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둘레길1.
일시:2014년 11월 9일 (일요일, 날씨: 맑음)
산행자:상가식구 7명.
걸어간 길:전북 남원시 인월면 구인월교(달오름마을)-중군마을-수성대-배너미재-중황마을-등구재-
창원마을-함양군 마천면 의탄리 금계마을.
산행거리,시간:07시 35분~15시 41분(8시간 5분 소요),19.8km.
이용교통:금계~인월:택시(16,000원, 버스요금은:2,500원.)
2014-11-16 지둘1 (3구간 인월-금계).gpx
2014-11-16 지둘1 (3구간 인월-금계).gtm
지리산을 한 번도 안 가본 사람은 많아도
지리산을 한 번만 가는 사람은 많지 않다.
지리산 둘레길 1구간은 보수공사로 통제되어
인월에서 금계까지 3코스를 첫구간으로 선택한다.
약 20km에 달하는 조금은 먼 길이다.
(월평)달오름 마을에 주차한다.
어둠이 아직 걷히지 않은 마을 정자에서 따뜻한 아침을 먹는다.
쌀쌀한 날씨로 몸이 움츠려진다.
단단히 채비하고 몸을 풀고 배낭을 멘다.
< 파란색 글자는 인터넷 검색으로 퍼온 글입니다.>
<달오름마을.>
고려 말 영남을 거쳐 북진하는 왜장 아지발도와 이성계 장군이 황산에서
어두운 그믐밤에 대치 중 이성계 장군이 달을 뜨게 해달라 빌었더니
그믐밤에 보름달이 솟아올라 천지를 밝히자 화살로 적장의 목을 꿰뚫어 죽였다고 한다.
이때부터 달을 끌어 올린 마을이라 하여 인월(引月)이라 이름 붙여지게 되었다고 한다.
달오름 마을은 구인월과 월평마을로 이루어져 있는데
그 중 월평은 마을의 형상이 반달이라 해서 불렸다는 설과 마을 터가 동쪽으로 향해 있어
달빛을 받는 언덕이란 뜻으로 불린다는 설이 있다.
반.
시작이 반이다.
나머지 반은 시작한 일을 끝까지 해낼 수 있을까 하는 의심을 끝내는 것이다.
저질러는 게 반.
믿는 게 반이다.
저질러 시작한 첫걸음이니 반은 이미 완주한 마음이다.
달오름 마을 바로 옆(구인월교) 둑길을 따라 시작되는 첫걸음을 내딛는다.
다시 이 자리로 돌아오는 지리산 둘레길 800리 완주를 목표로 한 시작이다.
<인월에서 금계 3코스.>
전라북도 남원시 인월면 인월리와 경상남도 함양군 마천면 의탄리를 잇는 22.6km의 지리산둘레길.
인월-금계구간은 지리산둘레길 시범구간 개통지인 지리산북부지역 남원시 산내면 상황마을과
함양군 마천면 창원마을을 있는 옛 고갯길 등구재를 중심으로 지리산 주능선을 조망하고,
넓게 펼쳐진 다랑논과 6개의 산촌 마을을 지나 엄천강으로 이어지는 길이다.
제방길, 농로, 차도, 임도, 숲길등이 전 구간에 골고루 섞여있고,
또한 제방, 마을, 산과 계곡을 고루 느낄 수 있다.
추수를 끝낸 들판은 텅 비어있다.
둘레길 이정표의 빨간 화살표를 따른다.
제방길을 따라 서서히 몸을 풀며 걷는다
제방길은 광천으로 이어진다.
광천은 하류로 가면서 임천, 엄천강, 경호강으로 차례대로 이름을 바꿔가며 진양호에 모인다.
이른 아침 시골 한적한 강둑길을 따라 걷는 걸음은 커피향 처럼 여유로워 좋다.
낯선 곳의 설렘과 기대감이 들이마시는 맑은 공기 처럼 신선하다.
추수를 끝낸
빈 들녘에 허수아비가 각양각색의 모습으로 줄을 서 있다.
마치 흥겨운 춤이라도 추는 듯 보인다.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우리 일행만이 길을 걷는다.
잠에서 깨어난 산새들만이 부지런히 날갯짓을 하는 맑은 하늘도 바라본다.
<중군마을.>
전투 군단 편성에 있어 전군(前軍), 중군(中軍), 후군(後軍)이 있고 따로이 선봉부대가 있는 것이니,
그중의 중군(中軍)이 임진왜란 때 이곳 마을에 주둔한 연유로 인해
마을 이름을 중군리(中軍里) 또는 중군동(中軍洞이)라 불리어졌다고 한다.
