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산행

2022.04.03 구롱길

지리99 수야 2022. 7. 22. 19:23

구롱길

독오당 117차 정기산행
일시: 2022년 4월 3일
산행자:다우, 엉겅퀴, 에스테야, 귀소본능, 수야
걸어간 길:송대마을-솔봉 능선-의론대-고열암-구롱길-청이당 터-두류암 승탑-얼음터-상내봉 능선-송대
산행시간:08시 02분~17시 02분(9시간) 12km

2022-04-03 구롱길.gpx
0.06MB



7시 50분 용유교에서 엉겅퀴 형님을 만나 송대마을로 올라갔다.
구롱길을 가기로 계획된 이번 산행은 지난번 독오당 시산제 때 이미 정해져 있었다.
산행을 준비하는 동안 이제는 춥다는 느낌이 들지 않아 몸을 움직이기에 한결 가벼워진 계절이 되었다.
8시가 넘어서자 출발을 하며 각자 오룩스 맵 기록 시작 버튼을 작동시켰다.


주차한 곳에서 우측 선녀굴로 가는 줄 알고 그쪽으로 서 있었는데 반대방향으로 엉겅퀴 형이 앞서 걸어갔다.
나와 같은 생각이었든 대장이 왜 그쪽으로 가느냐고 내 마음을 읽기라도 한 듯이 대신 물었다.
이 쪽이 볼만 한 곳도 많고 더 좋다고 엉겅퀴 형이 말했다.
한 번도 안 가 본 길이라 나는 냉큼 엉겅퀴 형의 뒤를 따라붙었다.
대장님은 이 길과 선녀굴 골 중 어디가 더 편하고 짧은 길인지를 물었다.
'아무 소리 말고 그냥 이리 오소!.'라는 분명한 메시지가 듬뿍 담긴 엉겅퀴 형은
"선녀굴 골보다는 이쪽 길이 더 멀기는 하지."라고 말했다. 대장은 짧고 편한 길로 가고 싶다는 말을 자꾸 하였으나 대세는 이미 기울어 있었다.



송대 마을 수피아 펜션을 지나 차가 올라가기에도 힘이 들 것 같은 구부러진 임도를 따라 올라갔다.
엉겅퀴 형은 뒷짐을 지고 설렁설렁 걸어갔고, 몇 걸음 걷지도 않은 우리는 숨부터 차올랐다.



임도길이 수평으로 편안해지자 저쪽으로 상내봉(향로봉)의 모습이 보였다.



밥 값을 제대로 하는 개쇠이들이 한동안 목이 쉬도록 짖어대는 집을 지나
과수원 옆 좁은 길을 따라 급경사를 초반부터 땀이 삐질삐질 나도록 올랐다.
이 능선은 넘어가면 문수사로, 왼쪽은 마적동으로 가는 길이, 오른쪽으로 올라가면 솔봉을 오르게 되는 솔봉 능선이다.
예전 송대마을 아이들은 이 길을 넘어 학교를 다녔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엉겅퀴 형이 말해 주었다.







09시 19분
능선 사거리에서 고도 200을 겨우 올리고 솔봉(914.8봉)에 올라섰다.
반야봉이 저 멀리 정면으로 들어오는 이곳에 누군가 묘를 쓰기 위해 만들어 놓은 가묘 형태의 자리를 엉겅퀴 형이 알려주었다.
누군가 묻힐 곳을 미리 정해 놓았지만 과연 실제로 이곳에 묘를 쓰게 될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는 말을 덧붙였다.





선녀굴 사거리를 지나 쉬지 않고 올라 의론대에 도착했다. 산행 2시간 만인 정각 10시.
이쯤에서는 예외 없이 "쌔가 만발이나 빠질라 칸다."는 말이 나오기 마련이다.
배낭을 벗고 앉아 쉬었다.
함양 독바위




올라온 솔봉 능선
솔봉의 '솔'은 좁다, 솔다, 라는 뜻이란다.
솔봉을 문필봉으로 부르는 주민들도 있는데 붓끝처럼 뾰족해서 그렇다고 엉겅퀴 형이 알려주었다.
이곳을 여러 방향에서 올라왔었지만 솔봉 능선은 늘 바라보기만 하다 오늘에야 걸어 올라왔다.
이쪽으로 코스를 잡은 엉겅퀴 형의 선택은 옳았다.



상내봉
상내봉 굴, 소림 선방이라고도 하는 곳이 어디인지 물었고, 가보자고 의논이 되었다.



의론대에서 의논을 열심히 했다.



10시 20분 고열암에서 구롱길로 들어갔다.





클릭하면 엉겅퀴 님 산행기: 김종직의 구롱길 (jiri99.com)

엉겅퀴 형은 구롱길이 꼭 아홉이라는 뜻은 아닐 것이라고 했다.
'많다'라는 의미로 생각하면 될 것이라고 했다.
이는 '앞 날이 구만리 같다.' 할 때 구만리가 길다 라는 의미로 쓰이는 것과 비슷하다고 나는 알아들었다.

