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너를 보면 가슴이 뛴다.
일시:2017년 9월 10일
산행자:행동팀+보스님(5명)
걸어간 길:거림-북해도교-거림옛길-음양수-창불대-영신봉-세석-거림
산행거리및 시간:06시 30분~17시 42분 (11시간11분, 의미없음) 14km
다른 산행과 달리 조금 더 일찍 길을 나선다.
거림 주차장에서 배낭을 메고 출발하는 시간이 6시 20분이다.
날은 밝아 오는데 아직도 달님이 산 위에서 머뭇거리고 있다.
이곳의 여러 산길을 생각했다.
일 안, 이 안, 삼 안을 제시하자 말이 끝나기도 전에 맥락을 간파해 버린 저들의 똑똑함에
허허 웃을 수밖에 없다.
다 정해 놓고 뭘 물어보느냐며 가자는 대로 갈 것이라 한다.
일단, 거림옛길로 올라 창불대를 거처 영신봉까지 갔다 세석대피소로 가자 했다.
세석에서 상황을 보고 촛대봉 방향 하산을 탐색하기로 한다.
신선하고 상쾌한 지리산 아침 공기를 폐부 깊숙이 들이밀어 넣으며 해장을 시킨다.
들어감을 고하며 돌아올 때도 지금 이 모습으로 돌아오게 해 달라고 두 손을 모은다.
조금 걷고 자주 쉬어 간다.
요즘 내 산행은 전과 달리 쉬는 시간이 잦다.
사람이나 자연이나 속앓이는 결코 좋지 않다.
왜 천팔교라 하는지 아십니까?
아무도 대답을 하지 않는다.
아니 대답만 하지 않는 게 아니라 반항의 눈빛으로 '됏고! 왜 그런지 그냥 말이나 해'가 딱 보인다.
1,008미터!
아~!.
영특하기 이를 데 없이 다들 똑똑하게 바로 알아듣는다.
한 놈이 똥침을 얼마나 심하게 찔렀는지 관통을 해버린 나무가 천팔교 옆에 있다.
이길 여러 번 지나다녔는데 왜 한 번도 이걸 보지 못했을까?
매일 다니는 길에서도 우리는 보지 못 하고 지나치는 것들이 참 많을 것이다.
나만의 생각에 너무 매몰되면, 다른 사람의 생각을 읽지 못할 수도 있겠다.
세상은 내가 아는 게 다가 아니며, 보이는 게 전부가 또한 아니다.
거림 옛길로 들어서고 나서 라면으로 아침을 때운다.
간단한 식사에 간단한 휴식으로 산속 시간을 더 많이 즐기는 방법이다.
오랜만에 걷는 옛길에서 잠시 헛갈린 걸음을 걷기도 한다.
산길은 오를 때와 내려올 때의 모습이 많이 다르다.
옛길을 생각보다 빠르게 올라간다.
우천 초막을 지나며 우천 선생의 이야기를 한다.
관심을 가지며 내 이야기에 집중해주는 게 고맙기만 하다.
우천 허만수 선생은 불모지나 같은 지리산에 들어와 샘을 발견하고 관리하며
조난자들을 구조하고 지리산 등산로를 개척하고 등산로 지도를 만들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도, 알아주기를 바라지 않고 외로이 지리산을 지키며 선각자로 사셨다.
지리산을 사랑하다 영원한 지리산의 산신령으로 홀연히 사라지셨다.
붙여, 지금 지리99가 그와 다르지 않다고 나는 생각한다.
지리산에 산재한 산길을 정리하고, 산길 지도를 만들어 산꾼들에게 배포하고
역사 속 폐사지와 문화적 유적지, 선열의 뜻을 찾고 복원 발굴하는 일이 그와 같다.
아무런 개인적 이득도 없는 그런 일을 사명감으로 해내는 지리99는 그런 곳이다.
산행을 하고 정보를 공유하며 산꾼들의 생각을 나누고 느낌을 펼칠 수 있는 지리99는
그래서 우천 선생의 뜻과 다름아니다.
자주 쉬며 오르는 길이라 그리 힘들이지 않고 음양수에 닿는다.
올라가는 우리와 동시에 내려오는 산꾼들이 음양수 샘에서 만난다.
주뼛주뼛 서로를 쳐다보는데 "수야 님!"하고 저쪽에서 먼저 부른다.
