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솔암
행동팀 130차 지리 산행
일시:2023년 6월 11일 (일요일)
함께 걸은 사람들:연하, 황산, 황산지기, 황순진, 김은의, 산친구, 최정남, 성주숙, 수야, 산으로, 산유화, 해영, 봄이(13명)
걸어간 길:영원사-도솔암-삼정산능선-영원재-벌바위-영원봉-빗기재-영원사
산행 시간:08시 25분~16시 40분(8시간 15분) 7.2km


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그는
그의 과거와 현재와
그리고
그의 미래와 함께 오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부서지기 쉬운
그래서 부서지기도 했을
마음이 오는 것이다
그 갈피를
아마 바람은 더듬어 볼 수 있을
마음
내 마음이 그런 바람을 흉내 낸다면
필경 환대가 될 것이다.
방문객 - 정현종 -
그런 바람을 흉내 낸 마음들이 서로를 환대했다.
노상에 자리를 펴고 아침상을 차렸다.
서로를 생각하는 마음에 넘칠 정도로 지나친 음식이 아침부터 숨차게 했다.
13명 중 딱 두 사람만이 잔을 잡았다. 가볍게 한 병을 비웠다.
서울에서 공수해 온 해영 형님의 꼬리곰탕은 술이라는 걸 먹었는지 마셨는지 알 수 없게 했다.

영원사 직전 폐타이어 들머리 입구에 주차했다.
계곡을 건너자 먼저 건너간 일행이 경고 방송 보다 더 요란하게 경고한다고 경고를 하고 있었다.
감지기를 피해 돌아 들어갔다.
가야 할 길에 그 어떤 것도 장애일 뿐 가지 못할 길은 없다.

도솔암으로 가는 길은 호젓하고 상쾌한 숲 길이었다.
새벽 고속도로를 달리는 차 안까지 점령한 밤 꽃 향기가 이곳에는 없었다.
엊그제까지 아카시아 향기가 폴 폴 날리는가 싶더니 세상은 어느새 온 천지가 밤 꽃 향으로 진동하고 있었다.
아카시 꽃은 가는 봄이었고, 밤 꽃은 오는 여름이었다.
송골송골 금방 땀이 솟아났다.

멸치의 눈
잠깐의 휴식에도 산길은 시끌시끌했다.
아침을 먹을 때 시래깃국을 내놓았는데 해영 형님이 머뭇거렸다.
이유는 멸치가 들어가서 못 먹는다는 것이었다.
멸치는 넣지 않았다는 말에 형이 숟가락을 들었다.
멸치를 먹지 못하는 이유가 웃겼다.
멸치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는 걸 보았는데 그 이후 멸치를 먹지 못한다는 것이다.
눈 달린 것 중에 세모나 네모나게 눈 뜬 게 있을까?
멸치의 눈과 아이컨택이 이루어지고 난 이후 먹을 수 없다는 이야기에
생선을 보면 눈부터 젤 먼저 빼먹는 사람이 이 자리에 있다며 또 한 참을 웃었다.

중경팀 단체 복을 서울팀은 차려입고 왔는데 중경팀은 아무도 입고 오지 않았다.
산행 후 갈아입기 위해 챙겨 왔을 뿐.
아침에 세 분이 나란히 입고 나타났을 때 누군가 그랬다.
예쁘다!.

밑 창이 입을 벌려버린 팀장의 등산화를 봄이 님이 묶어주었다.
그 덕분인지 하산 때까지 팀장의 등산화는 더 이상 입을 벌리지 않았다.

도솔암에서의 기대한 조망은 시원치 않았다.
국지성 소나기가 예보된 터라 비가 내리지 않은 것만으로도 감사했다.

법당 뒤 조망터로 배낭을 벗어 두고 올라갔다.
가야 할 벌바위와 영원봉이 아득히 멀고 높아 보였다.
그래도 가야 할 길이라면 가야 한다.
각오하고 맞이하는 일은 언제나 견딜만하다,
예측할 수 없는 앞 길에 예측 가능한 것은 차라리 감사함으로 여겨진다.
마음의 준비라는 것이라도 할 수 있으니까.
느닷없는 일 앞에서 속수무책일 때 사람은 참으로 무기력하고 무력하다는 것을 느끼곤 한다.

도솔암은 한국전쟁으로 폐허가 된 후 정견스님이 스승 혜암스님을 모시고 1985년 무렵 다시 세웠다.
현판은 조계종 종정을 역임하신 혜암스님 글씨라고 한다.