<산언덕이든 산모퉁이든 고개 든 구롱은 꼭 9개가 아닐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몇 번을 세어봤지만 억지로 아홉 구비를 맞추면 몰라도
어떻게 세느냐에 따라 그때마다 달랐다. 내가 바보라서 그런가?
꼭 아홉 겹의 담장이 있어서 구중궁궐이겠으며, 꼭 창자나 간이 아홉 번 구부러져 구절양장·구곡간장이겠는가?
또 주자의 무이구곡을 본받아 전국에 “○○구곡” 하는 게 100여 곳이 넘는데 그 모든 골짜기나 산모퉁이가 어찌 정확하게 아홉 굽이이겠는가??
몇 년 전 철모 삼거리 아래 옛 마을터에서 새재로 넘어가는 사면 길을 답사한 적이 있었다.
새재 마을 토박이 주민들은 그 길을 ““아홉 사리 열두모티 길”이라 하였다. 어찌 꼭 9개 능성이에 12개 모퉁이이겠는가?

점필재도 첫 번째 구롱[九隴之第一] 외에는 “연달아 서너개의 산언덕을 지나고[連度三四]” 또 “구롱을 다 지나고[度九隴訖]”라 하여 뭉뚱거렸다.
그러므로 일일이 몇 번째 구롱에 해당하는 지형지물에는 뭐가 있다는 식으로 특정 짓는 것은 별 의미 없는 일이며
숫자에 얽매일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9(아홉)는 모퉁이든 언덕이든 많아서 중첩된다는 뜻으로 보면 될 것 같다.> -엉겅퀴 형의 산행기에서-



고열암에서 25분 정도를 걸어왔을 때 이곳에 샘이 있다며 물 맛이라도 보고 가자했다.
바위틈으로 물 흐르는 소리가 선명하고 수량이 풍부했다.
청소를 하고 조금 기다리자 금방 새물이 차올랐다.
청소는 내가 했고 물은 에스테야 형이 인심 쓰듯이 형님들에게 퍼서 나누어 주었다.
평소에는 들판에 눈길 한 번 안 주다가 추수 때가 되면 다 된 농사에 낫 들고 덤비는 사람, 동네에 꼭 한 명 정도 있다.
그나마 귀소본능이 청소하는 사진을 찍어 두었기에 이 말이라도 할 수 있다.
아, 혹시, 그래서였을까 에스테야 형이 본능에게 뜨 준 물에는 모래흙이 깔려 있었던 이유가.
그래도 물 맛은 시원하고 참 좋았다.
이 물은 선녀굴 골로 흘러가는 모양이다.



샘에서 10분 정도 걸어 나오면 약간의 오르막으로 모퉁이를 돌게 되는데 이를 구롱이라 하는지는 모르겠으나 그곳에 저 바위를 보게 된다.
이 바위가 보이면 상내봉 위쪽 능선에 도착했다고 생각하면 되겠다.



상내봉 그 굴을 가보자 하고 엉겅퀴 형 뒤를 따라 가는데 아무도 오지 않았다.
돌아보니 귀소본능은 아예 갈 생각이 없고, 대장은 얼마나 걸리는지를 물었고, 에스테야 형은 갈까 말까 고민을 하고 있는 중이었다.
독오당이 어쩌다 이지경이 되었는지....
"얼마 걸리지 않는다. 한 5분 정도"라는 엉겅퀴 형의 말에 대장님이 그럼 가 보자고 했고, 마지못해 에스테야 형도 따라왔다.
묵직한 본능은 우리가 돌아올 때까지 아무도 가져갈 리 없는 배낭을 지켰다.
언제 일어섰는지 전에는 처박혀 있든 와불산 표지석이 서 있었다.






논란이 있고, 천지도 모르는 내가 어떤 명칭을 써야 될지를 모르겠으니 그냥 상내봉 굴이라고 쓰겠다.
좁은 바위틈을 내려가자 생각보다 꽤 커고 넓은 모습의 굴이 아래 위로 통하게 되어 있었다.
사람이 장기간 머물 수 있는지, 살 수 있는지 아닌지 그런 것은 솔직히 나는 모르겠다.



굴 앞 쪽으로 나와 보니 넓은 바위가 있고 그곳으로 가서 보면 의론대가 마주 보였다.





상내봉 굴에서 본 솔봉은 더 뾰족해 보였다.





고도의 높낮이가 그리 없는 사면 길을 따라 많은 사람이 다져 놓은 길은 아주 선명하고 또렷하게 잘 나 있었다.
동부에 관해서도, 점필재 길에 관해서도 엉겅퀴 형이 설명을 해주며 딱 꼬집어 여기다 아니다는 식으로 그렇게 모든 것이 정확할 수는 없지 않겠냐고 했다.



지도에 집터로 표기된 곳에서 한 번 더 쉬었다. 12시 08분
70년대까지 주막이 있었든 곳이란다.
이곳은 사통팔달의 교통 요충지로 광점동 송대 사립재 청이당으로 통하는 곳이니 주막이 있었다는 말은 충분한 설득력이 있어 보였다.
주막집의 풍경에 대해 상상의 말들이 쉬는 동안 쏟아졌다.



