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산행/지리산 둘레길

2016.05.08 지리산 둘레길(대축-원부춘)

지리99 수야 2016. 5. 8. 15:58

지리산 둘레길 10

 

대축-부춘 (지리산 둘레길 13코스)

일시:2016년 05월 08일 (일요일)

참석자:행동팀 (6명)

시간 및 거리:10시간, 대략 10km (둘레길 아닌 길과 알바구간 포함)

 

2016-05-08 지둘10 (13구간 대축-원부춘).gpx

2016-05-08 지둘10 (13구간 대축-원부춘).gtm

 

개 한 마리가 아침부터 보란 듯이 영역 표시를 해대는 이 곳에서 출발합니다.

오늘은 개를 보고 시작하여 개를 보며 끝나는 길입니다.

 

 

 

원부춘으로 가는 화살표는 빨간색입니다.

 

 

출발하자마자 도로를 건너 형제봉 자락이 반깁니다.

오늘 걸어야 할 형제봉 구간에서는 둘레길에서 약간 벗어나

철쭉 제단 방향으로 진행했다가 둘레길과 다시 합류하는

동선을 미리 그리고 트랙을 유심히 보아 두었습니다.

형제봉을 한 번도 올라보지 못했다며, 가고 싶어 하는 사람을 위해 이번

둘레길은 약간의 변칙을 포함합니다.

 

"거지가 이 고을에 들면 한 집에 한 끼씩만 얻어먹어도 1년을 살고도 여섯 집이 남는다."
악양 평사리 무딤이들의 풍요로움을 대변하는 말입니다.

265만㎡ (801,625평)에 달하는 이 축복받은 들판은 바라보기만 하여도 풍요롭습니다.

아주 오래전 섬진강이 만들고 지리산이 지켜온 풍요입니다.

 

지리산이 한과 눈물과 핏빛 수난의 역사적 현상이라면 악양은 풍요를 약속한 이상향이다, 라고

박경리는 "토지의 서문"에 썼습니다.

 

오가며 머물며 지금까지 내가 본 이 땅은

봄이면 매화나 벚꽃이 섬진강 변을 따라 흐드러지고, 성제봉이 철쭉으로 붉게 타올랐습니다.

여름날 밀 보리가 익어가는 더 넓은 벌판으로 비라도 내린 뒤면 안개구름 머무는

산자락은 그야말로 무릉도원이 따로 있을까 싶었습니다.

그 가운데 부부 소나무가 다정히 섰고, 가을날 황금빛으로 출렁이는 들판이

섬진강 저녁노을과 맞닿아 어우러진 풍요의 땅은 그 풍요 만큼 여유로워

안정되고, 복되어 보였습니다.

이상향은 아마 이런 곳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우리 행동팀에는 이곳에서 나고 자란 사람이 있습니다.

이 구간은 본가를 지나가는 길입니다.

늘 그렇긴 하지만 젤 앞서 걷는 형님의 걸음이 오늘은 더 가벼워 보입니다.

고향은 그런 것인가 봅니다.

 

부부송이 있는 동정호 방향 길은 버리고 둑길을 따르는 입석 방향으로 갑니다.

거리가 짧으니까.

 

 

 

구재봉 방향에서 비추는 아침 햇살을 받으며 둑길을 걷습니다.

형제봉을 넘어가야 하는 힘든 길이라고 미리부터 잔뜩 겁을 줍니다.

악양의 외둔 에서 시작하여 고소산성 - 신선대 - 성제봉 - 형제봉 - 활공장 - 시루봉 - 회남재

- 깃대봉 - 배들재 - 봉수대 - 칠성봉 - 구재봉을 시계방향으로 도는 환종주를 오래전부터

계획 했지만, 지금까지 숙제로 미루어져 있습니다.

 

 

갑자기 어디론가 떠나고 싶을 때

사무치는 외로움이 밀려올 때

소리 내 실컷 울어라도 보고 싶을 때

지쳐 쓰러지는 나를

다시 세워주고 싶을 때

그럴 때

덥석 안아주는 이 길

지리산 길은 그런 길입니다.

버리고 나서야 비로소 얻고

비우고 나서야 다시 채우는

긍정의 길.

그 치유의 길을 걸어갑니다.

 

 

벌판을 가로질러 마을로 들어갑니다.

둘레길을 치유의 길이라고 하더니

여자들과 남자들은 다른 방식으로 치유 중입니다.

 

 

한마디로 돌(石)이 섰다, 선 돌이 있었던 마을이다.

그런 말입니다.

잘 서는 동네인가 봅니다.

돌까지 서는 걸 보면.

 

 

선바우 (선 돌)입니다.

벌떡 서 있습니다.

 

[지리산의 거석문화(巨石文化)] - 지리산 자락 입석리의 입석들.

http://www.jiri99.com/bbs/board.php?bo_table=jiri31&wr_id=307&page=2

 

 

입석마을 보호수 푸조나무
입석마을 입구의 당산나무입니다.

위에 사진 선바우와 마주 보고 있습니다.

커다란 두 개의 가지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매년 정월이면 마을에서 당산제를 올린답니다

그냥 보기에도 몇백 년은 되어 보입니다.

 

형제봉 주막이라는 간판이 막걸리 한 잔을 떠올리게 하지만 이른 아침이라 그냥 통과합니다.

 

 

 

 

 

마을을 지나 길은 고도를 올립니다.

포장도로를 따라 오르는 길에는 아카시아 향기가 진동합니다.

 

 

한 굽이를 감아 돌아간 길은

산으로 방향을 또 감고 오릅니다.

