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산행

2021.10.17 벌바위

지리99 수야 2021. 10. 28. 22:15

벌바위

 

행동팀136-지리109차

중부경남팀 정기산행겸 청소산행

일시:2021년 10월 17일

산행자:백산, 연하, 노을,노을지기,예서방, 권영구,이순애,황순진,김은의, 최정남,최옥희,

          이종철,최미희, 최규다,들풀,성주숙,수야 (총 17명)

걸어간 길:영원사-빗기재-영원봉-벌바위-영원재-영원사

산행시간:08시26분~15시 (6시간 35분) 4.5km

2021-10-17 벌바위.gp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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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 오백도 더 지난 마한시대.

와운 마을이 세 번째 옮겨 지금의 위치에 자리를 잡기 전.

이 마을엔 단 두 가구만이 거주하던 때가 있었다.

이웃한 이 두 가구는 척박한 환경에서도 오손도손 잘 살아가고 있었다.

두 집중 한 집의 부인은 무던한 미모인 반면 다른 한 집의 부인은 절세가인이었다.

언젠가부터 무던한 부인을 둔 남자는 절세가인의 부인에게 흑심을 품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두 남자는 석이버섯을 따기 위해 함께 마을 뒤 높은 바위 절벽으로 향하게 되었다.

더 크고 좋은 석이버섯을 따기 위해서는 한 사람이 벼랑으로 줄을 잡고 내려가야 했다.

미인을 부인으로 거느린 남자가 줄을 잡고 바위 절벽 아래로 내려가고, 한참 석이버섯을 따고 있을 때

절벽 위에서 평소 흑심을 품고 있든 남자는 해서는 안 될 생각을 실행으로 옮기고 만다.

고의로 줄을 끊어 추락사를 시켜버린 후, 전모를 숨기고 자신이 죽인 남자의 부인을 새 부인으로 맞아 가정을 꾸린다.

세월은 흘러 둘 사이에 아들, 딸이 태어나고 아무 문제없이 잘 살아가던 중

소나기가 억수같이 퍼붓던 날, 아마 술도 한두 잔 하게 되었을 것이고, 우수에 잠겼음인지 양심의 가책인지,

남자는 자신이 저지른 과거의 일을 부인에게 털어놓게 된다.

자식까지 생긴 마당에 별 탈이야 있을까 하는 생각도 했을지 모른다.

사건의 진실을 알게 된 부인은 바로 사건이 일어난 바위로 달려가 전 남편의 시신을 확인하게 되고,

관청으로 달려가 사건의 전말을 고하게 된다.

관청에서는 이 남자에게 눈에는 눈, 이에는 이의 함무라비 법전에 해당하는 형벌을 내린다.

이 남자를 그곳의 높은 바위 절벽에서 떨어뜨려 죽게 한다.

이후 벌을 내린 바위라는 의미에서 그곳은 '벌바위'라 불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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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일곱 명이 영원사 주차장에서 산행을 시작한 시간은 8시 30분이었다.

지리 구구 청소 산행은 할 수 없지만, 중경팀 정기 산행에 청소를 겸하기로 했다.

쓰레기를 주워 담아 올 비닐봉지 하나씩을 챙기고, 단체로 사진을 찍었다.

영원사에서 시작한 산행은 빗기재를 거처 영원봉을 지나 벌바위까지 가기로 했다.

중경팀 산행 대장인 연하 형님이 사전 공지한 대로

벌바위에서 시간을 보고 더 진행을 할지, 하산을 하게 된다면 방향은 그곳에서 다시 정하기로 되어있었다. 

인원도 많고 무엇보다 부상자가 있는 관계로

가을 낭만을 즐기는 산행을 하자는데 모두가 동의한 상태였으므로 산행은 처음부터 느긋했다.

빗기재로 향했다.

영원사는 공사가 한창이었다.

공사하는 인부들은 우리에게 1원어치 관심도 없었다.

적요로운 경내를 지날 때 보살님 한 분도 자신의 일만 하면서 지나가는 산꾼들을 심상한 시선으로 흘깃 일별 할 뿐이었다.

