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산행

2014.09.28 산청독바위- 새재

지리99 수야 2014. 10. 2. 16:11

산청독바위-새재

 

일시;2014년 9월 28일.

산행자:상가식구 (4명)

걸어간 길: 윗새재마을-철모삼거리-청이당-쑥밭재-산청독바위-새봉-새재-윗새재마을.

산행거리:07시 18분~16시 24분(9시간 6분) 8.55km


2014-09-28 새재-산청독바위.gpx


2014-09-28 새재-산청독바위.gtm

 

하루하루 소멸하여 가는 시간속에 늘 망설이기만 한다.

언제나 계획뿐임에 대한

응징이라도 하듯이 빠르게 세월이 흘러간다.

 

이 몹쓸 나태함에서 벗어나야겠다.

나는 지리산으로 가야겠다.

상처 많은 세상에서 위로받기보다는

먼저 이겨내고 견디는 힘을 배우러 간다고 한

그어떤 사람은 [지리산, 가장 아플 때 오라]했다.

 

그 길에

함께 걷겠다는

세 여인과 지리산으로 간다.

 

윗새재 마을에서 출발한다.

청이당에서 왼쪽으로 갈지 오른쪽으로 갈지를 결정하겠다는 계획을 속으로만 한다.

 

 

조개골입구에 설치된 감시카메라를 피해 볼 요량으로 계곡 쪽으로 내려서다 말고
다시 산길로 찾아든다.
쪼그려 앉아 카메라를 피하고
계곡 물소리를 들으며 이른 시간의 산길을 스스럼없이 걷는다.

 

철모 삼거리까지 쉼 없이 걷고

계곡에서 라면으로 아침을 때운다.

소풍이라도 나온 듯이 좋아라 하는 이 여인네들을 위한 초라하지만

만족한 아침을 대접한다.

 

아침밥을 먹지 않는 나는

지금 이 아침의 한 끼니가 깊고 따뜻하다.

창자 속에서 먹이를 부르는 손짓에 바삐 허기를 채운다.

커피도 마시고 한 참을 쉬고 난 후 자리를 털고 일어난다.

 

각오한 오름길이지만 포만감에 숨이 차다.

내가 먼저 쉬어 가자 했다.

바쁘게 가는 길도 길이고

느릿느릿 가는 길도 길이다.

때로는 혹독한 고통도 삶의 길이 되기도 한다.

잠시 쉬어간다고 크게 달라질 것도 없다.

 

가을이 들 때마다. 늘 가을 앓이를 한다.

아침저녁으로 심한 비염으로 고생하고

머리도 무겁고 덩달아 마음도 심란해진다.

이 계절의 끝자락 즘에는 일 년에 한 번 몸살도 심하게 앓는다.

 

가을빛 창연하여

한 골로 쏟아져 내리는 이 추색은 고도를 더 해 갈수록 깊을 것이다.

지나간 화려했든 봄과 여름은 이 가을빛 앞에서는 과거의 기억이 되고

다가올 겨울 앞에서는 더더욱 먼 기억이 될 것이다

 

청이당터에 도착한다.

제발 내 걸음만큼만 천천히 세월이 흘렀으면 싶다.

나이를 더해 갈수록 나의 가을은 빈곤해지고

갈수록 선명하게 사라지는 자신감 앞에서 나는 이 가을 초라해진다.

 

옛길을 걸어 하봉까지 가고 싶었지만

세 여인의 기에 눌려 계획은 변경된다.

 

청이당에 배낭을 벗어두고 혼자 옛길을 조금 더듬었다.

미리 이야기 된 어떤 지점을 찾아보았지만 찾을 것을 찾지 못했다.

청이당에서 지척의 쑥밭재로 올랐다.

쑥밭재에서 산청독바위를 향한다

능선길은 단풍이 들지 않았다.

걸음걸이는 가뿐했다.

멀리서 보였든 독바위가 눈앞에 가까이 다가왔다.

