.

나로 인해 힘들 거나 마음아픈 이가 없기를 희망하고

어떤 자리에서도 어울릴 수 있는 모나지 않는 사람이 되길 희망한다.

할 수만 있다면 경제적으로도 많이 여유 있고 넉넉하길 희망하며

건강하여 가고 싶은 산을 오래도록 오를 수 있길 희망한다.

또한,

나의 희망함이 공허함이 되지 않길 희망한다.

 

한산사에서 출발해 청학사로 하산하여 콜택시를 이용 차량회수를 한다.

길은 비교적 편하다.

하산길인 수리봉 능선은 급경사의 내리막길과 로프구간도 있는 결코 만만한 길만도 아니다.

고소산성에 올라서서 조망되는 섬진강과 건너편의 광양 백운산이 쉽게 돌아서지 못하고 한동안 머물게 한다.

소설 토지의 무대 최참판댁과 아래로 펼쳐진 악양벌이 섬진강과 어우러진 한 폭의 그림이다.

지리 주능선의 조망도 빼놓을 수 없는 풍경이다.

2006년 4월에 혼자 올랐든 형제봉을 독오당 신년산행 코스로 다시 올랐다.

 

 

약간 흐린 날씨지만 춥다는 느낌이 없는 포근한 날이다.

이틀 전 바래봉에서의 칼바람에 식겁을 하고

미리 단단히 포개 입었든 옷을 벗고 출발한다.

한산사에서 돌아본 평사리의 모습은 평화롭고 한가롭다.

 

한산사에서 미리 물을 받고 고소산성으로 올라간다.

지리산 북쪽의 눈 쌓인 산과는 달리 낙엽이 깔린 길은 마치 늦가을처럼 느껴진다.

 

당수님과의 산행이 오랜만이다.

그동안 바쁜 일들과 집안의 큰 행사로 산행참가를 못 했든 아쉬움이 크셨든 모양이다.

언제나 그렇듯이 선두로 앞장을 서서 성큼성큼 앞장을 서시는 걸음이 우리를 숨차게 한다.

체력의 한계를 말씀하시지만, 실제 산행에서는 늘 우리 앞에서 나아가신다.

 

고소산성이다.

확실한 축조연대를 알 수 없으며 가야의 성으로 추정된다는 안내문이다.

 

오늘 산행대장은 귀소본능이다.

형제봉 아래 평사리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는 본능은 아마 모르긴 해도 수차례 이 산을 올랐던 모양이다.

기막힌 조망터와 포근한 자리를 모두 알고 있었다.

 

다른 때와는 달리 상념에 간간이 젖어드는 당수님께

무슨 생각을 그리 깊이 하시느냐고 여쭈어보면 그냥 웃기만 하신다.

그러나 한마디 툭 던지는 유머는 우리를 뒤집어지게 만든다.

 

배낭을 내리고 잠시 쉬어간다.

북한에서 초코파이 인기를 능가하는 간식을 나누어 먹는다.

 

새해부터는 아우들의 놀림을 철저히 응징하겠다는 에스테야 형에게

천왕봉이라고 구라를 친 섬진강 넘어 백운산은 구름이 걸려 얼굴을 다 보여 주지 않는다.

 

왕시루봉에서 바라보든 왕의 강 못지않은 섬진강의 라인은

쭉쭉빵빵한 미녀의 몸매를 훔쳐보는 눈빛처럼 동공이 확대되고 흥분된다.

 

남자들의 원초적인 농담이 찐하게 한차례 지나가고

당수님은 젊었을 땐 그보다 좋은 것이 없는 줄 알았는데 지금은 그보다 더 좋고 강렬한 것이 있다고 말씀하신다.

그 의미를 알고 있지만 우리는 원초적인 게 좋다고 반박한다.

당수님의 굵직한 한마디.

"그래 우야든지 마이해라.마이 할수록 좋다."

 

짧은 철계단을 오른다.

암릉이라 할 것도 없지만, 구간에 아기자기한 짧은 이런 구간이 단조롭지 않아 오히려 산행이 재미있다.

 

당수님은 제일 먼저 가뿐히 지나가고

에스테야 형이 비좁은 바위틈에서 배낭이 낑겨 제법 애를 먹는다.

나는 배낭을 벗어들고 살짝 지나온다.

뒤에 본능은 아주 낮은 자세로 빠져나온 통천문이다.

 

합천 황매산의 순결바위 전설을 이야기했다.

순결하지 못한 사람이 들어가면 빠져 나올 수 없다고 했더니

에스테야 형님은 나 보고는 절대 그곳에 들어가지 말라고 한다.

 

지리산 둘레길을 만난다.

대축마을에서 원부춘마을로 이어지는 둘레길 구간이 형제봉 능선을 가로질러 넘어가는 길이다.

요즘 오룩스맵을 산행에서 활용하는 당수님은 포인트를 찍는다.

 

한동안 머문다.

평사리가 한눈에 들어오는 조망터에서 귀소본능이 보아둔 어떤 곳을 우리는 열심히 바라본다.

 

 

 

땅만 바라보며 한참 오르막을 오른다.

숨이 제법 차고 땀이 흐를 때 즘 신선대에 도착한다.

 

이 구간에서 부터는 희끗희끗 녹다 남은 눈이 보이고 바람도 차가움을 품고 있다.

출렁다리를 지나며 카메라를 눌러대는 우리는 바빠지기 시작한다.

귀소본능은 다리 아래에서 우리를 우러러 찍어대기도 한다.

 

2006년 혼자 이 다리를 지나가든 날을 생생히 기억한다.

