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산행

2015.11.01.큰세개골

지리99 수야 2015. 11. 3. 17:15

큰새개골

 

독오당 72차 정기산행

일시:2015년 11월 1일 (일요일)

산행자: 다우님, 에스테야님, 귀소본능님, 수야.

걸어간 길:의신-대성주막-작은세개골 다리-큰세개골다리-큰세개골-영신대-창불대-음양수샘-

              남부능선-큰세개골다리-대성주막-의신.

산행시간:07시 57분~20시 05분 (12시간 07분) 17km.


2015-11-01 대성골(큰새개골).gpx

2015-11-01 대성골(큰새개골).gtm

 

 

대성골로 가는 길은 적막했다.

적막한 산길에 발걸음 소리가 정적을 깨웠다.

산은 적막하지 않으면 산이 아닐 것이다.

산은 적막함을 바탕으로 한다.

산이 사람을 위로 할 수 있는 것은

적막함을 바탕으로 하는 산이

사람의 영역이 아닌 자연이기 때문이다.

고요한 적막의 산에서 가만히 내려다보는 일을

세상 어떤 일보다 나는 좋아 한다.

지리산의 위안은 그래서 중독이다.

 

아래로 내려는 가을을 뒤쫓아 겨울이 다가오는 산의 아침은 쌀쌀했다.

쌀쌀함을 헤치며 나아가는 가을의 산길은

들뜨지 않았고, 첫사랑과 처음 걸었던 길 같았다.

 

의신에서 대성주막까지 그렇게 산책하듯 걸었다.

얼마 전 혼자 지루하게 걸었던 길이 동행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멀게 느껴지지 않았다.

에스테야 형님은 초행길이라 했다.

대성골 상류인 큰세개골은 나 역시 처음이다.

처음은 늘 설렘이다.

처음 그날 처럼.

 

꼬리를 흔들며 큰 개들이 먼저 달려와 사람을 반겼다.

 

대성주막에서

막걸리 한 잔씩을 마셨다.

아침에 먹은 하동 재첩국의 국물처럼 뽀얀 막걸리는

소주처럼 단번에 몸을 따라 빨리 펴져 나가지 않았다.

술의 기운이 천천히 퍼지는 막걸리를 나는 별로 선호하지 않는다. 

텁텁한 막걸리를 고사리 나물로 씻어 내렸다.

대성주막의 남자주인에게 대장님은 큰세개골 지명에 관해 물었다.

깊다는 뜻으로 세개골이라 한다는 말은 이해되지 않았고

수곡골과 세앙골 토골 세 골짜기를 아울러 세개골이라 했으며,

큰세개골은 공단에서 붙인 이름이라는 말까지만 이해했다.

포즈를 취해주는 큰 개와 사진찍기를 시도했다.

어색한 웃음을 흘리는 우리와 개는 한동안 안정된 자세로 있었다.

귀소본능의 카메라가 몇 번을 시도해도 이 시점에서 작동을 거부했다.

기다리든 개가 먼저 포기하고 일어서서 제자리로 돌아갔다.

카메라는 그때 다시 정상적으로 작동됐다.

개는 저 멀리서 고개를 돌려 바라보며

말하는 것 같았다. 

"이런 개 같은..."

 

대성주막을 지나 오름길에서 막걸리를 넘긴 목구멍으로 트림이 몇 번 나왔다.

어찌 된 영문인지 배만 부르고 알콜을 몸이 파악해 내지 못했다.

그동안 쌓인 알콜로 이제 도수가 약한 것에는 반응조차 하지 않는 것인지도 모른다는

근거 없는 생각을 했다.

 

낙엽이 깔리면서 가을의 길은 길로서 완성의 단계를 이루었다.

가을의 산길은 유혹적이었다.

깊이 걷고 싶은 마음을 끌어내는 저것들의 유혹은 계속해서 앞에서 펼쳐졌다.

유혹의 길을 걷는 내 마음은 극히 위험했다.

