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산행/지리산종주

2006.07.25 지리산 당일 종주

지리99 수야 2006. 7. 25. 02:57

지리산 종주

 

걸어간 길:성삼재-장터목-중산리.
일시:2006년 7월 25일.
산행자:홀로.

산행거리:33km.

 

 

 

 

 

먼 길을 계획한다.

언젠가 한 번은 해보고 싶었던 지리산 종주.

이 시도가 한 번으로 끝나지 않을 것임도 분명히 안다.

보통 2박 3일의 일정으로 계획되는 길을 하루에 걷기로 한다.

어쩌면 무모한 도전이 될지도 모르겠다.

그 무모함 조차 지금 해보지 않으면 분명 후회할 것 같다.

길을 나선다.

나 자신과의 약속을 지켜 내고 싶다.

먼 길 혼자다.

 

성삼재(1,102m) 유래.

삼한시대에 진한 대군에 쫓기던 마한 왕이 전쟁을 피하여 지리산으로 들어와

심원계곡에 왕궁을 세우고 적을 막으며 오래동안 피난생활을 하였다고 하는데

그때 임시 도성이 있었던 곳이 달궁이라 이름지어져 불렸다 한다.

그 당시 마한 왕은 달궁을 지키기 위하여 북쪽 능선에 8명의 장군을 배치하여 지키게 하였으므로 팔랑재(八郞峙),

서쪽 능선은 정장군으로 하여금 지키게 하였으므로 정령재(鄭嶺峙),

동쪽은 황장군이 맡아 지키게 하였으므로 황령재(黃嶺峙),

그리고 남쪽은 가장 중요한 요지이므로 성이 다른 3명의 장군을 배치하여

방어케 하였으므로 성삼재(姓三峙)라 부르게 되었다는 전설이 있다.

 

성삼재까지 택시를 타고 올랐다.

사방은 고요와 적막뿐이다.

혼자 걷는다.

몇몇 산꾼의 불빛이 따라붙는다.

무섭거나 외롭다는 생각은 아예 생각할 여유가 없다.

새벽 4시.

나는 자신과의 치열한 싸움을 예상한다.

주능선 입구에 서자 천왕봉까지 25.9km의 거리를 각오시킨다.

 

 

빠른 걸음으로 걷는다.

어차피 사방은 어둠에 가려 천지 분간이 없다.

앞과 뒤에 선 사람들의 소리가 어둠 속에서 분명치 않게 두런두런 들린다.

피아골 삼거리.

 

 

 

돼지령을 지나간다.

돼지령.

멧돼지들이 좋아하는 둥굴레가 많이 나는 곳이어서 이름이 생겼다 한다.

일부에서는 원추리 뿌리를 캐먹는 멧돼지들의 모습이 많이 목격돼 돼지평전이라 불렀다고 한다.

임걸령을 임걸령인 줄 모르고 지나친다.

 

임걸령.

의적 임걸년이 1,594년 유민들을 모아서 산채를 열고 그 주위를 석권하였다.

그는 3년간 지리산 일대에 자신의 왕국을 구축하고 약탈을 일삼았다.

3년뒤에 관군 토벌대에 죽었으나,

임걸령이란 이름으로 그 흔적을 깊이 새겨 놓았다

 

노루목.

이 곳의 암두 모양새가 마치 누루가 머리를 치켜든 모습과 비슷하다는 설과

노루가 지나다니던 길목이라 하여 노루목이라 한단다.

노루목에서 반야봉을 올라갈 마음을 버린다.

 

 

반야봉.

전라북도 남원시 산내면과 전라남도 구례군 산동면의 경계에 있는 산.

전라북도에서 가장 높으면서 지리산 일대에서 두 번째로 높은 해발고도 1,731.8m의 높은 산이다.

구례군 산동면과 남원시 산내면이 마주하고 있는 능선에 자리하고 있다.

반야봉을 중심으로 뱀사골을 이루는 만수천 지류가 동북쪽으로 흐르고

심원계곡을 이루는 지류는 남서사면에서 시작하여 반야봉을 좌로 돌아나간다.

반야봉은 노고단에서 천왕봉으로 가는 주능선에선 벗어나 있다.

노루목에서 좌측능선을 따라가야 반야봉에 오를 수 있다.

반야낙조와 운해의 절경은 지리산 8경의 하나로 손꼽히며,

특히 서쪽으로 지는 석양에는 반야봉 주변의 하늘이 온통 연붉은빛으로 물들어 장관을 연출한다.

