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이 씨가 된다
걸어간길:영원사-빗기재-삼정산-상무주암-문수암-삼불사-약수암-실상사(약:12km)
산행자:상가식구 8명,+호진이랑옥자님,(총10명)
침을 맞았습니다.
움직이지 말고 쉬면 빨리 치료가 된다고 하지만 가만있질 못하고
또 지리산으로 들어갈 궁리를 합니다.
편안하게 무리 없이 널널하게 걸을 수 있는 곳을 생각합니다.
4대를 이어온 명의의 침술은 소문대로 나를 지리산으로 갈 수 있게 만들었습니다.
함께 하지 못하는 서운함을 나의 산행으로 대신 하며
다음을 기약하는 명의는 언제나 그 특유의 부드러움과 미소로 저를 챙겨줍니다.
6월 30일 새벽 4시 정확하게 일어납니다.
알람의 시계 소리와는 상관없이 일어나는 것은 지리산행 때만 항상 있는 일 입니다.
배낭을 메고 집을 나서며 하늘을 보니 달이 아직 떠 있습니다.
오랜만에 보는 새벽달입니다.
이 시간에 집을 나서는 일은 산행 때 말고는 없는 일이지요.
예전엔 이시간에 신문과 함께 정신을 통째로 빼놓고
집으로 들어 간 적은 수없이 많았지만...
실상사 주차장에서 만나기로 한 호진이랑 옥자님을 약속 시간에 만나기 위해
고속도로 휴게소는 무조건 통과를 합니다.
함양으로 접어들며 호젓한 국도를 따라가는 길에
새벽부터 한 무리의 마라토너들이 달리고 있습니다.
함양 일주 마라톤 대회를 가슴에 달고 달리는 사람들을 향해
화이팅을 외쳐주며 손을 흔들어 줍니다.
그러면서 말했지요 씨가 될 줄도 모르고...
"아! 나도 뛰고 싶다."
한동안 발목부상으로 뛰질 못했더니 달리는 사람만 보면 충동적으로 뛰고 싶어집니다.
"뛰고 싶다 나도"를 몇 번 했더니 차 세워 줄 테니 뛰라고 합니다.
그래서 결국 나중에 나는 산악 마라톤을 하고 말았지요
말이 씨가 되고 말았습니다.
예정보다 일찍 도착한 실상사주차장에서 호진이 형에게 전화를 해도 받질 않습니다.
두 분이서 알콩달콩 신혼 분위기 내고 있는 거 같아서 은근히 방해하고 싶은 마음이 자꾸만 생깁니다.
계속된 전화질에 결국 응답이 오는데
산내에서 감자를 캐고 있답니다.
감자밭은 아시죠 들. 아시는 분들은 아실 테고...
어쩌피 산행 후에 일행 모두 가기로 되어 있으니 그냥 오시라 합니다.
결국은 산악마라톤을 한 나 때문에 감자밭엔 가지도 못했습니다.
실상사주차장에서 미리 준비해간 아침을 먹고
호진 형님 차는 주차를 해두고 한 대의 차량으로 영원사까지 올라갑니다.
영원사입구까지 바싹 올라간 곳에 주차하고 영원사로 들어갑니다.
꼬랑지 잘린 개쉐이가 따라다니며 요란 시리 짖어 댑니다.
지 입장에서는 겁나니까 짖는 거지만 내입장에서는 시끄러운 개소리입니다.
영원사 경내를 둘러보고 본격적인 산행을 시작합니다.
빗기재를 향해 올라갑니다.
8시 38분 이네요.
후덥지근한 날씨지만 숲속으로 들어가면서 후덥지근한 생각은 이미 사라지고
다들 지리산으로 몰입되어 갑니다.
빗기재 에서 한 번의 쉼을 합니다.
호진 형님의 배낭이 열리면서 막걸리와 삼지구엽초가 나오고 준비해간 생선회로
안주를 삼아 몇 순배의 잔돌림을 바삐 합니다.
다시 배낭을 정비하고 출발을 할 때만 해도 오늘 여기 빗기재에 다시 올 일은 없었습니다.
그것도 뛰어서 말입니다.
급하지 않은 완만하게 고도를 올리는 길은 참 재미있습니다.
웃고, 떠들며 즐거운 산길을 이어 갑니다.
향긋한 향기에 걸음을 멈추고 옥자 님이랑 더덕 채취에 한참 재미를 붙입니다.
배낭을 멘 체로 엉덩이를 치들고 더덕 캐는 재미에 신바람이 납니다.
제법 몇 뿌리를 캐고 다시 출발합니다.
이곳이 문제의 바로 그 지점입니다.
이 길을 지나는 사람들은 어떤 소망을 담아서 올렸을까요?
하나의 돌이 하나의 의미를 지니게 되는 곳이 됩니다.
