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5.09 남북종주 6차 (세석-칠선봉)
영신봉-칠선봉
행동팀125- 지리98차 정기산행
일시:2021년 05월 09일 (일요일)
산행자:권영구,황순진,이종철,이광용,최정남,최옥희,최미희,성주숙,수야 (9명)
걸어간 길:백무동-한신계곡-세석대피소-영신봉-샛골능선(작은 곧은재골)-백무동
산행시간:07시 28분~17시 47분 (10시간 20분) 14km
행복, 그것은 각자의 이유, 각자의 의미부여
우리가 탐하고 갈망하는 것들 가운데 어떤 것도 객관적으로 의미 있는 건 아니다.
돈, 지식, 권력, 명예, 다른 모든 것들도 내가 의미를 부여해야 비로소 의미를 가지게 되는 것이라고 유시민 작가가 그러더라.
무엇에 의미를 부여하고 어떤 것에 만족을 느끼는가 하는 것은 각자 개개인마다 다르다.
내가 좋아하는 산꾼인 어떤 분은 지리산에 왜 가는가?
'행복하니까!'라는 짧고 간결한 자신의 이유로 지리산행의 의미를 말씀하시곤 한다.
잠도 제대로 못 자고 숨차고, 땀이 줄줄 흐르는 힘든 길을 하루 종일 걸어야 한다.
그런데도 그것이 행복하다고 한다.
형님은 행복의 의미를 힘든 산행에 부여하였기 때문이다.
내려 올 산을 힘들게 왜 그렇게 올라가냐고 묻는 사람들이 있다.
왜 지리산만 그렇게 가느냐고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묻는 사람도 있다.
삶은 각자의 이유이고 행복도 각자의 의미이다.
나는 산에 들고, 산에 있는 시간이 행복하다.
생각해 보면 그 시간만큼 많이 웃고 즐거워하고 떠들며 지내는 날은 없다.
나도 그 형님처럼 지리산에 가는 것이 행복하다.
세석까지 6.5km의 긴 산길을 아홉 명이 일곱 시 반이 되면서 걷기 시작했다.
나는 지난주에도 이 길을 걸었다.
산길은 같은 길이지만 동행하는 사람은 달랐다.
날씨도 지난주와는 달랐다.
지난주와는 많은 것이 또 다른 느낌이었다.
사람들이 없는 산길은 한적했다.
맑은 공기에 기분이 상쾌했다.
기분 탓인지 물소리, 산새 소리도 유난히 크게 들리는 것 같았다.
2km마다 한 번씩 쉬자고 했다.
세 번 쉬고 세석대피소까지 가자고 했다.
걸으면서 자연스럽게 대열은 앞과 뒤가 나눠졌다.
젊은것들은 어느 사이 전망대로 건너가 이쪽을 향해 손을 흔들고 있었다.
다리를 건넜다.
살아가는 모든 날들이 흔들리고 출렁거리는 다리 위에 있는 것과 같다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자세하게 하루하루를 되짚어보면 위험하지 않고, 불안하지 않은 날들이 어디 있는가.
삶은 언제나 위험하고 불안하고 초초하다,
나는 죽음을 바라보지 않는데 죽음은 언제나 나를 들여다보고 있다.
단지 우리가 의식하지 않고, 또 모르고 지나가고 있을 뿐이다.
그래도 우리는 언제나 별일 없는 듯 살아낸다,
그래야 살아갈 수 있고, 그래야 살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갈 데 까지 가는 것이다.
위험해도, 조금 덜 위험해도 우리는 저쪽을 향해서 계속 갈 데까지 가는 것이다.
살면서 가장 치명적으로 위험한 것은 가보지도 않고 해보지도 않는 것이다.
실패가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
도전조차 하지 않는 것이 부끄러운 것이다.
능선으로 오르는 마지막 구간의 곧추선 오름길은 힘을 꽤나 쏟아부어야 했다
앞선 사람과 뒷사람과의 간격이 멀어졌다.
각자의 상태에 맞게 페이스대로 아무 말 없이 자신의 길을 걷고 걸어서 올라갔다.
세 번 쉬고, 6.5km를 올라왔다.
후미를 기다렸다가 대피소에는 들어가지 않고 영신봉을 향해 올라갔다.
촛대봉과 세석 대피소가 뒤로 밀려났다.
한걸음 한걸음 걸어서 이루어 내는 사람의 걸음걸이가 경이롭게 느껴졌다.