또한 계곡에서 밀려오는 상승기류가 점차 이슬점온도에서 구름으로 변하면서

운해를 펼쳐놓으면 온 사방이 흰 솜구름에 앉은 듯하다.

맑은 날엔 동해와 남해가 멀리서도 보일 정도의 고도를 가지고 있다.

중생대에 관입한 화강암의 영향으로 주변 암석이 광역접촉변성을 받아 변성암이 된

지리산편마암콤플레스를 지질적 베이스로 가지고 있다.

반야봉은 지리산에서 두 번째로 높지만 암석으로 이루어진 산이 아니라 토산으로

육중한 산체를 가지고 있다.

편마암의 특성인 표층풍화가 진전되면서 기반암을 풍화층이 피복하고 있는 상태이다.

특히 뱀사골 쪽의 사면들은 북서사면과 남동사면이 서로 비대칭을 이루고 있다.

북서사면이 동사면보다 완만하면서 균등한 사면을 유지하고 있는 반면

동사면은 좀 더 가파르고 균등하지 않다.

이런 지표층을 온대림 원시림이 뒤덮고 있다.

심원마을과 달궁마을이 서사면에 자리하고 있다.

달궁에서 성삼재로 넘어 구례로 가는 지방도 861호인 지리산 관광도로가

서쪽능선을 따라 나있으며 달궁마을에서 반야봉까지는 8㎞ 정도의 거리이다.

지명유래는 지리산에서 불도를 닦고 있던 반야가

지리산의 산신이면서 여신인 마고할미와 결혼하여 천왕봉에서 살았다는

전설에서 유래되었다는 설과 어떤 영험한 스님이 뱀사골에 있는 이무기를

불도와 합장으로 쳐부수고 절의 안녕을 가져왔다는 의미에서

반야심경에서 이름을 따 반야봉이라고 지었다는 설이 있다.

 

삼도봉에 도착한다.

사방이 밝아 오고 세상이 열린다.

삼도봉을 표시한 삼각형의 조형물 앞에 다가간다.

 



삼도봉.
경상남도와 전라남도, 전라북도 삼도의 경계다.
반야봉 아래 해발 1,550m.

지리산을 삼도로 구분하는 기점이다.
경남은 삼도봉 - 불무장대 - 통곡봉 - 촛대봉 - 섬진강으로

이어지는 불무장등 능선을 경계로 전남과 구분된다.

전북과는 삼도봉 - 토끼봉 - 명선봉 - 삼각고지 - 영원령 - 삼정산을

연결하는 능선을 경계로 하고 있다.
전남과 전북의 경계는 삼도봉 - 반야봉 - 도계삼거리 - 만목대 - 다름재 구간으로

능선으로 경계선을 만들었다.

삼도봉의 지명은

그동안 삼도봉이란 지명으로 불리지 못하고

국립공원관리공단이 지리산 일원에 이정표를 세우면서부터 삼도봉으로 명명됐다.
'낫날봉' '날라리봉' '늴리리봉'등 다양하게 불려왔다.
원래 이 봉우리는 정상 부분의 바위가 낫의 날과 같은

모양을 하고 있다고해서 낫날봉으로 불렸다한다.
낫날이란 표현의 발음이 어려운 탓에 등산객들 사이에선

'낫날봉'이 '날라리봉' 또는 '늴리리봉' 등으로 더 알려져 있었다.

 

 

 

삼도봉 경계표지석.

 


 

삼도봉을 지나 화개재로 가는 길에 만나는 594계단.

1999년 설치한 나무 계단이다.

폭 1.5m 길이 240m의 계단을 지나 화개제에 도착한다.

 

화개재.

화개장터와 뱀사골에서 올라온 영호남 상인들이 지리산 주능선에서 만나 장을 열던 장터다.

 

안갯속에서 깨어나는 지리산의 아침은 신비 그 자체다.

여기에 서 보지 않았다면 영원히 보지 못했을 순간이다.

생의 마지막 순간
간절히 원하게 될 것과

해 보지 못했음을 얼마나 후회하게 될까.

다음에, 나중에 그렇게 미루어진 것들

이제는 지금 당장 바로 하며 살아야겠다.

나중이란 영원히 없을지 모른다.

 

보여 주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다. 

나는 나 다워야 한다.