산꾼들이 산에 가는 것은 그만큼 사소한 일임에 틀림이 없어 보였다.

사소한 산꾼들은 갑자기 내려간 쌀쌀한 기온에 산으로 향하는 걸음이 종종거렸다.

산은 정말 가을이 맞는가 싶을 정도로 추색을 찾을 수 없었고, 이렇게 바로 겨울이 오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영원사에서 30분 만에 빗기재에 올라 배낭을 내리고 잠시 숨을 돌렸다.

타이밍상 한 병이 나오고 대장이 삼배를 올리고 난 뒤 술꾼들은 한 잔씩을 걸쳤다.

아침 술은 그 찌릿함이 저녁과는 사뭇 다르게 헛헛함을 덮는 것이 충격적이고 격정적이었다.

그러니 이 꾼들에게 산에서 이걸 먹지 못하게 하는 것은 호랑이에게 채식주의를 설파하기보다 힘들 것이다.

빗기재에서 오름 기준 좌측 능선으로 올랐다.

서너 번씩은 다녀 본 길이라 누가 선두에 서도 상관없는 길이었다.

완만한 길이 두서너 번 고개를 세우기도 하였으나 산길을 걷는 재미가 더 해질 만큼이었다.

부담스럽거나 불편하지 않은 능선길이 외길로 어긋나거나 헛갈리지 않게 영원봉까지 이어졌다.

은의님과 들풀님은 열심히 쓰레기를 주워 담아왔다.

나는 전망 바위에서 뒤에 오는 저 두 사람을 보았는데 쓰레기를 줍느라 맨 후미에 있었다.

말라죽은 산죽 속에서 오래된 쓰레기를 찾아 나오는 수고로움도 기꺼이 하고 있었다.

그렇게 주운 쓰레기는 한 보따리가 될 만큼이었고, 그 쓰레기는 종철 아우가 지고 내려갔다.

종철 아우의 그런 태도는 형들이 말하여 알게 된 것이 아니고, 원래 본성이 그러하였으며

산에서 선배들이 하는 것을 보고 듣고 하며 저절로 그리된 것이어서 올바르고 바람직했다.

영원봉이 코 앞 인 마지막 오름길도 단숨에 거뜬히 올라갔다.

이렇게 걸음들이 빠르면 주능선까지 가자고 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쓸데없는 걱정이 되기도 했다.

1290.5m 영원봉

​그 지명이 가진 뜻이나 의미가 어떻든 영원이라는 이름이 막연히 좋았다.

여기서 인연을 맺은 사람들은 어쩐지 그 정리(情理)가 영원할 것만 같았다.

하늘엔 구름 한 점 없이 하도 청명해서 손이라도 대면 호수에 파문처럼 물결이 일 것만 같이 느껴졌다.

영원봉을 지나 비탈을 지고 잠시 내려서자 얼마 가지 않아 시야가 사방으로 트이는 넓은 바위 전망대가 나타났다.

벌바위는 그렇게 영원봉에서 지척에 있었다.

주능선 삼각고지에서 남원의 산내까지 긴 능선이 내려가는데 이 능선을  삼정산 능선이라 한다.

벌바위는 이 삼정산 능선 와운마을 뒤편에 위치했다.

와운마을 천년송이 있는 능선을 타고 오르면 바로 닫는 곳이기도 했다.

고도 1250m 벌바위에 올라서자 앞에 펼쳐진 풍경들이 눈을 포박해 왔다.

형벌을 내렸다는 전설과는 무관하게 그 경관이 수려하여 오래전부터 나는 여러 번 이곳을 찾아왔었다.

인간은 시각에 지배되는 동물임을 깨닫는다.

일망무제의 풍경 앞에서 속수무책으로 각자의 시선이 가는 대로 몸을 돌렸다.

상봉과 주능선이 오른쪽으로 넓은 품을 벌여 창암 능선과 오공 능선을 안고 있었다.

명선 북능이 뱀사골을 사이에 두고 심마니 능선과 마주하였고, 심마니 능선 위로 반야봉은 잡힐 듯 가까이 다가왔다.

서북능선의 만복대와 정령치 고리봉은 더욱 가깝고 선명했다.

