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산행

2022.02.27 주산(主山) 중경팀 시산제

지리99 수야 2022. 3. 16. 00:40

주산(主山)

 

중경팀 시산제

일시:2022년 2월 27일

산행자:연하, 황순진, 나비부인, 구야, 산친구 , 최정남, 성주숙, 수야 (8명)

걸어간길:반천2교 -산불 감시초소- 우량기- 주산 -반천2교

산행시간:08시 14분~15시 44분 (7시간 30분) 5.42km

 

덕산의 식당에서 아침을 먹을 때만 하더라도 대장의 의지는 전혀 흔들림이 없어 보였다.

산행 코스를 변경하는 것이 어떻겠냐는 물음에 눈곱만큼도 그럴 생각이 없다는 듯 단호했었다.

다른 가능성들이 차단될 때 단호함은 더욱 견고해진다.

대놓고 표현은 하지 못했지만 은근히 대장이 코스를 바꾸어 주었으면 기대했든 이들은 어쩔 수 없이 마음들을 다시 다잡아 먹고 차에 올랐다.

중산리를 향해 앞서 가든 차에서 전화가 왔다, 코스를 변경한단다.

조금 전까지만 하더라도 씨알도 안 먹히더니 대장이 갑작스레 마음을 바꾼 것은 아마도 은의님의 말랑말랑한 설득에 대장이 넘어갔을 확률이 높았다.

사실 코스 변경을 요청한 이유는 무엇보다 연하 대장 때문이었다.

아침에 만났을 때 대장의 몰골은 어디서 노숙을 하고 왔는지 며칠 만에 겨우 일어난 사람처럼 보였다.

몸살인지, 코로나인지 몸 상태가 극히 불량하여 그야말로 환자였다. 

맥을 못 추는 상태에서도 대장은 책임감으로 무리인 줄 알면서도 산행에 나섰고, 공지 내용대로 실행을 하려고 하였다.

그것을 간파한 착하기 한량없는 여성 산꾼들은 대장의 마음을 미리 헤아려 짧은 코스로 변경하자고 했었다.

그것이 꼭 대장만을 생각해서 그랬다고 하기에는 쪼금 거시기 하긴 하지만, 하여튼.

대장의 코스 변경은 현명하였으나, 잠시 동안이지만 많이 망설이고 고민했으리라.

그 고민의 시간이 그리 길지 않은 빠른 결단이어서 다행이었고, 주산으로 코스가 변경되었다.

반천 2교에 차를 세웠다.

차 두 대가 알맞게 주차할 수 있을 만큼의 적당한 공간이 있었다.

그런 날이 있다. 모든 것이 짜 맞춘 듯 아귀가 딱딱 들어맞는 날.

 

 

작년 봄 꽃들이 만발했을 때 주산을 올랐었다.

그때 저 능선으로 올라서는 들머리가 트랙에는 분명한 길이지만 가시넝쿨과 잡목으로 쉽지 않은 길이었음을 익히 경험했었다.

해서, 이번에는 반천 2교에서 시작해 과수원 임도를 따라 오르다 능선의 옆구리로 치고 오르기로 했다.

 

제법 경사가 있었으나 그리 힘을 들이지 않고 산불 감시 초소까지 단숨에 올라섰다.

오름 기준으로 보자면 우리는 초소의 우측에서 올라왔는데, 초소의 좌측으로 올라올 수 있는 아주 좋은 길이 빤히 내려다 보였다.

산불 감시 초소에 근무하시는 분도 아마 저곳으로 올라오는 듯하였다.

그러니까 우리가 올라오는 방향에서는 사람의 발길이 끊겨 길이 그토록 묵어있었든 것이다.

반천 1교나 반천 2교에서 들머리를 찾는 것보다는 정각사나 삼성 산청 연구소 방향에서 올라오는 것이 이곳 능선에 접근하기가 용이했다.

 

 

천왕봉, 제석봉, 연하봉, 촛대봉, 영신봉 지리산 주능선 연봉들이 초소의 정면에 배치되어 자동으로 걸음을 멈추게 만들었다.

 

건너편의 산줄기는 진행 중인 낙남정맥 길로 입체적인 3D 화면처럼 걸어가야 할 곳을 오롯이 드러내고 있었다.

 

연하 대장은 오름길에서 힘들어했다.

더운 김이 뿜어져 나오는 것이 눈에 보일 듯 콧바람을 내쉬며 맨 후미에서 천천히 올라왔다.

몸 상태가 산행이 무리일 만큼 힘들어 보였지만 괜찮다고 염려하는 이들을 자꾸 안심시켰다.

누나들이 억지로 먹을 것을 들이밀다 시피하여 먹였다.

그것은, 나는 대장이 컨디션이 별로 안 좋아 보인다로 만 본 것이고,

사려 깊고 배려심 깊은 누나들은 아픈 상태에서도 책임을 다하려는 대장의 마음까지 보았든 것이다.

나의 '본다'와 그녀들의 '보인다'는 극명한 차이를 보여주고 있었다.

역시, 누나들을 누나라고 부를 만했다.

 

내리쬐는 햇볕은 생명의 기운을 품은 따스함으로 포근했다. 그 햇볕은 옷을 저절로 벗게 만들었다.

 

임도길이 나타나고 지난해 봄 화사한 꽃 무더기로 탄성을 자아내게 했든 곳을 지나갔다.

