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산행

2022.03.27 지리산 자락길

지리99 수야 2022. 7. 22. 19:22

지리산 자락길1

일시: 2022년 3월 6일
산행자: 산나그네, 에스테야, 수야 (3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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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자락길은 마천면 지리산 자락의 마을과 마을을 잇는 원점회귀형 길로 총 거리 19.4km이며 2012년 개통되었다.
'자락'이란 논밭이나 산 따위의 넓은 부분을 뜻하는데 이를 연결한 지리산 자락길은
산길, 물길, 마을길, 고갯길을 넘어가면서 웅장한 지리산 주능선을 바라보며 걸을 수 있게 만들어졌다.
자락길은 지난번 독오당 시산제 때 창암산을 오르며 봐 두었던 곳으로 산방 기간 동안 걸어야겠다고 생각했었든 곳이다.
모처럼 시간이 된다며 같이 산행을 하자고 연락이 온 산나그네 선생님께 이 코스가 어떻겠냐고 하였더니 어디든 좋다고 하셨다.
산나그네 선생님, 에스테야 형과 셋이서 금계마을 지리산 둘레길 함양센터에서 출발했다.

출발 전 준비를 하며 이런저런 대화를 하고 있는데, 한 분이 슬며시 다가와 말을 거는데 어쩐지 안면이 있다 싶었다.
지난번 남북 종주 마지막 산행 때 산내에서 영원사까지 택시를 이용한 적이 있는데 그때의 기사님이다.
얼마 전까지 국립공원공단에서 근무를 했다는 기사님은 지리구구의 많은 분들을 잘 알고 있었다.
기사님이 사진을 찍어주었다.




지리산 제1교를 건너가며 법화산 불상 조성지를 바라보니 봄 햇살이 따사롭게 내려 평화롭게 느껴졌다.
다리를 건너면서부터는 창암산 자락으로 접어들게 된다.



길을 돌아서서 보면 법화산 좌측으로 금대산의 금대암이 선명하게 보였다.
자락길은 금대산, 삼정산, 오공산, 창암산의 자락을 두루 돌아 연결되어 있는 길이니 나중에는 저쪽에서 이쪽을 바라보게 되어 있었다.




다리를 건너자 자락길을 안내하는 화살표는 90도로 꺾어 포장도로를 따라 오르게 되어있었다.
자락길이라 만만히 생각했는데 오르막이 여느 산길 못지않게 장딴지를 당기게 할 만큼 힘이 들어가는 길이었다.



포장도로가 끝나고 산길이 시작되자 팍팍하던 오르막은 한결 편안한 길처럼 느껴졌다.
한적한 산길로 접어들면서 숨쉬기가 조금 편안해지고 몸이 풀리기 시작했다.



오솔길은 그야말로 휘파람이 저절로 나올 만큼 뒷짐 지고 걷는 산책길 같이 편안했다.
소나무 숲길을 걷는 상쾌함은 자꾸 숨을 깊이 들이마시게 했다.



주능선이 바라보이는 고갯마루에 올라서자 선생님이 사진을 찍자고 하셨다.
선생님과의 첫 만남이 2009년으로 기억된다. 벌써 13년이 되었다.
제도가 만든 물리적 공간인 학교가 아닌 사회생활에서 만나 선생님으로 따르고자 한 나의 첫 선생님이 산나그네 선생님이다.
지금은 중경팀에 금농 선생님과 백산 선생님이 나에게는 선생님으로 자리해 계신다.
모두가 지리산이 맺어준 인연임에는 두 말할 필요가 없다.
산나그네 선생님은 당신의 어떤 글에 그렇게 쓰셨더라.
'제도적으로 배우고 가르쳤다고 스승이 되는 것은 아니다. 사제의 정은 각자의 자유로운 선택에 따라 자연스럽게 익어가는 것이 아닐까 싶다.'라고
깊은 내면의 성찰과 이상향을 향한 인간의 원초적 그리움, 그리고 풍경을 바라보는 깊은 사유의 선생님 글은 언제나 감동스럽다.
그런 문학적 방면과는 별개로 그동안 수많은 산행을 같이 하면서 특히 선생님과의 산행이 즐거웠고, 선생님을 배우고 싶은 이유는
많은 나이 차이와 사회적 지위에도 불구하고 근엄하거나, 권위를 전혀 내세우지 않는 선생님의 성정(性情) 때문이었다.
격이 없는 농담과 어울림으로 언제나 선생님은 당신의 곁을 내어 주셨다.
친구가 될 수 없는 자 스승이 될 수 없고, 스승이 될 수 없는 자 친구가 될 수 없다고 어느 유명한 분이 그랬다지 않든가.



