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소골
일시:2017년 8월 27일
산행자:행동팀+규다네 가족+연하님 (총8명)
걸어간 길:중대마을-지소골-선교사유적지-왕시루봉-지소골 좌측능선-중대마을
*지소골 좌측능선으로 하산도중 트랙을 따르지 않고 임도로 내려서는 바람에 중대마을로
내려 서는 길이 없어 과수원을 가로 질러 내렸다.
결론적으로 더 많이, 멀리, 둘러 걸었고 빨치 아닌 빨치를 한 샘이다.
묵상(默想)
내가 부지런히 걸으면 없던 길도 생기지만
걸음을 멈추면 있던 길도 없어진다.
가지치기를 잘하면 실한 열매가 열리지만
가지치기를 잘못하면 열매 키울 힘을 빼앗긴다.
날마다 뜨는 태양도 날마다 뜨는 달도 하룻길 동행이다.
그 하룻길도 언제가 멈출 날 온다.
표현하지 않는 사랑과 봉해 놓은 편지는
시력이 아무리 좋아도 보이지 않는다.
사람이 사는 일도 사람과의 관계도 가꾸지 않으면
잡초가 우거지게 된다. (퍼온 글)
구례구역에서 우리는 서로를 안았다.
어느 지나간 한 날
"친구야 아무 생각 말고 지리산에 같이 가자" 하더라.
먼 길을 달려와 불편한 잠자리를 감수하며 함께 산행길에 나선 친구다.
그의 배려 깊은 정과 인간미가 그대로 전해진다.
산과 같은 친구.
이 친구로 인해 산행기를 다시 쓰게 되었음을 부인하지 않겠다.
지리산 어디를 가든 상관없다 했다.
같이 걷고 함께하는 지리산에서의 시간이면 족하다 했다.
산행 시작부터 끝까지 자신보다는 일행을 배려하고 먼저 챙긴다.
가족을 챙기는 다정함에는
보여주기 위한 가식이 없다.
이 친구의 본래 모습이다.
세상사 억지로 이루어지는 일이 어디 있든가.
특히나 사람과의 관계에서는 더욱 그럴 수 없다.
그의 마음이 내게로 오고, 내 마음이 그에게 갔음이다.
한동안, 걸어 잠긴 닫힌 마음이 이 친구로 인해 열리더라.
산행
오르는 산길 우측 계곡 건너 토굴이라 하기에는 너무 반듯한 건물이 보인다.
연하 형님과 둘이 건너가 살펴본다.
침입으로 인식한 개가 맹렬히 짖어 댄다.
짖는 개는 무시하되 묵묵히 있는 개는 조심해야 한다.
짖는 개는 물지 못하는 까닭이다.
나와 연하 형님이 스님으로 인식한 분이 합장으로 우리를 맞이해 주셨다.
골짜기 이름과 건너편 능선 산길에 관해 물었고
물음의 몇 배가 넘는 설명을 들었다.
지도에는 점선으로 표기된 임도를 만나 배낭을 내리고 쉼을 한다.
지소골
지(종이)紙, 소(곳,장소)所 예전 종이를 만드는 곳이 있었던 골이라 했다.
중대마을을 관통하는 지소골 초입을 밤나무밭을 가로질러 올랐다.
철망을 넘어 산길과 만났다.
개인 사유지를 벗어난 산길에서 첫 휴식을 한다.
다음에 여기를 오게 된다면 아래 계곡을 올라 산길과 만나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사유지를 통과하는 찜찜한 마음 때문이다.
길은 그리 불편하지 않게 찾아 나아 갈 수 있다.
잘 살펴보면 나무와 바위에 붉은 화살표가 안내하고 있다. 다만, 여기저기로 흩어진 걸음이
샛길을 만들어 놓아 주의하지 않으면 엉뚱한 방향으로 갈 수도 있겠다.
지리산 길 트랙과 붉은 화살표가 일치하니 트랙을 잘 활용하면 알바를 하지 않을 것 같다.
제법 큰 바위를 길에서 만나고 맨 후미만을 고집하는 연하 형님과 바위를 살핀다.
연하 형님이 각자 같다는 문양을 살펴보지만 나는 아무리 보아도 글씨로 보이지는 않는다.
이름이 있는지, 없는지는 모르겠지만 웅장한 이단 폭포를 만난다.
지소골 자체가 골이 좁다 보니 폭포는 요란한 소리와 시원한 물줄기를 흘려보낸다.
밋밋하게 걷다 만나는 폭포에서 감탄하며 한동안 쉬고 간다.
연하님
이 형님과는 사전에 산행을 약속한 일이 없다.
고속도로를 달리는 중에 전화가 왔다.
대뜸 어디로 갈 거냐고 묻는다.
