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종주 2차(원강재 - 상불재)
행동팀101-지리 78
일시:2020년 4월 12일 (일요일)
산행자: 연하, 풀내음, 황순진, 김은의, 최옥희, 권영구, 이순애, 이종철, 최미희, 최규다,
들풀, 최정남, 둘렘이, 수야 (총 14명)
걸어간 길: 상훈교-원강재-남부능선-내원재-관음봉-삼성궁 삼거리-상불재-불일폭포-쌍계사
산행시간:8시 49분~16시 49분 (8시간) 11.2km
2020-04-12 남북종주2차(원강재-상불재).gpx
3월 8일: 1차 외둔-성제봉-원강재,
4월 12일: 2차 원강재- 상불재(삼성궁 삼거리)
7시 30분 집결장소 화개장터 주차장
비가 내렸다.
아주 얄밉게 비는 그칠 듯이 아닐 듯이 오락가락하고 있었다.
산행 시작 전 난감하기 짝이 없는 일이었다.
밍그적거리며 산행은 포기하고 어디 뜨근한 곳에 가서 놀자는 쪽으로 말들이 오가고 있었다.
일단, 상훈사까지 가서 8시까지 비가 오지 않으면 산행을 하고
그 시간까지 비가 내리면 산행을 포기하기로 했다.
상훈사 입구 상훈교 옆.
길바닥에 쪼그리고 앉아 라면을 끓였다.
그냥 라면이 아니다. 쓰러진 소도 벌떡 일으켜 세운다는 낙지인지 문어인지 주꾸미인지 하여튼
다리가 여럿 달린 그놈들을 많이도 넣어서 끓였더라.
추운 날씨 탓인지 눈물 나게 그놈의 라면은 맛있더라.
이 아침 치사량에 가까운 감동적인 한마디
"라면 먹고 갈래?"
비는 그쳤다.
햇볕이 나왔다.
조금 쌀쌀하기는 해도, 내린 비를 머금은 산죽이 조금 걱정되기는 해도, 산을 오르지 못할 만큼 이유로 합당하지 않았다.
출발 전 상훈사 입구에서 단체로 사진을 찍었다.
미륵선원이 상훈사인 모양이다.
상훈교 다리를 건너 상훈사 방향으로 조금 걸어갔다.
부처님 오신 날은 아직 한참 멀었는데 절 입구부터 연등이 미리 달려있었다.
원강재로 올라가는 가장 가까운 길을 선택하고 치고 올랐다.
말라 버린 너들 지대인 건계곡으로 험하지 않은 산길은 짧아서 힘들이지 않고 오를만했다.
흩어져서 각자 오르는 길은 몹시 소란스러웠다.
곁에 사람과 주고받는 이야기 소리와 웃음소리가 짧은 골짜기를 물소리 대신 가득 채웠다.
금괭이 눈 이란다.
처음 보는 신기한 놈이라 엎드려 담아 보았다.
원강재에 올라서고, 한 달 전 숨겨놓은 것들을 찾아왔다.
시원한 한 모금이 목을 타고 굵은 소리를 내며 넘어갔다.
휴식도 여지없이 시끌벅적했다.
산행을 포기했다면 후회할 뻔했다는 말들이 오갔다.
비가 멈추고 햇살이 퍼지면서 표정들이 한층 밝아졌다.
최 씨들만 모였다.
유독 최 씨 성이 많다.
최 씨들의 단체 사진을 부러워 하든 김 씨가 기어이 김 씨들을 모았다.
두 이 씨 사이에 성 씨가 끼어들었다.
산에 오기 전 어젯밤, 이 부부에게 분명 무슨 좋은 일이 있었든 게 분명해 보였다.
딱 붙어서 좋아 죽는다.
지난번 걸었든 형제봉 능선과 활공장이 뒤에서 멀어져 갔다.
원강재를 조금 지나자 올라온 골짝과 상훈사가 내려다 보였다.
상훈사에 들어가 보지 못한 것이 많이 아쉬웠다.
언젠가 기회가 또 오겠지.
비가 온 뒤라 멀리 왕시루봉 근처에는 구름이 가득 들어 차 있었다.
한 달 만이지?
임도길이 여기서 끝나고 본격적인 산길로 들어갔다.
본격적이라는 말은 임도가 아닌 산길이라는 말이며 그 길은 긴 산죽밭의 서막이었다.
등로를 따라가는 길은 계속 산죽과의 한판이었다.
키가 크고 작을 뿐, 길은 산죽 사이로 지겹게 연결되었다.
그래도 지리산 다른 곳의 산죽과 비교해 가며 처음에는 걸을만하다고들 했다.
서서히 흐려지든 날씨는 기이한 바위를 지나가는 이무렵부터 급변하기 시작했다.
미친* 오줌 싸듯이 날씨는 참으로 요상하게 변덕스러웠다.
눈 발이 날리기 시작했다. 바람은 차가웠다.
구제봉 능선이 오른쪽으로 보였다.
흐린 날씨 탓에 먼 조망은 없었다.
육안으로 멀리 철탑 부근의 회남재가 겨우 보였다.
로프가 나타나고 이 구간을 올라서자 바람은 더 차가워졌고, 눈이 제법 내릴 태세로 휘날렸다.
한겨울에 느끼는 체감으로 얇은 옷을 입은 사람들은 한기를 고스란히 견뎌야 했다.
능선에서 조금 내려서자 바람이 막힌 곳에서는 추위를 느끼지 않을 만큼 포근했다.
