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

2013.05.12 비슬산.

지리99 수야 2013. 5. 14. 00:16

비슬산(琵瑟山) 1,083m


위치:대구광역시 달성군 유가면, 옥포면, 가창면, 청도군 각북면

일시:2013년05월12일 (일)

날씨:맑음

참석자:김호철,황장미, 최정남,성여사,수야(5명)

등산코스:유가사주차장-수도암-712m-도통바위-1054m능선착-대견봉(1084m)-마령재-월광봉(1003m)-

            조화봉삼거리-대견사지-팔각정-959m-수성골계곡-유가사.

             

거리및산행시간:9.6km, 5시간(휴식및간식포함,순수산행시간4시간)




                                      (개념도:국제신문 근교산, 부산일보 산&산.)


산행트랙.


(琵瑟山."비파 비(琵) 거문고 슬(瑟))")이라는 이름은 

정상에 있는 바위의 모습이 신선이 거문고를 타고 있는 모습을 닮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도 하고, 

비슬이란 말이 인도의 범어의 발음 그대로 음으로 표기한 것이라고도 하며, 

비슬의 한자 뜻이 포라고 해서 일명 포산이라고 하였다 한다.

원래 정상의 이름은 천왕봉이었다. 

그것이 대견봉으로 바뀌고 팔각정 전망대가 있는 산은 대견봉에서 조화봉으로 바뀌었다. 

일부 산행지도에는 이 봉우리의 이름이 대견봉으로 되어있어 혼란을 부채질한다. 

그리고 조화봉이란 이름이 붙은 남쪽의 높은 봉우리는 칼바위로 바뀌어 불리고 있다.



참꽃 축제도 끝이나고

진달래가 남아있을리 없다.

진달래꽃은 볼수없지만, 이제 산행에 조금씩 흥미를 느끼고 있는

함께 동행한 일행들의 체력과 여건(3시간~5시간 산행)을 생각해 볼때 비슬산이 좋을것 같아

이번주 산행지로 정하고 산행에 나선다.

정확히 7시에 창원을 출발해 고속도로를 신나게 달려 현풍IC를 빠져나와

이정표를 따라 유가사 주차장에 도착, 

8시46분 아스팔트길을 따라 도성암 방향으로 길을 잡는다.

아직은 주차장에 차들도 없고 산행에 나서는 사람도 그리많지 않다.


무슨꽃인지 이름을 알수 없는 꽃들이 잘정비 되어있는 길을 따라 산책하듯이 걷는다.



무산오현선사시비.



도성암까지는 포장도로가 나있는 모양이다.(지형도상)

도성암으로가는 포장도로를 따르다 수도암을 지나면서 포장도로를 버리고,

본격적으로 산행에 접어든다.

경사도가 제법 장단지에 묵직한 땡김으로 온다.

봄도 제대로 느낄사이도 없이 올해는 날씨가 겨울에서 여름으로 바로 가는듯하더니

오늘은 제법 여름같은 느낌이 들정도로 덮다.

올라갈수록 땀이 흐르기 시작하고

제법 산행다운 맛이 날쯤 휴식을 갖는다.


몇주째 주일마다 산행을 한 덕분인지 가파른 경사임에도 잘들 올라간다.

이제는 산행의 재미를 알아 가는듯 하다.



9시39분.

GPS트랙의 도통바위를 찾아보니 이 지점이다.

도성암 뒤편으로 길이 있는듯한데 막아놓았다.

도성암은 비슬산의 많은 절 중에서 가장 오래된 절이라고 한다.

자세히 살펴보면 도통바위 아래로 도성암이 보인다

도성과 관기의 전설이 비슬산에 있고,

도성암과 관기봉이라는 이름이 그래서 연유되었을 거라는 사전의 인터넷 검색으로

알고있는 내용만 간단히 적는다.


힌제비꽃.제비꽃,노랑제비꽃. (맞는지는 정확히 모름)




비슬개별꽃.

개별꽃의 일종으로 비슬산에만 난다고 한다.


2006년5월4일 비슬산 산행때 촬영.


