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산행

2017.11.12 상내봉

지리99 수야 2017. 11. 12. 16:54

선녀굴골-상내봉능선



행동팀 40차 정기산행

일시:2017년 11월 12일 (일요일)

산행자: 행동팀 (4명)

걸어간 길:송대마을-선녀굴골-솔봉능선-선녀굴-상내봉삼거리-상내봉-송대삼거리-송대

산행거리 시간:09시 31분~16시 16분 (6시간 44분 점심,휴식포함) 오룩스맵 기준10.3k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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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타듯 아침 산은 햇살에 타올랐다 찬란하고 황홀하다.

산의 시작이 시작되는 시간 황홀한 산에 들어간다.

지리산을 보면 나는 흔들린다.

이 나이에 아직도 나를 흔들리게 하는 게 있으니 다행이고 고맙다.


오봉 공개바위로 간다.

배낭도 스틱도 없는 빈 몸으로 올라간다.

가볍게 몸풀기로 다녀오기로 한다.

싸늘한 찬 공기를 마시며 올라가는 동안 겉옷을 벗어야 할 만큼 길은 산책길이 아니었다.

몸풀기 수준을 넘은 길을 조금 할딱거리며 내려와 아침을 먹고 송대동으로 간다.





송대마을 입구에 주차하고 선녀굴골을 올라간다.

마을을 벗어나 한참을 올라 첫 휴식을 한다.

낙엽이 수북한 산길은 가을의 끝과 겨울의 시작이 교차한다.

움츠린 몸이 완전히 풀리고 겉옷은 배낭으로 들어간다.


선녀굴골의 길은 단순하고 명료하다.

헛갈려 벗어나거나 어지럽지 않은 산길은 유순하고 오롯하다.

언제나 삶이 이렇듯 단순하고 명료하면 얼마나 좋을까.

간단한 산길, 이 단순함이 주는 안락함이 좋다.

걸어 오르는 비탈의 여기저기 산재한 집터와 경작지가 목격된다.

애환의 삶들이 남긴 흔적이다.

고달픈 삶의 흔적은 세월의 흐름에도 쉽게 사라지질 않는 모양이다.


바스락 낙엽을 밟는 걸음이 경쾌하고 상쾌하다.

갇힌 느낌의 생활에서 잠시 벗어나면 무조건 좋아라 하는 여인네들은 더더욱 들뜬다.

그 들뜸이 그대로 전달되는 이야기들은 산길에서 마구 흩날린다.


살아 있어 좋구나.

오늘도 가슴이 뛴다.

가난이야 오랜 벗이요.

슬픔이야 한때의 손님이라

푸르른 날엔 푸르게 살고

흐린 날엔 힘껏 산다!   

-양광모 한 번은 시처럼 살아야 한다 중에-


낙엽 때문에 미끄럽지만, 그 낙엽 때문에 걷는 맛이 일품이다.

마치 고추를 고추장에 찍어 먹는 맛이다.


심한 경사가 아니지만 쉼을 자주 한다.

표지기를 만난다.

사람을 만나듯 반갑다.

나에게 또한, 그 표지기의 주인에게도 말하고 싶다.

아니 어쩌면 더 강하게 내게 말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거북이는 초조함을 모른다.

소나기가 쏟아지면 머리를 몸 안으로 집어넣는다.

햇볕이 따가우면 그늘에서 잠시 쉬어간다.

유순하고 한가로운 동물은 장수한다.

그러나 맹수는 단명한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화를 잘 내고 성급한 사람은 장수 하는 사람이 거의 없다.

독일의 한 탄광에서 갱도가 무너져 광부들이 갱내에 갇혔다.

외부와 연락이 차단된 상태에서 1주일 만에 구조되었는데

사망자는 단 한 사람, 시계를 찬 광부였다.

불안과 초조가 그를 숨지게 한 것이다.

사람의 삶이 어찌 좋은 일만 있겠는가?

오히려 언짢고 궂은일이 더 많을지도 모른다.

행복한 순간을 슬기롭게 다스리는 것이 미덕이라면

불우하고 불행한 때를 잘 이겨내는 인내는 지혜라고 할 수 있겠다.


시간은 의외로 많은 것을 해결한다.

나의 옳음이 언제나 굳건히 옳다 할 수는 없다.

지금 확신한 일이 지나고 보면 그것이 아닌 경우도 많다.

시간은 의외로 많은 것을 깨닫게 한다.