위험한 욕망으로 치닫는 나는

어떤 경계의 선이라도 넘어 버릴 수 있을 것 같았다.

낙엽이 깔린 고요한 가을의 산길은 내게 치명적으로 위험했다.

모든 것을 걸고 덤벼들어도 후회 없을 것 같았던

처음 그날처럼.

 

 

아래로 내려온 단풍이 망막으로 사정없이 밀려들었다.

마지막 단풍이 아직 남아 앞서간 그것들의 뒤를 따라가고 있었다

종결의 단풍은 고단함과 피곤함으로 계곡을 따라 흩어지고 있었다.

아직 단풍으로 유효한 것들 앞에서 대장님은 "개짐 서답 행군 물 뒤집어쓴 듯 발그레하다"고

표현했고 이 말의 뜻을 설명했다.

일제히 고개를 끄덕였다.

대성골 하류의 단풍은 단풍이거나, 낙엽으로 가고 있었다.

오를수록 지리산의 가을은 깊어져 있었다.

 

어떤 결핍도 찾을 수 없는 사람의 넉넉함은 산길에서도 한결같았다.

그의 걸음은 단정했고, 벅찬 느낌이 없었다.

반면, 인간세에 매몰된 오탁의 공간에서 벗어난 나는

이 가을의 산길에서 누군가를 향해 깊이 묻어 두었던

고백의 말들을 쏟아 내고 싶었지만,

애써 몸속으로 밀어 넣었다.

말로써 행동을 만들기엔 나는 이미 깊어진 가을의 나이가 되어 있었다.

 

 

대성골로 내리는 지류의 물은 모여야 하는 곳에서 모이고

흘러야 할 곳에서 흐르며

그야말로 물로서 물처럼 흘렀다.

어떤 곳에서나 어떤 환경에서나 적응하며 흘러야 하는 본분으로

흐르는 물은 그리 살아야 되는 게 순리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물 흐르듯, 순리대로.

 

작은세개골 다리를 건너갔다.

지난 8월 작은세개골에서 보았던 장면을 이야기했다.

급격한 관심으로 물어오는 대장님의 호기심을 깊이 충족시켜 줄 만큼 찐하게 이야기했다.

작은새개골 다리를 건너 얼마 가지 않아 칠선남능으로 들어가는 초입의 길이 보였다.

낮은 산죽 사이로 길은 길로서의 형태를 들어내고 있었다.

언젠가 걸어야 할 당연한 길임을 확인 했다.

큰새개골 다리를 건너갔다.

다리를 건너 정규등로를 따르다가 사면으로 들어가는 큰세개골의 초입은

놓치기 쉬운 길로 보였다.

앞서서 걸어가는 대장님을 따라 큰세개골로 스며들듯 우리도 들어갔다.

 

 

 

계곡 우측 옆으로 붙은 또렷한 산길을 따랐다.

계곡은 좌측에서 계속 되었다.

한동안 길은 길로서 길처럼 열려있었다.

계곡에 붙는 길이 나오면 그곳에서부터 계곡을 따라치고 오르기로 했다.

굳이 계곡치기로 힘을 빼지 말자고 대장님은 말했고

우리는 따랐다.

 

산길은 끝이 났다.

각자 알아서 올라가자고 대장님이 말했다.

그것은 조심하고 안전하게 행동하라는 뜻도 포함하고 있었을 것이다.

계곡을 치고 올랐다.

 

고도를 높일수록 낙엽마저 털어 낸 나무들은 앙상한 가지를 들어내고 있었다.

멈춰 서면 땀이 금방 식어 왔다.

지리산의 상부에는 이제 가을이 없었다.

지계곡을 지나갔다.

창불대로 올라가는 지계곡은 험난해 보였다.

창불대골을 언젠가 가보아야겠다는 생각을 새겨두었다.

대성폭포가 가까이 다가오고 있었다.

 

대성폭포에 올라섰다.

고도 1,110m의 대성폭포는 아래에서 폭포 전부를 볼 수 없었다.

4단으로 이루어진 폭포는 수량은 없었으나

웅장하고 거대해 보였다.