배낭을 벗어놓고 본격적으로 벌바위를 탐색하며 사진 찍기 놀이가 벌어졌다.

벌바위 아래를 한 바퀴 돌면서 놀아나는 온갖 아우성과 웃음이 족히 한 시간은 떠들썩했으리라.

중경팀 여성 산꾼들은 필름이 넉넉하다는 백산 선생님에게 찍힘을 당하고 싶어 단체로, 혼자서 둘이서 계속 들이댔다.

중경팀과의 산행이 오래간만인 백산 선생님은 어떤 요구도 다 받아 주셨다.

렌즈를 교환해 가며 한 장 한 장 정성을 다해 담아주셨다.

이른 점심이지만 일단 밥부터 먹고 다시 하기로 했다.

남는 게 시간이었다.

산에서 이런 음식을 먹을 수도 있구나 싶은 메뉴들이 중경팀에서는 늘 등장했다.

가까이에서 공개할 수 없는 점심은 세상의 그 어떤 고급 레스토랑보다 훌륭했다.

음식들은 골고루 모두에게 즐거움을 누리게 하여 보편적 복지를 완성했다.

주당들은 물론 당연하게 자꾸자꾸 주고받았다.

준비물 공지에는 한마디 거론도 안되든 것이 끊임없이 여러 병, 여러 종류로 나오는 것이 마땅히 아름다웠다.

덕분에 더 이상의 산행은 '배 째라 몬 간다' 하고 들어 누워버렸고,

간결하고 짧은 코스는 그래서 오히려 깔끔하고 아주 낭만적인 산행으로 마무리되었다.

대장의 오른손은 영화에서 외국사람들이 하든 그 손가락 욕을 수시로 하고 있었다.

손가락과 발등을 굴러 떨어지는 바위에 찍혔다고 했다.

연대장(연하 대장)은 뭘 잘못 건드렸는지 툭하면 붕대를 여기저기 감고 나타나곤 했다

나는 대장이 하도 잘 다쳐서 동티가 난 게 아닐까도 싶었다.

벌바위에서는 바위 벼랑 가까이 가지 말라고 몇 번이고 말리고 싶기까지 했다.

항상 산에 들 때마다 엎드려 빌긴 하던데....

정성이 부족한 걸까?

강릉 아줌마가 그려진 그것 정도는 올리는 성의를 보이고, 절이라도 해보시라고 다음에는 말을 해봐야겠다.

다시 본격적으로 사진 찍기에 돌입했다.

백산 선생님의 카메라에 찍히면 나 같은 인물조차도 제법 봐줄 만한 사진이 된다는 것을 아는 이들은

이곳저곳으로 옮겨 다니느라 바빴다.

여기 사진은 그 사진들 중 극히 일부일 뿐이었다.

너를 알았다는 것은

몰랐던 상태로 다시 돌아갈 수 없다는 걸 의미한다.

사람을 안다는 것은 결코 사소하거나 가벼운 것이 아니다.

그래서 인연이라는 단어는 필연이라는 의미로도 해석되는 것일 게다.

내가 어렵고 힘든 일을 겪을 때, 또는 극한의 상황일 때, 내 주위 사람은 분명하고 선명해지는 법이었다.

배경을 지울수록 돌올해지는 그림 속 인물처럼 진한 윤곽으로 그 사람이 떠오른다.

진정한 그 사람

내게 친구가 그랬다.

인간은 지식이 아니라 태도로 증명된다는 말을 나는 믿는다.

30년 가까이 사람을 대하며 장사를 하다 보면 별별 사람과 마주하게 된다.

많이 가진 것과, 많이 배운 것, 그런 것과 상관없이 사람은 그가 가진 기본적인 인식이 

사람을 대하는 태도에서 어쩔 수 없이 그대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중경팀 산우들의 배려심 깊은 태도는 늘 서로를 감동시키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나는

집을 떠나 산에 들면 집을 잊었다.

온갖 잡념이 부유하던 머릿속도 산에만 들면 씻은 듯 맑아졌다.

높은 곳에서 깊이 숨 한번 들이마시다 보면, 눈에 보이는 세상 넓이만큼, 마음도 넓어졌다.

