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9.26 함께 하는 지리산행 4 (상내봉)
함께 하는 지리산행 4 (상내봉)
일시:2024년 9월 29일 일요일
함께한 분들:산으로,해영,봄이,소나타,늘뫼달무리,오캔디,몽지리,연하,황순진,김은의,권영구,이순애,이종철,최미희,최정남,수야(총16명)
산행경로:광점동 주차장-어름터 독가- 사립재골 지능-방장문-상내봉- 상내봉 능선-장구목-어름터-주차장
산행시간:09시06분~17시 21분(8시간 15분) 12km
백산 선생님께서 산행에 참석하지 못하십니다.
다쳤든 다리가 많이 불편하신가 봅니다.
어쩔 수 없는 상황에 많이 미안해하시는데 오히려 제가 더 많이 죄송해집니다.
함께하는 지리산행 일요일 팀 두 번째 산행에 총 16명이 광점동 주차장에 모입니다.
광점동 산행 시에는 언제나 마을 맨 꼭대기까지 차를 올리는데, 이번에는 차가 많아 집결지를 주차장으로 정했습니다.
산행 준비를 끝내고 단체 사진을 찍습니다.
처음 뵙는 분들과 간단한 인사를 나누고 산행을 시작합니다.
산행은 산꾼들을 급속도로 친밀하게 느끼게 하는 무언가가 있는 것 같습니다.
처음은 약간 어색하고 서먹하게 느껴지지만, 산행의 거리가 더해질수록 걸음만큼 빠르게 공감이 형성되고 가까워집니다.
사진 우측으로부터 <해영님,산으로님,오캔디님,몽지리님,은의님,늘뫼달무리님,봄이님,황순진님,이순애님,소나타님,권영구님,최정남님,최미희님,이종철님,연하님>
주차장에서 마을을 벗어나 고개를 넘어가는 동안 그룹이 자연스레 형성됩니다.
그룹마다 매우 떠들썩합니다.
한 그룹의 웃음이 끝나기도 전, 다른 그룹에서 또다시 웃음소리가 이어집니다.
어름터로 가는 다리가 사라졌습니다.
흔적도 없이 사라진 다리가 있었든 그곳은 건너편 길과 마주한 이곳의 길을 눈으로 연결하지 않으면
원래 그랬던 것 같이 느껴질 정도로 깨끗이 사라져 버렸습니다.
계곡을 건넙니다.
조금 아래로 내려가 건너는 사람과 다리가 있었던 곳으로 건너가는 다양한 방식의 도하가 전개됩니다.
어떻게든 건너가면 되니까 각자 알아서들 합니다.
이 길을 걸어 본 게 그리 오래되지 않은 것 같은데, 많이 변해있습니다.
반듯하든 넓은 도로가 잡풀로 뒤덮이고 있습니다.
언제나 보이든 길가의 오래된 매달지 않은 큰 종도 사라졌고 계곡 쪽 정자도 없습니다.
길가엔 전기가 통한다는 경고문과 함께 이런 철망이 독가까지 설치되었습니다
정말 찌릿한 전기가 흐를 것 같은 느낌의 새시설이라 건들어 보고 싶은 충동이 많이 줄어듭니다.
그래도 나의 억제력은 호기심을 결코 이기지 못합니다.
독가에서 쉬었다 갑니다.
아무도 없습니다.
개들도 보이지 않습니다.
어쩌면 묵어가는 산길과 함께 이곳도 곧 사라질지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사라진다는 것은 그것이 무엇이든 안타깝고 아쉬운 일입니다.
특히 지리산에서의 추억은 더 그런 것 같습니다.
몇 번이나 더 오게 될지 모르지만,
내 기억의 한계치까지 이곳도 오래 남아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벌써 가까워진 분들이지만 처음 뵙는 분들이 많아 소개의 시간을 갖습니다.
오캔디님은 사천에서 오셨습니다.
지리99에는 산행기를 벌써 올리신 분이고, 지리 산행의 내공이 만만치 않은 분이십니다.
늘뫼달무리님은 논산에서 오셨습니다.
지난 산정무한 행사 때 큰 말통의 왕주를 들고 오셨든 분입니다.
작년 청소산행에서 처음 같이 산행을 했었습니다.
몽지리님도 작년 청소 산행에서 처음 뵙게 된 분이셨는데,
한의사라는 말에 갑자기 몇 분의 현장 진료가 생기기도 합니다.
소나타 누님과 해영 형님, 봄이님, 은의님은 토요일, 어제 칠선 대륙폭포골 산행을 하고 오늘 또 산행에 오셨습니다.
대단한 산꾼들입니다.