 

저 멀리 광양의 산들이 섬진강을 앞에 놓고 지리산을 향해 엎드렸고

악양들녘을 품어 안듯 둘러처진 형제봉과 주변의 산새는

돌아볼 때마다 그림처럼 펼쳐져 있습니다.

 

이쁜 아가씨의 긴 생머리카락에서나 풍겨 나올 듯한 아카시아 향기가 흩날리는

5월의 지리산 둘레길은 향기롭습니다.

 

 

 

형제봉 넘어 파란 하늘에 마치 상어 지느러미 같은 구름이 지나갑니다.

철쭉은 아직 빛깔이 뚜렷하지는 않습니다.

철쭉이 붉게 물든 시기가 아니라 약간 아쉽긴 하지만

맑고 푸른 날인 것만으로도 충분히 감사 할 따름입니다.

 

 

길가에 핀 이것저것에 이름을 불러주며 치유의 수다는 끝이 없습니다.

 

이 길 중 아카시아가 제일 많이 피어 있는 구간인 것 같습니다.

아카시아꽃 향기에서 추억을 더듬고, 순수했던 시절로 잠시 돌아가기도 합니다.

 

 

 

제법 경사가 있는 산길을 올라 묘지 앞 공터에서 쉬어갑니다.

둘레길을 걷는 다른 두어 팀이 지나갑니다.

 

 

 

 

 

고소산성을 지나고 봉수대와 신선봉을 넘어 형제봉 방향으로 뻗어 오른 능선에 섭니다.

둘레길 갈림길입니다.

13구간 5km를 지나고 있습니다.

둘레길을 따르지 않고 능선을 따라 형제봉 방향으로 갑니다.

올라선 전망 바위에서

내려다보는 섬진의 조망에 탄성이 흐릅니다.

 

 

 

 

 

 

 

 

형제봉 아래로 철쭉이 물들어 가, 좌측으로 둘레길과 만나는 길이 있는 901봉이

우람하게 우뚝 발딱 솟아있습니다.

 

 

 

 

 

 

 

 

 

석문

 

 

 

아래에서 보았던 그 봉우리에 올랐습니다

가야 할 방향의 철 다리가 살짝 보입니다.

 

섬진강을 향해 끝자락을 내리는 형제봉 능선이 단정합니다.

우측으로 조금만 눈을 돌리면 백운산이 마주 보며 솟아있습니다.

 

 

 

 

구름다리를 건너갔다오는 것으로 둘레길을 벗어난 외도는 끝내고 

다시 둘레길로 돌아가기로 합니다.

 

 

 

효부열녀 황보살묘를 지나 길이 너무나 선명하여

또렷한 길을 한동안 아무 생각 없이 내려갑니다.

그러다 우측으로 가야 하는 길이 갑자기 사라집니다.

지도에 둘레길과 만나는 트랙의 길은 찾을 수가 없습니다.

30분 이상을 헤매다 점선으로 그어진 트랙을 따라 내려갑니다

그러나 이길 또한 길이라 하기에는 너무 묵어 더럽습니다. (좋지 않다)

금농선생님 산행기에도 여기에서 식겁을 하고 절벽을 기어 어찌어찌 내려갔다고 되어 있습니다.

누군가 이 구간 트랙을 따라 내려가겠다는 생각이면 단단히 마음 먹어야 할 것 같습니다.

 

 

 

 

 

길을 잘못 들어섰다고

슬퍼하지 마라 포기하지 마라

삶에서 잘못 들어선  길이란 없으니

온 하늘이 새의 길이듯

삶이 온통 사람의 길이니

모든 새로운 길이란

잘못 들어선 발길에서 찾아졌으니

때로 잘못 들어선 어둠 속에서

끝내 자신의 빛나는 길 하나

캄캄한 어둠만큼 밝아오는 것이니

<박노해/잘못 들어선 길은 없다>

 

한참 길을 찾다가 올려다본 하늘에 떼를 지어 활공이 이루어집니다.

형제봉 위로 장관이 연출됩니다.

 

 

 

좋은 길을 따라 이제는 여유롭게 내려갑니다.

 

부춘마을이 내려다보이는 뒷산을 내려 원부춘, 오늘의 종점으로 갑니다.

둘레길에서조차 헤매고 다닌다고

마을 돌담 옆으로 금낭화가 조롱조롱 웃습니다.

 

 

 

 

토착 주민들은 부춘을 <부치동>, <불출동>으로 부르고 있는데,

지명유래는 대충 세 가지로 알려지고 있다.

첫째, 마을이 형제봉 아래 산허리에 매달리듯 붙어 있다 하여 부치동이라 한다.

둘째, 고려 시대 때 원강사라는 큰절이 있어 부처 골이라 했는데, 이것이 변하여 부춘이 되었다.

셋째는 고려 때 한유한 선생이 이 마을에 숨어 살아 생긴 지명이라 한다.

선생이 손수 [불출동]이라 바위에 쓰고, 세상에 평생 나오지 않고 신선이 되었다 한다.

 세번째 한유한 선생에 관해서는 지리구구를 참고( http://www.jiri99.com/bbs/board.php?bo_table=jiri31&wr_id=245&sca=&sfl=wr_subject%7C%7Cwr_content&stx=%ED%95%9C%EC%9C%A0%ED%95%9C&sop=and )

아침 출발에는 작은 개가 반기더니 오후엔 큰 개가 나와서

제 딴에는 좋다고 난리를 피웁니다.

원부춘마을에 다시 오기 위해

길을 잃고 개고생도 약간 한 둘레길 13구간을 마칩니다.

 

 

2016-05-08 지둘10 (13구간 대축-원부춘).gtm
0.01MB
2016-05-08 지둘10 (13구간 대축-원부춘).gpx
0.05M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