전수배님과 비천무님 내외분 그리고 일행 두 분을 만난다.
먼저 내려온 일행분이
요즘 연예인급 상승세를 타고 있는 보스님을 알아본다.
산길에서 예기치 않게 마주치는 이런 조우는 큰 기쁨과 반가움이다.
비박을 하고 하산 중이란다.
산에서는 올라가는 사람이 제일 부럽다는 전수배님께 함께 다시 올라가자는 농담으로
다시 만날 기약을 하며 사진을 찍는다.
이분들과는 지난 산정무한 행사 후 같이 만복대를 올랐었다.
음양수 샘을 지나 남부능선을 타고 창불대로 향한다.
너럭바위에 올라서자 지금까지의 오름길에 대한 보상인 양 탁 트인 조망이 보답으로 주어진다.
꿈틀대며 굽이치는 남부능선이 그 줄기를 오른쪽으로 꺾으며 줄달음친다.
청명하고 명징한 날씨는 속속들이 능선과 골짜기를 탐색하도록 허락한다.
여기 서서 바라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뛴다.
지리산은 가슴을 뛰게 하는 산이다.
길은 창불대로 연결된다.
카메라로 다 담아낼 수 없는 절벽의 절박함을 나는 표현하지 못한다.
이곳에 서 보시라, 말 할 수 밖에 없다.
절벽의 끝에 서 보아야만 그 서늘한 절박감을 실감 할 수 있지 않겠는가.
이게 전부 공짜다.
다 내어주고도 아무렇지 않은 산. 그 지리산에 오르면 두 팔을 벌려 다 가져보시라.
가슴 뛰게 하는 여기는 지리산이다.
이곳으로 건너와 잠시 전 서 있었든 창불대를 보면 그 모습이 또 다르다.
나는 내 눈에 보이는 것 만이 전부로 착각하며 살아간다.
보이는, 또는 내 식으로 해석되는 것 만이 진실이라 믿는 오류를 나는 많이도 범했다.
확신하고 단언할 수 있는 옳음이 어디 있겠는가?
과거에는 틀렸던 것이 현재에는 맞고, 현재에서는 옳은 것이 과거에서는 단죄의
대상이 된 것들이 얼마나 많은가.
보이는 것 만이 전부가 아닌 까닭이고, 내가 아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이유다.
어쩌면 지금의 이 마음도 단지 나의 세계이며 나의 생각일 뿐 일 수도 있다.
세상에 변하지 않는 단 하나는, 변하지 않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이다.
저기 저 산의 모습과 바위들도 수천 년을 지나오면서 벼락과 번개와 비바람과 포탄과 총알과
알 수 없는 여러 현상과 조건으로 조금씩 변해 왔고 변해 갈 것이다.
유구하고 장대한 시간에 맞게 변화하는 것은 당연한 진리이고 순리이다.
저 멀리 남부 능선의 산길도 조금씩은 변해 왔을 것이다.
우리가 올라온 옛길 또한 그러했다.
번듯한 길 가운데 드러누운 큰 풍도목을 만나면, 굴러떨어진 바위가 길을 막으면,
그것을 피해 우회의 길이 생기는 게 당연지사이다.
그 상황에 맞게 순응하고, 생각 하는 것은 사람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사람 마음이라는 게 그렇더라.
높은 곳에 서면 눈으로 보이는 넓이만큼 마음이 넓어지고 포용력도 덩달아 생기더라.
하지만 내 마음 경계 해야 하는 것도 생기더라.
더이상 내 위에는 아무것도 없다는 자만에 빠질 수 있더라.
높은 곳에 서게 되면 아래를 내려다보지만 말고 그 높은 곳에서 하늘을 올려다볼 일이다.
가장 높은 산의 어떤 정상도 하늘을 이기지 못 하는 법이다.
왕시루봉, 반야봉, 삼도봉 지리산의 영봉들이 맑은 하늘 아래 우뚝하다.
사람이든 무엇이든 당당한 것에는 늘 끌림이 생긴다.
당당함에는 그 존재의 힘이 느껴진다.
가슴 뛰게 하는 지리산에 서면 나는 이 생각을 한다.
당당하게 살고 싶다.
이제 길은 또렷이 우리를 영신봉으로 이끈다.
