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신봉-갓걸이재
낙남정맥1차
행동팀142-지리113차
일시:2022년 01월 09일
산행자:연하,에스테야,권영구,황순진,이광용,이종철,최규다,들풀,최옥희,김은의,최정남,성주숙,최미희,수야(14명)
걸어간 길:거림-세석-영신봉-창불대-음양수-석문-삼신봉-갓걸이재-갓걸이골-거림
진입구간:6.5km/ 정맥구간:7.8km/ 진출구간:2.5km/ 정맥누적:7.8km
산행시간:07시 21분~18시 40분(11시간 19분) 16.8km
프롤로그
다시 긴 길을 구간으로 나누어 걷기로 계획했고 1월부터 당장 실행으로 옮겼다.
이렇게 구간을 나누어 걷는 것을 아마 외국말로는 섹션 하이커(Section-hiker)라 한다지.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릴지 모른다. 하지만 시작하였으니 그 끝도 분명 있을 것이다.
산행과 전쟁은 시작할 때 끝낼 것을 생각해야 한다고 했지만
오로지 산행 날 주어진 하나의 길에만 집중하기로 했다.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에 나오는 그 유명한 대사 '카르페 디엠'(carpe diem) "현재를 즐겨라!"를
산행 때마다 적용하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이 먼 길도 언젠가는 그 끝에 가리라.
우리 인생 가고 싶은 방향으로 갈 수 있는 데까지 가기만 해도 충분히 의미가 있지 않나.
1.
낙남정맥을 시작한다는 공지에 14명의 중경팀 산꾼들이 모여들었다.
덕산의 한식당에 미리 예약한 아침을 먹기 위해 들어갔다.
추위에 등산화를 신는 것이 불편하여 아침을 먹고 나오며 식당에서 등산화를 미리 신기 위해 등산화를 들고 갔다.
다른 사람들도 그래야겠다며 등산화를 차에서 가져왔다.
최여사가 등산화를 안 가져왔다는 것을 이때 알게 되었고, 난감하기 짝이 없는 상황이 벌어졌다.
퍼뜩 떠오른 것이 조미원의 조 사장님이었다.
아직 식당에 도착하지 않은 은의님에게 전화를 걸어 조미원에서 등산화를 빌려오라고 부탁을 했다.
신발 사이즈가 비슷하게 맞아 다행이었다.
나이가 들면 어찌할 수 없는 것들이 생긴다.
07시 20분
거림 주차장에서 빠르게 채비를 하고 걷기 시작했다.
아직도 어스름한 어둠이 다 걷히지 않고 남아 있었다.
며칠 동안 그렇게 몸을 움츠리게 하더니 산행 날 생각보다 날씨가 차갑지 않았다.
07시 40분
거림으로 들어갈 때 입산 예약을 해야 한다는 말에 14명은 예약을 미리 하고 왔는데 정작 거림 매표소에는 아무도 없었다.
조금 걷자 여기저기서 겉옷을 벗기 시작했다.
9시 48분
조망터에서 바라다 보이는 남부 능선은 가운데 삼신봉을 중심으로 오른쪽으로 지난번 남북 종주 때 지나온 내삼신봉과
이번 낙남정맥으로 지나가게 될 왼쪽의 외삼신봉이 힘을 잔뜩 넣고 있는 빵빵한 어깨처럼 건장해 보였다.
가야 할 삼신봉까지 산길은 아득하고 멀게만 보였다.
2.
서울, 의령, 함안, 창원에서 모여든 산꾼들
이 사람들은 카메라만 들어오면 저렇게 잘 웃는다.
아, 때거지로 모여 있는 것이 요즘에는 상당히 신경 쓰이는 일이라 미리 말씀드린다.
모두들 백신 3차 접종까지 완벽하게 맞았고, 밀착 접촉자가 있거나 조금이라도 의심이 있을 땐 PCR 검사까지 한 후
모인 청정한 사람들이니 그런 거로 불편해하시지 않으셔도 된다.
10시 55분
거림골을 올라 세석대피소를 지나고 영신봉까지 바로 올라섰다.
대간에서 낙남정맥이 분기하는 시작점이다.
술 한 잔 놓고 모두가 삼배를 올리는 것으로 조촐하고 간단한 출정식을 했다.
무사히 다치지 않고 완주하기를, 이 길을 걷는 동안 행복하고 즐거운 일들이 가득하기를 빌었다.
영신봉에서 바라본 천왕봉은 이곳의 공간 정서를 완벽히 지배하고 장악할 만큼 기상이 넘쳐나 보였다.
조금이라도 저 기운이 뻗쳐 우리들에게 닿기를 바랐다.
어쩔 수 없이 인간은 끊임없이 욕망을 욕망하는 존재인가 보다.
