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산행

2024.08.25 함께 하는 지리산행 3 (함양 독바위)

지리99 수야 2024. 8. 29. 21:26

함께 하는 지리산행3 (함양 독바위)

 

일시:2024년 8월 25일 일요일

 

산행 참석자: 임우식, 답지, 자향, 하모니, 최규다, 들풀, 

황산(노을), 황순진, 김은의, 손상식, 에스테야, 최정남, 성주숙, 수야

존칭생략(총 14명)

 

산행경로: 적조암 주차장-노장대터-환희대- 선열암-상대굴-선열암사거리-함양독바위-안락문-환희대-황새날등-노장대골-적조암

산행시간:08시 57분~14시 46분 (6시간 49분) 산행거리:6.5km

2024-08-25 함양독바위.gp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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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여름의 끝

              

 

그 여름 나무 백일홍은 무사하였습니다

한차례 폭풍에도 그다음 폭풍에도 쓰러지지 않아 

쏟아지는 우박처럼 붉은 꽃들을 매달았습니다

 

그 여름 나는 폭풍의 한가운데 있었습니다

그 여름 나의 절망은 장난처럼 붉은 꽃들을 매달았지만 

여러 차례 폭풍에도 쓰러지지 않았습니다

 

넘어지면 매달리고 타올라 불을 뿜는 나무 백일홍

억센 꽃들이 두어 평 좁은 마당을 피로 덮을 때

장난처럼 나의 절망은 끝났습니다

                                   - 이성복 -

 

1.

유난히 난폭한 올여름입니다.

이번 여름은 시작부터 예리한 칼날에 신체의 일부가 잘려 나간 듯 고통스럽고 난폭하게 찾아왔습니다.

추억을 만들어준 사람이 추억이 되었을 때, 우리는 가장 아프고, 고통스럽습니다.

시간이 모든 것을 무디게 하고, 조금씩 기억을 흐리게 합니다만, 문득문득 그 부위의 통증이 아직은 잦습니다.

봄이 님이 통화에서 그러더군요.

"돌아가신 언니가 아니라, 우리가 아직 언니를 못 보내드리고 있는 것 같아요."

어쩌면 아직은 그런가 봅니다.

지리산을 보면 더욱 그럴 것 같았습니다.

.

.

.

지리산으로 갑니다.

참으로 오랜만입니다.

<함께 하는 지리산행> 일요일 팀을 처음 꾸렸습니다.

어떤 분을 섭외하여 모실지 고민이 깊었습니다.

지리 99 대선배님들이 당연히 최우선 순위였고, 두 번째 고려 사항이 일요일 산행이 가능한 선배님을 찾았습니다.

부탁을 드리는 처지나, 부탁을 받고 사정상 거절할 수밖에 없는 처지에서도 부담스럽고 마음이 불편할 수 있기에

신중하고 조심스러웠습니다.

그야말로 지리 99의 산증인이고 역사인 임우식 선배님께 어려운 부탁을 드렸습니다.

흔쾌히 승낙해 주셨고, 응원해 주셨습니다.

조심스러웠든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습니다.

 

2.

일요일 오전 9시 적조암 주차장에서 어제 본 듯 모두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마지막으로 하모니 님이 도착하고 총 14명의 라인업이 꾸려집니다.

모두 이미 잘 알고 계시지만 오늘 산행을 이끌어 주실

임우식 선배님을 제가 소개했습니다. 

선배님으로부터 인사말과 코스 설명을 듣습니다.

지리산 역사 해설가를 능가하는 해박함과 능변으로 박수를 받습니다. 

통영에서 오신 하모니 님의 자기소개도 있었습니다.

건강보험 공단에서 오랫동안 근무하셨고 퇴임하신 지 5년이 되었다고 하십니다.

지리 99는 오래전부터 회원이시라 합니다.

중경팀과는 이미 정이 깊이 든 답지 님의 간단한 인사도 있었습니다.



3.
출발 전 단체 사진을 찍습니다.

전에는 중요 지점과 기억해야 할 곳마다 사진을 찍었는데 요즘은 사진 찍는 것도 자주 잊어버립니다.



짙어진 녹음이 한창인 여름 지리산은 바람 한 점 없이 산꾼들을 받아들입니다.