절실하고 절박하면 기도라도 하게 되더라.
여태 나는 사찰이나 암자에서 부처님을 친견하는 경우가 별로 없었다.
그러나 최근 들어서는 일부러 라도 꼭 법당에 들어 예를 올린다.
절하는 법도 배우고 익혔다. 갑갑하고 마음이 뒤엉킬 땐 집 근처 절에서, 집에서도 108배를 해 보았다.
잠시라도 마음이 가라앉고 차분해지는 것 같았다.
얼마 전 누군가에게 매달리고 싶을 정도로 간절하고 절실한 일들이 있었다.
사는 동안 격지 않았으면 좋을 일들이 연이어 일어났었다.
간절함, 절실함, 절박함이 부처님 앞으로 나를 이끌었다.
그 덕분에 아주 얕게 조금씩 자연스럽게 공부를 하게 되었다.
도솔암의 부처님이 아미타부처 인 걸 알게 된 것도 그 때문이다.

채마밭에 자란 풀을 보고 가만있지 못하는 산유화 누나는 냉큼 잡초를 뽑았다.
스님들이 매일 자라는 머리카락조차 번뇌의 상징으로 여겨 삭발한다고 했었든가.
채마밭의 잡초는 인간사 번뇌처럼 그래도 계속 올라올 것이다.

법당에 모셔진 부처님에 대해, 잠시 동안 절을 봐주기로 했다며 와 계신 스님과 대화를 나누었다.
보관과 수인으로 부처를 구분하는 방법에 대해 또 하나를 배웠다.
물론 배웠다 하지만 돌아서면 금방 잊어버릴 테지만....
도솔암에서 삼정산 능선으로 올라갔다.
숨이 차올랐다.
예전에도 올라 본 길인데 기억도 나지 않았다.
집에 와서 찾아보니 분명 가 본 길이었는데 나는 처음이라고 계속 말했었다.
이제 그런 생각이 자꾸만 든다.
기억이 나지 않을 땐 무조건 입을 다물자.

일등은 언제나 긴장되고, 중간은 풍요하고, 꼴찌는 편안하다 하였다.
산길에서 계속 뒤에서 누군가 바짝 붙어오는 느낌이 들면 걸음은 저절로 빨라진다.
이거 은근 신경 쓰이고 왠지 쫓기는 느낌이 아리삼삼 해진다.
뒤 돌아보니 봄이 님이다. 내 걸음이 점점 빨라진다. 뒤에 걸음 소리도 더욱 빨라진다.
점점 이렇게 가다가는 뛰어야 될지도 모르겠다....
아까 해영 형님이 그랬다. 미운 놈 있으면 뒤에 봄이 님을 세운다고....
이제 그 말이 뭔 말인지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쉬어야 할 핑곗거리를 찾아내는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아 다행이었다.
뒤에 사람과 거리가 너무 많이 떨어졌다는 그럴싸하고 간지 나는 핑계로 잠시 걸음을 멈추었다.
로프구간을 내려오는 방법은 모두가 각양각색이었다.
밑에서 지켜보니 롱다리라 쉽고, 숏다리라 하여 힘든 게 아니었다.
롱다리의 불안정한 자세 ↓

숏다리의 안정적인 자세↓

때론 가파른 오름막이 삶의 어떤 부분을 상기시킬 때가 있다.
등가교환의 법칙이라 게 있다.
우리가 갖고 싶은 것이 있으면 그 가치만큼의 희생이 필요한 거다.
돈을 지불하고 물건을 사는 것처럼.
높은 곳을 올라가기 위해서는 이렇게 숨을 헐떡이며 오르막을 올라야만 한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는 당연한 명제는 산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영원재에서 점심을 먹었다.
눈물은 아래로 떨어져도 밥숟갈은 위로 올라가야 하고.
나 말고는 나를 살릴 이는 세상 어디에도 없기에 밥은 먹어야 한다.
그것은 산 위에나 산 아래에나 똑같다.
요즘 들어 갑자기 보수적 생활 태도로 돌변해 버린 분들이 빠지니, 술은 산으로님, 해영 형과 나만 마시게 되었다.
대충 알딸딸해질 만큼이었지 싶다.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울 동내 아줌마들이 물어 보더만.
또 기억 안 날거지?
기억이 안 나긴. 휴게소에서 내가 장갑도 사주고, 모자도 사 줏다 아이가.
싹 다 기억난다. 보리밥 집 에서 마지막 남은 거, 그거 한 잔만 더 묵을라 카다가 욕 묵은 것도 다 기억난다. 뭐시라 삿노.