나를 나쁘게 말하는 사람도 어지간하면, 이해도 되고, 용서 되고, 막 그랬다. 그 순간 만큼은.

너무 맑아지고, 넓어지다 못해 지나 처서 이런 사태까지 생기기도 했다.

굿즌비..내에리..는...나아알. 그어야 아~.. 말로.. 예 에날씩 다방에~

미희가 낭만에 대하여를 딱 딱 꺾어 부르고, 뒤에서 객쩍은 백댄스를 하는 동안

사진 밖 대부분 사람들은 바위 위를 기면서 거의 울거나, 배를 잡고 쓰러져 있었다.

영원재로 내려갔다.

지리산행 중 이렇게 이른 시간에 하산을 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지만, 이런 산행도 좋다고들 했다.

그저 지리산에만 가면 좋다는 것이었다.

단풍이 있긴 있었든 모양이었다.

나는 보지 못 했다.

10월 중순 지리산 속에 이런 경우는 처음인 것만 같았다.

내려가는 길은 짧았고, 단순했다.

짧고 단순한 그 간결성 만큼 산행도 그러했다.

하산 도중 한차례 쉬었다.

처음 맛보는 막걸리가 종철 아우 배낭에서 또 나왔다.

종철 아우의 배낭에는 벌바위에서 주막을 차려도 될 만큼 아직도 막걸리가 가득했다.

달걀이 상에 자주 오르지 못할 정도로 귀하든 시절 마님은 생란을 밥에 비벼 먹는 것을 좋아했다.

어느 날 몸종이 밥상을 들고 오다 그만 달걀이 마루에 떨어져 깨져버렸다.

그 광경을 문틈으로 본 마님은 몸종이 어찌하는지 몰래 지켜보았다.

몸종은 마룻바닥에 깨진 달걀을 접시에 쓸어 담아 상을 내왔다.

괘씸한 생각에 마님은 몸종에게 물었다.

"깨끗하다는 게 무얼 말하는 것이냐?"

먼지나 잡티가 없는 것이라고 말하면 혼을 내줄 생각이었다.

그러나 몸종은 이렇게 대답했다.

"안 보이면 깨끗한 것이옵니다"

마님은 그 말에 크게 공감하며 용서했다.

때로는 모르면 행복한 경우도 있다.

우리는 호기심에 다른 사람의 과거나 잡다한 일을 들추어 알려고 한다.

안 보이거나 모르면 깨끗한 것이다.

누군가를 오래 만나다 보면 어떤 순간에 말을 아껴야 하는지 어렴풋이 배우게 되지 않든가.

하늘의 새가 날아다니는데 무슨 까닭이 있나 또, 그놈이 별안간 공중에서 곤두박질쳐 뒈진다 한들

거기에 무슨 곡절이 있나 그냥 그런 게지.

영원사 주차장으로 돌아와 산행이 끝난 시간은 오후 3시였다.

6시간 30여분을 산에서 보냈다.

그 시간이 몽땅 다 행복했다.

행복의 반대말은 불행이 아니라 불만이라고 하더라.

불만이라는 말은 만족하지 못하다는 말인즉, 만족을 아는 사람은 행복할 것이었다.
마천의 한 음식점에 들여 이른 저녁을 먹었다.

산에서 미진했든 이들은 따로 앉아 부족분을 마저 채웠다.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으로 둥근 보름달이 들어찼다.

술이 만만치 않았다.

뿌리부터 뜨거워지다가 오장을 거슬러 목줄기를 타고 머릿속까지 올라와 활활 타올랐다.

술이 때로는 감정을 추스르고, 그 감정을 순화시키는 명약이 될 때도 있는 것 같았다.

거나해진 나는 보름달을 올려다보며 내 마음도 둥글어져 가고 있음을 알았다.

살아오면서 고맙고 감사한 이들의 이름이 영화관 엔딩 크레디트처럼 줄줄이 올라왔다.

위 산행기의 사진은 전부 백산 선생님께서 찍은 것을 사용하였습니다.

중경팀 산행을 사진으로 기록해 주신 백산 선생님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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