중군마을은 본업인 농사 외에도 잣과 송이 채취로 부수입을 올리고 있다.
하지를 지나도 비가 오지 않으면 동네 부인들이 머리에 키를 쓰고 마을 앞 냇가에서 통곡을 하면서
무제를 지낸 풍습이 있던 마을이다.
얼마 걷지 않았는데 평길이라 그런지 금방 중군마을에 도착한다.
깨끗하게 잘 유지된 화장실을 다녀오고 마을의 벽화를 따라 한동안 느린 걸음을 한다.
수능시험을 치르고 천안에서 왔다는 세 명의 남자아이들을 만난다.
아들과 같은 또래이다.
대견스럽다.
가벼운 차림의 아이들은 걸음도 가볍고 에너지 충만한 웃음으로 인사를 한다.
마을을 벗어나면 황매암과 백련사로 갈리는 갈림길이다.
모두 둘레길에 속하지만, 백련사 길은 광천 방향으로 내려가는 길이다.
황매암 길은 산으로 올라간다.
두 갈래의 둘레길은 산을 넘은 뒤 다시 합류한다.
아이들은 산길인 황매암으로 올라간다.
우리 일행은 광천으로 내려가는 임도를 따라 걷는다.
광천 바로 위 공사가 한창인 예쁜 집 굴뚝에 아침 연기가 피어오른다.
백련사 가는 갈림길을 지나 경사의 임도를 오른다.
임도가 한 번 꺾이면서 산내, 매동 방향 이정표를 따라 수성대로 향한다.
인월에서 여기까지가 5km 지점이다.
1시간 30분 만에 수성대에 도착한다.
<수성대.>
옛날 외성을 지키는 수성군이 잠시 주둔했든 연유로 수성대라는 이름이 붙었다.
수성대 계곡의 물은 현재 인근의 중군마을과 장항마을의 식수원으로 음용될 만큼 맑고 깨끗한 물이다.
얼마 전까지 물이 불어면 건널 수 없었으나 목교가 만들어지면서 이제는 쉽게 건널 수 있다.
황매암 산길로 올라갔든 아이들을 다시 만난다.
걸음이 빠른 아이들은 먼저 도착해서 잠시 쉬고 있다가
금방 다시 만났는데도 반갑게 인사를 한다.
이른 시간임에도 부지런한 아주머니 한 분이 먹을거리를 내놓고 쉬었다 가라 한다.
수성대 계곡을 건너 산길이 펼쳐진다.
낙엽 깔린 오솔길을 따라 걷는 맛이 살얼음 살짝 언 동치미 맛이다.
낙엽을 밟을 때마다 폭폭 올라오는 향기가 머릿속을 맑게 한다.
<배너미재>
수성대에서 산길을 따라 오르다 내리막이 시작되는 곳으로
전설에 운봉이 호수일 때 배가 넘나들었다는 배너미재이다.
배너미재는 운봉의 배마을(주촌리),
배를 묶어두었다는 고리봉과 함께 연결되는 지리산 깊은 산 속에 있는 배와 관계된 지명이다.
배너미재는 인월에서 6km 지점이다.
장항마을 사람들이 인근 마을로 넘었던 고갯길이다.
배낭을 내리고 잠시 앉아 쉬어간다.
수성대에서 다시 만난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간식거리를 나누어 준다.
밝고 맑은 아이들이다.
깍듯이 인사를 하고 앞서 아이들이 먼저 간다.
앞서간 아이들 뒷모습에서 내 아이가 보였다.
까짓, 공부는 못해도 혼이 나고도 금방 헤벌쭉 웃으며 다가오는 성격은 좋은 놈이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다는 말.
그 말뜻을 아비가 되고서 알았다.
세월호의 아이들도 생각이 났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아이들...
배너미재.
둘레길을 걷는 사람들이 들어가지 못하게 산소에 그물망을 쳐두었다.
쓰레기를 버리지 말고 훼손하지 말라는 경고문도 붙었다.
후손들이 궁여지책으로 이렇게라도 해야 했든 심정이 이해가 간다.
길을 지나는 사람들이 주의했으면 좋겠다.
장항 소나무당산.
(노루목 당산 소나무) 장항마을에서 만나는 당산 소나무는
지금도 당산제를 지내고 있는 신성한 장소로
천왕봉을 배경으로 아름다운 자태를 드리우고 있어 감탄을 자아내기 충분하다.
높이 18m에 400년 된 소나무로 2008년 보호수로 지정되어 있다.
장항마을.
