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바위골
독오당 88차 정기산행
일시:2017년 11월 5일 (일)
산행자:다우님, 에스테야님, 귀소본능님, 수야 (4명)
걸어간 길:직전-표고막터-옛길-구계교-면바위골 좌측능선(오른기준)-솔봉-표고둠벙
-무착대-면바위골-직전
산행시간:07시 46분 ~16시 57분 (9시간 10분), 11km(오룩스기록 기준)
지리산길 지도에 피아골 구계교 우측 골짜기가 장작터골로 표기되어있다.
이는 표기 오류이다.
면바위골이 정확한 지명이다.
대장님은 장작터골로 표기된 골이 면바위 골이며
오늘의 산행지라고 미리 공지하였다.
우리 대장은 어디서, 어떻게 이런 것을 알았는지,
지리산에 관한 해박한 지식과 열정은 존경받아 마땅한 대장이다.
펙트체크를 겸한 아침 식사을 계곡산장에서 한다.
피아골 계곡식당의 염성준 님은 오랫동안 피아골대피소에서 근무했다.
피아골 부근을 손금보듯 세세하고 자세하게 알고 계신 분이다.
장작터골과 면바위골에 대해 대장님이 질문을 하자
지형도까지 그려 가며 한순간도 막힘없이 자세한 설명을 해주신다.
골짜기가 벽면의 면 같다 하여 면바위골이라고 한다.
장작터골의 위치는 면바위골에 가기 전 계곡이며
예전에 장작을 해 모아두고 생계를 이어간 마을이 있었다고 한다.
지명과 위치에 대한 설명으로 식사시간은 길어졌다.
대장님의 밥은 설명에 집중하느라 그대로 식어 갔다.
우리는 귀로 듣고 입으로 밥을 먹는 두 가지를 동시에 하므로 밥그릇은 빠르게 비워졌다.
하지만 무엇을 들었는지 밥그릇이 비워지는 속도 만큼 빨리 잊혀 아무 기억이 없다.
단풍철답게 사람들이 피아골로 밀려 들어간다.
형형색색 울긋불긋한 사람들의 복장이 그대로 단풍처럼 화려하다.
산의 중반부 이상은 낙엽으로 변해가며 겨울을 예비하듯 바싹한 느낌이다.
바람에 떨며 매달려 있는 나뭇잎들이 가을을 겨우 붙들고 있는 듯하다.
산행을 준비하는 동안 손끝이 시립다.
걷는 동안 열이 올라 몸은 금방 움츠림에서 풀린다.
언제 이길을 걸었는지
그때가 언제인지, 어디를 갔는지, 누구와 같이 갔는지
기억되지 않는 날들을 생각해 내느라 한동안 모두 애를 쓴다.
어쩔 수 없는 나이 듦을 모두 다 스스로 인정한다.
찾아보니 2012년과 2014년 이후 3년 만이다.
기억력 좋은 생생한 젊은 피를 수혈하자는 대화는 이내 발자국 소리 뒤로
허허한 웃음소리와 함께 사라진다.
가을이면 재발하는 고질병 같은 가을 앓이를 심하게 했다.
며칠 일어나지도 못하고 쓰러져 있었다.
멀리서 빈다 -나태주
어딘가 내가 모르느 곳에
보이지 않는 꽃처럼 웃고 있는
너 한사람으로 하여 세상은
다시 한 번 눈부신 아침이 되고
어딘가 네가 모르는 곳에
보이지 않는 풀잎처럼 숨 쉬고 있는
나 한사람으로 하여 세상은
다시 한 번 고요한 저녁이 온다
가을이다
부디 아프지마라
표고막터에서 옛길로 들어간다.
몸이 머리보다 먼저 산길을 기억해 낸다.
머리가 기억해 내지 못한 지난 시간을 산길에 몸이 닿으니 기억은 저절로 살아난다.
후박나무라고 사람들이 잘못 알고 있는 이곳의 나무는 일본목련 나무라고 대장님이 알려준다.
78.5.7
나무에 새겨진 날짜다.