왕시루봉으로 간다고 하니 휴게소에 기다리고 있다고 했다.
새벽부터 나와서 휴게소에 있었단다.
이런 무작정 합류 동행은 처음이다.
그런데도 깜짝 만남에 반가워 다들 재미있어한다.
별말도 없고 조용한 형님의 평소 모습과는 다른 엉뚱한 돌발행동에
아침부터 크게 웃고 유쾌한 산행을 하게 된다.
행동팀과는 이번이 두 번째 산행이 된다.
지난 중경팀 합동 산행이 처음이었다,
산들강님과 연하님은 동갑이다.
규다 같은 친구가 형님한테도 있냐고 내가 은근히 자랑하면 연하가 있다고 받아칠 만큼
친숙해진 두 사람은 잘 어울리는 친구다.
폭포에서의 달콤한 휴식 후 길이 약간 헛갈리는 구간에서 알바도 잠시 한다.
지소 토굴 스님이 폭포 이후에 길이 어렵다고 해 준 말이 생각나 트랙을 확인하니
엉뚱한 방향을 잡아 오르고 있었다.
길만 보고 무심히 걷다 보면 다른 방향으로 빠질 수 있는 샛길이 여러 갈래이다.
바위 사이로 오르는 구간
맨 먼저 올라간 규다가 얼른 허리끈을 풀어 줄을 만들어 여자들을 잡아 올려준다.
간식을 먹으며 잦은 휴식을 한다.
휴식시간마다 웃음소리는 유쾌하다.
큰 말벌집을 발견하고 빨리 자리를 뜨자는 연하 형님의 성화에도 느긋한 걸음으로
오르막을 오른다.
뒤에서 걷든 산들강 형님이 벌에 쏘였다는 말을 듣고 내려 가보니
벌은 보이지 않고 팔과 등 옆구리 몇 군데가 부어있다.
다행히 말벌에 쏘인 것은 아니고 작은 벌에 쏘인 것 같았다.
가려운 것 말고는 별 이상 반응이 없어 문제는 없었다.
개구쟁이 같은 장난으로 모두를 웃게 만드는 연하님.
선교사유적지에 올라섰다.
혹시나 만나게 될까 봐 조바심에 조용히 올라 살펴본 유적지에는 아무도 없었다.
물을 확보하고, 점심에 먹을 것을 씻고, 유적지 관람을 한동안 한다.
최부민
올해 15살 중학교 2학년이다.
질풍노도의 사춘기가 절정인 시기에 부모를 따라 지리산을 오르는 것 자체가 감동이다.
어릴 때 부터 지리산을 올랐다고는 하지만
부모와 같이 다니는 것 조차 싫어하는 요즘 아이들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힘들지 않니? 괜찮니?'
자꾸 물어보는 어른들의 마음을 알아차린 것인지
잘 걷고, 잘 먹고, 힘들어도 내색하지 않는
큰 키와 덩치만큼 듬직한 참 기특한 녀석이다.
이럴 경우 대개 우리는 이렇게 말한다.
"규다는 자식 교육도 참 잘 시켰다."
부민이가 슬쩍 다가오더니 물어본다.
여기에 왜 이런 집들이 있어요?
선교사 유적지에 대해 설명을 해 준다.
조망터에 나아가자
"우와!" 하는 탄성이 연달아 이어진다.
청렬(靑冽)하다는 말을 여기다 갖다 붙이면 넘치는 표현일까?
섬진강으로 길고 긴 능선을 내리는 남부 능선을
눈앞에 흘러내리는 봉애산 능선을
산과 산 그 사이를 굽이쳐 흐르는 강을
눈으로 다 담고 머리로 다 기억하지 못해 사진을 수없이 찍어 댄다.
거의 폭력적으로 시선을 강탈해 버린 조망 앞에 배고픔도 잊어버린 채 속수무책 빨려든다.
만남
만남이 계속될수록 기쁨과 반가움도 그 횟수만큼 확장되는 것인가 보다.
시종 환한 웃음으로 서로를 대하며 도란도란 깊어가는 이것이 산정이다.
지리산은 이런저런 만남을 만들고 인연을 엮고
그 인연에 마음을 열어버리게 되더라.
전생에 이미 이루어져 현생의 결과를 초래하는 인연을
숙세인연이라 하더라.
아마 전생에 이분들과 나는 참 좋은 인연이었지 싶다.
나는 아직도 믿는다.
'산을 좋아하는 사람치고 나쁜 사람은 없다!'
점심을 먹는다.
큰 양주 한 병이 규다의 배낭에서 나온다.
정작 자기는 입에도 대지 않는 그 술을 지고 온 이유는 말 안 해도 알 수 있다.