몇 발 움직이지 않았는데도 땀이 솟아납니다.

얼굴에 감겨오는 등산로의 거미줄이 참 걸리적거리고 성가십니다.



선두에서 옆 사람과 이야기에 집중하느라 후미를 생각하지 않고 속도를 조금 높였나 봅니다.

첫 휴식 지점으로 들어오는 모두가 물속에서 바로 나온 듯 땀으로 온통 젖었습니다.

선두에 대한 질책성 민원이 한여름 장대 소나기보다 세찹니다.





4.

산길은 산꾼의 발자국을 먹고 자랍니다.

길이 선명하다는 것은 그만큼 많은 사람이 지나다녔다는 증거입니다.

또한 산꾼들에게 인기 있는 길이라는 말이기도 합니다.

이 길이 그러합니다.

점점 잊혀 가는, 숨어버린 지리산 길들에 대한 안타까움을 잠시 이야기합니다.

돌배나무가 있는 마을 터를 지나고 환희대까지 비교적 뚜렷한 길을 선두에서 걷습니다.

속도가 초반과는 판이하게 느려지자, 자향님이 이 속도가 가장 이상적이라며 좋다고 합니다.



환희대에 올라섰습니다.

이미 여러 번 올라 본 곳입니다만 높은 곳에서의 조망은 언제나 좋습니다.

금대산과 삼정산이 저 멀리 시야에 들어오고, 앉아 쉬면서 유두류록 길에 대한 강의를 임우식 선생님에게서 듣습니다.





사진의 오른쪽 <하모니 님>



선열암 사거리에 배낭을 벗어 놓고 선열암 터를 다녀오기로 합니다.

선열암 터에서 강의는 더욱 진지한 수업이 됩니다.

지리 99 탐구 팀의 열정 넘치는 탐구열과 고생담도 소개가 됩니다.

선배님들의 열정이 빚어낸 길이기에 더욱 소중한 산길입니다.



선생님 덕분에 상대굴을 처음으로 보게 됩니다.

이 구역의 산길 여러 곳을 여러 번 걸었지만, 이곳은 처음입니다.

좁디좁은 돌구멍 아래로 넓고 긴 굴이 모습을 꼭꼭 숨기고 있었습니다.

약간은 과장된 면이 있지만 빨치산 시절 40여 명이 기거할 정도였다는 주민들의 증언도 있었다고 합니다.







독바위로 직등하는 황새날등의 마지막 오름길은 또 한차례 거친 숨을 몰아쉬게 합니다.

미풍조차 숨어버린 오르막 가파른 길은, 온몸의 물기를 탈수기로 탈수하듯 짜내는 땀을 요구합니다.

세상에는 역시 공짜가 없고, 그냥 주어지는 것이 없습니다. 

무엇인가를 얻으려면 그만큼의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등가교환의 법칙이 증명되는 순간입니다.





 

함양 독바위에 도착합니다.

점심을 먹습니다.

이 시간, 이 한 번의 밥은 삶 그 자체입니다.

이밥은 이 시간에 먹지 않으면 영원히 다시 돌아오지 않는 밥이 됩니다.

한 번 지나간 시간, 놓쳐버린 기회가 그렇듯 말입니다.

그래서 인생은 타이밍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때, 해야 할 때, 해야 합니다.

가야 할 때 가지 않으면, 가고자 할 때 갈 수 없다는 말도 있습니다.

내일로 미룰 수는 있지만 그 내일 나는 없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고백도, 반성도, 사과도, 밥도, 사랑도, 공부도, 타이밍을 놓치면 후회하게 됩니다.

배를 적당히 채우고 난 뒤

임우식 선배님이 지리 99의 태동 과정을 상세히 설명해 주십니다.

뒤이어 그동안 지리산행에서의 각자 무용담들이 시간 가는 줄 모르게 이어집니다.

중경팀의 점심은 언제나 이렇게 왁자지껄합니다.

선배님은 많은 인원이 함께하는 단체 산행이 오랜만이라 재미있고 즐겁다고 하십니다.



5.

지구의 어느 한 곳에 아주 작은 바늘 하나를 꽂아 둡니다. 

