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암산
2022년 독오당 시산제
독오당 115차 정기산행
일시:2022년 02월 06일 (일요일)
산행자: 다우, 엉겅퀴, 에스테야, 귀소본능, 수야
걸어간 길:청파정에서 창암산 왕복
산행시간:09시 07분~12시 44분 (3시간 36분)

시치미
고려시대 매사냥은 요즘 시대로 치면 골프 같은 고급 스포츠였다.
귀족들에게 인기 만점인 스포츠였는데 사냥용 매가 굉장히 비쌌다.
새끼일 때부터 오랫동안 길을 들이고 사냥 훈련도 시켜야 하기 때문이었다.
매 주인은 자신의 매에 하얀 깃털을 매달아 두었다. 자신의 이름을 써서 달아 둔 것이다.
한마디로 이름표인 것이다. 이걸 떼면 도둑질이 되는 것이다.
이 이름표가 '시치미'이다.
매가 워낙 고가이다 보니 어떤 사람들은 시치미를 떼어내고 마치 그 매가 자기 것인 양했다.
시치미를 떼고도 모른 척한 것이다.
여기서 '시치미 떼지 말라'는 말이 유래된 것이라고 한다.
독오당 시산제를 마치고 이번 산행기를 올리기로 한 어떤 분이 있었다.
이쯤 되면 지금 무슨 말을 하려는 의도 인지 벌써 알아차린 눈치 빠른 분들도 계실 것이다.
이 분이 산행기를 올릴 때까지 먼저 산행기를 쓰는 일 없이 기다리기로 했었다.
그런데 시산제를 지낸 지 3주가 되어 가는데도 산행기는커녕 어디에서도 코빼기도 안 보인다.
아주 시치미를 뚝 떼고 있는 것이다.
아마 3년을 더 기다려도 이 분의 산행기가 올라오기는 요원하지 싶다.
"내는 쓴다고 말 한적 없다."라고 분명히 또 시치미를 뗄 것이 자명하다.
됐고!!.
그날 아침, 그러니까 2월 6일
식당에서 아침을 먹고 난 뒤 청파정을 향해 가는데 차에 이상이 생겨 80km 이상은 절대 속도가 나질 않았다.
약속시간보다 30분 정도 늦게 도착했다.
눈이 빠지게 기다린 엉겅퀴 형님은 등산화 신고 옷 갈아입고 이거 저거 물건 챙기고 사진 찍고 지 할 거 다 하는
우리들을 그저 한량없이 기다리며 처다 보고만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엉겅퀴 형이야 자기 집 뒷산이지만, 명색이 지리산인데 입산의 예의를 갖추어야 한다는 바람직한 마음가짐으로
우리는 천천히 산행 채비를 꼼꼼히 하였다.
청파정에서 주능선을 바라보니 굳이 산에 갈 필요 없이 그냥 여기서 시산제를 지내도 좋을 듯싶었다.
산행을 시작도 하기 전부터, 그러니까 아침에 차를 타고 오면서부터 대장은 엄살을 엄청 부리기 시작했다.
못 올라가고 뒤 처지면 버려두지 말고 기다렸다가 데리고 가달라고 했다.
나이가 얼마라는둥, 작년과 올해가 완전히 다르다느니 하며 온갖 엄살을 피웠지만 산행 때마다 늘 하는 말로 그러려니 했다.
에스테야 형 말처럼 독오당 산행 때마다 언제 우리가 상태가 좋은 적이 한 번이라도 있었간디.
동네 뒷산 마실 가듯 엉겅퀴 형이 성큼성큼 나아가고 뒤에서 우리는 핵 핵 거리며 따라갔다.
저 양반은 도대체 나이를 어디로 먹는 걸까?
예나 지금이나 한결같이 체력이 하나도 줄지를 않는다.
탄탄대로 좋은 길을 버리고 산을 향해 바로 치솟아있는 산길로 접어들자 장딴지가 범핑 되기 시작했다.
