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 /낙남정맥

2022.02.13 낙남정맥 2차(갓거리재-고운동재 )

지리99 수야 2022. 3. 15. 22:46

갓거리재-고운동재

 

낙남정맥 2차

행동팀143-지리114차

일시:2022년 02월 13일

산행자:연하,구야,황순진,산친구,나비부인,최정남,성주숙,수야 (8명)

걸어간 길:청학동-참샘-갓거리재-외삼신봉-묵계재-고운동재

진입구간: 1.7km/ 정맥구간:6.1 km / 진출구간: 0km/  정맥누적: 13.9km

산행시간:08시 56분~16시 18분(7시간 22분) 7.8km

2022-02-13 낙남정맥2차(청학동-갓걸이재-고운동재).gp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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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남정맥 두 번째 길은 청학동에서 시작하여 갓거리재로 올라갔다.

갓거리재에서 고운동재까지만 가기로 했다.

길을 짧게 끊은 것은 공포스러운 긴 산죽 구간을 통과해야 하는 부담감이 가장 큰 이유였다.

또한, 자칫 거리를 무리하게 잡아 버리면 이번 산행도 고행이 되어 버리지나 않을까 하는 염려 때문이었다.

지난번 갓거리 골로 하산하면서 하도 고생을 하였기에 나머지 구간은 절대 무리하지 않아야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14명이 시작을 거창하게 하였는데 두 번째 산행에는 인원이 대폭 줄었다.

차 한 대를 고운동재에 가져다 놓고 왔더니 그동안 이 사람들은 몸을 푼다고 뜀박질을 하고 있었다.

차가운 아침 기온에 가만히 앉아 기다리기에는 긴 시간이었나 보다.

 

합법적인 길을 따라 바람직하고 올바르게 등로를 착하게 걸어 올라갔다.

눈길이 가는 길 이쪽저쪽으로 고로쇠 채취용 비닐봉지가 수도 없이 박혀있었다.

어느 정도 수액이 차면 수거를 해야 할 것인데 어떤 봉투는 고로쇠가 가득 차다 못해 넘칠 지경인 것으로 보아

채취용 봉투를 매달아 놓은 주인은 그렇게 부지런한 사람은 아닌 듯했다.

산의 먼 곳과 골짜기에는 희뿌연 가스가 가득 차 있어 조망은 기대하기 어려워 보였다.

빠르게 갈 필요가 없는 길이라 마음이 여유로워 잡담이 많았다.

잠시 일행의 맨 뒤로 떨어져 거래처 납품을 하고 왔더니, 선두와 거리가 한참이나 떨어져 쫓아가느라 땀이 날 지경이었다.

빨리 걷지 않아도 되는 길이라고 그렇게 강조하였건만 소변보는 그 시간이 길면 얼마나 길다고 이렇게도 빠르게 걷는단 말인가.

이것은 후미로 쳐진 나를 멀리 떼어 놓아야 하는 어떤 의도가 있는 게 분명하다.

그래 실컷 씹어라. 얼마나 내게 불만이 많으면 저러겠나 내 기꺼이 씹혀주리라. 속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그들의 목적은 으밀아밀 나를 씹어 돌리는 것이 아니었다.

현장에서 나에게 딱 걸린 은의는 급하게 한 모금 넘기다 사래가 걸려 숨이 넘어갈 뻔했다.

사실 나도 벼름 벼름 하든 일이었으므로 묵인 방조하였고 신속히 냉큼 동조했다. 나도 공범임을 자인한다.

넘쳐서 버리는 것보다는... 이미 3주가 지나가고 있으니 공소시효도 얼추 안 되었겠나 싶기도 하고.

 

참샘에서 배낭을 내리고 쉬었다.

땀이 빠르게 식었다.

아침 먹은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과일이 나왔고, 먹는다 안 먹는다 하면서도 배낭 밖으로 나온 것은 다 먹어 치웠다.

사람은 자주 만날 수록할 말도 많아지는 모양이다. 참샘에서 물통의 물을 가득 채웠다.

 

갓거리재에 올라섰다.

