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산행

2014.04.06 관음암

지리99 수야 2014. 4. 8. 03:21

석남암수관음암(石南巖藪觀音)

 

일시:2014년 4월 6일

독오당54차 정기산행

걸어간 길:평촌마을(대원산방)-초정골-가칭:장당능선-관음암-석남사지- 석남중허리길-평촌마을-(내원사)

산행자:다우님,에스테야님.귀소본능님.수야.

산행시간 거리:07시: 14분 ~15시: 41분 (8시간 27분) 14km.


2014-04-06 관음암(원본).gpx

2014-04-06 관음암(원본).gtm


 

 

 

 

관음암에서 바라보는 천왕봉 조망이 일품이란다.

그리고 관음암에서 석남사지로 이어지는 길을 한번 수색해보는 것도 좋겠다는

대장님의 공지사항에 관음암에 관한 글 들을 찾아 읽으며 나름, 관련 공부를 합니다.

가객님의[석남사지]-지리산 최대의 잃어버린 폐사지를 찾아서1.2부(지리99 지리박물관-지리산의폐사지)

꼭대님의[관음암]탐구시말-<두온애랑>을 위한 진혼곡 (지리99 지리박물관-문화유적명소)

강호원님의 산행기<석남사 관음암지>까지 정독으로 읽고 공부를 합니다.

역시,공부는 필요해서, 원할 때 해야 하는가 봅니다.

예전에 이렇게 공부를 했더라면.

 

 

평촌마을 대원산방 입구에서 산행을 시작합니다.

숨소리도 크게 내지 못하고 대원산방를 순식간에 통과하고 초정골로 들어갑니다.

하산길에 알게 되었지만, 굳이 이 길로 들어갈 필요도 없는데 괜히 긴장했습니다.

초정골로 들어서면서 장당골의 악명높은 산죽처럼 오늘도 한바탕

산죽과의 사투를 각오하고 단단히 무장합니다.

에스테야 형님의 발목에 저거는 뭘까요?

새로운 등산 패션을 보여 주십니다.

안보이지만 "안전제일"이런 글자도 있습디다.

 

 

초정골의 초입은 길이 비교적 뚜렷한데 간혹 약간 어긋나 올라오며 다시금 길에 붙습니다.

선명한 길을 두고 옆으로 걸었던 겁니다.

층층으로 된 계단씩 경작지를 만나고, 계곡을 좌측에 두고 올라갑니다.

 

 

간혹 약간 성가신 산죽을 만나지만 비교적 순한 놈들 입니다.

 

 

산죽밭에 들어가기 전 지형도를 확인해보고 무장도 합니다.

 

 

알카에다 무장 전사도 아닌

그렇다고 산적 비주얼도 아닌 야시꾸리한 저런 모습으로

길이 희미해지는 지점까지 오르고 능선의 902봉으로 최단시간에 붙을 수 있는 계곡을 치고 오릅니다.

 

 

 

복면을 벗고 진달래꽃 앞이라고 찍어 보랍니다.

꽃보다 할배...

 

 

간간이 중요지점에는 독오당의 표시기를 걸어 둡니다.

 

 

올라선 장당능선(가칭)에서 902봉을 향해 오르다.

관음암 들머리를 쉽게 찾아들어 갑니다.

관음암에서 바라본 상봉에는 눈이 하얗게 내렸습니다.

가히, 조망이 일품이라 했던 이유를 그곳에 서서야 실감합니다.

사진으로 보는 느낌은 실제와는 다릅니다.

압권이지요.

상봉을 바라보는 여러 군데의 조망처 중 손꼽을 만큼 좋은 곳 입니다.

 

 

관음암(觀音巖)

비로자나불상이 있었든 자리에 이렇게 돌로나마 그 흔적의 자리를 꾸며 놓았습니다.

내원사의 영산 스님과 정태범 교수님 그리고 삼장면 현대식 부면장님이 이렇게

손질을 하시고 제를 올렸다 합니다.

<관음암은 절터가 아니라바위>라는 대장님의 설명을 다시금 확인시켜주신

영산 스님과 석남사지로 내려가는 지능선에서 조우를 합니다.