앞서 내린 눈이 군데군데 쌓였고, 나뭇가지에도 제법 쌓인 곳이 있었다.
산죽 사이를 걷고 있는 동안 바지에서 물이 흘러내렸다.
윗옷은 축축하게 젖어 차가운 기운이 또다시 몸속으로 빠르게 파고들었다.
서서히 지겨워지기 시작하는 산죽은 더욱 기세를 세워 키를 훌쩍 넘어 있었다.
꽃은 피어났거만, 눈이 내리는 봄은 봄이 아니었다.
외롭게 땅을 뚫고 올라온 한송이 야생화는 오들오들 떨고 있는 것 같이 느껴졌다.
세상을 자신의 관점에서 바라보니 느낌은 각자가 다르겠지만 저 순간 나는 그렇게 느끼고 있었다.
눈바람에 추운 산죽길은 간단하지 않았다.
시끌벅적하든 초반 분위기와는 달리 입들도 추위에 얼어붙었는지 많이 조용해져 갔다.
안개로 들어찬 아래는 잘 보이지 않았다.
오르락내리락 길은 산길답게 계속 펼쳐졌다.
날씨만 좋으면 뭐, 그리 힘든 구간은 아니었을 것이다.
다음 코스의 시작점인 삼성궁 삼거리에 도착했다.
여기서부터 또 길을 이어 걸을 것이다.
점심 먹을 자리를 잡고 앉을 때만 하더라도 괜찮았다.
식사를 하고 있는 동안 기온은 급격하게 더 떨어지고 눈바람이 점점 강해져 왔다.
서둘러 식사를 마치고, 자리를 정리했다.
한겨울도 아닌데 그야말로 사시나무 떨듯이 오지게 떨었다.
앉았다 일어나는데 얼마나 웅크렸든지 모두 아이고 소리가 곡소리처럼 났다.
하산길은 추위 때문인지 걸음들이 무척빨랐다.
눈은 이제 비로 변해 갔다.
봄비도 아닌 것이, 겨울비도 아닌 것을 한동안 맞으며 걸었다.
한참을 걷고, 고도가 낮아지자 추위도 멀어져갔다.
몸이 녹녹해지자 입들도 풀렸다.
걸을만 했다.
정신이 없든 추위가 물러나자
길도 보이고 나무도 보이고 사람도 보이기 시작했다.
이럴 때 다 표시 난다.
혼자 살겠다고 후다닥 앞서서 도망가듯이 내 뺀 사람.
뒤도 돌아보지 않고 가던데?
아니라고 그게 아니라고 하면 더 의심받지롱.
내 보다 더 앞서 간 것들!.
내 보다 뒤에 온 분들.
저 맨 앞에, 저 양반은 항상 맨 뒤에 있던 그 양반 아이가?
어매, 언제 맨 앞에 갔댜아?
살아 볼꺼라고 저리 내 뺀겨?
불러도 뒤도 안 돌아보는구먼.
불일폭포를 보러 가기로 했다.
들어가는 입구 불일암 아래 완폭대 각자를 다시 한번 살폈다.
현석 이호신 작가는 지리산을 그리는 작가로 전시회에 가 본적 있고,
만난 적이 있어 다시 한번 더 유심히 보게 되었다.
불일폭포에서 단체 때 샷을 때렸다.
추위에 개 떨듯이 떨었지만 표정들은 씩씩하네.
불일산방은 폐허가 되어 있었다.
반도지 연못 속엔 새까맣게 올챙이들이 들어차 있었다.
소망탑
금낭화가 주인 잃은 산방을 지키며 쓸쓸하게 고개를 숙이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지리산을 처음으로 들어와 본 곳이 이곳이었다.
등산화가 아닌 운동화를 신고 산보하듯 걸어 올라 온 곳.
거리가 얼마인지, 돌아갈 길은 생각도 하지 않고 무작정 걸어왔었다.
큰 고욤나무 아래에서 마셨든 시원한 막걸리 맛이 아직도 생생한 곳이다.
홍도화라고 팀장님이 알려주었다.
저 이쁜 아줌마는 왜 저리 험악한 얼굴들 곁에 갔을꼬?
최치원 선생이 학을 불러 타고 다녔다는 환학대
내려가는 길에 젊은 남녀가 외출복 차림에 올라오고 있었다.
아마도 쌍계사에 왔다가 여기까지 걸어 올라온 모양이었다.
내가 아주 오래전에 그랬든 것처럼 아마도 그럴 것이다.
불일폭포까지는 가겠지?
내 속으로 그리 생각했다.
다시 내려오는 길은 참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것이오.
꽃잎이 흩날린 꽃길을 걸어 내리는 동안 추위에 떨었든 시간들은 다 잊힌 듯
유쾌한 웃음소리가 꽃잎처럼 뒤로 흩어졌다.
사람주 나무 이건 좀 기억하기가 쉬울 듯
쌍계사로 들어가면서
쌍계사를 나오면서
미리 세워 두었든 차가 있는 주차장으로 나오면서 앞을 바라보니 맑게 게인 하늘 아래 황장산이 싱그럽게 푸르고 있었다.
상훈사에 세워 둔 차를 모두 회수해 오는 동안
시간에 맞추어 사놓은 뜨끈한 붕어빵을 한입 물었다.
입 안에는 달달함이 전율처럼 펴졌다.
그리고,
홀가분하면서 뿌듯한 기분과 함께 아득하면서도 상그러운 피로감이 전신을 적셔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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