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천골 (왼골-큰골)
일시:2017년 9월 3일
독오당 86차 정기산행
산행자:다우님, 엉겅퀴님, 에스테야님, 귀소본능님, 수야 (5명)
걸어간 길:단천마을-단천골 왼골-남부능선-송정굴-쇠통바위능선-큰골-단천마을
산행시간:07시 55분~19시 10분 (11시간 15분)
단천골 왼골과 큰골이 지리산 길 지도에 바뀌어 표기된 부분은 지난 산행기에서 언급한 바 있다.
오르는 기준으로 왼쪽 골이니 당연 왼골이라는 대장님의 설명이다.
즉 왼골은 왼쪽에 위치 했으니 왼골이고, 용추폭포가 있는 골은 크기와는 상관없이 폭포를 지닌 골짜기로
다른 지계곡 중에는 큰 골이니 현지인들은 그렇게 부른다고 대장님이 말씀하신다.
왼골을 통해 삼신봉으로 올라 주능선을 따라 오다 큰골로 내려오는 원점회귀 코스다.
큰골을 올라 본 경험이 있어 오랜만에 독오당 다운 산행이 되리라 미리 각오를 단단히 했다.
단천마을에 주차하고 산행을 시작한다.
늘 앞에서 걷는 엉겅퀴 형님과 대장님이 첫 번째 계곡을 건너 쉬고 있다.
볼일도 보고 어정거리는 우리는 천하태평 뒤를 따른다.
처음부터 하산 완료 까지 별로 지치는 기색도 없고 힘들어하지도 않는 대장님과
엉겅퀴 형님을 어차피 우리는 이길 방법이 없다.
나이가 들면 당연히 체력이 떨어지기 마련이거늘
"저 영감탱이들은 도대체 뭘 먹어서 저럴까?" 뒤에서 우리끼리 수군거린다.
걸음의 속도와 나아가는 힘도 산행 시작 부터 하산 완료까지 거의 같다.
왼골로 접어들기 까지 세 번 계곡을 건너간다.
수량이 없어 쉽게 건너간다.
길은 너무 반듯하고 단정하게 예의 바르다.
걸음이 빠른 엉겅퀴 형님을 따라가는 초반의 산길은 땀이 쏟아진다.
땀이 많은 귀소본능은 물에 빠진듯한 모습이다.
단천 왼골은 실제 산길과 지리산 길 트랙과는 많은 차이가 있다.
뚜렷하고 반듯한 길이 있음에도 트랙은 사실상 길이라고 할 수도 없는 곳으로 그어져 있다.
지리산 길 지도의 트랙으로는 온당하지 않다.
이 길을 독오당 대장님이 다시 정립하고 싶어 한다.
한 번으로 안 되면 두 번, 두 번이 안 되면 세 번, 아마도 혼자서라도 또 그렇게 오를 것이다.
많은 사람이 트랙을 따라가다 길이 막히면 빨치를 하고
알바를 해도 자신들이 지나간 트랙 그대로 올리는 바람에 산길은 집중되지 않았고,
산만하게 흩어져 있었다.
여러 트랙을 구해 비교해 보니
일치하는 트랙이 드문 이유도 이 때문인 것 같았다.
초반 산길과 계곡을 따르는 구간에서 너무 쉽게 나아가자
별거 아닐 수도 있겠다 싶었지만
역시, 길은 만만하게 우리에게 모습을 보여 주지 않는다.
이 길을 올라 본 대장님과 엉겅퀴 형님의 기억을 따라 길에 집중한다.
어지럽게 널린 고로쇠 호스를 넘고, 따라가며 계곡을 오르기도 한다.
미끄러운 계곡과 마주하는 자세는 각양각색이지만
참으로 엉성하고 얄굿은 자세로 특이하게 올라가는 한 형님이 있다.
본능의 배낭이 무겁고 어깨가 너무 아프다고 하니, 서슴없이 바로 배낭을 바꿔 메어 주는
형님의 마음 씀과 어떤 유형의 인간도 다 품어 주는 인품은 존경하지 않을 수 없다만
보지도 듣지도 못한 여러 자세는 산에서 만 볼 수 있는 오묘함이다.
왼골과 큰골이 만나는 합수부를 지나 산길은 계곡이 아니라 계곡 옆으로 뚜렷하게 열려있다.
좋은 길을 따라 766.3봉을 지나고 능선으로 나 있는 길을 따라 오르는 중에
대장님이 766봉으로 다시 내려오라 한다.
귀소본능이 미리 챙겨 온 금농 강호원님의 트랙을 참고로 내려 오지말고 능선을 올라야 한다고
한차례 주장을 하지만 대장님은 766봉에서 계곡으로 내려서야 한다고 한다.