마을 뒤 덕두산에 많은 사찰이 있었는데 1600년경 수양하러 왔던 장성 이(李)씨가 처음 정착하여 개척하였다.
이후 각 성씨가 들어와 마을을 형성하게 되었는데,
산세의 지형이 노루의 목과 같은 형국이라 하여 노루 장(障)자를 써 ‘장항’이라 했다.
중군마을에서 배너미재를 넘어 도착하는 장항마을은
지금도 매년 신성하게 당산제를 지낼 만큼, 전통이 살아 숨 쉬는 마을이다.
배너미재를 넘어 장황마을로 내려서며 눈앞에 펼쳐지는 지리산주능의 조망 또한 장관이다.
장항교를 건넌다.
장항교는 나라에서 세워준 교량이 아니라 한다.
출향인들을 비롯해 마을 주민들이 십시일반 돈을 내거나 쌀을 내어 건립한 다리다.
건립비에 주민들의 이름이 빼곡히 새겨져 있다.
장항교 건너 오른쪽 산내방향으로 300m 정도 도로를 따라 걷다가 60번 도로를 건너간다.
이 길 60번 도로에서 왼쪽으로 가면 실상사의 말사인 백장암이 있고,
오른쪽은 매동마을과 산내를 지나 실상사다.
매동마을을 오른쪽에 두고 오르는 포장도로길이다.
<매동마을.>
고려 말과 조선 초, 중기에 걸쳐 네 개의 성씨(서, 김, 박, 오) 일가들이 들어와 일군 씨족 마을이다.
마을 형국이 매화꽃을 닮은 명당이라서 매동(梅洞)이란 이름을 갖게 된 이 마을은,
각 성씨의 오래된 가문과 가력을 말해주듯 네 개의 재각과 각 문중 소유의 울창한 송림이 마을을 둘러싸고 있다.
마을 앞을 흐르는 만수천 변에는 조선 후기 공조참판을 지낸 매천(梅川) 박치기가
심신을 단련하기 위해 지은 퇴수정(退修亭)과
그 후손이 지은 밀양박씨 시제를 모시는 관선재(觀善齋)가 있는데,
우거진 소나무들을 뒤로 두르고 앞으로는 만수천이 흐르며
발밑에는 흰 너럭바위들이 어우러져 뛰어난 풍광을 자랑하고 있다.
박치기의 생존 당대에는 정기적으로 일 년에 한 번씩 시인 묵객들이 이 정자 밑 너럭바위,
세진대(洗塵臺)에 모여 풍류를 즐겼다고 하는데, 그 숫자가 족히 일백 명에 달했다고 한다.
불과 삼사십 년 전만 해도 저녁이면 마을 사람들이 모두 이곳에 모여
맑은 물 위에 달이 떴다 지도록 놀았다고 한다.
지금은 시대가 바뀌어 산내면의 대표적인 생태농촌 시범마을로 지정돼
전통과 개발이라는 새로운 변화를 모색하고 있는 마을이다.
2011년 12월.
매동마을에서 창원마을까지의 구간을 걸었다.
그때의 기억이 떠올라 일행들에게 다음은 어디고, 어떻다는 설명을
쉽게 할 수 있다.
서진암 갈림길이다.
또, 쉬어간다.
세월을 따라 걷다 보면 지칠 때도 있다.
쉰다는 의미를 다시 생각한다.
이런 길을 따라 유유자적 걸어 보는 것 또한 쉬는 방법은 아닐까.
서어나무.
2011년 이 길에서 이 나무를 다우 대장님이 서어나무라 가르쳐 주었다.
남성의 근육질을 연상하게 하는 나무라는 설명도 했었다.
길섶으로 가는 옆길로 잠시 걸어 들어간다.
구절초 축제가 끝난 샛길에 아직도 초롱초롱한 하얀 구절초가 제법 남아 있다.
길섶 바로 위 넓은 공터가 나온다.
햇볕이 따뜻하게 내리는 곳. 지리산 상봉과 마주 보이는 자리에
나무테크가 아담하게 만들어져 있다.
조금 이른 시간이지만 점심을 먹는다.
상봉을 바라보며 마시는 커피 맛이 일품이다.
길섶에서 다시 돌아 나와 중황마을과 상황마을을 오른쪽에 두고 길을 걷는다.
길손을 상대로 먹거리를 판매하는 시설에
곶감이 매달려서, 누워서 익어간다.
등구재가 가까워지고 우측으로 다랭이논이 펼쳐진다.
산골 깊은 곳까지 전답을 만들어야 했든 조상들의 피땀이 담긴 애환의 결정체다.
