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밀하게 위대하게
일시:2013년 6월 9일
걸어간 길:중산리-칼바위-유암폭포-통신골-통천문위 철사다리-천왕봉-로타리산장-자연학습원
산행자: 상가식구
거리및소요시간:10시간.12.9km
2004년 6월 지리산을 처음 올랐다.
지리산을 전혀 알지 못했던 그때는 아무런 느낌도 감동도 없는 그저 고통스러운 길이었다.
하산할 때 그 길고 긴 돌투성이 길에서 다시는 오지 않는다 다짐하고 다짐했었다.
그저 죽을 것 같은 심정이었다.
그리고 삼일을 앓아누웠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오기가 생기기 시작하더라.
딴에는 운동도 좀 했고 누구보다 건강에는 자신 있었다.
체력도 남들에 뒤지지 않는다. 자부하든 내가
이렇게 별 것 아닐 수가 있는가 하는 오기 때문에 동네 뒷산부터 다시 시작했다.
그리고 전투하듯이 지리산을 다녔다.
2013년 6월 중산리에서 천왕봉으로 간다.
죽을 것 같았든 그 지리산 길을 이제 사람들을 이끌고 안내 산행을 한다.
이제는 앞뒤 보지 않고 오르기만 하는 산행이 아니라 산을 제법 볼 줄도 안다.
길가에 핀 야생화에도 눈길이 가고, 울어대는 새소리도 들리고, 계곡의 물소리, 지나가는 바람까지도
느끼고 보며 걸어간다.
이제 조금씩 산이 보이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중에서도 얼굴을 스치며 살랑살랑 불어오는 지리산의 입김 같은 바람이 난 참 좋다.
칼바위를 지나 장터목을 거쳐 제석봉을 오르고 천왕봉에 설 것이다.
이 살랑거리는 바람을 한껏 여유롭게 느긋이 즐기며
아주 착하게 길을 따라 천천히 걸을 것이다.
오늘 산행에는 간혹 나를 따라 지리산 몇 군데를 가보았고,
지리산이 아무리 좋아도 밥은 주지 않는데 비해
매일 나에게 밥을 해주는 옆지기도 있다.
그래서 더욱 착하게 다녀와야 한다.
통천길이라는 이름을 단 새로운 구조물이 입구에 생겼다.
언제 생겼는지는 모르겠다.
형님, 동생 으로 지내는 지인들과 오손도손 산길을 걷는다.
다들 참 열심히 사시는 분 들이다.
우찌하다 나의 꼬임에 빠져서 마라톤도 경험하고, 이제 지리산까지 오게 되었다.
칼바위에서 잠시 휴식을 한다.
빨리 갈 이유도 없다.
오늘 어차피 천천히 가기로 한 것을.
칼바위
계곡의 물소리와 이맘때 어김없이 산속을 울리는 "홀딱 벗고" 소리가 낭낭하다.
사람은 산을 가려 갈 수 있지만
산은 사람을 가려 들이지 않는다.
생각보다 모두 잘 걷는다.
이나무를 혹시 보았는가?
다 보여 준다.
텅 빈 속 까지도 자연은 감추지 않고 다 보여준다.
또 휴식이다.
막걸리 대신 양주를 마신다.
이 사람들 마냥 좋아라 한다.
좋다 한다, 잘 왔다 한다.
돌 위에 돌을 올리며 정성을 들인다.
살아온 날이 그렇게 정성스러웠는데, 그보다 더 정성스럽게 마음을 올린다.
유암폭포에서 또 한 번을 쉰다.
통신골
적어도 오늘은 그냥 지나쳐야 하는 곳, 오늘은 욕심을 내지 않아야 하는 곳, 숙제로 남아있는 저곳이
갑자기 강하게 확 땡기는데, 스마트폰을 손가락으로 쫘악 벌리면 확대되는 장면처럼
확대되어 내 눈으로 들어오는 골 앞에서 가슴이 뛴다.
걸음을 멈춘다.
이 몹쓸 땡김을 억누를 방법이 없다.
망설이다, 주저한다.
어쩐다....
어느 사이 나는 사람들을 설득한다.
아니 꼬드긴다.
"원래 가는 길을 바로 확 질러서 천왕봉까지 갈 수 있다"고
바로 넘어온다.
"그라모 그리 가자!"
이젠
계획되지 않았든, 예정에 없든 길로 간다.
그렇게 들어선 이 길은 통신골이다.
마음속에 은밀하게 움츠리고 있었던 길을 은밀한 걸음으로 들어간다.
하늘은 열려 있고 날씨는 맑다.
한 잔을 올리고 무사히 내려갈 수 있도록 먼저 빌어본다.
창원의 근교 산들을 몇 차례 연습 삼아 다녔고,
마라톤을 완주한 체력들이라 별로 무리는 없을 거라는 판단은 있었다.
계곡을 따라 계속 올라가라는 말에 거침없이 질주하는 한 여자가 있다.
잘 간다. 정말 잘 간다.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모습으로 앞에 선 그 여자는 집사람이다.
다른 사람들은 오늘 지리산 머리 올리는 날이다.
그래도 몇 번 지리산을 다녔다고 제법이다.
천왕봉으로 붙는 길이 아닌 통천문으로 방향을 정하고 계속 오름을 한다.
운동은 조금씩 하지만 간밤에는 잠도 많이 부족했었는데 저 정도로 선두에서 잘 올라갈 줄은 몰랐다.
올록볼록 엠보싱이라고 놀려 댔더니 오늘 뭔가를 보여 줄 모양이다.
계곡만을 계속 고집하며 올라가는 길이라
경사는 심해도 미끄럼에만 신경을 쓰면 그리 힘든 길은 아니다.