정맥 시작점 영신봉에서 단체사진을 찍었다.
들풀님은 그동안 열공을 하여 이번에 진급했다.
족집게 과외 선생 덕분이라고 공을 규다에게 돌렸지만, 그동안 얼마나 열심히 노력하였지 우리 모두는 다 안다.
규다의 뒷바라지도 익히 들어온 터라 더 말해 무엇하겠는가.
모두가 나의 일처럼 기뻐하고 축하하였다.
인연이라는 말로는 부족한 관계가 있다.
서로의 존재가 연루되었음을 느끼게 하는 사람들을 만났을 때 그렇다.
우연이었지만 인연이 되고 연루되어 버린 사람들.
내게 지리산이 이 좋은 인연들을 맺어 주었으니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모른다.
들풀님이 그날 저녁을 쏘았다고 해서, 뭐 그래서 꼭 이런 말을 하는 것만은 아니다.
3.
22년 중경팀 팀장으로 선출된 황순진 팀장님.
사람을 감동시키는 것은 그의 재능이 아니다
사람을 감동시키는 것은 가치 있는 것에 대한 그의 태도이며 진정성이다.
전 팀장님과 마찬가지로 새 팀장님도 중경팀을 이미 충분히 감동시키고 있다.
11시 26분
영신봉에서 시작된 낙남정맥 걸음은 남부 능선을 따라 빠르게 내려가기 시작했다.
창불대
지난해 9월 창불대 사면길을 걸어 본 적이 있어 저 아래의 여러 곳을 눈짐작으로 가늠하여 보았다.
창불대에서 세석을 바라보고 있자니 불현듯 산나그네 선생님이 생각났다.
나도 순수이고 싶습니다. 저 겨울 세석고원을 닮고 싶습니다.
한때는 동화 같은 시절도 있었겠지만 지금은 아닙니다. 너무 많은 때가 묻었습니다.
차별, 편애, 약육강식, 질투, 이기심, 꿈틀거리는 욕망들, 불의와의 타협, 어느 하나 버릴 것이 없습니다.
가소롭게도 그 모든 것을 비웠다고 강변을 하면서도 말입니다.
그것뿐만이 아닙니다. 오만, 자만, 편협, 잔인성 인간이 가지고 있는 극한의 사악함까지도 마음속에 요동치고 있음을 스스로 느낄 때가 있습니다.
눈물이 나려 합니다. 이 순간, 가진 것 모두를 버리고 저 시린 세석처럼 살고 싶습니다.
참으로 순수한 마음으로 모든 사람을 바라보며 사랑하고 싶습니다.
백남오 -<겨울밤 세석에서> 중 일부 -
4.
남부 능선이 길게 뻗어가는 전망 좋은 곳에서 점심상을 펼쳤다.
불 피우지 않고 최대한 간단한 식사를 각자 준비해 오라는 공지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도시락만 가져온 사람이
단 한 사람도 없었으니, 음식이 넘쳐났다.
다음 산행에는 아무래도 다른 방법을 모색해야 되겠다.
12시 40분 점심을 먹고 난 뒤 음양수 샘에서 사진을 찍고 다시 출발했다.
13시 20분 남부 능선 석문
13시 50분
영신봉에서 삼신봉까지 8km 가까운 긴 거리를 이제는 각자의 페이스대로 걸었다.
각개인이 살아온 체험의 빛깔이 하나도 같은 게 없듯이 이 길을 걸어가며 느끼는 느낌도 천차만별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나는 같이 걷는 사람들의 느낌을 짐작할 수 없었다.
다만, 이 길을 여러 차례 걸으면서 이상하게 내게 이 길은 지겹지도 멀게도 느껴지지 않았다.
시간이 많은 것을 풍화시키고 느낌마저 외곡 시켜 놓은 것인지도 모르지만. 아무튼.
15시 30분 삼신봉에 올랐다.
후미에서 걸어오는 사람들이 아주 작게 보였다.
한참 후 도착한 어느 분들은 지구를 한 바퀴 돌고 온 듯한 몰골로 삼신봉에서 아무렇게나 풀썩 주저앉았다.
발에 맞지 않은 신발로 발톱이 새파랗게 멍들어 있음은 산행이 끝난 후에야 말을 해 알게 되었다.
혹시라도 다른 사람들이 신경 쓰일까 싶어 말하지 않은 깊은 속내가 안쓰러웠다.
배낭을 벗어던지고 한참을 쉬었고, 간식을 먹었다.
광용 아우가 술 한 잔을 올리며 삼배를 하는 중에 중얼거리는 기도에 모두 크게 웃었다.
부디 아우의 기도처럼 되기를 나는 기원한다.
5.
삼신봉에서의 이 사진이 내가 찍은 이번 산행의 마지막 사진이었다.