이길부터는 꽃길이 펼쳐진다.
그 꽃길을 걷는 우리는 미치고 환장한다.
어느 게 꽃이고 어느 게 사람인지 구분이 안 된다.
아니다.
사람이 꽃보다 아름답다 해야 한다.
그래야 저 사람들한테 혼나지 않는다.
온통 꽃이다.
고개를 들어도 꽃이요 고개를 숙여도 꽃이다.
재채기와 사랑은 속일 수 없다.
사랑은 좋아함을 넘어서야 가능해진다.
저 사람들은 이제 나와 마찬가지로 지리산을 사랑하게 될 것이다.
나는 감히 예언한다.
이번 행동팀 산행에 동행 한 보스님은
지난 산정무한에서 중부 경남팀의 조장을 맡았다.
이후 중경팀은 산정을 나누고 정보를 공유하며 정기적인 만남을 가진다.
그 정기적인 만남에서 조장이라는 직책을 때고
시대에 맞게 중경팀의 팀장으로 승진을 했다.
가슴 뛰게 하는 너는 지리산이다.
가슴 뛰게 하는 너를 사랑한다.
사랑은 아픔도 슬픔도 간직한다.
그러나 그것조차 다 감내한다.
그래서 사랑이라 말한다.
세 사람의 꽃보다 환한 미소 뒤에는 공통점이 하나가 있다.
그 어떤 누구를 만나도 그 사람의 좋은 점, 장점을 먼저 찾아내고 긍정한다는 것이다.
긍정의 밝음은 숨길 수 없이 얼굴에 나타나고 그렇게 아름다운 미소가 된다.
정갈한 꽃들의 표정을 읽어보라.
이 꽃들이 장미를 시샘하거나 더 화려한 꽃을 닮으려 하는가
그저 자신만의 향기로 자신을 피워 낼 뿐이다.
그래서 아름다운 이유가 된다고 나는 생각한다.
반야봉을 바라보는 가슴이 뛴다.
살아 있는 감사의 마음이 저절로 생기는 이곳을 나는 예찬 하지 않을 수 없다.
감사하다.
나를 가슴 뛰게 만드는 너에게 감사의 고개를 숙인다.
영신봉으로 올라간다.
주등로에서 지나만 다니다 처음으로 올라 본다.
이곳이 이런 곳이었구나.
하늘과 더 가까워지려는 욕망을 잠시라도 내려놓을 수 있는 곳이다.
감격스러운 찬사는 끝이 없이 이어진다.
이런 장면을 볼 수 있는 것이 다 누구 덕택이다? 하면
자동으로 내 이름이 불린다.
그동안 수없이 반복해서 주입 시킨 행동팀에서는 자연스러운 일이다.
몇 번을 그렇게 하자 보스님조차 따라 한다.
상봉의 모습은 어디에서, 어떤 위치에서 보아도 상봉답다.
그 굴곡의 수많은 산길을 거슬러 우뚝한 상봉은 오라 가라 말하지 않는다.
그것이 상봉다운 위엄이다.
가을이 내린다.
촛대봉 아래 채색되어지는 가을을 읽는다.
점심을 먹는다.
술이 곁들여지니 포만감이 찾아온다.
꽃과 아름다운 사람들의 미소에 취해 시간을 쏜살같이 지나간다.
계획한 길을 고집하지도, 강요하지도, 요구하지도 않는다.
이미 오늘 만끽한 즐거움만으로도 넘치는 충만이다.
즐거운 충만의 포만감은 만족의 가벼운 하산길을 만든다.
좋은 길 착한 길을 따라 내려가기로 한다.
하산은 느리게 걷는다.
담아 온 충만히 흩트러지지 않도록,
느리게 천천히.
길고 지루한 돌길이 그리 지겹게 느껴지지 않는다.
시종 맨 후미에 있다 앞으로 나선다.
내려오는 모습을 담고 싶어서이다.
시간을 잊고 오로지 모든 걸음이 삼보 삼락의 즐거움에 차고, 산에 집중된
재미있는 산행의 뒷맛은 거림골 차가운 물 속에 뛰어들자 곱하기 2가 된다.
생각만으로도 가슴 뛰게 하는 저 산에 대한 사랑을 나는 끌 수가 없다.
언제나 산으로 걸어 오르내린 시간보다 훨씬 글은 더디고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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