​직등으로 올라갔다.

길이가 120m에 이르는 폭포는

쏟아지는 물줄기가 많을 때는 그야말로 장관을 연출 할 것 같았다.

폭포에 올라서자 넓은 반석의 너럭바위가 졸졸 흐르는 갈수기 물을 받아내고 있었다. 

 

대성폭포에 발딱 선 바위가 젊은 새벽의 그것처럼 

불끈한 기운으로 힘이 넘쳐 보였다.

가까이 다가서서 자세히 바라본 바위는

물을 뒤집어쓰며 굳건하게 뻗쳐 더욱 야릇했다.

 

에스테야 형님은 폭포의 여러 모습을 여러 자세로 담았다.

저렇게 담은 지리산의 느낌을 혼자만이 간직하거나 사장되어 버릴 일이 안타깝지만

나는 이제 더는 형님께 산행기를 쓰시라 강요하지 않기로 했다.

 

폭포의 상단에 먼저 올라선 대장님은 

우리보다 한참 앞서서 길을 잡아내고 있었다.

대장의 걸음은 시종 가벼웠다.

산행 전 영감탱이의 너스레가 엄살임을 확실히 알게 했다.

하산 완료까지 지친 기색도 없었던 체력의 비밀은 영신대에서 빌었던

기도의 내용으로 뒤에 알게 되었다.

 

 

 

마등자 형님의 붉은 표시기가 매달려 있었다.

어디로 거쳐 간 발길인지를 찾아 산행기 방을 뒤져 보았다.

일명 나바론골로 간 것 같았다.

나바론이란 지명이 어떻게 생겼는지는 알 수 없으나 독오당은 사용하지 않기로 했다.

개인적으로 지리산의 지명중에 가장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을 말했다.

출처와 근거가 없는 모호한 지명보다는 무명이면 어떤가 싶다.

마등자 형님이 올라간 그 지류의 계곡을 우측에 두고 본류를 따라 올라갔다.

 

 

한차례 방향을 틀어 영신대를 향해 격렬히 일어선 계곡을 따랐다.

지리산 최고의 기도처다운 기운은 계곡을 향해서도 내려 뻗친 듯했다.

바짝 일어선 바위들이 예사롭지 않다는 느낌은

내 선입견일지도 모르지만 나는 영신대의 기운이라고 생각하고 싶었고,

그렇게 생각하기로 생각했다.

 

부처님 앞으로 다가서는 곰 형상의 바위를 발견하고 가리켰다.

무엇으로, 어떻게 보이는지 물었다.

일제히 부처 바위라고 말했다.

이 형상의 바위는 계곡의 좌측 칠선남능의 지능선 상에 있었다.

 

좁은 협곡을 따라 올라갔다.

일명 천국의 계단이라 한단다.

바위틈 틈이 발을 딛고 올라설 수 있는 계단처럼 돌이 있었으나

지금은 유실이 많이 된 것이라고 대장님이 말했다.

예전에 형수님과 영신대를 올랐던 이야기를 대장님이 들려주었다.

그때만 하더라도 형수님은 그야말로 날아다니는 수준이었단다.

고생 고생하며 올랐던 기억 때문인지 이곳저곳의 기억이 선명하게 남아있는

대장님은 그때의 길을 어제처럼 생생히 떠올렸다.

내 앞에서 올라가던 에스테야 형님이 슬그머니 뒤로 와 있었다.

 

 

 

 

대장님이 올라가면서 에스테야 형님 뒤에서 사진을 찍으라고 했다.

바동거리며 헤맬 것을 예상한 모양이었다.

눈치 빠른 형님은 내 뒤에서 올라갈 길을 예측하며, 예리하게 분석하는 잔머리를 굴렸다.

그러나 그것도 한계를 벗어나지는 못하고 뒤따르는 본능이 잡아야 할 밧줄까지 

몽땅 가지고 올라오는 이상한 짓을 멈추지 않았다.