굳어진 채 봉인되어 버린 생각들을 유연하게 풀고 해제해야 한다.

나를 찾아가는 길이 비록 고행이라 할지라도 주저하지 말일이다.

답게 살아야 할 일이다.

 

 

 

화개재.

 


피아골산장으로 계단을 내려간다.

아침을 먹기 위해서 산장에 들린다.

간단한 아침이다.

물을 끓이고 즉석밥을 만들어 먹는다. 

혼자서 먹는 밥일지라도 억지로 넘긴다.

먹는 만큼 갈 수 있기 때문이다.

내려온 계단을 다시 올라온다.

올라오는 계단은 힘이 배로 든다.


토끼봉.
토끼봉이란 명칭은 주변에 토끼가 많다거나 봉우리가 토끼 모양이라서가 아니다. 

반야봉을 기점으로 동쪽, 즉 24방위의 정동(正東)에 해당되는 묘방(卯方)이라
해서 토끼봉(卯峯)으로 부르는 것이다.
토끼봉은 1,537m로 정상이 밋밋한 초원지대와 구상나무 상록수림지대로 정연하게
구분이 되어 있어 마치 인공적으로 조성한 것처럼 우아하고 정돈된 이름다움을 지니고
있을 뿐만 아니라 서쪽으로는 반야봉의 웅장한 모습과 북쪽의 뱀사골,
동남쪽으로는 화개골의 경관을 볼 수 있다.
정상부 초원에 지보초(식용산채류)가 군생하고 있어 '지보등'이란 별명을 가지고 있으며
토끼봉 남쪽 능선길을 따라 내려가면 칠불사에 이른다.

연하천 까지는 3km, 천왕봉까지는18km가 남았다.

걸음은 이제 의지와는 다르게 변화가 생긴다.


 


연하천 대피소.

해발 1,480m 연하천은 명선봉 북쪽 중간 고산지대
숲 속을 누비며 흐르는 개울이 구름 속을 흐르고 듯 하여,

연하천이라는 지명으로 부르게 되었다 한다.

연하천 대피소에서 선 채로 물 한 모금만 마시고 지나간다.

 

 

 

연하천 대피소.

 

천왕봉은 이제 14.3km로 가까이 다가온다.

연하천 대피소를 지나 조금 더 걸으며 

북쪽으로 길게 내리뻗은 능선이 시작되는 삼각고지에 이른다.

중북부 능선이다.

별바위등을 거치며 영원령과 삼정산까지 능선의 흐름이 멈추지 않는다.

이 능선에 대한 갈망이 지리산 종주만큼이나 나는 목마르다.

 

형제봉을 지나 간다.

정확한 지명은 부자바위다.

나무꾼 인걸과 선녀 아미의 전설이 서려 있는 곳.

산 아래 멀리서 보아도 쉽게 찾을 수 있는 모습의 부자바위를 스쳐 지나간다.

 

 

능선을 따라 시선은 주능선의 상봉을 향한다.

마치 근육질 팔뚝 핏줄처럼 힘이 느껴지는 능선들이 사방으로 힘차 보인다.

내달리는 주능선 고저의 옴팍한 곳에 벽소령대피소 모습이 반갑다.

 

벽소령.

화개재, 장터목과 같이 지리산 남북을 넘나드는 고개 중의 하나다.

빨치산들이 벽소령을 넘나들 때면 달빛 때문에 고향을 그리며 울었다 한다.

밝다 못해 푸른빛이 도는 지리산 달밤.

오죽하면 푸른 밤이라 했겠는가.

벽소령대피소에서 배낭을 내리고 쉬어간다.

 

덕평봉.

정상부가 각지지 않고 평평한 것이 덕스러워 보인다고 붙여진 이름이란다.

옛날 덕평마을이 자리했던 것으로 전해지나 정확한 위치는 알 수 없다.

선비 샘아래 상덕평 분지라는 설과 영신사에서 가까운 음양수샘 부근이라는 설이 있다고 한다.