제법 많은 땀을흘리고 두서너번의 휴식만에 올라선 1058m의 능선에 붙는다 

정상이 바로앞이지만 시원한 바람에 한차례 땀을식힌다.

고도를 높일수록 바람이 강해진다.

햇볕은 강한데 바람이라도 불어주니 그나마 다행이다.


10시52분

비슬산대견봉(1084m)정상에 도착 한다.

산행시작 2시간을 조금 넘긴시간이다.

바람이 심하게불고 

산악회사람들이 너무많아 잠시만 머문다.

유가사와 주민들은 천왕봉으로 불러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고 한다.

아직도 대견봉과 천왕봉에 대한 논란이 있다고 한다.




2006년5월산행때

셀카로 찍느라 몇장 없다.


올라온 유가사방향.

우측의 도통바위와 아래의 도성암이 보이고

도성암으로 이어지는 포장도로가 보인다.


멀리 관기봉이 흐릿하게 보인다.


낙동강유역 강우레이더 관측소 건물이 보인다 저곳이 조화봉(1058m).




이 분 도가 통했는지.

바위끝에서 도통한 모습으로 세상을 보신다.


무슨 꽃일까??


대견봉을 지나 월광봉 가는길에 잠시 한차례 휴식을 갖는다.

마라톤으로 그나마 체력들이 많이 좋아진 탓인지 쉽게,빠르게 회복된다.

이대로 조금만더 가면 지리산 입산날도 이제 얼마 남지 않은것 같다.


진달래가 사라진평원엔 전망테크가 한산하다.


2006년산행때의 진달래 군락.



평원으로 가는길과 조화봉으로 가는 갈림에서 좌측위의 조화봉 방향으로 간다.

오름길이지만 거리도 짧고 길이 잘정비되어 있어 금방오른다

아침에 보이지 않든 많은 사람들이 여러방향에서 올라와 구석구석에 앉아 식사며 간식들을 

즐기고 있다.

저건물 때문인지 산허리를 휘감고 돌아가는 도로가 별로 반갑지도 않고 좋아 보이진 않는다.

필요해서 생긴것이겠지만...


2006년당시 조화봉



하늘과 맞닿은 절터 ‘대견사지 ’ (11시53분)

신라 때 중국의 당태종이 어느 날 세수를 하려고 물을 담아온 대야를 봤는데 

그 물에 웅장한 산정에 세워진 고운 절터의 모습이 나타났다고 한다.

이에 태종은 이를 하늘의 계시라 여기고 당나라뿐 아니라 나라 밖까지 뒤져 물에 비친 절터의 실체를 찾았다. 

왕의 명을 받고 나라 밖을 뒤지던 당나라 사람들은 신라의 곳곳의 절을 찾다 비슬산까지 이르렀다.

정상을 향해 오르던 그들은 이 대견사지에 올라 드디어 계시의 실체를 발견했다. 

이에 당태종에게 사실을 보고하니, 당태종은 특별 하사금까지 보내 이곳에 절을 짓게 했다는 얘기가 전해진다.

이 이야기를 바탕으로 당나라까지 비쳐서 ‘큰 나라의 왕이 본 명당’이라는 의미로 ‘대견(大見)’이라 불렸다.


대견사중창.

대견사는 신라 헌덕왕 때 보당암으로 창건된 것으로 알려진 사찰로, 

일연스님이 1227년(고려 고종 4년) 22세 때 초임 주지로 부임해 22년간 주석, 

참선에 몰두하면서 삼국유사 집필을 구상한 곳으로 유명하다.
또한 조선 태종과 세종 때에 중수되면서 현재의 대견사로 개칭되었고, 

임진왜란 때 전소되었다가 광해군과 인조 때 중창되었으며, 

1900년 영친왕 즉위와 대한제국을 축원하기 위해 중수되어 동화사 말사로 편제되었지만, 

1917년 대견사가 일본 쪽을 향해 건축돼 일본인의 기를 누른다는 이유로 

일제가 강제 폐사시킨 후 지금까지 복원되지 못하고 있었다.