가장 궁금했든 기왓장의 의문도 풀어 주셨습니다.

영산 스님과 정태범 교수님은 보선암이라 하신 석남사지에서 영산 스님께서 가져오신 거라고 합니다.

 

 

1300년 전 두온애랑(豆溫愛郞)의 명복을 빌어 주기 위해 세워진 노천불상이였든

비로자나좌불상 이 있었던 곳.

이곳에 서서 바라보는 조망은 천지구분 못 하는 저 같은 속인의 눈에도 천하명당임이 분명해 보입니다.

 

 

자식을 가슴에 묻어야 했든 부모의 애끊는 심정이 얼마나 고통스럽고 애절하였으면

그 영혼이나마 달래기 위해 석불을 조성했을까요.

미어지는 부모의 마음을 미루어 짐작해봅니다.

진달래 지천으로 피어나는 관음암에서 한동안 각자의 느낌대로 한참을

서성이며 서 있었습니다.

 

 

관음암은 절터가 아니라 그냥 바위라는 사실을 눈으로 확인하고

석남사지로 이어지는 길을 찾아보기로 합니다

관음암에서 우측으로 각자 간격을 두고 천천히 걸어 나오며 수색을 합니다.

사면을 따라 거의 수평으로 걷다 보니 아래로 이어지는 지능선에 서게 됩니다.

장당골에서 관음암으로 올라오시는

영산 스님과 정태범 교수님을 이 능선길에서 만나게 됩니다

다우 대장님의 몇 번에 걸친 전화통화로 스님과 대장님은

이미 알고 계시는 사이입니다.

오늘 정교수님과 함께 관음암을 사진찍기 위해 오실 거라고는 했지만

시간을 정한 것도 아니었는데 인연이 닿아 이렇게 만나게 되었다 합니다.

우리 대장님의 질문은 수없이 이어지고 모든 질문에 온화한 미소로

하나하나 답해주시는 두 분으로 인해 중허리 길도 알게 됩니다.

또한, 관음암과 석남사로 연결되는 길 또한, 이 길임도 확인하게 됩니다.

오히려 배낭을 뒤적여 먹을거리마저 내어 주시고,

하산 후 내원사로 방문하라는 초청도 받습니다.

역시, 대장님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닌가 봅니다.

대장님께는 평소의 공덕이라 합니다.

공덕을 쌓는 일이 없는 저는

절대로 독오당 산행대장 자리만은 탐내지 말아야겠습니다.

비로자나불상의 국보지정을 위해 노력하고 계시는 영산 스님과 정태범 교수님.

 

 

일러주신 석남사 들머리보다 약간 위에서 우측으로 내려서는 바람에 산행 후 트랙은 보정을 합니다.

내림 기준 능선의 우측으로 내려가면서 지 계곡을 건너

여기저기 무너진 돌탑이 있는 석남사 터에 도착을 합니다.

과거 장당골 산행 때 와본 적이 있지만, 위에서 내려올 때와 올라가면서 보는 느낌이 생경합니다.

 

 

부족한 기억력이 되살아 나는 지난 산행 때가 다시금 생각나게 한 석축들입니다.

 

 

석남사가 언제 폐사되었는지는 연대를 알 수 없다 합니다.

다만, 1632년의 진양지 제2권에

'本石南寺 在德山長堂洞廢久'(본석남사 덕산의 장당동에 있었는데 폐사된 지 오래다) 라고

대장님은 한자까지 또박또박 외우시며 알려 주십니다.

 

 

금당터에 올라옵니다.

어지럽게 널브러진 잔해들이 천 몇백 년의 세월을 고스란히 안고 있습니다

지리산 최대의 폐사지라고 가객님께서 말씀하신 그곳입니다.

 

 

금당터에서 건너편으로 관음암이 보입니다.

이곳에서 직선 방향으로 200m 정도의 거리에 비로자나좌불은 그 모습이

또렷했을 것 같습니다.

 

 

영산 스님이 내어주신 김밥과 먹을거리까지 포함한 넉넉한 점심을 먹고

원래 예정에 없든 석남 중허리 길을 찾아 걸어가기로 합니다.

