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12.04 지리산둘레길 (매동마을-금계마을)
지리산 둘레길 (매동마을-금계마을)
일시:2011년 12월 4일
독오당 28차 정기산행, 2011년 송년산행
산행자:티나님,다우님,에스테야님,귀소본능님,유키님,별하님,수야.(7명)
산행시간:08시 39분~13시 55분 (10.5km.)~지리롯지에서 일정 종료 16시 10분
쉬고,먹고,놀고 :3시간.
매동마을
고려 말과 조선 초, 중기에 걸쳐 네 개의 성씨(서, 김, 박, 오) 일가들이 들어와 일군 씨족 마을
마을 형국이 매화꽃을 닮은 명당이라서 매동이란 이름을 가짐.
마을회관을 지나고 동네 뒷산으로 올라선다.
포장된 매끈한 길이 얕은 동산 사이로 쌔끈하게 굴곡을 그리고 있다.
데이트 길로는 최고라고 한마디 하는 바람에 유키님은 데이트 전문가로 낙인된다.
2011년 12번째 굽이도는 마지막 고개에서 바라본
지리산 주능선의 백설(白雪)은 빠른 세월의 흐름을 느끼게 한다.
자연의 순리대로 시간은 일정하게 흘러간다.
빠르고 더디게 느끼는 것은 사람이다.
독오당 지리산學의 올해 마지막 장은 지리산 둘레길이다.
함께 걸었지만 다른 느낌이었고,
함께 같은 곳을 바라보았으나 다른 감성이었고,
함께 웃고, 함께 잔을 나누었다.
때론 함께, 때론 혼자였었다.
때론 외롭고, 아득한 긴 시간을 각자의
느낌과 감성으로 흩어지고 모이길 열두 번.
우린 함께 충실했었다.
햇빛 가득 눈이 부신 날도 있었고
비 내리고 흐린 날도 있었다.
어느 날엔 바람 속을 걷는 날도 있었고
내가 길을 걷는지 길이 달려오는지 모를 것 같은 날도 있었다.
무성했든 나뭇잎이 바람을 달고 빗물을 달고
그렇게 계절이 지나 빛이 바래고 낙엽이 되고
자꾸 비워 가는 빈 가지가 되고 세월은 속절없이
우리와 함께 지나갔다.
비 갠 뒤 하늘처럼 맑은 마음 하나로
우리는 함께 지리산에서 같이 헤맸다.
그리고.
우리는 이제 아무런 스스럼없이 서로에게 말한다.
"사랑합니다!"
느려지면 서둘러야 하는 이유가 생기고
주저앉고 싶어도 일어서서 함께 가야 하는 공동의 목표가 있었다.
지리산이다.
소소한 작은 주제 하나로도 많은 대화가 오갈 수 있어 좋았다.
언제나 우리를 챙겨주시는 티나 형수님을
당수님의 부재를 틈타 당수 자리에 냉큼 앉히는
대역죄의 역모를 대장님이 주도한다.
우리는 또한 이 거사에 못 이기는 척 적극적으로 동참했다.
춥지도 덥지도 않은 날씨.
독오당의 송년산행은 그야말로 나들이고 야유회다.
최근 너무 공짜로 날로 먹는 널널한 산행이 이어지니
찐하고, 빡빡한, 빡신 산행이 살며시 그리워지기도 한다.
하물며 고도1,000m 이상만을 등산으로 여기는 에스테야님은 오죽할까 싶다.
숲 속으로 간다.
지금 우리는
마음속 성찰의 시간을 가진다.
말이 필요치 않은 이유다.
곧게 뻗은 나무숲 사이로
그가 온다.
그는 배려를 아는 사람이다.
그의 배낭은 항상 만땅이다.
그 속에 것들 대부분은 자신이 쓰지 않는다.
그는 진정 사람 냄새나는 사내다.
언제나
한결같이
자신을 먼저 내세우는 경우가 없다.
나는 그가 좋다!
아니 우린 그가 좋다!
젊은 남성의 단단한 몸매처럼 근육질의 서어나무
다우 대장님의 설명이 무색하게 세월 앞에는 장사가 없는 모양이다.
오랜 세월의 흔적은 세상의 그 어떤 것도 피할 수가 없다.
언젠간 우리 또한 모두 늙어지고 변해갈 것이다.
순리이다.
주능선의 라인이 역광의 눈부심 속에 아스라이 잡힌다.
또다시 우린 저곳으로 파고들어 갈 것이고
헤매고 다닐 것이다.