 

독바위를 오르는 바위틈에서 산부추가 꽃을 피웠다.

당당하게도 보였고 한편으로 애처롭게도 느껴졌다.

 

겁을 먹고 근처에 오기조차 꺼리는 한 여인과

두어 번 팔을 뻗고 용을 쓰다 포기한 또 한 여인을

아래에 남겨두고 겁도 없이 악착같이 올라간 한 여인만이

산청독바위 위에 선다.

 

조개골의 골짝을 따라 눈을 끌고 간다.

스마트폰에 인상을 쓰며 들여다보든 침침했든 눈이

시원하게 밝아져 왔다.

 

이제 눈을 감고 그림을 그려도 대충은 그려낼 것 같은 동부능선은

저 너머의 가을빛과는 달리 이 방향에서는 아직 가을옷을 갈아입지 않았다.

 

가야 할 새봉과 왕등능선상 새재를 가늠한다.

독바위에 올라온 여인은 일망무제의 조망에 감탄한다.

 

독바위 바로 밑 지난번 혼자서 점심을 먹었든 그 자리에서

점심을 먹는다.

신발을 벗고 느긋하게 오랜 시간 점심을 먹는다.

지나간 모든 끼니의 밥은 지금 이 한 끼니의 만족한 밥 앞에서 전부 무효다.

때때로 허망하고 무내용한 삶으로 느껴졌든 일상의 단면들도

지리산에 들어온 지금 이 시각 앞에서는 또한 전부 무효다

포만감은 그만큼의 행복감도 함께 안겨 주었다

 

새봉으로 가는 길.

길가의 꽃들이 눈길을 원했지만 세 여인은 외면했다.

 

새봉과 사립재방향 삼거리에서 휴식한다.

배가 부른 오름길은 숨이 차다.

배가 부른 계획은 게으름과 나태함도 동반된다

넘치지 않는 적당한 허기짐이 좋은 이유다.

 

간간이 시야가 확보되는 조망터에서

조망을 즐기며 걷고 쉬고를 반복한다.

 

조망터에서 동부능선과 산청독바위 그리고

걸어온 능선을 뒤돌아 본다.

 

몇 번의 로프구간을 조심히 내려온다.

 

또 다른 조망바위에서

겁없는 여인은 똑바로 서서 포즈를 취했다.

 

약간 겁없는 여인은 엉거주춤 자세를 취했다.

 

아주 겁이 많은 한 여인은 엉덩이로만 움직이며 얼굴은 웃고 있었으나

몸은 주저앉아야 했다.

 

새재까지의 제법 긴 거리를 약간 빠르게 걸었다.

몇 번의 긴 산죽밭을 통과 하는 동안 별말들이 없었다.

산죽은 높고 깊고 길어서 지겨웠다.

 

아홉 마디 맺힌 사연 깊은 구절초는 이제 점점 기력이 쇠잔해 지고 있었다.

가을은 깊은 맛이 배어들고

불어오는 산바람 속에는 아직 미미하지만 찬 느낌의 바람 맛도 있었다.

 

새재에서 윗새재마을로 내려 오는 길은

짧았고 단조로운 길이였다.

마을 마지막 길에

양봉 벌통이 자리하고 있었다

벌 때가 윙윙거리는 그곳을 쉽게 지나가지 못하고 머뭇거린다

선하게 생긴 인심 좋은 총각 같은 분이 벌에 쏘이지 않게 그물 같은 보호장비를 들고

와서 쓰고 지나가게 해주었다.

 

꽃 앞에선 세 여인은 사진찍기를 요구했다

꽃에 대한 모독이라는 나의 말은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거센 항의와 저항을 불러왔다.

맞아 죽지 않은 것만으로 다행이었다.

 

하늘 아래 첫 동네

출발한 그곳으로 돌아왔다.

세 여인은 흡족한 산행이라 했다.

그녀들의 만족에 나도 흡족했다.

겨울이 이 가을을 다 파먹기 전에 동부능선에 올 것을 약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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