창암산을 이 길로도 올라갈 수 있는 거였어.
동네 주민이 앞서 가니 쉽게 따라 가지만 트랙만 보고 오르기엔 길 찾기가 쉽지 않은 산길이었다.
대장은 아직도 몸이 안 풀린 것인지, 진짜 나이를 먹은 탓이지 초반에 조금 힘들어했다.
지금까지 독오당 십수 년 산행 중 아침밥을 추가로 더 드시는 모습을 처음 보았는데, 그 이유가 "안 쳐지고 따라가려고"였다.
우리 대장도 이제 나이가 들긴 들은 모양이다. 왠지 서글퍼지는 마음도 들었지만,
이제는 빡씨게 가자고 안 할 것 같아서 좋은 면도 있다고 우리끼리 으밀아밀 속닥거렸다.
삼정산 빗기재가 바라다 보이는 전망 바위에 올라서서 잠시 쉬었다.
쥐똥만큼 걸었는데도 몸이 풀릴 정도로 곧추선 경사가 온몸을 쓰게 만들었다.
이곳에서 자세히 보면 청파정도 보인다고 엉겅퀴 형이 가리켰다.
발목까지 쌓인 낙엽도 미끄러웠지만 낙엽 아래가 얼어 있어 발에 힘이 온전이 땅바닥에 전해지지 않고 자주 헛바퀴 돌듯 했다.
이 길로 다시 내려온다면 십중팔구 이쯤에서 벌러덩 할 것이다.
엉겅퀴 형의 뒤를 따라 제법 다리에 힘이 팍팍하게 들어가는 능선을 치고 오르다 보니 가드라들었던 몸에서 열이 올라왔다.
대장은 옷을 벗었고, 본능은 카메라로 이런저런 사진들을 담았다.
산행기의 모든 사진은 귀소본능의 카메라에서 나온 것이다.
무덤 하나를 지나고 코를 땅에다 붙이다시피 하며 씩씩 대고 땅만 보고 걸었더니 어라, 벌써 창암산에 다 올라와 버렸다.
산행 시작하고 한 시간이나 걸었으려나.
마지막으로 대장이 올라오면서
"쎄가 만발이나 빠질라 칸다." 하면서 긴 숨을 토해냈다.
시산제
천왕봉을 향해 정성 들여 제물을 차렸다.
지리구구 산정무한 행사의 사회자 자리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는 에스테야 형이 사회를 보았다.
대장님이 강신 잔을 올렸고, 다 같이 참신 후 엉겅퀴 형님이 초헌 잔을 드리고 삼배했다.
귀소본능의 독축에는 독오당의 안녕과 지리산에 드는 모든 이의 안전을 기원하는 제문을 낭독하고 상향(尙饗)했다.
(상향:제사 때 읽는 축문(祝文)의 맨 끝에 쓰여, ‘비록 적지만 차린 제물을 받으옵소서’라는 뜻으로 이르는 말.)
아헌과 종헌 잔을 올리고 시산제를 마쳤다.
철상 직전 대장님이 제상 앞에 다시 서시더니 지리산 신령님께 특별 부탁을 드렸다.
"적은 제물이지만 정성으로 받아주시고, 언제나 안전하게 산행할 수 있게 지켜주시고.... (나머지는 기억이 안 나고)..
우짜든지 우리 독오당 죽을 때까지 오줌빨이 콸콸 쏟아질 수 있도록 보살펴 주소서!!"
그랬더니
시산제 내내 가려 있든 천왕봉의 구름이 순간적으로 나마 벗겨지는 듯하였다. 아마도 산신령님의 대답이 아니었을까 싶었다.
대장님이나 엉겅퀴 형은 독오당 산행 때는 사진을 잘 안 찍는데 어쩐 일인지 이날은 두 분 다 사진을 자꾸 찍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아마도 그분의 산행기에 필요한 사진을 미리 특별히 이때부터 생각을 했든 게 아닐까 싶다.
그런데도... 시치미를....