등구재 아래서 잠시 한눈을 판다.
방송에 소개된 내용도 보고 나무기둥에 이 길을 지나간 이들의 낙서도 본다.
눈이 좋아져서 꼭 다시 지리산에 왔으면 좋겠다.
윤희가 윤희라는 이름의 낙서를 자세히 본다.
장작이 타면서 나는 냄새가 좋다.
햇살 아래 굴뚝을 통해 나오는 연기가 좋다.
각양각색의 사람이 각양각색의 사연을 간직한 체 이 길을 걸었을 것이다.
아주 오래전에도 바로 어제도...
등구재.
경상도와 전라도의 경계이며 양 도를 이어주는 길목이었다.
과거 경남 함양군 마천면 창원마을 사람들이 전북 인월장에 가거나 남원의 산내 운봉으로 넘어 다니던 고개다.
거북등을 닮아 한자 거북 구(龜)를 써 등구재라 했다.
여름철 늦은 시각 동쪽 법화산 마루에 둥근 달이 떠오르면 노을과 달빛이 어우러져 한껏 아름다움을 뽐낸다.
부모님을 따라 나선 처녀·총각들이 인월장에서 만나 서로 눈이 맞았을 테고,
혼인까지 성사돼 꽃가마를 타고 넘었던 고개이기도 하다.
등구재 오름길에는 곤달비 농장이 있다.
과거에 걸었을 때 자리 잡고 있든 오도사는 어디로 갔는지 흔적도 없다.
오른쪽 삼봉산에서 내려와 왼쪽 능선을 오르면 백운산을 거처 금대산으로 이어진다.
오후 1시 30분. 고도 650m 등구재를 넘는다.
인월에서 14.6km 지점이다.
이제 경남 함양 땅이다.
작은 웅덩이를 우측에 끼고 편안한 산길을 걷는다.
창원마을.
넉넉한 곳간 마을. 창원. 조선시대 마천면내의
각종 세로 거둔 물품들을 보관한 창고가 있었다는 유래에서 ‘창말(창고 마을)’이었다가
이웃 원정마을과 합쳐져 현재 창원이 되었다.
창고마을이었던 유래처럼 현재도 경제적 자립도가 높은 농산촌마을이다.
다랑이 논과 장작 담, 마을 골목, 집집마다 호두나무와 감나무가 줄지어 있고
아직도 닥종이 뜨는 집이 있다.
함양으로 가는 오도재 길목마을로 마을 어귀 당산에는 300여 년 수령의 너덧 그루의 느티나무와 참나무가
둥그렇고 널찍한 당산 터를 이루어 재 넘어가는 길손들의 안녕을 빌고
쉼터를 제공하는 풍요롭고 넉넉한 농심의 산촌마을이다.
상내봉 조망터가 있는 길로 굽이 돌아가야 하나 창원마을로 바로 간다.
상봉을 중심으로 왼쪽으로 중봉 하봉이 오른쪽으로 제석봉과 연하봉이 들어온다.
하늘재를 넘어간다.
고개마루에 아무 것도 안 보이고 하늘만 보여 하늘재다.
독녀암(함양독바위)과 상내봉.
와불의 모습을 일행에게 알려준다.
정말 부처의 모습처럼 보인단다.
예전부터 상내봉 와불을 보면서 기원하면 소원이 성취된다고 전해지고 있단다.
석가모니불.
2002년부터 석불 조각을 해왔는데 2025년 완공을 목표로 한다
30m높이의 좌대에 높이 108m입상 석가모니 불사로 어깨부분 폭이 약 40m, 돌출부분 약 20m의 부조상이다.
2025년 완공까지 500억 원의 불상 조성비용과 500억 원의 사찰조성, 주위정비, 소조각 등의 예산이 소요될 예정이다.
향후 세계에서 가장 큰 조각품이 될 것이라 한다.
금계마을.
금계(金鷄)마을로 개명되기 전 마을 이름은 ‘노디목’이었다.
노디는 징검다리라는 이 지방 사투리로 칠선계곡에 있는 마을(추성, 의중, 의탄, 의평)사람들이
엄천강 징검다리(노디)를 건너는 물목마을이라 부른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산촌사람들의 정을 징검징검 날랐을 노디가 세월에 씻겨 나가고 지금은 그 위에 의탄교가 들어서 있다.
금계마을 둘레길 안내센터에서 첫 구간을 마친다.
이제 여기서 다시 걸어야 할 다음 구간이 생겼다.
"지리산을 한 번도 안 가본 사람은 많아도
지리산을 한 번만 가는 사람은 많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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