성급하지 말아야 한다.

때가 될 때를 기다릴 줄도 알아야 한다.

어느 상황이든 능동적으로 대처하는

지혜의 삶을 희망해야 한다.


선녀굴골을 오르다 좌측 솔봉능선으로 올라탄다.

지그재그의 산길을 고개 숙인 체 숨차게 오르다 고개를 들어보니 벌써 선녀굴이다.


선녀굴 마지막 빨치산 정순덕


선녀굴은 마지막 빨치산 정순덕이 13년간을 은거하며 지냈던 곳이다.

마지막 빨치산이었던 정순덕은

산청군 삼장면 내원리에서 출생하여 16세에 역시 산청군 시천면 출신의 남편 성석근과 결혼한다.

남편은 지리산으로 들어가 빨치산이 된다.

정확히는 빨치산이 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정순덕 역시 빨치산 남편을 찾아내라는 지리산 토벌대의 고문에 못 이겨 

남편을 찾아 지리산으로 들어가 빨치산이 된다.

1955년 대규모 남부군 소탕 작전이 시행되기 전에는

함양, 산청은 낮에는 대한민국 밤에는 인민공화국이 되었던 곳이다.

대규모 소탕 작전으로 정순덕의 남편과 빨치산 대부분은 사살된다.

그러나 마지막까지 남았던 망실공비 정순덕, 이은조, 이홍이 3명은  

추성리 벽송사의 뒷산 선녀굴로 은신처를 옮겨 생활한다.

1962년 2월 선녀굴에서 매복 중인 경찰에 의해 이은조는 사살되고

이홍이와 정순덕은 자신의 고향인 산청군 내원골로 다시 피신한다.

1963년 11월에 고향에서 이홍이는 피살되고 정순덕은 다리부상으로 생포된다.

전쟁이 끝나고도 10년의 세월이다.

좌도 우도 몰랐던 순박한 시골 아낙의 슬픈 이야기는 여기서 끝이 아니다.

무기징역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이던 정순덕은 살아서는 나가지 않으리라는 생각을 바꾸고 

1985년 전향서에 도장을 찍고 특별석방이 된다.

23년간의 옥살이를 마치고 그녀는 고향에 있는 부모 묘소를 찾았지만, 고향 마을 사람들의

싸늘한 냉대에 갈 곳을 잃고 출소한 미전향 장기수들의 수용시설로 들어간다.

2000년 6.15 남북 공동선언에 따라 미전향 장기수들의 북쪽 송환이 이루어지자

정순덕도 북쪽으로의 송환을 요구한다.

그러나 당국은 이미 대한민국으로 전향서를 작성하고 풀려났기에 북송은 불가 판정을 내린다.

순박한 산청군 내원골의 처녀는 뇌출혈로 쓰러져 2004년 인천의 병원에서 생을 마감한다.


선녀굴 사거리에 선다.

길은 길답게 앞에 놓인다.

지나온 길은 단지 지나온 길로만 뒤에 남는다.

지나온 길은 잊어도 좋을 만큼 앞길은 늘 기대를 생산한다.

함양 독바위를 향한다.

오름은 계속된다.

탁 터인 조망 앞에 선다.

산행의 백미다.

긴 한숨이 내뱉어진다.

뻥 뚫리는 시원함이 짧은 산행의 고단함을 보상한다.

멀리 반야봉과 중부능선 넘어 서북능선도 한눈에 들어온다.


조망되는 산들의 이름을 부른다.

법화산이 건너뛰면 닿을 듯 가까이 보인다.



함양 독바위가 가까이 다가온다.

멀리서 차를 타고 오가며 보던 것이 이것이구나 한다.

동부칠암자 폐사지는 생략한다.

언젠가 폐사지만을 돌아보는 산행을 할 요량이다.


독바위를 오를 수 있을까 가까이 다가간다.

바위에 조금씩 남아 있든 앵커를 밑부분까지 싹둑 다 잘라 놓았다.

참, 공을 많이 들인 쉽지 않은, 안 했으면 좋았을 수고로움을 자행해 놓았다.

도저히 오를 수 없어 바라만 보다 포기한다.



저곳에 올라 본 기억을 더듬는다.

높은 곳

그곳을 선망하는 것은 보이지 않는 많은 곳, 더 넓고 더 멀리 보기 위함일 게다.

사람의 마음이 그러하다.

사람이 다 좋을 순 없다.