이런 경우에는 대장님 말을 무조건 따라야 한다.
속으로 아닌데 하면서도 어쩔 수 없다.
설령 그 길이 다 같이 죽는 길이라 해도 대장님을 따라가야 한다고
처음부터 우리는 그렇게 배웠다.
뭐, 간혹 배운 데로 안 할 때도 있다만 서도....
길이 없는 산죽을 치고 계곡으로 내려간다.
계곡을 따라 오르면서 처음 찾고자 하는 길과는 멀어진 계곡 치기를 한다.
계곡 여기저기 길인 듯 보이는 구간은 우리처럼 앞서간 사람들의 흔적이다.
간혹 너무 또렷한 길이 나타나 이제는 제대로 찾았다 싶다가도 한순간 없어진 길 위에서
어이없어하며 잡목을 뚫고 오르기를 반복한다.
성가신 잡목과 너들을 여러 차례 통과하며 선두와 후미가 벌어지고
모이기를 몇 차례 한다.
산행 후 찾아본 여러 트랙과 선배님들의 증언에 의하면
단천골 왼골은 길이 상당히 좋다고 했다.
삼신봉에 올라서는 마지막 구간만 조금 난해했다고 했으니
사실상 우리가 헤맨 길은 엉뚱한 길이다.
엉겅퀴 형님이 몇 번이고 기억을 더듬어 가며 이게 아닌데 이상하다고 한다.
급기야 이 길은 꼭 다시 와서 찾아야겠다고 한다.
다시 돌아갈 수도 없이 고도를 높인 뒤라 최대한 트랙과 일치시켜 보려 한다.
쉬고, 걷고, 헤치고, 발목이 돌 틈에 빠지길 반복한다.
그런데 왜 이런 게 재미있을까?
나만 그런가 싶어 살펴보니 은근히들 이 해석되지 않는
산길과 빨치를 즐기고 있다.
실실 웃는 표정에서 쉽게 해독된다.
이런 변태들.
주능선에 붙기 위해 맨 오른쪽으로 대장님과 에스테야 형님이 올라붙는다.
중간으로 귀소본능과 내가 오르고
삼신봉과 가장 가까운 곳으로 엉겅퀴형님이 흩어져 오른다.
90도 가까운 경사를 기어 주능선에 붙고 보니 맥이 탁 풀린다.
개고생이라는 말은 이때 사용해야 한다.
능선에 붙었느냐고 대장님이 전화가 온다.
엉겅퀴 형님은 비행 모드라 통화가 안 된다.
대장님이 있는 곳으로 모이기로 한다.
귀소본능의 애절한 고함이 삼신봉을 향해 퍼진다.
"형니이임~! 형니이임! 형니이임~ !!!!"
"엉겅퀴 형니이이임~ 재구형니이임~~~!!!"
삼신봉에 올라 있는 다른 산꾼들이 장난으로 받는다.
"어이!"
머시고 이런 확 기냥 씨~ 소리가 나오려고한다.
목이 터져라 본능의 애절함은 계속된다.
"붙었나! 올라왔나!!"하는 대답 소리가 한번 들린다.
"욜로 오이소!"
삼신봉에서 기다리고 있었단다.
주위가 하도 시끄러워 잘 들리지 않았단다.
엉겅퀴 형님이나 대장님은
이제 이 길은 반드시 찾아야 하는 더 분명한 오기가 생겼다.
본능과 나는 작당한다.
영감탱이들 길 완전히 찾고 나면 우리는 그때 다시 오자.
송정굴로 가는길에 적당한 곳에서 점심을 먹기로 한다.
올라오며 힘을 쏟아 허기가 밀려온다.
대장님은 오늘 몸 상태가 아주 완벽하다.
조금 더 가서 송정굴에서 점심을 먹자 한다.
배고픈 본능과 나는 그냥 배낭을 내리고 못 간다고 앙탈을 부린다.
슬며시 웃으며 '그라모 여기서 먹자'대장이 져 준다.
정상은 모든 길이 시작되고 모든 선이 모이는 곳이다.
정상에서 바라보는 하늘이 산 아래 하늘과 다른 이유는
올라오는 과정이 있기 때문이다.
정상은 정상으로서의 위엄을 지녀야 한다.
그래야 올라오는 그 과정이 헛되지 않는다.
모든길이 집중되고 모든길이 흩어져 내려가는
정상은 어쩌면 그래서 고독하다.
30대에는 두려워 하지 말고
40대에는 후회 하지 말고
50대에는 이기려 하지 말라고 했다.