나는 78년 5월 7일에 낙서를 했다고 하고
에스테야 형님은 낙서를 한 사람의 생일이 78년 5월 7일이라고 했다.
78년 5월 7일은 같으나 해석은 다르다.
그럴 수도 있겠구나.
어떤 경우와 어떤 상황, 어떤 것에 대해 바라보는 관점이 다름은
살아가는 사람의 숫자만큼 다양하다.
나와 다름을 인정하고, 이해한다는 것.
내 주장과 고집만 내세우는 나를 돌아본다.
우리는 별 영양가도 없는 이런 것으로도 아웅다웅 논쟁한다.
낙서를 한 사람 생일이면 어떻고, 왔다 간 날짜면 어떤가.
산길을 가는 우리와는 상관도 없는 일인데 말이다.
<그런데 보통 이렇게 낙서를 할 때는 날짜를 쓰지 자신의 생일을 쓰지는 않은 게 아닌가??> ㅋㅋㅋ
단풍 구경을 나온 것인지 사람 구경을 나온 것인지 견공이 유유자적이다.
개 팔자 상팔자다.
요즘 목줄 없이 저렇게 돌아다니면 안될 텐데...
그러나 그냥 두자 저것들은 저래야 저것들다운 저것들일 것이다.
구계교에서 면바위골로 진입하고 다시 계곡을 건너 좌측 능선으로 오른다.
오름 기준으로 면바위골 좌측 능선이다.
대장님은 능선으로 오르고 계곡으로 내려올 것인지
계곡으로 오르고 능선으로 하산할 것인지를 묻는다.
왔다 갔다 의견이 분분했지만, 결국 능선을 먼저 오른다.
종아리가 탱탱하게 팽창되고 땅겨온다.
운동 부족이 여실히 느껴진다.
땀도 삐질삐질 나오고 호흡은 가쁘다.
몸은 거짓을 모른다.
계속 이렇게 몸을 방치하면 안되겠다는 절박감이 몰려온다.
또, 생각한다.
술도 끊고, 담배도 끊고.....
점선으로 표시된 지리산길의 트랙을 따르고 싶어도 길이 보이지 않는다.
무작정 능선으로 치고 오른다.
능선에 올라서 이제는 좀 편한 길이 있을까 했더니 거대한 암봉이 딱 버티고 막는다.
우측과 좌측을 살피다 바로 넘어가자는 대장님을 길이 있다고 유인해 암봉을 우회한다.
암봉 뒤로 올라서고 보니 그냥 직등으로 넘어올 걸 그랬다 싶다.
옷이 흠뻑 젖도록 깨나 힘을 쏟고 난 뒤 산길의 형태가 또렷한 길을 만난다.
한숨을 돌리고 길이 편해지자
대장님의 오늘 산행 목적이 이 길을 찾는 것인지
면바위골 답사인지 궁금하다고 구시렁대던 에스테야 형님은 결국 대장님께 물어본다.
"단천골 가자 했으면 안 갈 것 같아서 여기 왔다." 한다.
단천골 왼골을 벌써 3번이나 혼자 오르내리며 길을 찾고 있는
대단한 집념에 본심은 아니지만
"대장님이 가자고 했으면 단천골 갔을 겁니다" 했다.
싱긋이 웃는 대장님은 우리들의 대답이 거짓말임을 다 안다는 표정이다.
단천골 왼골 길을 이제 거의 다 찾았다고 하니 조만간 가야 할 것 같다.
바싹 마른 잎으로 변한 단풍이지만 간혹 늦게 절정을 피워 내는 것들이 하나씩 있다.
내 삶도 그랬으면 좋겠다.
대기만성이라 했던가.
헉헉거리고 땀을 쏟으며 산길을 오르다
이처럼 타는 듯 붉은 단풍을 만날 때면
쓴 약을 먹었는데 단맛도 나면서 배까지 부른 느낌이다.