오늘 좋은 사람이 내일 원수가 되듯 밉고, 어제 원수처럼 미운 사람이 오늘 예뻐 보일 수 있다.

나 또한 그 모습으로 살아간다.

사랑하면 어떤 허물도 감수하게 되나 사랑이 식으면 가장 걸림돌이 되는 것이다.

사람은 언젠가 다 헤어진다.

그리고 모든 사람은 언젠가는 다 죽는다.

허물로 보면 끝이 없고, 사랑으로 보면 용서 못 할 것이 없다.

따지고 보면 내 허물이 천지다.

또한, 모든 인연의 귀함을 모르고 사는 나 자신이 천지에 부끄럽다.

높은 곳에 서서 바라보는 넓고, 많은 그리고 멀리 보는 조망의 마음 같아야 한다.

잘 안되지만 그랬으면 좋겠다.

언젠가 우리는 헤어지고 죽을 사람일 뿐인데

그랬으면.


독바위를 지나 안락문을 통과한다.

여길 수차례 지나다녔지만 그리 안락하지만은 않았다.



낙엽이 얼음같이 미끄러워 발목에 힘이 들어간다. 

마지막 된비알을 쉬지 않고 숨차게 올라 버린다.

힘든 일, 힘든 시기는 한 번에 맞이하는 게 상책이다.

이왕 맞을 매라면 먼저 맞는 게 맘 편하듯이.


삼거리를 지나며 새봉방향을 버리고 상내봉으로 들어간다.

오름은 없다.

적당한 양지와 평편한 자리를 잡고 점심을 먹는다.

이번 생에 오늘 이 점심은 다시 오지 않는다.

밀어 넣듯이 먹지 않는다.

지나간 밥들은 지금 이 밥 앞에 다 무효이다.

살아 낸 삶과 같다. 살아버린 날은 돌아오지 않기에 무효다.

밥알이 삶을 지탱하는 힘으로 살아 나오는 이 끼니만이 유효하다.


내려가는 길

넓은 바위 조망터를 그냥 지나치지 않는다.

태극 종주길과 웅석봉 달뜨기 능선이 그림처럼 펼쳐진다.

배부런 조망은 한층 여유롭다.


왕산과 필봉 그 너머 황매산도 선명한 그림이다.


사립재를 넘어 새봉은 바로 코앞이다.

사진에 잡히지 않은 산청 독바위의 모습도 또렷하게 본다.




상내봉능선 내림 기준 좌측으로 대로와 같은 길이 열려 있다.

독오당 산행 때 내려간 길은 우측 능선을 그대로 탔었다.

그 길은 조망과 함께 조금 스릴이 있는 재미가 있었다.

낙엽이 쌓인 미끄러운 길이라 오늘은 좋은 길을 따른다.


급하게 쏟아져 내린 길은 얼음같이 미끄러워 제동이 안 된다.

다다닥걸음으로 빠르게 뛰듯이 내려오기를 반복한다.


원 없이 낙엽을 밟아본다고 재미있다고 좋단다.

넘어져도 웃는다.

넘어져도 웃는 것은 어쩌면 진정 즐길 줄 아는 사람만의 특혜다.



페인트로 송대를 표시해 놓았다.

상내봉 능선(벽송사 능선)에서 우측 송대동으로 길을 꺾는다.

급경사는 한순간 힘차게 고도를 낮춘다.

그만큼 산행시간은 단축된다.


마을이 근접해지자

온 동네 개가 다 짖어 댄다.

저것들은 저것들의 본분에 충실해서 저것들다워 보인다.

가뿐한 산행을 마친 아줌마들이 소녀처럼 두 팔을 들고 환하다.

처음 시작한 곳으로 돌아왔다.

툴툴 털어버리는 먼지처럼 많은 것이 떨어져 나간다.


보고 느끼고 쉽게 남을 판단하는 것은 능통하나

정작 나 자신을 살피고 부족함을 찾는 일에는 더딘 법이다.

밭에 곡식을 거두기 위해 수고하는 것처럼

사람도 서로 달래며 보듬고 사는 것이 인생사 삶의 지혜 일 것이다.

패해자든 피의자든 세상에 존재하기에 겪는 일이다.

나라는 존재도 누구에게 피의자가 될지 아무도 모른다.

인생은 탐구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살아가면서 탐구하는 것이다.

실수는 되풀이 된다 누구나

그것이 인생이다............


맑고 청명하면서도 쓸쓸함이 느껴지는 가을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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