그것이 안식이고, 휴식이고, 충전이라고
생각하고, 말하고, 실행하는, 사람들이며, 그러함으로
자기 존재에 대한 확인을 하는 사람들이므로.
상황마을:
파평윤씨 통정대부 윤천옥이 1592년 임진왜란 때 지리산으로 피난 가던 중
등구치를 넘어가려고 지나다가 지금의 마을 위치에
느티나무 숲으로 되어 있었던 마을 터를 닦아 정착 후 타성이 전입하여 함께 마을을 형성.
한잔의 막걸리를 나누어 마신다.
온갖 약초와 담근 술을 구경했고
붉어진 얼굴빛만큼 길은 재미있어진다.
처음으로 보는 묘지의 형태를 보고
각자의 추측과 억측이 난무한다.
아름다운길.
아름다운 사람들.
길을 찾아 헤매지도 않았고
비탈의 오름길에 숨 가쁨도 없다
밋밋하기도 하고 단조롭기도 하다
그러나 한 번쯤 걸어 볼 만한 여유의 길이다.
아기자기한 것들에 자꾸 눈이 가고 마음이 간다.
어깨가 많이 아픈 그는 오도사를 찾았다.
언젠가 TV에서 오도사를 본 기억이 있다.
그는 침을 맞았고 우리는 커피를 마시며 구경을 했다.
오도사님은 주거공간을 우리에게 기꺼이 공개해주셨다.
양의의 다우 대장님은 신기한 듯 구경했고
한의의 에스테야 형님은 주의 깊게 관찰했다.
나는 그가 진짜로 침을 맞고 좋아지면 어께 아픈 사람을
데리고 오려고 생각 했다.
티나님과 별하님은 말없이 조용히 지켜만 봤다.
유키님은 이 모든 상황을 기억하기 위해 눈동자를 굴렸다.
이개쉐이는
저들이 뭘 하든 관심도 없어 보였다.
개도 도사가 된 모양이다 개도사.
오도사님은 이개쉐이가 산중에 살다 보니
개가 개 같은 짖을 안 한다고 했다.
개가 개 같은 짖을 안 하면 어찌 되나??
손에도 발에도 인중에도 침을 맞았다.
센드빅형님은 벌한테 딱 한 빵 쏘이고 난 뒤에 살도 빠지고
인물도 훤해지고 기운도 펄펄 나는 모양이던데,
침을 세 방이나 맞은 귀소본능은 우찌 될란지.
유키님은 자기 배낭에서 뭘 잔뜩 꺼내놓고 왔다.
내한테 주면 차비라도 안 받을 건데 이것을 빌미로
집에 갈 때 차비를 내놓으라고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등구재:
거북 등을 닮았다 해서 이름 지어짐 전라북도의 상황마을과 경상남도의 창원마을 경계임
예전 창원마을 사람들이 인월까지 장을 보기 위해 넘었으며 또한 시집가고 장가가던 재 이다.
연못가를 지나간다.
청학연못을 연상했고
지난겨울 청학연못 위에서 마시든 커피 향을 기억해낸다.
길.
같은 길 위의
각자 다른 모습의 인생길.
우린 또
그렇게
걸어갈 것이다.
서로 다른 모습으로.
때론 같은 공감의 마음으로.
와불을 찾아보았다.
보인다.
상내봉이다.
끝까지....
주능선의 조망을 정면으로 하고
그 기운을 받으며
내려서는 길의 구비 마다
감탄을 남긴다.
창원마을:
조선시대 마천면 내의 각종 세로 거둔 물품을 보관한 창고가 있었다는
유래에서
"창말(창고 마을)"이었다가
이웃 원정마을과 합쳐져 현재 창원마을이 됨.
금계마을:
개명되기 전 마을 이름은 "노디목"이었다.
노디는 징검다리라는 이 지방 사투리로 칠선계곡이 있는
마을 사람들이 엄천강 징검다리를 건너는 물목 마을이라 부른 데서 유래.
지리산 롯지로 향한다.
티나님과의 사전에 연락이 닿아있던
마야고님이 동네 어귀로 뛰어 나오신다.
깔끔하게 꾸며진 곳에서 우린 너무도 편하게
쉼을 가진다.
꼭대님과 산유화님, 산구화님과 김정주님을 뵙는다.
금연을 점검받았고
술잔을 받았다.
술잔이 오갈수록 그 횟수만큼 담배 생각이 났다.
음식은 푸짐했고
대접은 융성했고
식사시간은 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