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산행

2022.06.22 선녀굴-상내봉(미타봉)

지리99 수야 2022. 7. 28. 14:23

선녀굴-상내봉(미타봉)

 

중경팀 22년 6월 정기산행

일시:2022년 6월 26일

산행자:연하, 권영구, 황순진, 이광용, 최옥희, 최미희, 김은의, 최정남, 성주숙, 수야(10명) 

걸어간 길:송대마을-선녀굴 골-선녀굴-구롱 길-상내봉-상내봉 능선-송대마을

산행시간:08시 10분~16시 02분(7시간51분) 6.7km

2022-06-26 선녀굴-미타봉.gpx
0.03MB



08시 10분 

송대 마을에서 시작하여 선녀굴 골을 따라 가장 짧은 코스로 선녀굴까지 올라갔다. 

선두에 서 보면 이맘때부터는 거미줄이 참으로 성가신 시기이다. 

스틱으로 앞 허공을 수도 없이 휘 젖어 보다 그냥 포기하고 걸었다. 

빠르지도 서두르지도 않은 걸음으로 두런두런 오르는 길은 계곡을 횡단하는 지점까지 쉬지 않았다. 

땀은 이미 벌써 온몸에서 흐르고 있었다.



08시 42분

계곡을 건너며 식수도 채우고 첫 휴식을 하였다.



계곡을 옆에 끼고 이어지는 산길은 경작터와 마을터 같은 돌담과 흔적들이 계속하여 보였다.



은병암 각자를 은의가 등로에서 약간 빗겨 난 곳에서 보고 말하였다. 

은병암은 중국의 주자학을 집대성 한 주자(1130~1200)가 무이구곡 다섯 번째 구비에 해당하는 은병암 밑에 정자를 세우고 제자를 가르쳤든 곳. 

이곳에 무슨 연유로 은병암이라는 이름이 새겨졌는지 알 수 없는 일이다.

 

강시영은 정조(1788년~미상) 때의 인물로 조선 후기 형조판서, 대사헌, 예조판서 등을 역임한 문신. 

1819년(순조 19) 정시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여 수찬을 지내고, 

1829년 진하사(進賀使)의 서장관으로 정사 이광문(李光文)과 부사 한기유(韓耆裕) 등과 함께 청나라에 다녀왔다. 

1838년(헌종 4) 부수찬을 거쳐 1843년 충청도 관찰사, 1846년 행호 군(行護軍), 1848년 한성부 판윤·형조판서, 

1854년(철종 5) 대사헌을 지냈으며, 1859년 예조판서가 되었다. 

1866년(고종 3) 조대비가 수렴 섭정(垂簾攝政)을 철회하고, 흥선대원군이 권력을 잡아 인사배치를 할 때 

남인으로 기용되어 홍문관제학을 거쳐 이조판서로 승진되었다. 글씨에도 뛰어났다. 시호는 문헌(文憲)이다. 

[출처: 한국민족문화 대백과사전(강시영(姜時永))]





계곡과 멀어진 산길이 마지막 경사를 이루며 제법 다리에 힘이 들어가고 난 뒤 선녀굴이 나타났다. 

여러 번 와 본 곳이라 이곳이 어떤 곳인지는 다들 잘 알고 있었다. 

사진을 찍으며 선녀굴을 둘러보고 있는 사이 박 짐을 맨 두 산꾼이 이곳으로 들어왔다. 

멀리서 보아도 안면이 있었다. 

도솔산인 님과 지난번 독오당 5월 영신대 사면길 산행 때 미산 님과 만났을 때 인사를 나눈 적이 있는 분이었다. 

오랜만의 만남이라 반가웠는데 아쉽게 술 한잔을 나누지 못했다. 

미타봉 굴에 숨겨둔 상(알루미늄 밥상)이 있으니 사용하라고 하여 덕분에 잘 사용하였다.








선녀굴을 나와 의논대로 올랐다.

의논대에서 바라본 솔봉 능선과 황새날등 건너편 법화산과 활인산











노장대 (함양독바위)





영구 형님과 광용 아우가 노장대를 가보지 않았다고 둘이서 다녀오기로 하고 고열암에 배낭을 두고 올라갔다. 

나머지 일행은 의논대에서 고열암으로 가 두 사람을 기다렸다.



고열암에서 노장대를 다녀온 두 사람과 다시 만나 구롱길을 걸어 상내봉으로 갔다.

상내봉 가는 길에 코끼리 형상의 바위.




미타봉 굴에 배낭을 두고 넓은 전망 바위로 나가 탁 트인 전망을 즐겼다.



광용 아우가 중경팀 여름 휴가비에 거액을 찬조했다.

폰으로 바로 입금하는 광용 아우.








미타봉 굴에서 점심을 먹었고 오래 머물렀다.

하산 방향은 상내봉 능선을 따라 편한 길로 내려갔다.








상내봉 능선 782봉을 넘어서며 우측 송대 마을로 90도 길을 꺾어 내렸다.

마지막 마을 입구의 개들이 어찌나 요란스럽게 짖어대고 날뛰는지 여자들이 겁을 먹기도 했다.

송대 마을에 도착한 시간은 16시 05분으로 산에서 머문 시간은 7시간 50분이었다.



씻을 곳이 마땅치 않아 빙빙 돌다 문상 마을 앞 와룡대 아래까지 가서 씻었다.

점심에 남은 음식이 많아 저녁은 돌아오는 길 빈 정자에서 먹었다.

거나하게 취해 돌아오는 차에서 내내 졸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