갓걸이재에 도착하고 한순간 멈칫거렸으나,
가보지 않은 길 우선 원칙에 따라 막무가내로 밀고 나가는 나를 따라 모두가 갓걸이골로 내려섰다.
갓걸이골로 하산하는 동안 해가 빠르게 넘어갔다. 계곡은 2.5km에 불과하였지만 해가 넘어가고 어둠이 내린
계곡의 길이는 2,500km는 되는 것 같이 멀고 멀었다.
1km를 남겨 두고부터는 불이 밝혀지고 그때부터 여기저기 온 계곡에서 신음과 비명소리가 낭자했다.
분노를 불러일으킬 정도로 계곡은 쉽사리 끝나지 않았고 길은 보이지 않았다.
정말이지 가슴에서 우러나오는, 만화책에나 나오는 그런 비명 "에구구구!" "아야야야!"를 질러댔다.
계곡 옆으로 난 길이 있는 듯하여 벗어났다 다시 계곡으로 내려서면서 나는 허벅지를 바위에 찍혔는데
거의 눈알이 튀어나오는 줄 알았다. 아무도 그것을 보지 않은 것을 다행으로 생각하며 아무렇지도 않은 것처럼 행동하였으나
팀장님은 다 보고 있었다고 뒷날 이야기했다. 그것이 더 쪽팔리더라
그래도 어찌나 서로들을 불러가며 조심을 시키고 잡아주며 함께 내려오든지 감동스러워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계곡 아래 불빛이 보이고 얼마 가지 않아 철다리를 지나고 주차장까지 모두가 무사히 하산을 완료했다.
하루 종일 걸은 산길보다 갓걸이골 두 시간이 더 멀고 길었고 힘들었고, 그리고 최고로 즐거웠다.
대충 정리를 하고 주차장에서 가장 가까운 식당에 들어가 저녁을 먹었다.
다음날 카톡방에 올라온 여러 소감들 중에 몇 가지만을 옮겨 놓는다.
에필로그
1. 서울의 최 모씨
'산행 말미 자빠져서 그것도 하필 에스테야 형님 앞에서 나뒹굴었다. 아이가, 쪽팔려서 혼났다.
형님이 스틱 던져 불고 달려오면서 규다야 괘안나 하는 그 소리가
"여기 나 말고 허당 호구 하나 생겼다" 하는 그런 즐거운 목소리로 들리더라
왜 하필 내 뒤에 에스테야 형님이....'
2. 진주 권 모씨
'낙남정맥 첫 산행 기억이 영원히 남을 것 같습니다.
특히 갓걸이골은 담에 오름으로 한번 더 가야지 하면서 내려왔네요.
좋은 분들과 함께한 즐거운 산행이었습니다.'
3. 마산 이 모씨
'갓걸이골 같은 곳을 좀 자주 갔으면 좋겠습니다.ㅋㅋㅋㅋ'
4. 창원 최 모씨
'상쾌한 아침입니다 산을 사랑한 지 벌써 10년이 되었지만
어제처럼 이렇게 힘든 산행은 처음인 듯합니다.
하루 만에 지리산 종주를 할 때도 이렇게 힘들지 않았는데 나이는 어쩔 수 없나 봅니다.
지리산이 나를 어찌나 좋아라 하든지 이리 잡아당기고 저리 잡아당겨서 거의
낙엽이랑 바위에 안겨 죽다 살아났습니다.
그래도 좋았습니다.
언제 또 이런 산행을 해 보겠습니까
친구랑 둘이 내려오면서 70살까지 산에 다닐 수 있을까 하면서 서로 격려하고 칭찬하고
위로하면서 대견해했습니다.
고맙습니다. 그리고 감사합니다
여러분들이 있었기에 할 수 있었습니다.
운동 열심히 해서 다음 산행 때는 더 좋은 모습으로 뵙겠습니다.'
5. 창원 최 모씨
어디를 가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누구와 가느냐가 중요하다고 하네예
어제 저는 힘든 산행을 함께 하면서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언니 오빠 친구의 소중한 말 한마디가 아직도 귓가에 생생합니다.
나뭇가지 조심해, 바위 미끄럽다, 미희야 괜찮아?
네, 네, 저 끄덕 없어예
참말로 고맙습니다.
처음 가는 길 /도종환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은 없다
다만 내가 처음 가는 길일 뿐이다
누구도 앞서 가지 않은 길은 없다
오랫동안 가지 않은 길이 있을 뿐이다
두려워 마라 두려워하였지만
많은 이들이 결국 이 길을 갔다
죽음에 이르는 길조차도
자기 전 생애를 끌고 넘은 이들이 있다
순탄하기만 한 길은 길 아니다
낯설고 절박한 세계에 닿아서 길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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