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산행

2014.09.14 봉산골

지리99 수야 2014. 9. 18. 01:35

봉산골

 

독오당 58차 정기산행.

일시:2014년 9월 14일.

산행자:산나그네님, 다우님, 에스테야님, 귀소본능님, 수야.

걸어간 길:쟁기소-봉산골- 봉산우골 <우골>-도계능선-심원삼거리-심원마을.

산행시간및 거리:07시 37분~15시 42분 (8시간 4분:휴식및 긴 오찬포함), 6.2k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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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천히 가요 

급할것이 무엇이 있다고 그리 바쁜 걸음 재촉이나요 

세상은 늘 나보다 빠르게 흐르고  

그 세월에 맞추어 내 마음도

성난 파도 마냥  웃음기 없는 얼굴로

인생을 살아가기 바쁘죠 

그러다 보면 다치고 상처 받고 넘어지는 것은

나 자신 밖에 없어요 

때로는 치타 같은 빠른 인생도 필요하지만  

또 때로는 거북이 같은 느린 인생도 필요하지요 

그러니

우리 가는 길 위에  잠시라도 쉬어 갈 수 있는

인생의자 하나 곁에 두고   

지치고 힘이 들 때에

앉았다가 쉬어 가자구요.   

-좋은 글 대사전

 

쟁기소 입구를 빠르게 내려

계단 아래에서 산으로 갈 채비를 한다.

 

건너간다.

어느덧 시간도 여름에서 가을로 건너 가고있다.

깊이 들이마신 지리산의 맑은 공기가 이제 가을 맛이 들기 시작했다.

쟁기소가 어디인지 물음은 있지만 정확한 답은 아무도 없다.

봉산골로 가자 한다.

 

쟁기소에서 반야봉까지 홀로 걸었든 수 년 전의 산행은 어디가 어딘지

어디쯤을 걷고 있는지도 모르고 무작정 걷기에 열중했던 때였다.

지금 현실의 삶에서도 내가 가고 있는 길은

때로는 보이고 때로는 보이지 않는다.

나는 다만 내 몸으로 비벼밀고 나간 만큼의 길을 겨우 좀 알아가고 있을 뿐이다.

 

오랜만의 산행.

천천히 걷고, 웃고 떠드는 수다함이 참, 좋다.

이렇게 자유로운 영혼으로 살 수만 있다면 하는 바람이 

지리산에서만 유효한 바람으로 남는 것이 안타까울 지경이다.

 

여름날 수량이 많을 때의 계곡에 비하면 초라하기 조차한 계곡이다.

그럼에도

고단한 삶에서 잠시 비켜선 산속은 마냥 좋기만 하다.

햇볕은 깊고

졸졸거리는 물소리만으로도 마음을 씻을 만하다.

 

몸이 데워지고 걸음에 속도가 붙는다.

사람이 살았든 흔적이 역력한 마을 터를 지나갔다.

산속으로 들어와 살아야만 했든,

흩어진 돌담의 돌 하나에도 아린 사연들이 있으리라

다만 짐작했다.

 

필요함으로 배우는 모든 공부는 집중력을 발휘하고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다.

오룩스맵 공부에 열중하시는 당수님.

그것을 지켜보는 에스실장님.

 

올라갈 길에 집중하시는 대장님.

 

계곡을 건너갔고

어지럽게 얽힌 고로쇠 호스를 발아래로 머리 위로 넘기며 걸었다.

 

저곳은...?

호기심 많은, 꼭 알아야 직성이 풀리는 자들은 확인하러 간다.

확인하러 가는 자들을 확인하는 나는 멀리서 그들을 지켜본다.

 

산이 내려앉는다.

곳곳에서...

절망의 마음이 한 번에 푹 내려앉듯이 어느 날 이 산이

그렇게 내려앉지나 않을까 하는 걱정을 앞세워도 본다.

 

수량이 없는 폭포는 가난했다.

가난한 폭포는 애잔하게조차 느껴졌다

이름을 모른다.

봉산폭포라 했지만 정확하지가 않다.

막무가내로 아무 이름이나 갖다 붙여서는 안 된다고 처음부터 배웠다.

폭포를 지나 합수부다.

 

폭포 옆으로 올라 합수부에서 집중하지 않으면 길을 놓치고 만다는 것을 뒤에 알았다.