주능선을 따라 운무가 내려앉아 있습니다.
쉽게 모습을 허락하지 않을 태세로 새색시옷자락 처럼 야무지게 속살을 감추고 있습니다.
다행히도 능선을 따라 언뜻 보여주는 순간순간의 감칠맛은 또 나름의 매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누군가는 저 능선을 따라 걷고 있을 겁니다.
여기서 저기를 볼 수는 있지만 저기서 여기를 보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남들 눈에는 다 보이는 내 허물이 내 눈에만 보이지 않듯이 말입니다.
통신골이 처음 입문인 자들은 그냥 앞만 보고 지나쳐 가는 자리에서
산꾼은 산을 보고갑니다.
부부 산꾼.
알콩달콩 쏟아내는 이들의 향기는 고소하고 향기로웠습니다.
여유로운 그의 눈빛은 상봉만 바라보지 않습니다.
자신보다 먼저 다른 사람을 볼 줄 아는 배려 깊은 산꾼의 눈빛은
하나만 바라보고 있지 않았습니다.
성질 급한 놈 뒤로 나자빠지게,
새색시 수줍은 옷고름처럼 살짝 한번 풀었다가는 재빠르게 또 닫아 버리는 조망을 넋 놓고 바라보다.
한순간 "핸드폰이 없다!!"
이런 @#$%%!!
빗기재 아니면 더덕을 캐든 자리일 거라는 결론에 도달하고는 다시 갔다 올 테니 모두 그냥 진행하라 하고
호진 형님의 무전기만 들고 나는 역주행을 감행합니다
더덕을 캘 때 궁둥이를 너무 높이 들어서 빠졌을 거야.
빗기재에서 배낭을 멜 때 그때 빠졌나?
추측 하면서 도착한 더덕을 캐든 자리에는 핸드폰이 보이지 않습니다.
결국, 보지 못한 것이지요.
옆에다 두고도...
그럼 빗기재 까지 갈 수밖에
걸어 온 길을 되돌아서 가면 올 때보다 더 멀게 느껴집니다.
빗기재에 도착.
수색하지만 없습니다.
영원사까지 다시 내려가야 하나 핸드폰을 포기해야 하나 고민합니다.
그리고 결론을 내립니다
"저들은 생짜 배기 초짜이고 내가 뛰면 금방 따라잡을 수 있을 거야"
무전기에서는 찾았는지 자꾸 물어 옵니다.
삼정산에 올라 있는데 그곳에서 기다리겠답니다.
빗기재에서 영원사로 내려가면서 온갖 생각을 합니다.
일행들에게 미안하기도 하고 어떻게 해야 할지...
산길도 모르는 사람들인데
다행히도 호진 형님이 있으니 조금은 마음을 놓습니다.
영원사로 다시 거의 다 내려갈 때쯤
빗기재에서 트렉을 찍었든 기억이 그때야 납니다.
또다시 백으로 올라가면서 뜁니다.
헐떡이며 도착한 빗기재에서 삼정산 쪽이 아닌 영원령 방향으로 올라가든
사람들을 기억합니다.
여기서 쉬었다면 혹시 핸드폰을 주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뒤를 따라서 올라 갑니다.
아니 또 뜁니다.
왜, 왜, 이런 멍청한 생각을 그 순간에 했을까요...
아침에 마라톤 하든 사람들을 보면서 뛰고 싶다 했더니 진짜로 산에서 내가 뜁니다.
오르막 그것도 산에서의 달리기는 참 죽을 맛입니다.
얼마를 뛰었는지 모릅니다.
한참 후에 세 사람의 뒤를 따라잡았습니다.
뻔한 대답을 듣고 다시 돌아 서는 길.
거기가 영원령 입니다.
아! 오늘 나는 바보가 되고 맙니다.
확 성질이 납니다.
"에이씨 됏다!.
고마 안 찾는다!. 이자뿐거 챠아삐라."
혼자 흐르는 땀을 짜내면서 중얼거리는데 무전이 날아옵니다.
호진 형님 혼자서 더덕을 캐든 자리로 가서 찾아냈답니다
그것도 눈에 쉽게 보이는 곳에서...
"핸드폰 찾았어! 어디당가?"
"빗기재 인데 어디서 찾았습니꺼"
"아이 머어 허다고 거까지 간당가 바로 옆에 더덕캔데 있더만.."
"....."
"어능 와야 삼정산에 있응께"
넹....
다시 뜁니다.
아 오르막 내리막, 미쳐 버리겠네 진짜....
주로에서 마라톤 하는 거 보다 더 힘듭니다.
에이씨 진짜 말이 씨가 되네. 아니 씨가 되뿐네.
바지 가랭이 까지 땀이 흐르도록 뛰어갑니다
딸랑거리는 소리가 들릴 정도로 말입니다.