임도길이 산굽이를 따라 크게 꺾어지는 곳에 우량계가 있었고, 그곳에서 부터는 임도를 버리고 우측 능선으로 올랐다.

임도에서 능선으로 오르는 곳에는 짧은 로프 구간이 있는 데 각각 한 명씩 온갖 포즈로 사진을 찍었다.

 

능선에 올라서서 동쪽으로 시선을 돌리자 아스라한 밤머리재와 웅석봉이 한눈에 들어왔다.

 

주산으로 올라서는 마지막 경사는 낙엽도 깊이 쌓여 있었지만 바짝 곧추세운 비탈이 제법 힘을 쏟게 했다.

그나마 그런 곳이라도 있어 그래도 산을 오른다는 느낌을 가지게 했다.

그만큼 이 산으로 오르는 것은 어렵지 않다는 말이다.

주산에 올라서자 바로 시산제 준비를 했다.

 

천왕봉을 향해 삼배하였다.

일 년 내내 절대 다치는 사람 없는 안전산행을 기원하였다.

순서대로 시산제를 진행하였고, 상향하고 소지하는 것으로 시산제를 마쳤다.

중경팀 시산제 중 가장 적은 인원이었고, 가장 단출하였지만 성의와 정성은 다른 해와 다르지 않았다.

죽은 사람의 혼백을 위로하는 굿도, 망자의 극락왕생을 빈다는 불공도, 명당을 골라 묘를 쓴다는

풍수설도 다 살아있는 사람들이 자기들 마음 편하자고 하는 것이 아니든가.

이 모든 것이 자기본위의 위안 행위이니 

시산제 또한 정성만 가득하다면 지리산 산신령 님께서도 충분히 어여삐 여겨 주시리라.

 

저 강릉 아지매는 대장이 내놓은 것이 분명한데, 뜻깊은 가상하기 짝이 없는 큰 정성일까.

아니면 컨디션 난조로 인해 눈이 침침해 헛갈렸지만 차마 도로 집어넣을 수 없었든 것일까?.

봉투도 몇 개 있는 걸 보면 참석하지 못한 누군가의 찬조 협찬 후원 뭐 그런 것도 있는 게 분명하다.

정성들이 기특하고 갸륵한 훌륭한 중경팀이다.

 

바람 한 점 없었고, 볕이 잘 들었다.

따뜻하여 오래 놀 만 하였다.

종류별로 하나씩 차례로 병이 비워졌다.

연하 대장은 시산제 이후 시간이 지날수록 빠르게 호전되었지만, 잔을 자꾸 채운 나는 대장과 반대로 얼굴에 열이 점점 올라오고 세상이 흔들렸다.

 

희한하게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깊은 낮잠을 자는 사람들도 있었다. 

"어머님! 아버님! 여기서 이러시면 안 됩니다."

 

선현들의 가르침에 따르면 '나는 무엇을 아는가?'라는 질문에 최고의 대답은 '나는 내가 모르는 것을 안다.'이다.

이 만큼 나이를 먹고 돌이켜 보니 '나는 내가 모르는 것을 조금은 안다' 정도는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싶었는데, 엄감생심 턱도 없는 말이지 싶다.

아직도 나는 내가 모르는 것조차 모르는 것이 분명하다. 산도 인생도 말이다.

그래서 저 산을 계속 가야 할 터이고. 인생도 좀 더 살아보아야 철이들 모양이다.

이딴 생각을 하며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르는 술기운이 가득한 눈이지만 지리산을 깊이 오래 들여다보았다.

침묵의 산을 들여다 보면서 그 안쪽의 풍경을 드러내기에는 나의 언어는 허약했다.

말하여지지 않는 것에 비하여 말하여지는 것은 얼마나 작은가.

 

지리산 왕자봉이라 정상석에 적혀 있네.

그럼 공주봉도 있는 것인가?

주산에서의 시산제를 올리고 보낸 시간은 봄 소풍 같았고 빠르게 흘렀다.

그 시간은 댐의 만수위처럼 만족이 목구멍 끝까지 차올랐다.

 

올라갈 때 길이 내려올 땐 내리막길이 되었다.

오르고 내리는 것이 다른 길이 아니다. 

지나가는 것과 다가오는 것이 다르지 않다.

길은 그 길을 걷는 자만이 주인이라 하였으니, 지금 내가 몸으로 밀고 나가는 당면한 지금의 길만이 내 길일뿐이다.

 

하산길은 올라갈 때 보다 더 빨랐다.

오르고 내린 시간보다 산에 머문 시간이 길었다.
저 아래 아침에 세워 둔 차가 보였다.

대장은 상태가 많이 좋아졌는지 하산의 걸음이 빨랐다.

 

코로나로 견뎌야 하는 날들은 막막했다.

날마다 그 막막한 날들을 건너갈 수 있을 것인지를 생각했는데 막막하기는 마찬가지였다.

해가 뜨면 아침이 되고, 해가 지면 저녁이 되듯이 언제나 시간은 서두르지 않았고, 머뭇거리지도 않았다.

그래도

어제까지의 추위는 온 적이 없다는 듯이 물러나고 봄은 지심(地心)에서 온다고 하더니

흙냄새가 향기롭게 올라오는 것으로 보아 겨우, 그러나 기어이 봄은 오는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