유별난 모습으로 도드라지게 눈에 들어오는 부자암과 지리산 주능선이 장엄하게 펼쳐진 곳에서 한참을 바라보았다.
언제나 어디서나 바라보아도 저곳은 항상 가슴을 두근거리게 하는 그 무엇이 있다.
끌어내어 글로 쓰이지 않는 그 무엇, 그 무엇을 형용할 말과 글을 찾아 내려 나는 항상 애를 쓰보지만
아직도 나는 표현해 내질 못하겠다.



엉겅퀴 형님의 집 청파정이 있는 강청마을을 지나고 고갯마루에서 내리막으로 내려서자 금빛 대문에 '신창 표 씨 지산제'가 왼쪽에 있었다.
이곳을 지나면 백무동으로 향하는 도로를 만난다.
백무동으로 들어갈 때마다 오른쪽 계곡 절벽 위에 제비집처럼 놓인 저곳이 무슨 절인 지가 늘 궁금했는데 그곳이 고불사란다.
차에서 바라보며 저곳으로 가는 길이 어디에 있을까 생각하며 지나치기만 했는데 그곳으로 가는 길이 이 길이었다.
나는 경험하고 내 몸으로 체험되는 것으로 이치를 그나마 깨닫는, 말 그대로 무식한 분류에 속하는 사람인지라
저곳에 가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면 거의 한 번은 꼭 가 보는 편이다.
고불사라는 곳도 그런 곳 중 하나였다.



고불사 표지가 있는 도로에 차 한 두대를 세울 공간이 있고, 그 아래로 돌계단을 따라 내려서면 이런 출렁다리가 나타났다.



출렁다리를 지나 고불사로 오르는 돌계단은 가팔랐다.
예전 이부근에 기도하는 사람들이 찾아들었다는 굴바위 기도터가 있었다는 글을 언뜻 본 것도 같은데
그곳이 이곳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언뜻 들었다. 확실하지는 않다.


가을에 단풍이 들면 이쯤에서 서서 계곡을 내려다보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진공모유(眞空妙有)라는 현판을 가지고 우리끼리 한참을 말하였으나 알지 못했고, 그곳에 있는 젊은 사람에게 무슨 글자이며
무슨 뜻이냐 물어보았으나 모른다고 했다.
삼각형 암석 아래 석간수가 나오는 곳이 있었다.
산신이 바위 아래 노출되어 있었고, 여신 같은 조각상과 동자상이 있었다.
약간은 정리되지 않은 어수선해 보이는 곳이었다.
이곳저곳을 구경하고 우측으로 좁게 난 산길을 따라 고불사를 지나갔다.







고불사에서 사면을 따라 조금 나오면 내리막으로 강청천에 거의 붙다시피 하며 길이 이어졌다.
강청천 건너로 농원 펜션과 휴양림 민박이 마주 보였다.
도촌마을 도착하기 직전 좌측으로 교회건물이 올려다 보였다 오공 능선으로 오를 때 저곳으로 갔었다.

그러니 고불사는 오공산 자락에 위치하고 있는 것이다.
점심을 먹을 시간이 지나가고 있었다.
선생님의 제안으로 송알 삼거리 슈퍼에서 딱 두 병만 샀다.
지리산 관리공단 함양분소가 있는 바로 아래 창암산이 마주 보이는 곳 실덕천으로 내려갔다.



바람이 불어오지 않는 아늑한 천변에 자리를 펴고 주능이 바라다 보이는 곳에서 점심을 먹었다.
멀리 보이는 천왕봉과 주변에는 아직도 눈이 남아 있었다.
통화를 한참 하신 산나그네 선생님이 시대의 에세이트상 수상자로 선정되신 소식을 알려주셨다.
축하의 잔은 계곡의 물처럼 차고 넘쳐서 자꾸만 연거푸 부딪치게 하였지만 달달했다.
오랜만에 티나 형수님과도 통화를 했다.
느긋한 마음에 점심은 길었고 이야기는 한없이 이어졌다.



더 이상 자락길을 따라가는 것을 그만두었다.
딱 반을 남겨두었다. 천천히 걸어서 금계까지 가기로 했다.
도로를 따라 걸어가는 길은 그리 멀지 않았다.



방장제일문을 지나 마천에서 호떡을 사 먹었고, 커피도 마셨다.
마천에서 복권도 한 장씩을 사서 나눠 가졌다. 복권은 당첨되지 않았다.
모든 경비는 선생님이 내셨다.

