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신봉-한벗샘
행동팀107-지리 84
일시:2020년 07월 12일
산행자:에스테야, 권영구, 이순애, 최옥희, 김은의, 최정남, 둘렘이, 수야 (8명)
걸어간 길:단천마을-단천골 왼골-삼신봉-단천지능-단천마을
산행시간:07시 50분~19시 까지 (11시간 10분) 11.5km
1차:3월 8일 외둔~성재봉~원강재
2차:4월 12일 원강재~상불재
3차:5월 10일 상불재~삼신봉
4차:7월 12일 삼신봉~한벗샘
단천마을에서 시작하는 산행을 몇 번 했었지만 마을 위쪽, 마을회관까지 차를 타고 올라오기는 처음이었다.
늘, 마을 입구 버스 회차로 부근에 주차를 했었다.
남부 능선 자락 해발 500m 부근의 작은 마을, 단천마을은 붉은 내- 밝은 내- 박달 내로 불렸다.
화개면지에는 '박달나무가 많은 시냇가 마을'이라고 지명 해석을 하고 있는데 박달나무 단(檀) 자를 써서 단천이 되었다 한다.
이후 박달 단자와 더불어 붉을 단(丹) 자를 같이 쓰고 있으며, 이는 '늦가을 맑은 계류에 물든 단풍색이 아름답기 때문'이라고 적고 있다.
비가 내린다는 일기예보에 이번에는 주춤거리지 않았다.
비를 맞고라도 산행은 강행한다는 각오를 미리 했다.
산행을 시작하는 아침부터 하늘은 불만 가득한 얼굴로 잔뜩 찌푸려 있었다.
언제가 될지는 모르나 한바탕 비가 쏟아질 것은 분명해 보였다.
세 번째 들어가는 단천골 왼골 산행이었다.
꼭 다시 한번 걸어 보아야겠다고 여러 번 생각했든 길이라 숙제를 하나 끝내는 마음으로 임했다.
쉽지 않고 녹녹하지 않은 산길, 단단히 마음부터 각오하고 걸었다.
언제나 각오된 것들은 감당할 만했다.
각오되지 않은 갑작스러운 것들이 늘, 힘이 드는 법이다.
지리산 남북 종주길을 따라 좌우 능선과 계곡, 여러 코스로 걷는 이 여정을 시작한 이례
흐리거나, 전 날 또는 당일에 비가 내렸다.
그 덕분에 운무에 쌓인 지리산의 그림 같은 풍경을 간혹 만끽하기도 했었지만, 6월은 휴등을 해야만 했었다.
처음 길을 나설 때 16명이든 인원이 9명으로 대폭 줄어 이번에는 비가 내려도 피하지 않기로 했다.
계곡을 건너야 하는 지점에서 불어난 물 때문에 이곳저곳을 살피다 등산화를 벗지 않고도 건널 수 있는 곳을 찾아
모두 무사히 건너갔다.
은의님은 체력과 함께 걸음이 날이 갈수록 가볍고 빨라지는 것만 같았다.
산행 전, 항상 적당히, 적게 가져오라는 말을 해도 그녀의 배낭에서는 언제나 넘쳐나게 많은 음식들이
쏟아져 나오곤 했다.
정작 자신이 먹는 것보다 몇 배의 많은 그것들은 다른 사람을 위한 것 들이다.
무거운 배낭과 험한 산길에서도 늘, 생글생글 웃는 그녀는 항상 밝아서 무척 예쁘다.
골을 따라 계속 오르면서 오른쪽 용추폭포 방향의 큰골을 지나고 왼골을 따라 오르게 된다.
어느 사이 온몸은 벌써 땀으로 젖어 있었다.
걸음을 멈출 때마다 계곡의 웅장한 물소리만으로도 갈증에 마시는 물 한 모금처럼 시원하였다.
여러 번 계곡을 건넜다.
긴 다리와 짧은 다리들이 각자의 방식대로 건너뛰었다.
한 번에 길게 뛴 긴 다리도, 두 번으로 나눠 뛴 짧은 다리로도 아무도 빠지지 않았다.
사람은 각자의 방식대로 살아내는 것이다.
이 험한 산길을 수차례 오르내리며 길을 이어놓은 대장의 표지기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단천골을 갈 거라는 말에 대장님은 트랙을 보내주었다.
대장이 걸어간 길을 그대로 따라 올랐다.
맨 앞에서 산길을 걸을 때 제일 성가신 것은 거미줄이다.
수없이 얼굴에 엉겨 붙는 거미줄 때문에 걸음보다 먼저 스틱으로 앞쪽을 먼저 휘젓는 팔이 뻐근할 정도였다.