긴장하고 있다는 반증이기는 했으나 애써 아닌 척 하는 것이 다 보였다.

불일협곡에서 처럼 뒤돌아서서 엉덩이로 밀고 오르려 했다면

앞과 뒤에서 수많은 카메라 세례를 받았을 것이었다.

 

뒷사람이 잡아야 할 밧줄을 꼭 쥐고 올라오는 에스테야 형님과

이게 뭔 일인가 싶은 표정의 귀소본능.↓

 

골짜기를 따라 오르는 길은 무질서함이 없고 단순했다.

단순한 길을 따라 오르고, 단순한 길을 내려다보았다.

단순함으로 삶을 끌어오자 서늘한 내일이 사라졌다.

출처를 알 수 없는 삶의 불안들이 명료해지는 답은 단순함이었다.

산에서 가만히 내려다보는 일이

세상 어떤 일보다 좋은 이유는 바로 이것이다.

 

 

두세 사람이 잠자리를 해도 될 것 같은 바위 동굴 비박터가 나타났다.

에스테야 형님의 상상력이 한껏 발휘되었다.

밑도 끝도 없는 형님의 상상인지 바램인지를 듣다가 휑하니 먼저 올라 가버렸다.

 

머리 위로 바싹 다가온 영신대 아래는 겨울이 와 있었다.

계곡을 기어오르는 열이 오른 몸으로는 느낄 수 없는 찬 기온이었지만

이 이미 얼어붙어 있었다.

 

한차례 허기가 밀려온다고 말하던 귀소본능이 주섬주섬 당분을 섭취하고 뒤처져 올라왔다.

영신대를 통과 후 점심을 먹기로 한 계획은 수정되었다.

삶의 가장 기본 조건부터 채우기로 했다.

영신대에서 점심을 먹기로 했다

걸리면 어쩔 수 없다.

각오하고 덤비는 일은 각오 된 만큼 견딜 수 있다.

 

영신대 기도터로 가는 굴을 통과했다.

오래된 통나무를 밟고 올라

좁은 굴을 지나가자 넓은 기도터가 나타났다.

 

주능선의 사람 소리가 들리는 기도터에서 점심을 먹었다.

조용하게 큰소리 내지 않기로 했다.

처음으로 에스테야 형님이 술잔을 올리고 기도를 했다.

지금까지의 산행 중에 처음 있는 일이었다.

기도 소리가 너무도 또렷이 낭랑하게 크게 들려 불안할 지경이었다.

복분자, 상황버섯 담금주, 소주, 맥주를 마셨다.

보통의 사람들은 쓸개를 제거하면 소화를 못 시켜 음식의 양이 줄어든다고 한다.

그러나 특이하게도 귀소본능은 양이 줄기는커녕 오히려 우리보다

빨리 허기를 느끼고, 수술 전보다 양도 줄지 않았다.

요즘은 술도 마셔대는 걸 보면 일반의 의학상식과는 다른 체질을 가진 특별함이다.

하여튼 독오당은 분석되지 않는 특별한 사람들이다.

 

영신대에서 대장님은 삼배를 올렸다.

"다른 거 다 필요 없고, 머리끝까지 양기가 뻗치도록 해주시라"

기도했다고 하산 후에 말했다.

"영감탱이 오로지 양기에만 매달리는 걸 보면 나이가 들긴 들어가는 모양이다."라고

우리끼리 히히덕거렸다.

기도빨인지는 알 수 없으나 하산완료까지 대장님은 정말 잘 걸었고

피곤한 기색이 없었다.

 

 

 

 

영신대에서 남부능선 창불대 방향으로 올라갔다.

뒤돌아본 영신대.

 

반야봉을 당겨서 가까이 오게 했다.

묘향대의 지붕이 선명했다.

서서 지나다닌 길들을 더듬었다.

걸었던 길들을 불러들이면 가야 할 길들이 함께 조바심쳐졌다.

 

남부능선에 올라붙었다.

