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산행

2023.06.25 도장골

지리99 수야 2023. 7. 1. 14:28

도장골 

 

 

중경팀 23년 6월 정기산행 

일시:2023년 6월 25일 (일요일) 

산행자:연하, 산유화, 황순진, 구야, 산친구, 이종철, 최미희, 최정남, 성주숙, 수야 (10명) 

걸어간 길:거림주차장-도장골-반석-와룡폭포-시루봉-청학연못-무명교-거림 

산행시간:07시 09분~16시 17분(휴식, 긴 점심시간 포함: 9시간 08분) 10.33km





1

고대 그리스인들은 시간을 크로노스(Chronos)와 카이로스(Kairos)로 구분했다.

크로노스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태초신(太初神)중의 하나로 자연적으로 해가 뜨고 지는 시간이자 

지구의 공전과 자전을 통해 결정되는 시간을 말한다. 

태어나고 늙고 병들고 죽는 생로병사의 시간이다. 

일반적으로 흔히 말하는 시간은 이 크로노스의 시간을 의미하는 것이다.

카이로스는 그리스 신화의 제우스 신의 아들이며 기회의 신이라 불리었다. 

의식적이고 주관적인 시간, 순간의 선택이 인생을 좌우하는 기회의 시간이며, 결단의 시간이다.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지는 시간이지만, 사람들은 각각 다른 시간을 살고 있다. 

똑같은 24시간을 살더라도 원하지 않는 일을 억지로 하는 사람의 한 시간과,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이의 한 시간의 느낌은 큰 차이가 있다. 

카이로스는 특정 의미가 부여된 주관적인 시간이다.

인간이 현실에서 만들어내는 상대적 질의 개념이다. 

크로노스는 1일, 1개월, 1년처럼 객관적으로 흘러가지만, 

카이로스는 사건별로 진행된다. 천천히 가기도 하고 급속히 흐르기도 한다. 때로는 거꾸로 흐르기도 한다.

깨달음, 즐거움, 행복감, 성취감을 얻은 시간은 카이로스다.
시간을 알차게 보내기 위해선 크로노스가 아닌 카이로스의 관점을 가져야 한다.
나에게 지리산은 카이로스다.

3 간(間)의 관계 속에서 사람은 살아간다.

시간, 인간, 공간.

잠시나마 온전한 카이로스의 시간을 살기 위해, 이 사람들과 함께 지리산이라는 공간으로 들어갔다.



오늘은 유월하고도 이십오 일이다.

산 길 초입 개망초가 피어 있었다.

 

개망초


주린 배 졸라매고 부황 든 어머니

왜 풀떼기 나물 팔아 살았소이다

전쟁통에 꿀꿀이 죽차례나 오겠소구호 밀가루 수제비로하루 두 끼 때웠소이다조상 대대로 미운 놈이라왜 풀떼기라 불렀지만 알고 보니왕조 망해 갈 때 파고든

아메리카의 첨병이었소백 년이 흐른 지금우루과이가 생사람 잡고온 나라 구석구석에는망할 놈의 개망초 투성이외다




2

일반적으로 낯선 타인에 대한 첫인상을 호감과 비호감으로 분류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1분 남짓이라 한다.

첫인상은 순식간에 생겨나지만 그 생명력은 끈질기다.

부정적으로 형성된 인상을 긍정적인 인상으로 바꾸려면 상당히 오랜 시간이 걸린다.

도장골로 진입하는 들머리 길상암은 내게도 그렇고, 몇몇 동행들의 기억에도 그리 좋은 인상이 아니었나 보다.

살다 보면 피하는 게 상책일 때도 있다.

다리 아래로 내려서서 계곡을 따라 조용히 도장골을 따라 올라갔다.



다른 때와 달리 빨리 몸이 풀렸다.

맨 앞에서 뒤도 돌아보지 않고 냅다 속도를 좀 냈다.

길상암 감지기를 지나고 난 뒤, 계곡을 버리고 길 위에 올라섰다.

계곡이 잘 보이는 바위 위에서 배낭을 내리고 일행을 기다리고 있는데, 계곡을 따라 맨 몸으로 한 사람이 내려왔다.

뭐라고 말은 하는데 잘 들리지 않았다.

그래서 그냥 손을 한 번 들어주었고, 고개를 끄덕여 주면서 "오냐 알았다!. 알았다!. 그래 그래" 들리지 않을 만한 소리로 말했다.

잠시 후 올라오는 일행들을 길 쪽으로 안내했고 다 올라왔다.

트랙은 볼 필요도 없이 길은 반듯했다.