무모함으로 겁 없이 살아도 보았고
성질대로 다 하고 살아도 보았다 돌아보면 별로 후회 없다.
이제 누군가를 이기려 하는 마음도 점점 사라진다.
이제는 산의 정상을 목표로 오르지 않아도 산을 오를 수 있다.
이제는 그럴 나이가 되었음이다.
이제 철이 드는 것이다.
삶은 갈수록 복잡해져 가고
그럴수록 단순해지고 싶은 욕망은 강하게 욕망된다.
산길이 험함은 천천히 가면 몸이 감당해 낼만하다.
세상살이에 험함도 몸으로 밀고 나가는 것은 아직은 견딜만하다.
하지만 머리가, 마음이,복잡해 지는 것은 감당해 내기가 쉽지 않다.
산에 들어 한바탕 땀을 쏟고 느끼는 카타르시스의 본질에는
단순함이 있음을 알고 난 뒤 산을 향한 욕망은 나날이 욕망 되더라.
남부능선이 방향을 틀어 영신봉에 닿고
뾰족한 촛대봉과 천왕봉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유복해진다.
저 속에 있는 산길은 내가 그 길을 걸을 때 성립하는 것이다.
삶도 마찬가지다.
인생은 계산하는 것이 아니라 그 인생을 살아 낼 때 성립 하는 것이다.
내 삶의 산길을 나는 그런대로 잘 걷고 있는가?
간혹, 산 높은 곳에 서면 스스로 던지는 질문이다.
여기 지금 지리산은 완전하게 평화스럽다.
완전한 평화 속에는 본래 슬픔이 섞여 있다.
슬픔을 지니지 않은 평화는 완전한 평화가 아니다.
저 지리산의 평화 뒤에는 말할 수 없는 슬픔이 섞여 있음을 알기에
살아가면서 가끔은 슬프도 되는 이유다.
산은 사람을 오라 하지 않는다.
사람이 산으로 간다.
산은 사람을 급박하거나 찌르지 않기 때문이다.
송정굴을 향한 걸음이 한결 가벼워지는 것은
마신 술 때문만은 아니다.
사방으로 열린 하늘 아래 모든 조망이 걸음조차 가볍게 만든 탓이다.
송정굴은 보기만 하고 지나간다.
지천으로 핀 야생화는 이제 다가오는 가을 앞에서 사력을 다하고 있다.
마가목
쇠통바위능선을 타고 가다 1,118봉 부근에서 큰골로 내려선다
길은 살차게 쏟아져 내렸다.
이 길 주춤거리거나 주저할 수는 있어도 밀쳐 낼 수 없는 길이다.
각오한 걸음으로 내려간다.
멧돼지가 놀아나고 산죽이 지분덕거리며 길을 쉬이 내놓지 않으려 하지만
가야 할 걸음은 그것들을 뒤로 밀쳐 낸다.
쏟아진 급경사는 그만큼
고도를 순식간에 낮추어 준다.
지겨운 여느 하산길과는 다르게 여러 생각이 들지 않을 만큼 길에만 집중한다.
밋밋한 하산길보다는 화끈함이 있어 차라리 재미있다.
용추폭포가 가까워지고 길가에서 폭포 소리가 들린다.
배낭을 벗어 놓고 모두 용추폭포로 들어가는 동안 길가에 혼자 앉아서 쉰다.
내리막길에 발목이 시큰해져 온 탓이다.
아직은 무리가 있는 상태이지만 견딜 만하니 견딜 수 있다.
지리산을 향한 내 욕망도 참 어지간하다는 생각을 혼자서 해 본다.
훌훌 벗고 물속에 들어앉으니
명징해지는 몸과 마음이 날아 갈듯 시원하다.
어둑해진 시간 옷을 갈아입으며 엉겅퀴 형님은
산에서 이 무렵 이 시간을 가장 좋아한다고 한다.
하루종일 산에서 하는 거 없이 놀았지만 그래도
무언가 뿌듯해지는 느낌 때문이란다.
이미 어둠이 내린 산길을 완전히 내려선다.
가로등 불빛이 내린 단천마을을 떠나며 나는 또다시 여기에 오게 될 것을 예감한다.
(일주일이 넘도록 독오당 누구도 산행기를 올리지 않음으로 성질 급한 놈이 올립니다)
'지리산 산행'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17.10.22 천내골 (0) | 2017.10.24 |
---|---|
2017.09.10 영신봉 (0) | 2017.09.13 |
2017.08.27 지소골-왕시루봉 (0) | 2017.09.02 |
2017.07.23 백운계곡 (0) | 2017.07.26 |
2017.07.15 영원봉 (0) | 2017.07.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