관음암에서 석남사로 내려오는 능선길에서 내림 기준 우측은 석남사로 좌측은 중허리 길로 가는 방향입니다.

 

 

 

 

중허리 길을 따라 모퉁이를 돌면서 보이는 관음암입니다.

 

 

길은 비교적 또렷하고 산의 허리를 돌아가는 평탄한 길이 한동안 이어집니다.

산죽 사이로 들어가야 하는 길을 놓치고 헤매 올라선 곳에서 귀소본능과 둘이서 다시 트랙을 따러 갔다 왔지만

다행히 완벽하게 길은 찾아낸 셈입니다.

산을 휘감고 도는 중허리 길은 아래로 낭떠러지가 아슬하게 펼쳐지는 구간도 여러 번 있는데

산죽으로 인해 조심히 발아래를 살펴야 하는 구간도 간간이 있습니다.

그 옛날 이 길을 따라 석남사로 걸어 다닌 길이 아니었을까 생각합니다.

 

 

안장바위가 나옵니다.

사진상의 좌측이 중허리 길에서 나오는 길이며(탐구팀 표지기), 우측 대장님이 표시기를 달고 있는

방향이 하산하는 초정골 방향입니다.

그리고 가운데 능선이 902봉으로 올라가는 방향 입니다.

관음암으로 갈 수 있는 능선길입니다.

 

 

근간에 산에만 들면 거침없이 날아다니는 귀소본능을 따라가기 위해

오늘 저는 술도 안 먹습니다.

센드빅형님이 가끔 자리를 비운 사이 예전 폭주기관차의

뒤를 이어 귀소본능이 요즘은 질주 본능입니다.

두 노인네는 그렇다 치고 라도 귀소본능한테 나도 노인네 소리 들을까 싶어

열심히 뒤따라 붙어 갑니다.

 

가파른 내리막길도 어느 사이 끝이 나고

아침에 올라간 초정골 들머리의 대원산방에서 조금 아래로 내려서게 됩니다.

초정골 들머리를 여기로 하면 대원산방의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될듯합니다.

내려가는 좌측이 대원산방 입니다.

 

 

 

 

과수원에

버려진 오래된 차가 있네요.

 

 

대장님이 선 농수로가 날머리 마지막 구간입니다.

조금 더 내려오면 아래의 도로가 있습니다.

 

 

예상보다 빨리 하산을 했고, 시간도 넉넉하기에 내원사로 갑니다.

 

내원사.

 

신라 태종 무열왕 4년 (657) 년에 창건되어

덕산사라 이름 하였으며 진성여왕 2년( 888) 무염 국사가 상주함
많은 대중의 정진처 였으며 만력 37년 (1609) 원인 모를 화재로 전소된 후
절터는 마을 주민의 전 답으로 된 것을 1959년 원경 스님이
매입 덕산사 입지에 내원사를 창건하여 오늘에 이름

삼 층 석탑 보물 제 1113호
(삼층석탑)
2층의 기단 위에 3층의 탑신을 세운 신라 시대 탑의 전형적인 모습입니다
신라 무열왕 때인 657 년때 처음 세워졌으나 1950년대에 도굴꾼들에 의해 파괴되었다
1961년에 내원사에서 지금의 모습으로 복원하였다.
맨 위의 지붕돌이 많이 부서졌으며 상륜부는 남아 있지 않다
3층으로 된 지붕들은 평평한 느낌이지만 모서리를 올려 경쾌함을 더하려 하였다.
4개의 주름 지붕들과 전체적으로 길쭉해진 모습은

통일 신라의 늦은 시기인 것임을 짐작게 한다.

그러나 여러 장의 돌을 짜 맞춘 기잔은 이른 시기의 전통을 잇고 있는 것으로

통일 신라시대 석탐의 변화를 살일 수 있는 귀중한 자료로 평가 받고 있다.

 

내원사 비로전에 모셔진 비로자나불상을 참배하러 들어갑니다.

 

비로자나불.

헤아릴 수 없는 시간 동안 수행해 부처가 된 뒤 깨달음의 세계에 살며 몸으로

큰 지혜의 빛을 발해 전 우주의 생명체들을 인도한다는 부처.