진주에서 오신 만년청년 산으로 님, 중경팀 막내부부 이종철 님과 최미희 님까지 소개와 인사로 서로를 알아갑니다.
아침을 먹은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꺼내놓은 빵들이 빵빵하게 많아 빵빵하게 배를 채우고 휴식을 끝냅니다.
원래의 계획은 사립재골을 올라 상내봉으로 가는 것이었습니다.
이 계획은 수정됩니다.
허공다리골과 사립재골 사이 지능선으로 올라 방장문으로, 방장문에서 상내봉으로 가기로 합니다.
이 길에 갑자기 확 쏠리게 된 것은 단연 처음 가 보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지능선으로 붙기 전 아담한 폭포에서 또 쉬어갑니다.
시간은 넉넉하고 거리도 부담스럽지 않으니 자주 쉬고 천천히 갈 수 있습니다.
자기 배낭의 무게를 먼저 줄이기 위해 과일이며 먹을거리가 자주 빠르게 나옵니다.
또 먹고, 마시고, 또 쉬고, 쉬엄쉬엄 가는 산길이 즐겁고 여유로워 좋습니다.
지능선으로 찾아가는 길이 초반 헛갈려 우왕좌왕하였으나 이내 초입을 잡고 안정적으로 오르기 시작합니다.
길이 너무 좋아 무심코 능선이 아닌 사면으로 한 번 갔다가 되돌아온 이후부터는
이탈하거나 벗어날 염려 없이 길은 매우 반듯하고 깔끔합니다.
오름길이라 숨이 차지만, 그리 급한 급경사가 아니기에 산길은 무난하고, 아름답습니다.
굽이 돌아가는 길
박노해
올곧게 뻗은 나무보다는
휘어 자란 소나무가 더 아름답습니다.
똑바로 흘러가는 물줄기보다는
휘청 굽이친 강줄기가 더 정답습니다.
일직선으로 뚫린 빠른 길보다는
산 따라 물 따라 가는 길이 더 아름답습니다.
곧은 길 끊어져 길이 없다고
주저앉지 마십시오.
돌아서지 마십시오.
삶은 가는 것입니다.
그래도 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살아있다는 건
아직도 가야할 길이 있다는 것.
곧은 길 만이 길이 아닙니다.
빛나는 길 만이 길이 아닙니다.
굽이 돌아가는
길이 멀고 쓰라릴 지라도
그래서 더 깊어지고 환해져 오는 길.
서둘지 말고 가는 것입니다.
서로가 길이 되어 가는 것입니다.
생을 두고 끝까지 가는 것입니다.
메멘토 모리(memento mori)
마치 영원히 살 것처럼 일상을 살지만 내일은 주워지지 않을 수도 있다는 걸 문득 깨닫게 될 때가 있습니다.
로마시대 원정에서 승리를 하고 개선하는 장군이 시가행진을 할 때 행렬 뒤에서 "메멘토 모리(memento mori)"를 외쳤다고 합니다.
라틴어로 '죽음을 기억하라'는 의미라고 합니다.
전쟁에서 이겼다고 너무 우쭐대지 말라. 오늘은 개선장군이지만 너도 언젠가는 죽는다. 그러니 겸손하라는 의미라 합니다.
또한, 중세의 수도승들이 만나면 나누는 인사가 "메멘토 모리"였다고 합니다.
영원히 살 수 없다는 사실을 알지만, 나는 매일 죽지 않고 살 것처럼 살아갑니다.
조금 더 가지겠다고, 한 번 더 이겨 보겠다고 기를 쓰면서 말입니다.
참을 수 없는 화가 일어나고, 감당하기 힘든 상황과 현실이 나를 괴롭힐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가끔 나는 이 말 메멘토 모리를 떠 올립니다.
태생부터 결코 나는 친절하거나 다정다감한 사람이 아닙니다.
오늘 만나는 이 사람이 어쩌면 내 생에 만나는 마지막 만남일 수도 있다는 생각으로 사람을 대하면,
나 같은 사람도 조금은 사람을 대하는 자세가 달라지기도 합니다.
여유가 생기면, 시간이 나면, 하고 미루고 피하는 일들도
어쩌면 내일이라는 것이 내게 오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면 더 이상 미루지 않게 됩니다.
산에 가는 일이 그러합니다.
한 번이라도 갈 수 있을 때 더 가야겠습니다.
좋은 인연들과 함께하는 산행이라면 더더욱 말입니다.
언제 점심을 먹을 것이냐는 말이 나오기 시작합니다.
못 들은 척 계속 갔다가는 여기 묻힐지도 모를 일입니다.
아직 산에 누워있어야 할 때는 아닌 것 같고, 조망도 별로 없는 이곳에 묻힐 일은 더더욱 아닌 것 같아
상내봉에서 점심 먹을 계획을 계획으로만 계획합니다.