달성군과 동화사는 대견사를 중창하기 위해 

지난해 1월 20일 폐사 당시의 원형을 최대한 복원하도록 건립하여 개산식을 갖는다는 

내용의 사찰 건립 협약을 체결하고 사업을 추진해왔다. 
각종 인·허가 등 행정적 지원은 달성군에서, 중창에 소요되는 사업비 50억원은 동화사에서 전액 부담하기로 했다. 

또한 그 동안 문화재청 및 대구시청의 5차례 심의와 3회의 유적 발굴 조사 등 세밀한 검증과 심의를 거쳐 

올해 2월19일 승인을 얻어 달성군 개청 100년이 되는 3월1일 기공식을 갖게 됐다.



대견사지 남쪽에는 관기가 도를 닦았다는 관기봉이 뾰족이 솟아있다.


절터 바로 아래는 깎아지는 듯한 절벽이다. 

탁 트인 경관이 눈에 들어온다.

날씨가 좋은 날에는 여기서 대마도까지도 보인다고 한다. 

이 위에 터가 있는 것만도 신기한데 절터 앞에 넓고 커다란 바위 끝에는 

이 바위를 바닥으로 해 세워진 대견사지 삼층석탑이 서 있다.





2006년의 모습.




지나온 마령재와 월광봉(1003m)


대견사지에서 본 건너편 대견봉.


대견사지에 잠깐동안 간식으로 허기를 채우고,

팔각정을 지나 유가사 방향으로 하산을 한다.

하산 시간은 넉넉히 잡아도 한시간반이면 충분하다.

하산 막바지 수성골의 계곡을 건널쯤 

조망터에서



족탕으로 잠깐의 휴식을한다.

발을 담그고 잠깐만에 발이 시립다.


마지막 내림길은 그야말로 산책길, 나들이 길이다.

새소리 바람소리 오월의 나무에서는 노래소리가 들린다.

산을 음미하며 걷는 길은 실록으로 또한번 씻어내는 살림욕이다.

유가사에 도착 하고보니

돌탑들이 유난히 많다.

좋은 글을 새긴 조형물도 많고.




유가사 시방루(市方樓),



탑은 '정상', '꼭대기', '부처님의 사리를 모신 곳' 등으로 정의 됩니다.

탑은 인도의 고전어 '스투파(STUPA)'에서 온 말입니다.

이 스투파를 번역하여 塔婆(탑파)라 했으며, 오늘날 塔(탑)으로 불리게 되었습니다.

 

절에는 탑이 있습니다.

법당이나 불상보다 먼저 생겨난 것이 탑입니다.

탑에는 부처님의 사리가 모셔져 있기 때문에 사람들은 탑을 돌면서 부처님께 소원을 빌고 원을 성취해 왔습니다.

 

우리 속담에 "공든 탑이 무너지랴"라는 말이 있습니다.

공든 탑에 많은 사람들의 염원이 쌓이고 또 쌓인다면 어떤 소망도 다 이룰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 민족은 예로부터 마을 어귀 성황당의 돌탑에 한해, 한개를 정성스럽게 올리면서 소원을 빌었습니다.

유가사에 108개의 돌탑을 세운 이유는 이러한 전통문화를 계승하는 의미 또한 간직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유가사는 모든 시민들이 탑을 보고 마음에 안정을 찾는 도량으로 자리매김하게 될 것입니다.

이러한 뜻 깊은 불사에 많은 도움을 준 달성군에 감사를 드립니다.

 

                                  불기 2555년(2011) 8월, 유가사 주지 계성 합장


지나는 길에만 힐끗 보고 지나 왔는데.

인터넷 검색을 해보고

가을에 유가사만 둘러 보러 다시 한번 와야겠다.



아침에 주차할때만 해도 주차장이 한산했는데 하산시간엔 주차장이 만차다.

주차한 차 뒤에서 늦은 점심을 먹기위해 라면을 끓이고

시원한 한잔의 맥주에 간단한 안주를 두고 둘러앉았다.

가장 맛있는 음식은 배고플때 먹는 것이다. 


지금 행복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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