부민이 입맛에 맞춰 준비한 음식을 내놓는 행동팀 살림꾼의 마음과 같은 것이다.
들풀님의 고향이 영산포라며 내놓은 홍어를 포식한다.
우리가 홍어를 이렇게 좋아할 줄 몰랐다며 다음에도 책임지고 준비하겠다고
친구는 약속한다.
양주와 어우러진 점심상은 세상 어느 고관대작의 식사가 부럽지 않다.
술기운이 스멀스멀 올라오자 자리를 정리하고 왕시루봉을 향한다.
왕시루봉 정상의 밋밋함에 다소 황당해하며 일행은 지소골 좌측 능선으로
본격적인 하산길로 접어든다.
그리 급하게 쏟아지는 경사는 아니지만 약간의 술기운과 부민이의 안전을 위해 최대한
천천히를 계속 외쳐댄다.
산행 대장도 내팽개치고 줄곧 내려가는 길에만 열중하는
일행들 후미에서 조망터를 발견한다.
후미의 연하형님과 둘이서 따로 조망을 즐기며
지들이 가봐야 어딜 가겠느냐며 느긋하게 움직인다.
아침 오름길에 들렸든 지소토굴의 모습이 내려다보이고
올라갔든 지소골의 골짜기가 또렷이 들어온다.
지소 토굴의 스님이 연화대라고 말한 바위에서 연하님이 한 자세를 잡았다.
토굴의 스님은 지소골을 지수골이라 했다.
연화대라는 대를 설명했지만 신빙성을 느끼지 않은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아마도 그 스님이 임의로 붙인 이름이 아닐까 한다.
지리산 길 트랙을 따라 내려가는 길을 벗어나
이미 내리막을 한참 내려간 일행을 불러 다시 올라오라 한다.
왕의 강 조망터에서는 대장 잘 만나 이런 곳에도 온다고 고마워하더니
이번에는 길도 잘 못 찾는다며 대장이 어리바리 해서 그렇단다.
내가 가자고 한 길도 아니고 자기들이 앞서서 잘못 간 길인데.
이럴 땐 소이부답(笑而不答)이 정답.
또 한 번 트랙과는 어긋나는 산길을 내려가는 일행을 뒤에서 돌아서라, 말을 할 수가 없다.
무덤을 지나면서 좌측으로 임도를 만나 빠르게 내려간 선두를 따라 나도 내려간다.
속으로 그래 어디 말 안 듣고 가는 댓가가 무엇인지 조금 후에 보여주마 했다.
연하형님이 다가오더니 나중에 저녁은 꼭 자기가 내겠다며
계산을 하면 화낼 거라고 한다.
뭐 그런 바람직한 행동을 제지할까
별걱정을 다하신다.
무작정 임도를 따라가다 중대마을로 내려가는 길이 아님을 알아차린 선두는 어쩔 수 없이 또
밤밭을 째고 내려가는 빨치를 감행한다.
그래 봐라, 대장 말 안 듣고 가더니 잘 됏다 매롱이다.
앞으로 또다시 대장 말 무시하는 극악무도한 행동을 자행하지는 않을 것이구먼.
하산 완료 후 문수골에 몸을 담그고 달아오른 열기를 식히니
세상이 깔끔하게 보인다.
구례구역 아침에 만난 그 자리에 다시 주차하고 저녁을 먹는다.
먼 길을 가야 하는 규다네를 그냥 보낼 수가 없기 때문이다.
눈치 빠른 연하 형님이 적당한 타이밍에 계산대로 갔지만 벌써 계산을 해버린
규다 때문에 즐거운 소동이 일어난다.
팔을 벌리자 나보다 더 큰 부민이가 안겨 온다.
먼 길 조심을 몇 번이나 말한다.
아침에처럼 친구와 내가 다시 서로를 안았다.
또 보자 친구야.
친구에게
우리 오랜 친구로 남아 있자.
어떻게 변할지 모르는 인생.
지금 앞서거니 뒤서거니 계산하지 않는
그저 옆에 있어 주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되는
친구로 남아 있자.
도움이 되지는 못해도 누가 되지 않는
가까이 살지는 못해도 일이 있을 때 한달음에 달려와 주는
허물없이 두 팔로 안을 수 있는 친구로 남아 있자.
우리가 함께한 추억이 세상 사는 기억으로
옅어질지라도 서로 만나면 밤늦도록
옛 추억 거리로 진한 향기 풍기는
라일락 같은 친구로 남아 있자.
어찌 친구라 해서 늘 한결같을 수 있으며
늘 곁에 있을 수가 있겠냐마는
서로를 옆에서 지켜보며 따뜻한 사랑과 너그러운 인품을
지닌 진실한 친구로 남아 있자.
친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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