거림으로 내려갔든 그날의 기억이 다시 살아나 모두를 즐겁게 했다.

그동안의 산행 중 몇 번 안 되는 야간산행 역사들까지 모두 이야기 속으로 송환되었다.

역사학자 E.H. 카의 유명한 말처럼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라는 말이 들어맞는 것 같았다.

영신봉에서 갓걸이재까지 7.8km를 지난번에 걸어왔고, 이곳에서 낙남정맥 트랙 이어가기 시작 버튼을 다시 눌렀다.

 

갓거리재에서 외삼신봉으로 금줄을 넘어갔다.

밧줄 하나로 합법과 비합법의 경계가 명확하게 구분되어 있었다.

약간의 오름길, 걸음에 와닿는 산길의 감촉이 온몸으로 부드럽게 전해지는 것 같았다.

발에서 부터 전해지는 그 느낌은 비합법이 주는 마음의 불편함을 상쇠 시키고도 남을 만큼 안온했다.

까마귀들이 머리 위를 맴돌며 짖어댔다.

사람이 반가운 것인지, 먹이가 있을 법하여 사람을 계속 따라오는 것인지 까마귀의 언어를 통 알아들을 수 없었다.

 

갓거리재에서 외삼신봉까지는 그야말로 지척이었다.

외삼신봉 정상에서 건너편을 바라보니 남부 능선이 길게 뻗어 가고 있었다. 더 멀리에는 하동 형제봉이 머리를 내밀고 있었다.

안경에 습기가 찬 것처럼 조망은 시원하지 못하고 온통 뿌옇게 흐려있었지만, 높은 곳에 서서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긴 숨이 토해져 나왔다.

가슴 한편으로 맞바람이 통하듯 뻥 뚫리는 시원함 때문이었다.

높은 곳에 서면 작은 것들에 연연하는 일들은 잊히고 대담해지고, 보다 대범 해지는 사람이 되는 것 같기도 하다.

중독성이 치명적으로 강한 이런 기분은 산에 올라본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산의 보상이다.

 

주능선 영신봉(1.651.6m)에서 삼신봉(1.284m) 외삼신봉(1.288.4m)까지 걸어온 길을 한동안 바라보았다.

장쾌한 산맥을 바라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내 몸속 가득 지리산의 기운이 전해져 오는 것 같았다.

 

 

외삼신봉에서 몇 발짝 내려서자 로프를 잡고 내려가야 하는 구간이 나왔다.

남자들이야 별로 무리 없이 내려갈 수 있었지만, 잡아 주고 받쳐주지 않으면 겁부터 먹는 여인네들은 한동안 몹시 소란스러웠다.

말이 제일 많은 사람이 겁을 그만큼 많이 낸다는 것은 그동안의 경험에서 이미 다 아는 사실이었다.

일곱 명이 다 내려갈 때까지 바위에 앉아 가만히 들어보니 참으로 가관이었다.

그중에 최고의 하이라이트는

오빠라 했다가 형부라 했다가 자기야 했다가 호칭이 뒤죽박죽인 것은 둘째 치고, 급하다 보니, 

"형부야 내 엉덩이 좀 받혀주라"는 절박한 외침이 저 멀리 산 아래 동네까지 들릴 정도로 절규하는 애절한 한 여인이었다.

밧줄에 매달려 몸은 시멘트를 발라 굳어진 것처럼 뻣뻣했고, 오로지 목소리만 낭창낭창했다.

급기야 배낭까지 벗어 오빠인지 형부인지 구분도 안 되는 사람들에게 던져주고서야 무사히 다 내려갔다.

얼마나 식겁을 하였는지 땅에 발이 닿자마자

남아 있는 사람은 오든지 말든지 뒤도 안 돌아보고 서둘러 쌩하니 급하게 그녀는 그 자리를 떠나갔다.

그 소란스러운 여인은 다름 아닌 내 가족관계 증명서에 배우자로 기록되어 있는 바로 그분이셨다.

 

본격적인 산죽 밀림으로 들어가기 전에 점심을 먹기로 했다.

모퉁이를 돌기 전 바람도 차단되고 제법 널찍한 곳이 있어 모여 앉았다.