간혹 네발을 사용 해야 하는 때도 많지만.
바람이 분다.
가슴 두근거리는 사랑이 찾아온다.
남몰래 하는 사랑이라 하더라도 지금 나의 욕망은 금지된 욕망을 최대한 욕망한다.
<은밀하게> 숨어든 이곳을 올라 <위대하게> 저위에 서자.
숨이 가빠지고 맥박이 강하게 요동친다.
이건 사랑이다.
내 마음 속까지 스며들어 가슴 뛰게 하는 이곳, 이 바람을 사랑한다.
나는 얼마나 이 사랑의 열병을 앓아야 할까.
좋아한다, 사랑한다 말해버리면 그것들이 변하거나 사라질까 하는 불안감.
그래서 그토록 사랑이라는 말을 하지 못하고 주저한다.
길은 단순했지만
물길이 끊기면서 어느 순간
미역줄과 잡목이 앞으로 나갈 수 없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길을 잃었다.
꼭대님은 "길을 잃는 것이 길을 찾는 것"이라 했다
일행을 쉬게 하고 길을 찾는 마음이 급해진다.
한 분의 형님과 둘이서 길을 찾다 계곡 우측으로 넘어간다.
급경사의 좁은 골이 나온다.
다른 길이 열린 것이다. 잃어버린 길 때문에 찾은 길 인 것이다.
올라온 골을 버리고 이 골을 다시 오른다.
살랑거리든 바람은 얼굴을 바꾸고 짙은 운무로 돌변했다.
바람도 골을 따라 심해진다.
무조건 끝까지 올라간다.
발을 잘못 옮기면 돌이 굴러내려 위험하다.
간격을 두고 천천히 올라간다.
올라서고 보니 주능선 통천문을 조금 지나 철사다리 바로 아래다.
철사다리를 내려서는 사람들이 보이고 바위 뒤에 은밀하고 완벽하게 주능에 올라선다.
일단 밥을 먹기로 한다.
골을 통과해 불어오는 바람과 물기가 가득한 안개는 한기가 들도록 춥다.
빠른 식사를 끝내고 천왕봉으로 다시 올라간다.
<위대하게> 지리산 정상에 선다.
멋모르고 통신골로 올라와 이곳에 선다.
은밀하게,위대하게.
바람이 너무 심해 오래 머무를 수가 없다.
앞도 잘 보이지 않는 짙은 안개 속엔 빗물처럼 물이 흐른다
얼굴을 타고 흐른 물에서 짭조름한 맛이 난다.
"산과 삶은 이기려 하면 안 된다"고 산나그네님은 말했다. (지리산,빗점골의 가을)
삶도 그런 것이다.
그냥 살아질 것이다.
힘들면 힘든 대로, 슬프면 슬픈 대로,기쁘면 또한 기쁜 대로.
이 산을 이제 내려간다.
내가 물었다. 어땟냐고?
"다시는 안 온다"고 했다. 그러나 나는 안다.
일주일만 지나면 힘든 기억은 왜곡될 것이고, 그리고 "지리산 가자" 할 것을.
숲사이로 안개가 짙게 내려앉아 몽한적 분위기가 느껴진다.
그 숲을 바라본다.
꿈인가 아련한 산속의 시간이다.
법계사에서는 오늘 산신제를 지냈다고 한다.
일주문은 사라지고 새롭게 복원한다고 한다.
오를 땐 통천길이더니 내려올 땐 순례길이다.
올라갈 땐 은밀했지만 내려온 지금은 자신들이 위대하게 느껴질 것이다.
내려오는 길도 선두에서 지치는 기색 없이 내달린 집사람은 빨리 오라고 부른다.
역시 씩씩한 내 마누라 답다.
택시처럼 버스를 잡아놓고 기다린다.
마지막 일행이 타고 잘 포장된 길을 내려간다.
<건강과 벗>
돈 보따리 짊어지고
요양원 가봐야 무슨 소용 있나요?
경로당 가서 학력 자랑해봐야 누가 알아주나요?
늙으면 있는 자나, 없는 자나, 그자가 그자요.
배운 자나 못 배운 자나 거기서 거기랍니다.
병원 가서 특실입원 독방이면 무슨 소용 있나요?
지하철 타고 경로석 앉아 폼 내봐야 누가 알아주나요?
늙어면 잘 생긴 자나 못생긴 자나 그 자가 그 자요.
모두가 도토리 키재기요 거기서 거기라요.
왕년에 회전의자 안 돌려 본 사람 없고
소싯적 한가락 안 해본 사람 어디 있습니까.
지난날의 영화는 다 필름처럼 지나간 옛일
돈과 명예는 아침이슬처럼 사라지고 마는 허무한 것이랍니다.
자식 자랑도 하지 마십시요
반에서 일등 했다 자랑하고 나니 바로 옆에 전교 일등 있더랍니다.
돈 자랑도 하지 마십시오
돈 자랑하고 나니 저축은행 비리 터져 골 때리고 있더랍니다
세계적인 갑부 카네기, 포드, 록펠러, 진시황은 돈 없어 죽었겠습니까?
건강만 있으면 대통령도 천하의 갑부도 부럽지 않습니다.
"전문세락"이란 말이 있습니다.
개똥밭에 뒹굴어도 저승보다는 현 세상이 더 즐겁다는 뜻입니다.
노년 인생 즐겁게 살려거든 친구 건강 많이 챙기십시요.
버스 지나간 뒤 손들면 태워줄 사람 아무도 없듯이
뒤늦게 건강 타령 해봐야 이미 버스는 지나간 뒤랍니다.
천하를 다 잃어도 뭐니 뭐니 해도 건강이 최고입니다.
주의지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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