음복으로 간단하게 한 병을 비우고 난 뒤 원래 계획이었든 추성으로의 하산을 포기하고 올라온 길로 내려가기로 했다.
다시 내려가는 길에 대장은 이제 몸이 풀렸는지 뒷모습이 잘 안 보일 정도로 빨랐다.
나이 어쩌고 하는 것은 그냥 하는 말이었다. 대장은 아직도 빵빵했다.
내 앞에서 잘 걸어가든 에스테야 형이 올라올 때 미끄러운 경사가 나오자 걸음을 딱 멈추었다.
그리고는 나를 보고 "먼저 가라" 하네. "아, 왜?" 하고 물었더니
"내리막 길을 워낙 못 간다고 니가 뭐라 할 거 같아서 니가 먼저 가라" 하는 거라.
내 모를 것 같지만 다 안다.
먼저 나를 앞세우고 미끄러지나 안 미끄러지나 보고 난 뒤 형은 내가 넘어지면 그곳을 조심하겠다는 빤한 속셈인 거지.
대한민국 형법 22조. 별칭 '긴급피난' 조항은 이렇다.
"자기 또는 타인의 법익에 대한 현재의 위난을 피하기 위한 행위는 상당한 이유가 있을 때에는 벌하지 아니한다"
에스테야 형의 행위를 긴급피난으로 보아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법에 따르면 벌 할 수 없다는 거다.
어쩌겠나, 그래 오래 살아라 죽어도 내가 먼저 죽어야지 하며 내가 먼저 내려갔다.
그 급경사에서 엉겅퀴 형도 엉덩방아를 찧는데 낸들 안 미끄러지고 배기겠나.
쭈우욱 미끄러지면서 허공에 내 두 발이 솟구치는 게 내 눈에 보이더만.
퍼뜩 일어나서 뒤돌아보니 에스테야 형은 귀소본능도 앞세웠는지 보이지 않고
아무것도 모르는 귀소본능이 따라 내려오고 있었다. 내가 날았다 내려앉는 것을 못 본 것 같았다.
당연히 아무 말도 안 하고 가만히 있었다.
본능의 쭈욱~ 쿵! 하는 소리가 상당하더구만. 음... 그래도 낙엽이 폭신해서 아프지는 않으니까 뭐.
내가 해봐서 안다.
"본능아 내도 거기서 넘어졌다 안 아프더라" 했더니 "그라모 행임은 왜 말을 안 했능교" 하는 거라.
쨔샤 너라도 그래야 내가 좀 덜 억울할 거 아인가베.
좋은 길에 내려서자 잔뜩 흐리든 하늘에서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누구는 시산제를 지내고 오는데 눈이 오니 산행 때마다 비가 오는 게 아닐까 걱정했고
누구는 눈이 내리니 축복이 내리듯 좋은 일만 있을 거라 했다.
젊은것들 셋의 배낭에는 겨우살이가 한 뭉텅이씩 들어 있었다.
지리산 자락길이라는 것이 있었다.
한 20km 정도 되는 것으로 한 번에 또는 두 번 정도 나눠 걸으면 좋을 듯싶었다.
자락길을 눈여겨보아 두었다.
청파장에서 점심을 먹었다.
형수님의 깔끔하고 정갈한 음식 솜씨에 입과 손이 바빴다.
어머 무시하게 큰 병의 소곡주가 바닥을 드러낼 때까지 이드거니 먹고 마셨다.
눈발이 날리는 지리산을 바라보며 마시는 즐거운 자리의 시간은 빨리도 흘렀다.
청파장에서 점심을 먹었다.
형수님의 깔끔하고 정갈한 음식 솜씨에 입과 손이 바빴다.
어머 무시하게 큰 병의 소곡주가 바닥을 드러낼 때까지 이드거니 먹고 마셨다.
눈발이 날리는 지리산을 바라보며 마시는 즐거운 자리의 시간은 빨리도 흘렀다.
"언제나 똑 같은 느낌으로 가슴이 뛰는 마음의 공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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