그날 바람은 다리가 후들거릴 만큼 강했고 겁먹은 나는 거의 포복으로 지나갔었다.

다행히 오늘은 시간이 지날수록 날씨가 좋아지고 조망도 또렷해진다.

 

가야 할 형제봉이다.

살짝 언 바위 위의 눈 때문에 조심스럽다.

산행의 대열이 나이순으로 자꾸 맞추어 진다.

 

귀소본능을 기다리며 고개를 돌려보니 주능선이 살짝 보인다

왕시루봉 능선이 주능을 향해 내달리는 역동적인 모습을 한참 동안 바라본다.

 

한 장의 사진을 담기 위해 다리 아래로 내려갔든 본능이 건너편에서 내려온다.

당수님 말씀대로 독오당의 종군기자다.

 

지나온 구름다리와 계단을 뒤돌아 보며 귀소본능을 기다린다.

땀을 흘리며 건너온 귀소본능의 흰머리에서는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있었다.

 

배가 고프다.

여기서 점심을 먹기로 제안했다.

그러나 귀소본능은 역시 예리했다.

밥을 먹고 저 오르막을 오르면 엄청나게 힘들다며 헬기장까지 가자고 한다.

 

오르막을 한참 오른다.

땀이 난다.

헬기장에 도착하고 네 명이 처리하지 못할 만큼의 만찬을 오랫동안 가진다.

다시 지고 갈 수 없는 병들이 빈 병이 되고 거나한 취기가 오른다.

당수님의 절주는 그 몫만큼 우리에게 더 배당되고

술 가지고 요령 피지 않는다는 독오당의 정신으로

독오당 당수님의 명령을 따른다.

"쪽 빨아 삐라!"

 

만찬 중에 네댓 명의 등산객을 만난 곳이 유일하게 헬기장이다.

옆자리에서 점심을 먹고 먼저 일어선 사람들이 형제봉을 찍고 돌아오는 길에 우리는 형제봉으로 간다.

세심한 당수님은 그들이 내려가야 할 곳과 전망되는 천왕봉을 자세히 설명도 해주신다.

촛대봉과 천왕봉이 성큼 앞으로 다가와 있다.

 

당수님의 제안으로 지리산에서 처음으로 우리는 함성을 질렀다.

우리의 함성이 메아리가 되어 세 번이나 들리도록 했다. 

속이 시원했다.

 

형제봉 1봉이다.

 

오늘 산행은 사계절을 다 경험한다.

처음 출발 시점은 가을.

오르막을 오를 때는 여름이었다.

점심을 먹는 동안은 봄볕처럼 따사로웠다.

눈이 제법 싸인 능선을 내려오며

조심성 많은 에스테야 형님은 한발 한발 정성스럽게 움직인다.

 

형제봉 2봉이다.

 

지리산 상봉의 모습은 더욱 또렷하다.

눈이 싸인 골짜기가 어디인지를 선명히 보여준다.

어디에서 어떤 모습으로 보아도 좋은 상봉이다.

마치 설레는 썸을 타는 남녀 사이처럼

멀리서 바라 보는 것이 더 좋을 때도 있다.

 

내려가야 할 수리봉 능선길이다.

 

지나온 능선이다.

살아온 날들처럼 굴곡지고 오르락내리락 한 산길이다.

 

 

누군가 어차피 내려 올 길인데 무엇 때문에 그렇게 기를 쓰고 올라가느냐고 물었지만

한 번도 깊이 생각해본 적이 없다.

그것은,

올라갔으니 당연히 내려 가는 것이다.

그래야 또 올라 갈 곳이 생기지 않겠는가.

다시 올라가기 위해 우리는 이제 내려간다.

 

귀소본능의 카메라는 예리하고 날카롭게 산의 일부를 담아낸다.

그가 토해 내는 한장 한장의 사진만으로도 우리는 감동할 때가 많다.

아마도 나와는 다른 순결한 영혼임에 틀림이 없다.

순결바위에 들어가도 끄떡없을 영혼이다.

 

활공장 뒤로 주능선과 이어지는 남북종주 길이 유혹의 손길을 건넨다.

 

내림막길에서 대열이 바뀐다.

젊은 순서로 내려간다.

 

 

수리봉에서 뒤 돌아본 형제봉 능선이다.

좌측으로 지나온 형제봉과 우측으로 줄달음치며 뻗어 가는 산줄기는 활공장으로 이어진다.

 

당수님은 잠시 생각에 잠긴다.

조용히 뒤에서 우리는 휴식을 했고

일어선 당수님은 내려가면 시원한 콜라를 한하고 싶다고 하신다.

"나도 콜라! 나도!"

하산 때는 맥주가 우선이든 독오당은 이제는 얼떨결에 콜라가 먼저 가 되어버렸다.

콜라가 맛있기 위해서는 산 위에서 겁나게 알콜로 몸을 예비해야 하지만

앞으로 독오당산행 하산완료는 콜라를 제일 먼저 하기로 정해졌다.

 

청학사에 내려선다.

갈증을 싹 가시게 하는 물 한 바가지씩을 마시고

택시를 불렀다.

 

인적없는 사찰의 여기저기를 돌아보고

도로를 따라 천천히 내려가기로 한다.

 

한산사에 도착, 차량회수를 하기 전 전망대에서

해 저물어 가는 평사리와 섬진강을 다시 본다.

 

너와 내가 모여 우리가 된다.

하지만,

나를 버릴 수도 있어야만 진정한 우리가 된다.

그래서

우리는

독오당이다.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콜라를 마신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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