그래도 잠시 동안 당첨이 될 경우를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즐겁고 행복했다.
모든 대화의 상한선은 공감이다.
지리 산꾼들이 가장 쉽고 빠르게 대화의 상한선에 도달하는 것은 역시 지리산이다.
1년 만에 산나그네 선생님과의 동행을 한 이날도 우리는(?) 그 상한선에 깊이 도달했었다.






지리산 자락길2

3월27일
권영구,황순진,최정남,성주숙,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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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겨둔 자락길 반이 영 찜찜했다.
혼자서라도 이곳으로 가야겠다는 내 말에 동행이 생겼다.
나를 포함 다섯 명으로 라인업이 짜였다. 다시 둘레길 함양센터에서 출발을 하려고 할 때 또 그 기사분을 만났다.
세 번을 연달아 만나니 이것도 인연이지 싶었다.
그래서 혹시 마천 방면에서 택시를 이용할 경우 이용해 보시라 번호를 남긴다.
<봉호 콜택시 경남29바 1032, 윤봉호 010-4616-8338)



지난번과는 반대방향으로 길을 잡았다.
자락길 화살표 표시 방향을 따라 하산장을 향해 걸었다.

출발점에서 지리산 둘레길과 잠시 만나고 방향은 마천 쪽으로 90도 꺾였다.



이쪽은 금대산 자락이다.
이제는 완연한 봄기운에 옷차림도 한결 가벼워졌다.
반대편으로 지난번 걸었든 길이 구불구불하게 속속들이 드러나 보였다.
길은 그 길을 걷는 동안 그 길 만 보인다. 멀리서 바라보면 그 길 전체가 이렇게 보이기도 하는 것이었다.
내게는 늘 여유가 없었다.
살아가는 일도 그랬고, 산에서도 그랬었다.
그러니 보이는 것은 당면한 당장의 눈앞에 일이 모든 것일 수밖에 없었다.
간혹은 한 발짝 떨어져 멀리서 바라보면 보이지 않았든 것이 보이기도 하는 것이었다.
나는 그것이 여유라는 것을 길을 걸어면서 알게 되었다.
그것이 꼭 필요한 이유도 길 위에서 깨달았다.



방장제일문 위를 지나갔다.
내려가서 제일문 글씨를 보고 가자고 하였으나 쓸데없는 곳에서 걸음이 빠른 사람들은 벌써 저 멀리 있었다.
다시 돌아올 리 만무한 저들을 따라 나도 그냥 지나갔다.
출발한 곳에서 1km 밖에 되지 않은 위치였다.



약간의 오르막이 있었으나 숨도 차지 않았다.
산길은 부드럽고 말랑하여 동네 뒷산을 오르듯 정감이 갔다.
저 위 금대산이 그리 높아 보이지도 않았다.



내리막길로 접어들자 마천이 내려다 보였다.
2km 정도를 걸었을 것이다.



지도에는 도룡골로 표시되어 있는데 안내판에는 토룡골로 적혀있는 이곳에서 민간인 희생사건이 있었다는 추정지를 안내하고 있었다.
이곳을 내려서면 도로와 바로 만나게 되고 창암교가 있는 임천으로 길이 이어지게 되어 있었다.
<골로 간다>는 말이 이 시기 이런 학살사건으로 생겼다고 하니, 이런 비극의 현장이 지리산 곳곳에 얼마나 많았을까.




임천 변을 따라 이어진 길을 걸었다. 게이트볼장 옆 정자에 올라가 배낭을 내리고 간식을 먹으며 잠시 쉬었다.
마천 전통시장을 지나 가흥교를 건너갔다.
가흥교를 건너 우측 다리목 여관 앞에서 잠시 길을 찾아보니 여관 마당을 가로질러가게 되어 있었다.
요즘은 자락길을 걷는 사람이 없는지 이 길을 가는 사람을 오랜만에 본다며 아주머니가 이쪽으로 가라고 친절히 알려주었다.



람천을 사이에 두고 산내로 가는 저쪽 건너편을 차로 지나다닐 때는 그냥 지나치기만 했으니 저 위로 마을이 있다는 것조차 생소한 느낌이었다.



도마마을을 향해 올라갔다.
길가에 달래와 냉이가 자꾸 눈에 들어왔다. 급기야 스틱으로 한 두 뿌리를 캐다 보니 이상하게 이게 재미가 붙었다.
잠시 동안 걸음을 멈추고 캔 것이 한 봉지 가까이 되었다.