지도의 반석에서 아침을 먹기로 대장과 말을 미리 했기에 쉬지 않고 맨 앞에서 빨리 걸었다.

아줌마들이 등 뒤에서 뭐라고 수군대고 있었다.

내가 어쩌지 못할 애매한 유화 누나를 앞세워 배가 고파 죽겠다고 했다.

아마도 아침 먹을 시간이 훌쩍 지나고 있는 모양이다.

이럴 땐 무조건 침묵해야 한다. 잘못 건드렸다가는 성난 개 꼬리 밟은 꼴이 되기 때문이다.

반석에 거의 도착할 때 즘, 길을 따라 내려오는 산꾼들과 마주쳤다.

이 시간 벌써 하산을 하는 창원에서 왔다는 산꾼들은 우리를 보고 조심하라고 했다. 

가면 되니, 안되니 하는 사람과 마주쳤는데 기분이 나빠 그냥 하산 중이라고 했다.

정황상 아마 아까 계곡에서 손을 들어주었든 그 사람인 모양이다.

조심한다고 되는 일인가?, 뭘 조심한단 말인가?

내 지금껏 살면서 보았고, 경험하며 깨우친 것이 있다, 

인간사 아무리 노력하는 사람이라 해도, 타고난 복 있는 놈은 결코 이기지 못하는 법이더라.

우리 중경팀이 복이 있는지 없는지, 오늘 한 번 운명에 맡겨 보자.

아줌마들이 배가 고파 폭발하기 직전, 다행히 반석에 닿았다.

길을 따라오지 않고 계곡으로 올라온 연하 대장이 바위 위에서 내려 서지도, 돌아 내리지도 못하는 상황을 

연출하며 5분 가까이 모두를 웃게 만들었다.

마땅히 대장님이 잔을 따라 삼 배 하였다.

하산할 때까지 비가 내리지 않기를.

아무도 다치는 이 없기를.

좋은 곳, 좋은 것 많이 보고 느낄 수 있기를.

절대 잡히는 일이 없기를.

뭐, 물론, 그런 불상사가 생긴다면 우리 대장님 혼자 한 장만 끊을 수 있기를 산신령님께 빕니다!!!.

절 하는 뒤에서 내가 그렇게 소리 내 같이 빌었다.

만약 산행 중 비가 내리면 대장이 성의 없이 빌어서 그렇게 된 것이고,

비가 오지 않으면 우리가 복이 많아서 그런 것이라고 나중에 말할 참이다.



반석에서 아침을 먹고 난 뒤 계곡 치기로 올라가는 사람과 계곡 옆 길을 따라가는 사람들로 나뉘었다.

와룡폭포에서 만나기로 하고 서로의 길을 성실히 걸어갔다.

먼저 도착한 우리가 폭포 위에 배낭을 내리고 쉬고 있었다.

모두 다 올라왔는데 또 대장만 아직 오지 않고 있었다.

내가 그랬다 "두고 봐라 대장이 오면 분명히 우리 기다린다고 늦었다고 말할 것이다."

한참 후 나타난 연하 대장은 한 치의 예상을 벗어나지 않고, 그 말 그대로 똑 같이 했다.

순간 와룡폭포의 물소리 보다 웃음소리가 열 배는 더 크게 도장골을 흘러내렸다.







3

꽃은 주인이 따로 없고 눈으로 보는 사람마다 다 주인이 된다.



와룡폭포에서 오름 기준 왼쪽 산길을 따라 걸음은 계속되었다.

조금 더 걸어 오르는 동안 계곡 쪽으로 합수부가 보였다. 

왼쪽 골은 걷고 있는 촛대봉 골이고, 오른쪽은 아직 가 본 적 없는 연하봉으로 가는 골이었다.

고도를 조금 높이자 한번 더 합수가 보이는데, 지도의 촛대봉 골과 삼신봉 골의 합수부이다.

이곳에서 빈 물병마다 물을 가득 담았다.

촛대봉 남능에 오를 때까지 길은 숨을 헐떡이게 했다.

몇 번 올라 와 본 길인데도 이곳이 이랬었나 싶었다. 

혓바닥이 자꾸 늘어나는 것만 같았다.

고도 300을 올리는데 몸에서는 펄펄 끓는 용광로에서 쏟아져 나오는 쇳 물 같은 땀이 흘렀다.

간간히 전망대가 나타났다.

금방이라도 비가 쏟아질 듯 하늘은 인상을 쓰다가, 미소를 머금었다를 반복하고 있었다.

하늘이 인상을 찌푸릴 땐 불안했고, 잠시라도 미소를 보일 땐 염화시중의 미소 같았다.

전망대에 서자 바람이 불어왔다.