선비샘.
이곳 샘터가 현재는 서서 물을 받을 수 있게 되어있지만

예전에는 반드시 고개를 숙여야만 물을 받을 수 있었다고 한다.
옛날 상덕평 마을에 평생 가난하고 천대받으며 살아온 한 노인이 있었다.
이 노인의 유언이 죽어서라도 사람대접 한번 받아보는 것이었는데

결국 아들들이 이 샘터 위에 무덤을 만들어

많은 사람이 샘에서 물을 뜰 때면 반드시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이므로

결과적으로 이 노인의 무덤에 절하는 격이 되게끔 하였다고 한다.
생전에 갖은 고생과 천대 속에서 화전민으로 살아온 한 노인의 애틋한 소망이

실제로 십여 년 전까지만 해도 실현되고 있었한다.
그러나 지금은 무덤도 안 보이고

샘도 파이프로 연결하여 서서 받도록 조처하였기 때문에

이 전설은 잊혀진 얘기가 되고 있다.

 

선비샘에서 물을 보충한다.

발바닥은 이제 불이 난 것 처럼 화끈거린다

발가락도 아파지기 시작한다.

물로 세수하고 열을 식혀보지만, 몸은 의지만큼 단단하지 못하다.

간간이 보충해야 할 간식도 없다.

체력만 믿고 준비를 하지 않았음이 후회스럽다.

 

칠선봉. 

북쪽의 백무동과 남쪽의 대성골이 관찰된다.

일곱 개의 바위가 오밀조밀 모여서 정상을 이룬다고 해서 칠선봉이다.

한시간을 넘기지 못하고 또 쉬어간다.

발가락은 점점 더 아파온다.

 

영신봉.

영신봉에서 지리산 남부를 향해 길게 뻗은 능선이 경남 하동의 삼신봉에 닿는 구간을 

지리산 남부능선이라 한다.

또한, 이 남부능선을 넘어온 산줄기는 낙동강까지 줄기찬 달음질을 치며 맥이 이어진다.

바로 낙남정맥이다.

낙남정맥의 출발점이 영신봉이다.

지리산 주능선 상의 20여 개 봉우리 중에서 가장 신령스럽다는 영신봉(靈神峰; 1,651.6m)에서 분기하여

하동, 진주, 마산, 창원을 거쳐 낙동강 하 그 맥을 다하는 도상거리 총 232km의 산줄기가

낙남정맥이며 그 시작이 영신봉인것이다.

영신봉에 서서 남부능선을 한동안 바라본다.

꼭 걸어 봐야 할 길이다.

 

세석대피소는 바쁜 걸음을 유혹한다.

쉬고 싶다.

조금만 쉬면 다시 힘을 내어 그 시간 만큼 빨리 걸을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나, 분명히 알고 있다.

여기서 한 번을 그렇게 쉬면 점점 그 유혹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사실을...

더딘 걸음이라도 계속 걷는 것이 더 나은 방법임을 경험으로 알고 있다.

 


세석대피소를
바라만 보면서 그냥 지나간다.
살면서도 이렇게 유혹은 감미롭게 나를 향해 다가올 것이다.

아무리 굳은 마음도 한순간 무너질 만큼 매혹적으로 다가올 것이다.

떨치기 힘든 유혹을 간신히 물리치고 계속 걷는다.

누가 가라고 등 떠민 길이 아니다.

스스로 선택하고 결정한 길이다.

무엇을 위해, 왜 이 길을 이렇게 힘들게 걷는지

되묻고 싶지 않다.

앞만 보고 걸어온 삶이 다르지 않고

앞으로 가야 할 길이 또 그렇다.

저기까지 가야 한다는 한가지만이 오직 지금의 목표가 된다.

살아가면서 힘든 상황에 처 할 때마다 이렇게 단순해 지면 좋겠다. 

 

세석고원.

작은 돌밖에 없는 지대라 해서 잔돌고원 이라 부르던 것을 한자 표현으로 세석평전이라 했는데

평전이 일본식 표기라 하여 일반적으로 세석고원으로 불린다.

이현상의 남부군 주둔지로 유명하며, 세석의 철쭉은 연한 빛으로 창백하기까지 하다고 한다.

경남 산청, 거림, 함양의 백무동, 하동의 청학동 등 여러 지역과 연결되는 지리산의 중심지이다.

세석고원은 1400m~1703m에 약 30만 평에 달하며 남향으로 15도 경사를 이루고 완만히 펼쳐진 지형이다.

남한의 개마고원으로 불릴 만큼 지리산 중 인상적이고 특이한 지형이다.

 

 

세석을 지나 계단을 오른다.

한 줄기 바람이 불어오는 고개에 서서 우측을 바라보니 촛대봉이다.

천왕봉이 아직도 아스라이 멀다.

 

촛대봉.