토벌대에 쫓겨 도망치던 여자 빨치산들이 마지막으로
이 바위에서 몸을 던져 자살했다고 붙인 이름이 자살바위라고 한단다.

 

건너편 촛대봉과 시루봉

 

 

고독하거나 슬프거나 힘들어도,

산에서 고요히 내려다보는 일은 참으로 좋다.

다짐한 일과 약속한 일.

처음 그 마음과 처음 그날의 설렘이 여기서면 잊혔다가도 다시 밝아져 온다.

지리산은 언제나 내게 위안이며

나의 사숙(淑) 은 지리산이다.

어느 방향, 어느 곳을 향하던 모든 것이 다 작품이라며 연신 카메라로 담았다.

 

 

산들이 포개진 서쪽의 먼 곳으로부터 출렁이며 노을이 비치기 시작했다.

갈 길은 멀고, 길게 남았으나 흐르는 시간은 거침없었다.

분명해지는 밤을 각오했다.

각오 된 일들은 견디기가 수월한 법이다. 

 

 

음양수샘에서 물을 마시고, 카메라를 통째로 샘에다 목욕을 시키고 말았다.

각오 되지 않은 돌발에 당황했지만 받아들여야 하는 상황이므로 수긍의 시간은 최소화했다.

카메라는 다행히 수리 후 소생을 했다. <사진:귀소본능>

 

주능선의 영신봉에서 시작하여 하동의 삼신봉으로 줄기차게 뻗어 가는 남부능선 상에서

의신으로 방향을 꺾어 하산을 시작했다.

거의 7km에 달하는 거리가 주어졌다.

어둑해지는 하산길은 막막하지 않았지만 만만하지도 않았다.

밤길을 걸을 준비를 단단히 했다. <사진:귀소본능>

 

쏟아지는 내리막길과 파여 규칙 없고 예의 없는 밤길을 별 말없이 오래 걸어

대성주막에 도착했다.

아침에처럼 막걸리를 나눠 마셨다.

아침의 막걸리보다는 취기가 잘 올라왔다.

낯에 마신 술기운이 남아 있었던 탓에 보태진 막걸리가 적당했다.

요즘은 첫 잔을 원샷 처리 하는 대장님도 한 잔을 다 비우셨다.

막걸리의 취기가 피곤을 뒤로 밀쳤다. <사진:귀소본능>

 

<사진:귀소본능>

 

웬만하면 야간산행은 하지 말자고 대장님이 말했다.

어두우니 눈에 뵈는 게 없다고 했다.

 

뵈는 게 없는 길은 더욱 멀고 아득하다.

나는 내게 밀려오는 모든 허무를 수락하기로 했다.

어떤 상황에 내몰리게 될지라도 받아들이겠다는 수락은

느닷없고, 대책 없이 다가오는 갑작스러운 삶에 대해

긍정으로 마주하겠다는 마음가짐이었다.

어둡고 아득하다 할지라도 나는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다.

처음 그날에도 나는 그런 마음이었다.

11월의 첫날.

어둡고 뵈는 게 없는 지리산 밤길을 오래 걸었다.

 <사진:귀소본능>

 

너를 기다리는 동안 / 황지우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에
내가 미리 가 너를 기다리는 동안
다가오는 모든 발자국은
내 가슴에 쿵쿵거린다
바스락거리는 나뭇잎 하나도
다 내게 온다
기다려본 적이 있는 사람은 안다

세상에서 기다리는 일처럼
가슴 애리는 일 있을까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
내가 미리 와 있는 이곳에서
문을 열고 들어오는
모든 사람이 너였다가
너였다가, 너일 것이었다가
다시 문이 닫힌다

사랑하는 이여
오지 않는 너를 기다리며
마침내 나는 너에게 간다
아주 먼 데서 나는 너에게 가고
아주 오랜 세월을 다하여
너는 지금 오고 있다

아주 먼데서
지금도 천천히 오고 있는 너를
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는 가고 있다
남들이 열고 들어오는 문을 통해
내 가슴에 쿵쿵거리는 모든 발자국 따라
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는 너에게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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