땀이 뚝뚝 떨어지는 얼굴에 쓰다듬듯 스치는 바람은 그야말로 존맛탱! 바람 맛이었다.

(존맛탱은 음식 맛을 극찬하는 요즘 사람들의 댓글 언어-처음에 나는 욕인 줄)

구야 형님이 말했다

'이 바람 맛은 땀 흘려 올라 본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바람 맛이다.'

돈으로 살 수 없고 말로써 형용되지 않는 바람이 걸음을 멈추게 했다. 

걸음만 멈추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잠시 눈 마저 감게 했다.

이때 두 팔은 자연스럽게 넓게 벌어지고, 가슴 가득 그 바람이 스며들게 되어있다 저절로. 

실로 살아 있음이, 감사함으로, 실감되는 확실한 느낌.

나는 그 바람을 만지는 카이로스적 시간을 '마운틴 오르가슴'이라 정의했다.

 

'환락극혜애정다(歡樂極兮哀情多)' '환락이 극에 달하고 나면 슬픈 정만 많이 남는다.'

소설가 이병주도 이 구절을 찬탄하였다고 하였지만, 볼 때마다 절창이 아닐 수 없다.

한(漢) 제국의 최고 전성기를 누리던 한무제가 가을바람이 불어오는 어느 날 강물에 배를 뛰워 놓고

신하들과 함께 흥겨운 잔치를 하다 읊은 추풍사(秋風辭)의 한 대목이다.

황제가 누려본 환락의 극치는 과연 무엇이었을까?

절대권력의 쾌감?, 절세미인들과의 성적 오르가슴?

슬픈 정이 남지 않는 쾌감이 있다면 그것은 무엇일까?

나는 아마도 '마운틴 오르가슴'이 아닌가 싶다.

산을 오르는 사람만이 느껴 볼 수 있는 이 희열의 극치 말이다.

 

옆 일출봉 능선 건너 천왕봉이 하늘을 받치고 있었다.



책을 읽는 것은 얼어붙은 감수성을 깨는 도끼라고 누가 그랬다.

산을 오르며 들 풀과 들 꽃과 산 새소리, 스치는 바람 소리를 듣고 깨어나는 감정도 독서와 같다.

오늘 우리는 지리산 도장골 책 한 권을 같이 읽고 있는 중이다.

조선후기 장동김 씨 최고의 명문가였지만, 권력보다는 제자 양성과 산수 유람으로 한 세상을 보내고자 했던 

김창협은 "산수를 보는 것은 마치 성현군자를 보는 것과 같다"라고 하였다.

꽃을 바라보는 사람마다 꽃의 주인이 돼 듯, 산을 읽고 있는 사람이 이 산의 주인이다.



4

매화는 반만 피었을 때 가장 아름답다.

벗 꽃은 활짝 피어야 여한이 없다.

복사꽃은 멀리서 보아야 분홍빛의 환상적인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배 꽃은 가까이 보아야 뚜렷하게 윤곽을 분명히 느낄 수 있다.

이것은 극히 개인적인 견해일 뿐, 모든 꽃은 모든 사람처럼 각기 자신만의 아름다움을 갖고 있다.



이 길에 이런 곳이 있었더란 말이지.

왜 이 페이지를 자세히 보지 못하고 나는 넘기고 말았더란 말인가.

'두 번 읽을 필요가 없는 책은 애당초 읽지 않는다'라고 톨스토이 인가하는 양반이 말했다 하드만.

10번을 와도 올 때마다 다른 느낌이니 그곳이 지리산이더란 말이다.



하나의 근본에서 만 갈래로 나누어지는 것이 산이라 했다.

바위틈 작은 꽃 하나에서 부터 길고 긴 능선과 겹겹의 산을 저마다 자신의 시각으로 바라보았다.

각자의 견해와 느낌의 '마운틴 오르가슴'은 몇 번이고 카이로스 시간 속에서 계속되었다.





"내 가도 되나?"

중경팀 산행에 조심스레 누나가 물어 왔었다.

"누나는 인지 그냥 우리 팀이요!"





청학연못에 들어서는 순간, 처음 와 본 누군가는 와아~ 소리를 자신도 모르게 흘렸다. 

그럴만하다. 나도 처음 여기를 왔을 때, 이곳은 가히 경하할 만한 사태가 벌어지고 있는 곳이라 생각했으니까. 

처음 와 본 사람이 나중에 그렇게 말했다. 

"대슬립에 기대어 바라보고 있는데, 꼭 엄마 품에 안긴 것처럼 마음이 편안해지더라." 

"이곳은 계절마다 꼭 다시 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늘이 숨겨둔 은둔의 땅 

가을에 또 오자! 