자락길을 처음 조성할 때와는 달리 길은 중간중간에서 원래의 길을 돌려 새로 낸 경우가 종종 있었다.
무슨 체험장 같은 곳은 이름뿐이고 그곳으로 지나가는 길조차 돌아가게 만든 곳이 있었다.
도마마을에서 고개를 넘어 올라서자 다시 내리막이 나타나고 길은 오르고 내리며 마을과 마을길로 연결되었다.



길 앞쪽으로 지리산 주능선이 계속하여 위치하며 길은 지루할 틈도 없이 재미있게 이어졌다.



함양 독바위 모습도 왼쪽으로 선명히 보였다.



언덕 위 한그루 소나무가 외롭다기보다는 당당해 보이는 까닭은 홀로 서 있기 때문일까?. 나만 그리 보이는 것일까?





내마 마을 청풍대 저곳에서 점심을 먹었다.
'끼니는 시간과 같았다. 굶더라도, 다가오는 끼니는 피할 수 없었다. 끼니는 파도처럼 정확하고 쉴 새 없이 밀어닥쳤다.
끼니를 건너뛰어 앞당길 수도 없었고 옆으로 밀처낼 수도 없었다. 끼니는 새로운 시간의 밀물로 달려드는 것이어서
사람이 거기에 개입할 수 없었다. 끼니는 칼로 베어지지 않았고 총포로 조준되지 않았다. <김훈, 칼의 노래>
그 시절 이순신 장군이 직면했던 끼니는 절실했다.
오늘 지금 우리가 직면한 끼니와는 다르겠지만 그래도 먹는 일은 언제나 중요했다.
눈물은 아래로 떨어져도 밥숟갈은 위로 올라가야 한다고, 그것이 삶이라고, 어느 책에 그렇게 쓰여있었든 것을 나는 읽었다.
천천히 오래 끼니를 채웠다. 밥숟갈뿐 아니라 술잔도 자꾸 위로 올라갔다.







꽃은 겨울을 인내하여 피는 게 아니란다.
봄을 기다려 꽃을 피우는 것이란다.
인내는 고통을 감수하고 참는 것, 꽃은 인내가 아니라 기다림으로 피어나는 것이란다.
이런 설명을 친절하게 해 주며
어디서 주워들은 하이쿠 한편이 생각난 것을 읊어 주었다.
아무도 아무 반응도 없었다. 다만, 나 혼자 도취되어 한없는 자뻑의 나래를 펴고 있었다.

삼월 지금은
넘어저 뒹굴어도
꽃 속 이라네.






마천 마애여래입상을 찾아갔다. 마애여래입상 바로 옆에 작은 절이 있는데 고담사이다.
스님은 출타 중인지 아무도 없었다.





마애여래입상은 저곳 지리산 천왕봉을 향해 있었다.




어떤 음식이 먹고 싶다는 마음이 그 음식 앞으로 나를 데려다 놓을 것이고, 어딘가 가고 싶다는 마음이 나를 그곳으로 보낼 것이다.
어떤 대상을 그리워하고 보고 싶어 하는 마음은 결국 그 사람과의 만남을 부를 것이다.
그러니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것들이 많다는 것은, 앞으로 이루질 일들이 많다는 사실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일 게다.
그것이 걷는 이유이고, 살아가는 이유이다. 나는 그것의 다른 말이 희망이라고 알고 있다.
이 봄이 그 희망을 품게 한다.
다시 봄이다. 걷자.



고불사에서 임도를 따라 오르고 모퉁이를 돌아서면



창암산과 오공산이 한눈에 들어오는 내리막길이 펼쳐졌다.
이곳에서는 창암산 자락의 청파정도 보이고 지난번 걸었든 자락길도 마주 보였다.




오공 능선



송알 삼거리에서 걸음을 멈추기에는 시간이 많이 남았고 기운도 쌩쌩하여 고불사까지만 더 가 보기로 했다.
지난번 내려온 길을 역으로 올라가서 고불사를 둘러보고 출렁다리를 건너왔다.
송알 삼거리로 봉호 택시를 불렀다.
하루 만에도 충분히 다 걸을 수 있는 거리이지만 두 번에 나누어 걷기에도 별 부담 없는 자락길은 산방이나,
무난히 걷고 싶은 날 한 번쯤 나서 볼 만한 코스임에 틀림이 없다.
마치 달콤 쌉쌀한 커피를 마시는 듯한 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