방장문과 상내봉으로 가는 삼거리 구룡길에 닿고, 오른쪽 방장문으로 일부가 다녀오고 난 뒤, 좌측 상내봉 방향으로 갑니다.
집터에서 점심상을 차립니다.
대한민국 마운틴 셰프 1호의 카레라이스로 점심은 긴 시간 '온화하고 즐거우며 웃음이 넘친다'는 뜻의
화기애애 그것입니다.
상내봉에 올라섭니다.
조망이 펼쳐집니다.
높은 곳을 보려면 낮은 곳에서 보아야 하고
낮은 곳을 보려면 높은 곳에서 보아야 합니다.
서 있는 위치에 따라 보이는 풍경은 달라집니다.
높은 곳 만을 바라보며 사는 내 일상은 늘 불편하고 힘들고 피곤합니다.
산의 높은 곳에 올라 낮은 곳을 바라보는 일이야말로 그래서 내게 압도적 희열을 안겨 주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마운틴 오르가슴입니다.
이 세밀한 느낌은 경험할 수는 있지만 설명할 수는 없습니다.
위치를 바꾸어 가며 조망을 마음껏 즐깁니다 긴 시간.
솔봉 능선
산에 들면 삶에서 잔뜩 낀 백내장을 걷어내고 새로워진 눈으로 먼 곳과 낮은 곳의 내 모습까지도 선명히 볼 수 있어
나는 산에 오르는 일이 좋습니다.
상내봉에서 좋은 길을 따라 편안하게 하산길이 이루어집니다.
언제 걸어봐도 이 능선길은 아늑하고 폭신합니다.
이틀 연속 산행에도 피로감을 표 내지 않고 산행 내내 미소로 모두를 보들보들하게 만들어 주신 해영 형님과 봄이님.
언제나 맨 앞 선두에 계셔서 쫓아갈 수가 없을 정도로 걸음이 힘찬 산으로 님.
같이 하는 산행 횟수가 더해질수록 점점 정이 깊어 갑니다.
산행 분위기를 거의 주도하시는 몽지리님
언어는 사고가 바탕입니다.
사고 능력에 근력이 없으면 요실금처럼 말을 흘리게 됩니다.
일명 언실금입니다.
이 분은 사고 근력을 무력하게 만드는 능력이 있는지 나도 모르게 자꾸 말을 흘립니다.
탁월한 능력입니다. 덕분에 기분 좋게 많이 웃고, 많이 언실금을 했습니다.
오래전부터 알고 지내 온 사람처럼 서먹함이 없습니다.
지리99의 산꾼들과 박 산행도 많이 하신 오캔디님
캔디라는 닉네임이 참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명랑하고 활달하고 씩씩하고 밝은.
그리고 중경팀 우리 산대장 연하님
상내봉 능선을 타고 오다 이 지점에서 어름터 독가 방향으로 내려갑니다.
급경사의 초입만 잘 찾으면 경사의 가파름 만큼 짧고 간결하게 독가까지 단숨에 도착합니다.
16명의 대군사가 일렬로 쏟아져 내려갑니다.
독가에서 마지막 쉼을 합니다.
이 세 분은 같은 해에 태어났다는 이유로 같이 사진을 찍습니다.
이 분들은 같은 띠라는 이유로 같이 찍습니다.
이분들도 같은 띠동갑이랍니다.
아모르파티(Amor Fati)
사랑을 뜻하는 ‘아모르’와 운명을 뜻한 ‘파티’의 합성어로 운명을 사랑하라는 뜻이라 합니다.
태어나면서부터 주어진 내 환경은 내가 선택한 일이 아닙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그것을 외면할 수도, 버릴 수도 없습니다.
삶이 힘들더라도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받아들인다는 것은 자신에게 주어지는 고난과 어려움 등에 굴복하거나 체념하는 것이 아닙니다.
자신의 삶에서 일어나는 모든 어려움이나 고난까지도 수용하고, 극복하는 적극적인 삶의 태도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내게 주어진 운명에 최선을 다해 열심히, 정말 열심히 살아내는 요즘입니다.
열심히 살아낼 수 있어 감사한 일이기도 합니다.
저 모퉁이를 돌아 주차장에서 산행이 끝이 납니다.
길은 끝났지만, 그 길 끝은 항상 다음 길 여정의 시작입니다.
어려운 일이 닥쳐도, 아무리 세상이 엄혹하여도, 산을 오르듯 당당히 자신의 길을 걸어가는 지리99 산꾼들을
<함께 하는 지리 산행>에서 계속 만나 뵙기를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