계곡을 벗어난 길은 사면을 따라 산죽과 너들을 통과해야 했다.
축축하고 습기 찬 산죽밭에서 바지는 비를 맞기도 전에 이미 물기에 젖어갔다.
11시가 넘어가면서 참고 참았든 비가 드디어 소리를 내며 후드득 내리기 시작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 소리는 빨라진 심장 박동과 함께 커져만 갔다.
오름길 희미한 산길은 멀게 느껴졌다.
지도를 몇 번이고 살피며 힘을 쏟아붓자 삼신봉은 가까이 다가와 있었다.
얼굴에는 땀과 빗물이 썩여 흘렀다.
노랑망태버섯
13시 10분.
삼신봉에 도착했다.
단천마을에서 5km, 산행 시작 5시간 20분이 지났다.
다우 형님의 표지기를 충실히 따랐지만 간혹은 조금씩 벗어나기도 했다.
비는 오랫동안 찌푸린 것만큼 멈출 기색 없이 계속 내렸다.
비를 쫄딱 맞고도 카메라만 들이대면 산쟁이들은 웃었다.
삼신봉 정상에는 부지런한 이 분들만 올랐다.
늦은 점심을 먹었다.
비가 내려도 먹어야 했다.
삼신봉 정상 아래 바위틈은 절묘한 밥자리가 되어 주었다.
삼신봉에서 한벗 샘까지가 이어야 할 구간이었다.
나는 남부 능선 구간 중 유일하게 이 길만은 처음 걷는 길이었다.
비는 쉬지 않고 내리고, 좌우 아무 조망 조차 없는 산길이지만 처음 걸어 본다는 것 만으로 만족스러웠다.
능선길은 부드러웠고 유순하였다.
구조목 14-09에서 서서 잠시 쉬었다.
산행거리 7km, 산행 7시간 40분을 지나고 있었다.
급하게 걷지 않았고 자주 쉬어가며 걸었다.
걸음이 빠르지 않은 탓도 있겠지만 기록을 세우듯 산행하지 않기에 시간은 언제나 별로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다.
구조목 14-10 바로 우측 거림골에서 올라오는 자빠진 골 위 한벗 샘을 지나갔다.
다음 길은 여기서 또 이어질 것이었다.
한벗 샘을 약간 지나 능선을 따라 걷든 길에서 좌측 단천 지능으로 접어들었다.
이 지능선을 멀리서 바라볼 때면 언젠가 꼭 한번 걸어보고 싶었다.
단천 지능도 이번에 처음으로 걸어보는 길이었다.
한층 더 세차게 비가 내렸고, 급경사의 미끄러운 산길에서 비까지 내리니 엉덩방아를 찧는 것은 예사였다.
자주 넘어지면 요령이 생긴다.
사람은 태어나 첫걸음을 걷기까지 3,000번 이상을 넘어진다고 한다.
이미 우리의 삶은 3,000번 이상을 넘어져 보았고, 이후로도 수없이 넘어지며 걸어왔다.
두려워하거나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넘어지면 일어나면 그만이다.
단천굴은 송정굴과 비슷하였다.
단천 독바위를 지나면서 사진은 더 이상 찍지 못했다.
독바위를 우회하지 않았다.
영구 형님이 앞에서 길을 찾아 동분서주했다.
벼랑 끝 아슬아슬한 곳으로 길을 찾아 독바위에 바싹 붙어 통과하였다.
단천 독바위는 멀리서도 그 모습이 뚜렷하였듯이 웅장했다.
단천 지능에서 단천마을로 내려오는 길은 주의가 필요했다.
지도에 없는 반듯한 길을 따르다 되돌아오기도 하고 묵은 고사리밭을 지나 임도길과 만나 걸어 내렸다.
산행 후 이 곳 산길을 다시 확인해야겠다 싶어 금농 선생님과 애기나리님과 산행을 계획하였으나
태풍으로 미루어졌다.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이 산길은 또 가게 될 것 같다.
머리에서 발끝까지 이미 빗물과 땀으로 범벅이 되었기에 비 따위는 차라리 시원해서 좋았다.
마을회관에 도착하여 그곳의 수돗가에서 옷을 입은 채로 노상 샤워를 했다.
마을회관에서 환복을 하고 청소를 깨끗이 한 다음 단천마을을 벗어났다.
해인사 장경판전 주련에 이런 글이 있다 한다.
'원각도량하처(圓覺度量何處)'
깨달음의 도량 즉, 행복한 세상은 어디인가?
그 질문의 답은 맞은편 기둥에 새겨져 있다고 한다.
'현금생사즉시(現今生死卽時)'
지금 생사가 있는 이곳, 당신이 발 딛고 있는 이곳이다.
행복하자
아프지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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