지리산 촛대봉에는 세석 철쭉과 관련된 전설이 있다.

옛날 연진 이라는 여인이 남편 호야와 대성계곡에서 행복하게 살았는데

자녀가 없어 고민하던 중 어느 날 흑곰에게 세석고원에 있는

신비의 물을 마시면 자식을 낳을 수 있다는 말을 듣고

남편과 상의 없이 산신령이 금기시킨 영신봉 음양수를 마셨다.

평소 흑곰과 앙숙이던 호랑이가 일러바쳐 산신령의 노여움을 산 여인은 평생

남편과 생이별하고 세석의 철쭉밭을 가꿔야 하는 벌을 받아야 했다.

여인은 촛대처럼 생긴 산꼭대기에 촛불을 켜고 천왕봉 산신령

에게 용서를 빌다가 돌로 굳어 버렸다 한다.

평생 손끝에서 피가 배어 나오도록 철쭉꽃을 가꾼 여인의 슬픔과

피가 이곳의 철쭉꽃을 처연하도록 아름답게 하는 것이라

사람들은 믿었다 한다.


연하봉.

장터목에서 남서쪽 봉우리이다.

촛대봉에서 연하봉 구간은 지리산 10경 중 연하선경(煙霞仙境)이라고 한다.

구름이 노니는 곳이라는 뜻일까.

그토록 아름답다는 의미일 것이다.

건너에 지리산 천왕봉이 그 모습만큼 웅장하게 솟아 있다.

장터목이 이제 지척으로 가까워지는데 걸음은 무거워지기만 한다.

 

 

연하봉의 고사목과 온갖 야생화가 천상화원을 이루는 곳.

꿈길처럼 포근하고 아늑하여 탄성 나온다.

잠시 쉬면서 둘러보니 구름 위에 서 있는듯한 느낌이다.

천근만근 무거운 다리에 다시금

힘을 낸다.

 

 

 

지나가는 운무의 너울이 바다의 파도처럼 일렁인다. 

더위와 체력의 고갈로 지친 몸에 시원한 한 줄기 바람이 스친다.

시원하다.

한 무리의 학생들이 대열을 지어 지나간다.

길을 내어 주고 뒤를 따르다 보니 앞 선 아이들이 돌 위에 초코파이와 초코렛을

몇 개 놓고 갔다.

생각할 겨를도 없이 허겁지겁 입으로 가져간다.

비상용으로 가지고 다니던 초코렛조차 오늘은 없었기 때문이다.

 

길은 참으로 정직했다.

내 걸음으로 걸은 만큼만 나아 갈 수 있다.

스스로 직접 하지 않으면 그 어떤 것도 얻어지는 것이 없다.

지리산은 준엄하게 나를 꾸짖고 반성하게 한다.

 


장터목산장에 도착한다.

천왕봉을 가기 위해서는 제석봉을 넘어야 한다.

지쳐있었다.

천왕봉을 오르고 하산을 완료할 체력이 아니다.

야간산행의 경험도 없고 준비도 안된 상태에서 욕심만으로

계속 진행을 하기엔 너무나 무모한 일이 될 것이다.

하물며 저녁부터는 많은 비가 예보되어 있다.

이미 바람은 물기를 품었고 하늘은 잔뜩 흐려져 온다.
천왕봉은 남겨두고 하산을 결정한다.

포기가 아니라 남겨두는 것이라고 위안으로 삼지만 아쉬움이 크다.

하산길 비를 맞으며 천천히 내려온다
체력이 바닥나고 있다 .

발가락엔 물집이 잡히고 다리는 하산길에서 더욱 무겁다.

우의를 입고 빗물과 땀으로 범벅이 된 몸을 억지로 끌고 내려가는 길이

끝없이 길고 길다.
중산리에 도착하니 진주행 마지막 버스는 이미 떠났고.
비는 내리고 배는 고프고 날은 어둡다.

집으로 전화하고
민박을 구해 식당에서 늦은 저녁을 먹는다.

여름이라지만 비를 맞고 찬물로 샤워하고 나니 한기가 든다.

자리가 바뀌면 잠을 못 자는 버릇이 이번에는 통하지 않았다.

쓰러지듯 누운 그대로 아침까지 깊이 잠이 들었다.

다음날, 아쉽게 오르지 못한 천왕봉을 돌아보며

어디에도 가지 않는 지리산이지만 나는 조급해 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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