산에서 여럿이 둘러앉아 먹는 밥을 나는 좋아한다.

여럿이 둘러앉아 같이 먹는 산에서의 음식은 무엇이든 언제나 깊고 행복한 맛을 냈다.

짜릿한 그것을 따라 주고받을 땐, 더더욱 하늘 같은 넓은 마음까지 생겨나는 것 같아 내가 산에서 밥 먹기를 좋아하는 까닭이다.

 

밥은 하늘입니다.

하늘을 혼자 못 가지듯이

밥은 서로 나눠 먹는 것

 

밥은 하늘입니다

하늘의 별을 함께 보듯이

밥은 여럿이 같이 먹는 것

 

밥은 하늘입니다

밥이 입으로 들어갈 때에

하늘을 몸속에 모시는 것

 

밥은 하늘입니다

아아 밥은

모두 서로 나눠 먹는 것

 

밥은 하늘입니다    -  김지하 -

 

오래 먹고 마시고 놀았다.

음식이 남지 않아 그것에 잔소리를 하지 않았든 것은 분명했고, 몇 병을 마셨는지, 내 숟가락이 어디로 갔는지는 기억이 잘 나지 않았다.

꼴이 좀 우스웠지만 긴 산죽을 대비해 무장을 단단히 했다.

연하 형님은 짐을 챙기는데 시간이 오래 걸렸다.

앉았든 자리와 타프를 마지막으로 챙겨야 했기 때문이었지만, 나는 영감쟁이가 다 되어서 그렇다고 놀려먹었다.

단체로 사진을 찍자고 했더니 저렇게 하고는 찍어라고 맞받았다.

그 와중에 그래도 웃기는 했든 거 같다. 한 잔 확 올라 오든 때라 기억이 잘 안 나지만. 

 

 

산죽이 서서히 나타났지만 키가 작아 진행에 별 지장을 주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점심 후 부런 배를 안고, 더군다나 거나하게 한 잔 걸친 나는 숨이 몹시 찼다.

더군다나 입과 코까지 틀어막았더니 마치 TV에서 보든 에베레스트 등반대가

막바지 정상을 향해 한 발 한 발 내디딜 때마다 가쁜 숨을 내쉬는 그런 소리가 났다.

산죽이고 나발이고 마스크를 냅다 끄집어 내려버렸다.

 

전망대가 나타났고 천왕봉을 바라보며 쉬었다.

이곳에서 바라보는 상봉의 모습은 다른 곳에서의 천왕봉 조망과는 다른 생경한 모습이었다.

탁 트인 맑은 조망이 아니라서 많이 아쉬웠다.

 

남명 선생이 되돌아갔다는 회남재가 걷는 길 우측으로 바라다 보였다.

흐릿한 날씨가 자꾸만 더 아쉬웠다.

 

산죽 속을 걷는 시간이 계속되었다.

접근을 쉽게 허용하지 않는 난공불락의 성처럼 산죽은 길고 장대하게 지속되었다.

말을 주고받을 수 없었고, 말을 할 필요도 없었다.

마스크를 내리고 걷다가 회초리 같은 잔가지에 싸대기를 얻어맞아 정신이 번쩍 들고 난 뒤 온 얼굴을 다시 가렸다.

산죽길은 늘 언제나 적응되지 않았다. 까끌거리고, 답답하고 케케 하여 빨리 벗어나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눈이 내리지 않았고, 쌓여 있지 않았다는 것과 매섭도록 추운 날이 아니었다는 것이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잠시 쉬는 사이 어찌하다 보니 두 최여사가 선두에 가게 되었다.

얼마나 갔을까. 내 죽는다는 비명을 폴짝거리며 내질러 무슨 큰일이 벌어진 줄 알고 황급히 다가갔더니 난데없이 뱀이란다.

말이 되는가. 지금이 뱀이 나올 시기란 말인가.

잘못 보았다고 아무리 말을 해도 뱀을 분명히 보았단다.

이렇게 우기는 사람은 절대 이길 수 없다는 것을 나는 안다.