 

이슬 같은 맑은 물을 몸 밖으로 내보내는 이끼 덮인 바위가
예뻐 보였다.

 

사태 지역이 길게 나타났다.

대장님은 안전하게 올라 가는것에 집중했고

우리는 대장뒤를 따르는 것에 집중했다.

 

대장님과 당수님의 앞선 걸음은 저 멀리 있었고

젊은 우리는 뒤에서 노닥거렸다.

본능이 길을 확인한 후 말했다

여기는 우골을 지나치고 우골에 우골이라고.

우리끼리 고민한다.

저 멀리 올라 있는 대장님과 당수님을 다시 내려오시라 하기엔

늙은이 욕보이는듯하다는 결론으로 그냥 오르자 했다.

 

흘러내리는 작은 돌을 밟고

올라간다.

뒷사람과 거리를 두고 조심하며 올라선 휴식의 자리에서

지나와 버린 놓친 길에 대해 대장님은 못내 아쉬워

옆으로 사면을 째고 넘어 우골로 다시 가자 한다.

엇갈린 의견 속에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한참 후

결론은 수야가 몸이 안 좋아서 그냥 이길로 계속 진행하는 것이 되었다.

아무 말도 하지 않은 나는 졸지에 불량한 상태가 되어 있었다.

대장님은 못내 아쉬운 표정이 역력했고

우골이든 우골에우골이든 상관없는 나는 능선까지 줄기차게 앞에서 걸었다.

 

 

도계능선에 올라서고 몇 걸음을 옮겨 심원마을 삼거리로 내려간다.

능선에서 심원으로 내려가는 길 어디쯤에서 점심상을 펼친다.

맥주부터 한 모금씩 목을 축이고

안주를 만들고 술잔이 돌아간다.

맥주,소주,막걸리,매취순...

시간은 아직 많았고 취기는 천천히 올랐다.

기어이 다 빈 병으로 만들고 자리를 정리한다.

그 자리에서 뒤돌아 보니 노고단이 흔들리며 보였다

내가 흔들리는 것인지 세상이 흔들리는 것인지

분간하고 싶지 않았다.

삶이 한순간 송두리째 고통으로 변해버린 사람들의 마음을

다독여 보듬지 못하는 세상이 내게는 어차피 흔들고 있는 세상이다.

하산길은 그렇게 불편하지 않았고 길지도 않았다.

 

심원마을을 향해 내려가는 길을 선생님은 꿈길이라 표현하신다.

 

만나는 야생화의 이름을 전혀 다른 이름으로 불러주든 귀소본능이

간혹 정확히 아는것도 있었다.

버섯을 채취했고 에스테야 형님이 챙겨서 본능의 배낭에 넣어주었다.

 

귀소본능은 아침 산행 시작 전 부터 노루궁댕이버섯을 간밤에 꿈까지 꾸었다며

오늘은 분명히 보게 될 것이라고 예언까지 했었다.

 

그런 그가 내려온 길을 뒤돌아 올라가더니

정말로 수확을 맛본다.

 

만족하고 흡족한 미소가 버섯 크기의 몇 배가 된다.

 

계곡으로 내려선다.

씻는다.

어쩌면 올해 마지막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무작정 들어가 앉는다.

생각만큼 차갑지 않은 물속에 담근 몸은 충전되고 가뿐해진다.

바로 위 심원마을의 집에서 사람들 소리가 들리는 곳이다.

그래도 신고가 들어가거나 하지는 않을 상황이니

우리는 우리의 소리를 내며 한동안 머물고 옷을 갈아입었다.

 

어수리, 기름나물을 구분 할 수 없는 꽃 앞에서 씻고 난 모습을 담아 보라 하신다.

 

마을 뒤 하늘과 산의 색이 맑았고 

무사히 산행을 마친 오늘 하루가 또한 맑았다.

 

사라질지 모른다는 심원마을 앞에서 담소한다.

아침에 반선의 일출식당 이사장님의 배려로 쟁기소까지 우리를 데려다 준 사모님을 대신해

이번에는 자제분이 데리러 왔다.

감사할 따름이다.

 

언제나 다시 뒤돌아 보게 되는 지리산에 머문 이 시간을 행복해한다.

 

이제 가자.

와야만 할 지리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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