특히, 화엄종(華嚴宗)에선 주존불(主尊佛)로 모신다.

지권인(智拳印), 즉

왼손 둘째손가락을 오른손으로 그 첫째 마디를 쥐어 깨달음의 세계를 나타내고 있다.

 

무게를 줄여 지게에 지고 내려오기 위해 깎아낸 모습이 고스란히 안타까움으로 남는다.

 

비로자나불과 대좌 그리고 사리공 항아리의 완벽한 결합은 몇 가지 점에서 획기적인 발견을 가져왔다.

우선, 한국의 비로자나불은 9세기 후반에야 유행하기 시작되었다고 알려져 왔지만

최초 조성연대를 8세기까지 끌어 올렸고,

관음암의 비로자나불이 여래형(如來形) 어로선 동아시아에서 현존하는 최고의 작품이란 점에서

동양불교사에서도 특기할만한 일로 기록 됐다.

또, 법사를 대좌 중대석에 납입한것은 우리나라에서 처음 있는 사례로

고려 시대 이후 유행하는 불상 내에 사리를 안치하는

복장(服藏)납입의 초기양상을 볼 수 있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지니고 있다.  

 

석조비로자나불 대좌 중대석에서 발견된

영태이년명납석제호(통일신라 766년 높이 14.5 바닥 지름 8.5국보 제233호 부산박물관)

불상대좌 중대석에 법사를 봉인한 최초의 사례.

이 항아리는 15행으로 돌아가며 비로자나불의 조성기록과 함께

영태2년(혜공왕2년)이라는 기록이 남아있다.

내용은 죽은자의 혼령을 위로하고 중생을 구제하길 바라는 서원문 으로

해서와 초서로 글자의 크기가 일정하지

않고 불규칙하게 나열되어 있어 판독이 애매한 곳도 있다.
(바닥 해석 명문)

석조비로자나불 좌상과 좌상 밑 좌대 사리공에

모셔진 무구정광다라니를 이곳에 둔 자는

비로자나 부처님과 무구정광다라니의 은혜가 항상 머물기를...

근심 걱정이 없어지고 모든 재앙이 소멸 하여지네

병이 없어지고 삼악도 없어지리라.(산청)IV불교문화85p 바닥해석명문.

 

 

 

 

산사의 한적한 오후 봄 햇살 속에 여기저기를 마실 다니며

스님이 돌아오시길 기다립니다.

 

 

비로전 아래 마당에는 할미꽃이 바람에 하늘거리고 있습니다.

 

 

明翁臺(명옹대)

반야교 옆에 자리한 큰 바위에는 명옹대라는 글씨가 선명한데,

전설에 의하면 덕산사(德山寺)의 수맥이 더 이상 흐트러지지 않게 하기 위하여

한 장수가 들어다 막아 놓았다고 해서 장수바위라고 불리웠다고 한다.

이 바위에 명옹대라고 글을 쓴 사람은 명암 정식(1683~1746)의 글씨라고 하는데,

400년이 지난 글씨가 너무 뚜렷하여 의심이 들 정도이다.

 

 

저녁 공양을 하며 벽에 걸린 두 글자가 눈에 들어옵니다.

 

스님과 오랜 시간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듣습니다.

 

 

 

 

 

차를 마시다가 벽에 붙은 글씨에 한동안 눈길을 주시든 대장님이

저게 무슨 글자 인지를 여쭈어 보았습니다.

오유지족(吾唯知足)

"口"를 가운데에 두고 좌우 상하에 각각 글자가 모여 1개의 글자를 이루고 있다.
'나는 오직 족함을 안다.'
'나는 현재에 만족할 줄 안다.'
'지금 가진 것에 만족하라.(쓸데없는 욕심을 버려라.)'

 

느낌은 분명히 있는데 글로 옮겨 놓는 일이 참 어렵습니다

마음속에 무엇인가 꿈틀거리는 이런 감정을 어떻게 정리할지 많이 망설이다

옹색한 졸필로 기록을 남겨 봅니다.

그래도 저에게는

충분히 만족한 하루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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