겨울에도.





두 점 간의 최단 거리는 직선이다.

청학연못에서 좌측의 길을 따라 최단 코스로 흘러내리듯 내려갔다.

우리 집 아줌마는 팀장의 등에 매달린 것 같이, 껌딱지처럼 찰싹 붙었다.

팀장이 선두였기 때문이다.

겁 많은 저 아줌마가 어서어서, 빨리 이곳에서 벗어나려 한다는 걸 이제는 모두 알고 있다.
미희님은 무명교 부근에 내려서고 나서야 저곳에다 스틱을 두고 온 것을 알았다.

혹시, 미희님이 특히 복이 많다면 누군가 찾아 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이 형도, 나도 최근에 큰 아픔을 겪었다.
하루 동안에도 수많은 생명이 태어나고, 수많은 사람들이 세상과 작별한다.

셀 수도 없는 일들이 일어나고 사라진다.

그 하루 속에 아직은 내가 있고, 네가 있고 우리가 있다.

나도 기적이고, 너도 기적이다. 우리 모두가 기적이다.

그 기적은 내일도 모레도 그리고 먼 훗날에도 일어날 것이다.



5

내려가는 길이 다른 때와 달리 지루하지 않다고들 했다.

청학연못에 밑줄을 긋고 온 탓인지 걸음들이 다른 때와 달리 경쾌했다. 

무엇인가 이룬 뿌듯한 성취감이 평소 지루하게만 느껴지든 길이, 오늘은 처음 가는 것 같이 지루하지 않단다.




숲은 비를 맞이할 준비를 끝낸 듯 자욱한 안개가 가득했다. 

그 숲에 금방이라도 후드득 소리가 날 것 같았지만, 복 받은 자들의 걸음이 끝날 때까지 기다려 주는 듯했다.






이제 다 왔다.

거림 저 소나무가 그 증거다.

 

선두 세 명은 저 앞에 벌써 내려갔다.

중간에 다섯은 같이 왔다.

아직 뒤에는 58 둘이 오고 있다.

저 앞에 간 것들은, 중간의 다섯에게 예의가 없었고, 이 다섯은 뒤의 58 두 사람에게 예의를 갖추지 못했다.



거림 주차장에 도착하자 먼저 내려온 영구 형님이 맥주잔을 내밀었다. 

아는 사람은 알 것이다. 

갈증이 수용한계치에 도달할 때쯤, 마시는 차가운 그 맥주 맛을. 

그때 우리는 이렇게 말한다. 

"그래 이 맛이지!" 

거림 주차장 아래 계곡으로 내려갔다. 지리산 도장골을 타고 내려온 물이 흐르고 있었다. 

그 속에 몸을 밀어 넣고 홀랑 벗은 맨 몸에 지리산을 입혔다. 

그때도 똑같은 말이 저절로 나왔다. 

"그래 이 맛이라니까!" 

하루 종일 참고 있었든 비가 그때서야 내리기 시작했다. 

정말 멋진데 이거! 

이쯤 되면 중경팀이 진짜 복 있는 사람들 아잉교?

 

6

싹 씻고, 덕산 조미원으로 갔다.

인간의 본질적 쾌락은 식욕과 성욕에서 온다고 했다.

밥을 사람과 나누어 함께 먹을 때, 혼자 먹는 것이 아니라, 마주 보고 대화하고 밥을 먹을 때,

신경 전달 물질과 호르몬이 생성된다고 한다. 

그래서 행복감을 높이려면 좋은 사람을 만나고 같이 밥을 먹어야 한다.

같이 밥 먹는 사람을 그래서 식구(食口)라 하지 않더나.

술?, 술은 말해 뭐 하나.

인연이라는 말로는 부족하지만 그래도 인연이라고 하자. 딱히 달리 사람의 관계를 표현할 말이 없으므로.

공간, 시간, 사람

그 간의 인연이 딱딱 맞아서 맺어진 관계들이다. 

심각한 이야기도, 마음속 이야기도 가끔은 털어놓을 수 있다.

비가 본격적으로 내리고 있었다.

상관없었다.



이민진 소설 파친코에는 

<역사는 우리를 저버렸지만, 그래도 상관없다.>는 문장으로 시작된다. 

상관없다. 

세상이 이러니 저러니 해도 상관없다. 

산이 거기에 있고 내가 가고 싶다면 가면 된다.

 

<Life is either a daring adventure or nothing.> 

'인생은 과감한 모험이던가, 아니면 아무것도 아니다!' 

 

우쩌?. 복 있는 중경팀 하고 지리산 가서 밥 함 먹어 볼 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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