그래, 뭐 사람도 지정신 아닌 사람이 많으니까. 겨울인지 봄인지도 모르고 기어 나온 정신 나간 뱀이라고 치자고 했더니.

억울하다고 난리를 피웠다.

그럼 뭐, 밀입국한 뱀이거나 불법체류 뱀이 아니겠냐고 했더니 그럴 수도 있겠단다.

 

길을 아는 것과 길을 가는 것은 다르다 하였든가.

지도에도 분명히 원묵계 갈림길 주의라 되어 있었다.

이곳을 주의해야 한다고 머릿속으로 미리 생각하고 있었건만, 길이 너무도 반듯하여 지도는 볼 생각도 하지 않고 내달렸다.

선두에서 내리막을 빠른 걸음으로 한참 내려갔는데 뒤 사람이 따라오지 않아 걸음을 멈추고 기다렸다. 

저 위에서 희미하게 누군가 그 길이 아니라고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그제야 지도를 보니 가야 할 능선이 아닌 원묵계방향으로 급경사를 150m는 족히 내려와 있었다.

이럴 때 다시 올라가는 경사는 고층빌딩의 외벽을 오르는 것만큼 힘들다는 것을 경험해 본 사람은 알 것이다.

헉헉거리며 내려왔든 길을 다시 올라갔다.

후회는 늘 늦게, 뼈저리 게 온다.

삶의 곳곳도 갈림길이다. 잘못 든 길은 대가를 치루어야 되돌아갈 수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닫는다. 

그러나 그 깨달음 얻기 위해 내려선 거리치고는 가혹하리 만큼 너무 멀었다.

땀이 얼굴에서 개울을 이룰 만큼 쏟아지고 난 뒤 가야 할 능선길에 다시 올라섰다.

그나마도 다행인 것은 영구 형이 감각적으로 가야 할 길이 아니라는 것을 이쯤에서 알아차렸다는 것이었다.

 

묵계재를 지나고 밀림 같았든 산죽은 소강상태를 보였고 이후 키 작은 산죽이 조금 있었으나 걷는데 지장이 없을 만큼이었다.

여유가 생기자 선 채로 쉬었다.

 

낙남정맥 902봉 이정표가 나무에 붙어 있는 산길부터는 낙엽이 수북이 쌓여 양탄자를 깔아 놓은 것 같은 폭신한 길로 변했다.

 

오르내림 없이 평탄하게 부드럽게 산길은 지속되었다.

한 모퉁이를 살짝 꺾어 돌자 아래로 고운호로 넘어가는 도로가 보였다.

다 왔다는 말에 "벌써?"라는 반응들이 나왔다.

"부족하면 좀 더 갈까?" 하였더니 '아니 딱 되었다'라고 '정말 적당하다'는 말로 말을 서둘러 막았다.

 

아침에 미리 가져다 놓은 차가 다소곳하게 그곳에 있었다.

이곳은 다음 산행의 시작점이 될 곳이었다.

도로 건너 산길은 또 어떤 경험을 안겨 줄지 기대감을 안겨준 채 우리와 마주하고 있었다.

 

2022년 2월 13일 오후 4시 18분 오룩스 맵 낙남정맥 트랙 종료하기 버튼을 고운동재에서 눌렀다.

차를 회수해 오고 모두 덕산으로 갔다. 목욕탕으로 직행하여 한 시간을 있었다.

깔끔해진 몸과 마음은 말 그대로 개운했다.

사람 살이에서 때로는 상식과 지식보다 밥을 먹는 행위가 더 큰 힘을 발휘하기도 한다.

우리는 식사 자리에서 무수히 많은 것을 입에 넣는다.

밥만 먹는 것이 아니라 커피도 마시고, 술도 마시고, 욕도 먹고 어느새 나이도 먹는다.

단순히 끼니를 채우는 시간이 아니라 마음을 채우는 시간이며, 인간관계의 윤활유 역할을 하는 자리인 것이다.

그런 저녁 식사자리에서 배가 부르고 마음까지 흡족할 만큼 또 먹었고, 마셨다. 

모두 오늘 산행만큼이나 만족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