저 하늘 위 우주에서 밀알 하나를 떨어뜨립니다.

그 밀알이 나풀나풀 떨어져 꽂아둔 바늘에 정확히 꽂힐 확률이 얼마나 될까요?

수치로 계산될 수 없는 확률입니다.

이 지구에서, 그 많은 나라 중에, 하필이면 대한민국에서 그것도 지리산에서, 함께 모여 산행을 할 수 있는 확률.

그것을 나는 인연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세월은 우리를 에워싼 모든 것을 허물어뜨립니다.

삶의 유한성 앞에서 인간은 늘 무력합니다.

살아가는 일은 서서히 사라지는 일이기도 합니다.

내가 먼저 사라지느냐, 나를 둘러싼 사람과 관계가 먼저 사라지느냐 하는 차이만 있을 뿐입니다.

소중한 사람과의 이별은 그리움을 낳습니다.

그리움은 대개 시간의 물살에 깎여 차츰 둥그레지고 쪼그라들지만, 일부는 남아 가슴속을 제멋대로 돌아다닙니다.

외로움은 대상이 없지만, 그리움은 확실하고 분명한 대상으로 존재합니다.

언젠가 우리는 지금을 그리워할지 모릅니다.

그래서 더욱 소중한 인연입니다.

앞으로도 계속 이 지리산에서 소중한 인연을 맺어 보려 합니다.

작은 바늘에 밀알이 떨어져 꽂히는 계산되지 않는 확률의 소중한 인연을 기다리겠습니다.



독바위에 배낭을 둔 채 안락문으로 갑니다.







규다가 준비해 온 삼각대에 핸드폰을 걸고 단체 사진을 찍습니다.

안락문을 통과했으니, 산에서 내려가서도 모두의 삶이 저 환한 웃음처럼 한없이 안락해지기를 나는 기대합니다.



다시 독바위로 돌아와 하산합니다.
하산길은 환희대까지는 올라온 길과 같습니다.

환희대에서 능선을 따라 내려갑니다. 황새날등입니다.

나는 이 길을 걷는 것이 처음입니다.

이곳의 모든 능선 길은 거의 다 가보았지만, 이 길은 처음이라 좋습니다.



길이 좋습니다.

쏟아지는 급경사나 위험 구간 없이 하산길 걷기에 적당한 또렷한 길입니다.

두어 번 서서 쉬면서 끝까지 내려갈 수 있습니다.



빠르고 쉽게 적조암에 도착합니다.

적조암 도착 전 곶감 작업장이 있는 건물의 개 한 마리가 아침과 마찬가지로 열심히 짖어댑니다.

제 할 일을 충실히 하는 훌륭한 개 다운 개입니다.

우리도 우리 일을 합니다.

개가 짖어도 기차는 갑니다.

주차장 옆 계곡에서 땀을 씻어 냅니다.

함께 하는 지리산행 일요일 팀의 첫 산행이 끝납니다.



6.

산행기를 쓴다는 것이 쉽지 않은 요즘입니다.

먹고사는 일이 팍팍하다 보니, 시간적 제약이 많습니다.

무엇보다는 게으른 탓이기도 합니다만.

낮에 잠시 시간을 내어 틈틈이 쓰는 글이라 집중이 잘되지 않아 어려움이 많습니다.

서둘러 작성하는 글이라 다 하지 못하고 빠진 이야기가 많습니다.

<함께 하는 지리산행>의 분위기만 전하는 수준으로 이번 산행기는 마무리하겠습니다.

미흡하더라도 이해를 바랍니다.

 

하산 후 먼저 귀가하신 하모니 님 반가웠고, 참여해 주셔서 깊이, 정말 감사드립니다.

먼 거리 시간적 여유가 없어 저녁을 같이하지 못하고 서둘러 올라가신 

임우식 선배님과 자향 님께 죄송한 마음과 함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답지 님은 그나마 저녁이라도 함께할 수 있어서 고마웠습니다.

 

예전에는 지리산 곳곳에서 흔하게 볼 수 있었든 임우식 선생님의 표지기가 점점 보이지 않았습니다.

오래되고, 떨어지고, 제거되어 그렇겠지요.

그 표지기를 여기에 달아 봅니다.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