골프공이 날아와 박힌 줄 알았다는 귀소본능이 끝끝내 이름을 알아내서
알려 준 <황토색어리알버섯.>
먼저 올라간 두사람 뒤에서 물 한잔을 마시며 잠시 쉬었다 간다.
무쇠솥으로 표기된 곳에 도착한다.
몇 년 전처럼 여전히 빨치산이 버리고 간 솥이라고 주장하는 내게
웬일인지 에스테야 형님이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고 동조한다.
이러면 대화는 재미가 없어진다.
솔봉으로 향한다.
표고둠벙에서 점심을 먹고 있다가 우리가 다가오자 경계의 눈빛으로 바라보는 두 팀과 만난다.
인사를 나누고 나서야 서로 안심하고 편한 마음으로 앉는다.
우리도 자리를 잡고 상을 펼친다.
자리에 앉자 주위를 맴돌며 술에 유독 욕심을 내는 말벌에게 따로 한잔을 내주었다.
그 술을 먹고 뻗은 한 놈과 또 다른 한 놈을 다우 형님이 잡아
즉석에서 노봉방주를 만든다.
잔을 돌려가며 마시다 내 차례에 돌아온 잔 속의 말벌이다.
대장이 능지처참해 놓은 잔혹한 이 술을 대장님은 마셨나?
기억되지 않는다.
알딸딸한 점심 자리를 파하고
다시 배낭을 멘다.
무착대로 향한다.
주능의 상봉이 앙상한 나무가지 사이로 선명하다.
좋은 길을 따라 내려가다 꺾어 너덜을 한동안 통과하여 무착대에 들어선다.
누군가 경작을 했고 여러 일이 진행 중이다.
무슨 일이고 어떤 일인지 우리는 모른다.
무착대
집착이 없는 곳인가?
집착을 버리는 곳인가?
많은 생각이 엉겨 붙어 성가셨든 최근의 여러 날이 지나갔다.
시간은 날마다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었다.
시간은 서두러지 않았고, 머뭇거리지도 않았다.
걱정과 후회와 안타까움과 배신감을 안고 있든,
그 모든 것을 버리든 상관없이 내일은 오더라.
불필요한 크고 작은 여러 번민으로 아무리 머리를 처박고 있어도
그런 적이 없다는 듯이 지나간 모든 날과 무관 하게
언제나 내일은 그렇게 매일 오더라.
지나고 보니 죽고 사는 문제가 아닌 다음에야
부질없이 집착에 생각을 담가 두지 말아야 할 일이더라.
견딜 수 없는 것을 견디어야 하는 것이 삶의 길이라면,
견딜 수 없는 것은 없는 것이더라.
토굴이 위치 했었든 구조를 자세하게 대장님이 설명해준다.
이야기를 들으며 작은 토굴 한 채를 상상으로 지어 본다.
처음부터 끝까지 길은 존재하지 않는 면바위골은
쏟아져 내린 돌무더기 경사길이다.
앉아서 기어 내리기도 하고, 뛰어넘기도 하며,
수많은 돌을 밟고 건너 내리는 계곡은 거칠고 난폭하고 지루하기만 하다.
끝없이 계속될 것 같았든 골짜기를 내려서고 대장님이 말했다.
이 길은 지리산길 트랙에서 지워야 한다.
이건 길이 아니다.
구계교에서 직전으로 내려가는 길이 아늑하게 느껴졌다.
가을이 깊을대로 깊은 어느날 며칠 끙끙 앓고 일어난 뒤 나는 생각했다.
나는 적당히 벌고 아주 잘 살고 싶다.
그래서 나는 내가 살아 버린 날들을 더이상 후회하거나 안쓰러워하지 않기로 했다.
스쳐 지나간 닿지 않는 인연에 대해서도 연민하지도 않기로 했다.
내가 가지지 못한 것들에 대한 욕심도 버리기로 했다.
나보다 많은 것을 가진 사람들에 대해 부러움과 시기 질투도 하지 않기로 했다.
다만, 너무나 평범하고 보잘것없는 지금 오늘의 이 일상이 내일도 계속되기를
기도 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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