겨우 삼정산 밑에 도착 할 때쯤
"상무주암으로"
그냥 오라는 무전이 옵니다
겨우 상무주암 입구에서 다시 합류하는데 미안하기도 하고 쪽팔리기도 하고
참 죽을 맛입니다.
"민폐를 만땅으로 끼쳐서 죄송합니다"
사과를 합니다.
우리 일행이야 내 더러분 성질을 아니까 암말도 안 하고....
" 돼아서야, 민민폐는 무슨 민폐. 찻았응께 되야아써 야~"
하며 호진 형님이 웃어 줍니다.
삼정산에서 그동안 이 사람들 이렇게 쉬었답니다.
상무주암.
무주.. 머물지 않는다.
머물지 않는다.
집착 하지 않겠다는 뜻인가?
모르겠습니다.
우매한 나는 사진 촬영을 금지한다는 푯말에 사진을 찍지 않았습니다.
상무주암 앞 좌선대에 자리를 잡고 점심을 먹습니다.
호진&옥자님의 정성 가득한 반찬에 다들 무척 호사스러운 점심을 먹었습니다.
나는 술만 먹었습니다.
문수암으로 갑니다.
천인굴
충청도 속리산 법주사에 계시다 오셨다는 스님은
친절하게 반겨주시며 시원한 매실차를 나누어 주십니다.
집사람과는 같은 고향 이라 급 친해집니다.
성당을 다니는 집사람이 부처님께 절을 올립니다.
얼떨결에 나도 절을 합니다.
문수암에서 주능선을 조망하며 한참을 쉽니다.
호진 형님으로부터 선물로 받은 두건을 해보았습니다.
처음 만난 사람이라고는 하지만 지리산은 모든 벽을 허물고 싶게 사람을 사귀게 하는 영험도 있나 봅니다.
몇 가지 먹거리를 드리고 물러납니다.
갑자기 10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조용한 암자에 들어와 분잡스럽게 한 것만 같습니다.
노루발풀
가치수염
삼불사 도착 전
또 휴식합니다.
나의 마라톤만 아니었다면 한결 더 여유로운 산행이었을 겁니다.
그래도 시간에 쫓기지는 않으니 다행입니다.
수행 중이라 사람을 들이지 않습니다.
조용히 지나가는 발길이 됩니다.
이제 약수암으로 내려갑니다.
중북부 칠암자 이 길은 내게 세 번째의 길입니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단 한 번도 칠암자를 모두 이어본 적이 없습니다.
그래서 다음에 또 오게 되는 미련을 남겨두게 됩니다.
꽃반지 하나를 만들어 주었습니다
지리산 첫 산행길에 줄 게 없어서,
참, 좋아하십니다.
산수국
마지막 남은 술을 다 비우고 도착한 약수암엔
수행 중에 있는 스님과 방문객 때문에 또 조용히 물러납니다.
임도를 따르지 않고 숲길을 따라 내려가는 길은 또렷했고
분명했습니다.
산수국인 거 같습니다만
모르겠습니다.
산책길 같은 풍경입니다.
부도탑을 보고갑니다.
개망초 흐드러지게 핀 곳에 부도가 있습니다.
실상사에 도착합니다.
5시가 됩니다.
차량을 회수하고 어영부영하는 사이 시간이 많이 지나갑니다
산유화 누님께 전화를 드리니 많이 기다리긴 한 모양인데 부담스럽다 합니다.
바로 어제 산행을 하고 잠자리도 편하지 않았을 텐데 도움을 줄 수 없어 많이 미안해집니다.
"괘안타! 괘안타!"
하는 말을 에라 모르겠다.
그냥 곧이 곧대로 믿기로 합니다.
시큰거리는 발목때문에 술만 들이킨 나는 계속 헛소리가 나옵니다.
거제까지 가야 하는 일행의 바쁜 시간과 창원까지의 거리도 만만찮아
저녁을 서둘러 먹기로 합니다.
그래서
마천의 어느 식당에 들여가 저녁을 하며 또 나만 마십니다.
오늘은 술도 얼른 취하질 않고 감질나게 촉이 늦게 옵니다.
결국, 차 안에서 만취 상태가 됩니다.
기린초
일월비비추
돌양지꽃
먼 거리 기꺼이 달려와서 산행을 함께 해준 호진&옥자님
기다려주고, 챙겨주고,결정적으로 핸드폰을 다시 찾아주셔서 감사드립니다.
그래도 산행 내내 행복했고 무척 즐거웠습니다.
또, 감자밭 일 끝내 도움 주지 못해서 억수로 미안했든 산유화 누님.
괜히 먼저 전화를 드리는 바람에 기대하게 만들어 놓고 가지도 못해 더욱 많이 미안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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