집터에서 30여분을 걸어오자 방장문 각자가 새겨진 석문을 만났다.
이곳을 여러 번 지나다닌 엉겅퀴 형은 저 각자를 그때는 보지 못했다고 했다.
이 길을 찾아낸 사람들의 열정과 노력이 대단하다고 했다.
석각이 새겨진 것은 한 100여 년 된 것으로 생각된다 하였다.
각자까지 새겨진 길이라면 그만큼 통행량이 많았든 길이라는 의미일 것이고, 이 길이 족보가 있는 길이라는 뜻일 것이다.
점필재가 이곳으로 지나갔는지 다른 길인지, 솔직히 나는 그리 큰 관심이 없다.
그렇다고 하니 그런가 보다 할 뿐이다.
다만, 엉겅퀴 형의 말처럼 점필재 길을 찾아 수없이 산 길을 헤맨 앞선 선답자들의 그 끝없는 열정과 노력에 무한 감동하지 않을 수 없다.
정말로 대단한 분들이고 감사하고 고마울 따름이다.



쑥밭재를 넘어 청이당에서 점심을 먹었다.
한 시간이 넘도록 신발을 벗고 편안히 앉아 점심을 먹는 동안 종주하는 산꾼들 중에 중도에 탈출하는 한 사람이 길을 물어왔다.
이럴 땐 더없이 친절한 에스테야 형이 다른 때와는 달리 가만히 있었다.
왜 그랬을까.
내가 생각하는 것은 딱 두 가지 중 하나다.
여자가 아니라서.
길을 모름.

본능과 내가 에스테야 형에게 하듯이 형은 엉겅퀴 형과 다우 형님에게 마음먹고 한 번 게기는 듯했다.
"다우야 엉겅퀴 한 잔 해라!"이러는데....
근데, 형! 그런 거 아무나 하는 거 아니다.
우리가 에스테야 형에게 하는 건 참 자연스럽는데 형이 형님들에게 하는 건 전혀 자연스럽지 않아.
자꾸 하다 보면 좀 나아질 랑가는 몰라도...



점심을 먹고 다시 쑥밭재로 올라갔다.
어름터로 내려가는 길 두류암 승탑이 서 있는 곳까지 산길을 부른 배를 안고 걸었다.
승탑이 서 있는 조금 위, 바위에 엉겅퀴 형이 각자라고 추증되는 곳을 손으로 끓어 확인하려 했으나
마모가 심하고 잘 알아볼 수 없었다.



어름터 독가에 도착하니 개 두 마리가 주위를 맴돌며 짖어댔다.
정자에 앉아 잠시 쉬고 독가 뒤 텃밭이 있는 곳을 지나 상내봉 능선으로 올랐다.
이곳으로 넘어 가야 송대로 가는 가장 짧은 길이기 때문이다.
짧은 거리였지만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르는 길은 마치 집 지붕을 오를 때 세워놓은 사다리처럼 가팔랐다.





사람은 공짜라 할 지라도 준 것을 도로 빼앗을 때 기분이 더럽다. 다 내려온 길을 다시 올라가는 이 기분이 그렇다.
능선에서 송대로 내려가는 길 오목하게 꺼진 재는 이름이 없는데 송대 마을 주민들은 이곳을 장구목이라 부른다고 했다.
지도에 장구목은 이곳에서 조금 떨어진 벽송사 방향에 표기되어 있었다.




마당바위 16시 52분
밭 한 귀퉁이 집 축대 위에 넓은 바위가 평평하게 놓여 있고 광암대 각자와 장기판까지 새겨져 있었다.
마당바위는 민가의 앞마당을 지나야 볼 수 있고, 이곳에서 송대 마을로 내려가는 길도 또 다른 남의 집 마당을 지나가게 되어 있어 부담이 된다.
양해를 구했지만 달갑지 않아 하는 집주인의 불편한 표정 때문에 빠르게 내려갔다.



마당바위(광암대)




17시 02분 송대마을에 원점 회귀했다.
정확히 9시간을 산에 있었다.


청파정에서 저녁을 먹었다.
형수님이 상다리가 휘도록 차려주신 진수성찬과 내일의 걱정이 어디로 달아났는지 모를 정도로 기분이 좋아지는 술을 마셨다.
대장님의 죽다가 살아났다는 엄살도 순 진짜 엄살로만 들렸다. 다음 산행지까지 미리 정해졌다.
대장님도 술잔을 몇 번이나 입에 갖다 댄 걸 보면 그 술 참 맛있었다.
숨 쉬는 일 지장 없고, 먹고, 싸는 일 별 지장 없으면 사는 일 별 지장 없다는 말이다.
사는 일 별 지장 없다면 독오당은 여전히 지리산에 들 것이다.

'지리산 산행'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22.05.01 영신대 사면길  (0) 2022.07.22
2022.04.24 천왕봉  (0) 2022.07.22
2022.03.27 지리산 자락길  (0) 2022.07.22
2022.03.13 유람(화엄사,운조루)  (0) 2022.07.22
2022.03.06 지리산 자락길  (0) 2022.03.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