벌바위에서 사방을 돌며 지리산 곳곳을 눈 관광했다.

건강을 잃어 본 사람 만이 건강의 소중함을 안다.
산으로 님의 경험에서 우러나온 이 말에 모두들 깊이 공감했다.
70에 가까운 산으로 님의 나이에도 놀랐지만, 숨소리조차 가뿐한 산길 체력이 놀라웠다.
사고의 장애를 의지로 이겨낸 이야기는 건강하게 살아야 할 분명하고 올바르고 바람직한 훌륭한 교훈이었다.


영원재에서 더 이상 올라가지 않겠다고 무거운 연하 형님 배낭을 자기가 메고 내려가겠다고 하든 해영 형님도 벌바위까지 결국 올라왔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올라 오길 잘했다!"
서울에서 새벽에 출발, 늦은 귀가, 월요일 출근의 부담을 감수하고 일요일 산행에 동행 것만으로도 중경팀에 대한 배려의 마음이 느껴졌다.

이렇게 말하면 강력한 항의가 쇄도하겠지??
사진 속 여인네들이 실물 보다 더 예뻐 보인다.
역시, 사진은 눈속임의 예술!


반야봉과 서북능선이 앞에 놓인 곳에서 오랫동안 놀았다.

일상에서는 수평적 시각으로, 내 눈높이로만 사물을 바라보며 산다.
어쩔 수 없이, 피하지 못하고, 또는 마음을 다잡지 못하고, 심리적 수직의 시각에 나는 가끔 심하게 흔들리기도 한다.
산을 올라 높은 고도에서 말 그대로 조감적으로 위에서 내려다볼 때 내 삶은 새로운 시야로 세상이 열리곤 한다.
나는 이 조감의 시각에 한없이 매료된다.
누군가 그것이 바로 중독이라 했었다. 충분히 그렇게 말할 만하다.
산꾼들의 글은 발로 직접 걷고 몸으로 체험한 후 태어난다.
그래서 그 글이 때론 삶을 어루만진다.
내 글을 읽었다 하여 나와 느낌이, 생각이 같을 수는 없다.
다만, 누군가 에게 위로나 위안 내지는 작은 도움이라도 된다면 졸필의 부끄러움 정도는 충분히 감내할 만하다는 생각이 든다.
간혹 산행기 말씀을 해 주시는 분들이 계셔서 시답지 않은 글을 덧붙인다.

보리밥 한 그릇에 막걸리 두어 병 소주 한 병이 산행 뒤풀이 전부인 것이 자꾸 입맛을 다시게 했다.
아, 소주는 내 혼자만 먹었다.
하산 후 영원사 계곡에서 멋 모르고 홀딱 벗고 계곡에 들어갔다가 머릿속이 정지되고, 정전이 된 것 같은 짜릿함이 아직도 그대로이지만
서둘러 각자의 갈 곳을 향해 방향을 잡았다.
나의 지론 중 하나는 이별은 짧고 간결해야 하는 법이다.

화양연화(花樣年華)
인생에서 꽃이 활짝 핀 가장 아름답고 행복한 시간을 <화양연화>라 한다.
일생 한 계절에 오로지 한 번 꽃을 피우고 영원히 지고 마는 꽃이 있는가 하면,
아주 오래된 고목이지만 해마다 꽃을 피워 내는 나무도 있다.
나의 가장 화려한 시절은 이미 지나간 과거일 수도 있고, 오래된 고목이 피워내는 꽃처럼 계속될 수도 있는 것이다.
내 살아 보니 내일은 언제나 내가 바라는 방향에서만 오지는 않더라.
올지, 안 올지 모르는 내일 화양연화를 꿈만 꿀 게 아니라, 지금 이 순간 활짝 꽃을 피울 방법을 찾아야겠더라.
어디서 본 글인데, 돌아가시기 직전의 어느 노인이 한 말이 그랬단다.
'마지막에 웃는 놈이 좋은 인생인 줄 알았는데, 자주 웃는 놈이 좋은 인생이었다'라고.
나는 믿고 싶다.
나의 화양연화는 지금 현재 이 시간이다.
부디 이 글을 읽으신 당신도 언제나 화양연화 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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