영신봉 아래 헬기장으로 들어가 점심을 먹었다.
어느 해 가을, 구절초가 만발했든 날 입이 떡 벌어지도록 환호했든 기억이 있는 곳이다.
지나온 남부 능선을 내려다보며 밥을 먹었다.
전망대에 올라서서 바라보니 반야봉 묘향암 지붕이 햇볕에 반짝였다.
오월의 신록을 머금은 산맥은 젊고 싱싱했다.
산은 각기 다른 색깔로 고도마다 다르게 채색되어 있었다.
왕시루봉 능선은 딱 벌어진 든든한 젊은이의 어깨 같았다.
밥을 먹고 난 뒤에야 여사님들은 환하게 웃고 떠들었다.
더 늦게 밥을 먹게 되었더라면 아마 나는 저 어디쯤 땅 속에 묻혔을지도 모른다.
좌고대에 영구 형님이 올라갔다.
바람이 조금 불어 위태로워 보였지만 형님은 배낭까지 맨체 올랐다.
저 공간에서 엎드려 절을 했다.
절하는 모습에서 무엇인지 모르지만 그의 뜻이 이루어질 것만 같았다.
간절함은 저런 모습일지 모른다.
아래에서 바라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고전압이 흘렀다.
나무지리타불!
얼레지 군락 앞에서 엎드려 보았다.
인간은 종종 땀보다 돈을 먼저 가지려 하고, 셀렘보다 희열을 먼저 맛보려 한다.
베이스캠프보다 정상을 먼저 정복하고 싶어 한다.
노력보다 결과를 먼저 기대하기에 무모해지고 탐욕스러워지고, 조바심 내고, 너무 빨리 좌절한다.
자연은 봄 다음에 바로 겨울을 맞이 하지 않는다.
뿌리에서 바로 꽃을 피우지 않고, 가을이 되어야 열매를 거두고, 땅 위에서 아름다운 꽃을 피운다.
만물은 물 흐르듯 태어나고 자라고 또 사라진다.
자연은 말없이 말해준다.
모든 것엔 순서가 있고 기다림은 헛됨이 아닌 과정이라고-
이종철, 최미희 님 부부는 모두 공무원이다.
그러고 보니 중경팀에는 공무원이 많다. 최 씨 성을 가진 사람들도 많다.
산을 좋아하는 사람답게 함께할수록 정이 가는 사람들이다.
이광용 님도 공무원이다. 중경팀에서 가장 젊은 피라고 할 수 있다.
혼자서 지리산을 많이도 누비고 다녔다고 한다.
혼자 산행을 하다 크게 부상을 입고 난 후, 혼자 보다는 이렇게 어울리는 산행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산에서는 자주 하늘을 우러러본다.
산에서 올려다보는 푸르고 맑음이 나는 그리 좋을 수가 없더라.
칠선봉 표지목을 지나고 칠선봉(1558.3m) 가기 전 우측 능선으로 들어섰다.
다음에는 이곳에서부터 나머지 길을 이어 갈 것을 표시 해 두었다.
작은 곧은재 능선(샛골 능선)으로 진입은 늘 그렇듯이 빠르게 이루어졌다.
안전이 확보된 후 느긋하게 적당한 곳에서 점심이 아닌 다른 판을 벌였다.
최미희 님의 배낭에서 통닭이 배달되었다.
한 방울까지 탈탈 털어 다 비웠다.
길이 아슴하여 앞에서 헤매고 있을 때 뒤에서 잔소리를 해대면 요 딴 말을 했다.
올라갈 때는 정상만 보이지만 내려올 때는 세상이 보인다.
올라갈 때 보다 내려가는 것을 잘해야 한다. 어른들이 그리 말씀하시더라.
방황하지 않으면 길을 잃는다.
방황도 해 보고, 길이 아닌 길로도 들어가 보고, 산다는 것은 그런 것이니까.
그 길에서 주저앉아 있지만 않으면 괜찮다.
잘못 든 길이 지도를 만든다.
내가 한 말이지 명언이다.
비단길
강연호
잘못 든 길이 나를 빛나게 했었다
모래시계는 지친 오후의 풍광을 따라 조용히 고개 떨구었지만
어렵고 아득해질 때마다 이 고비만 넘기면
마저 가야 할 어떤 약속이 지친 일생을 부둥켜안으리라 생각했었다
마치 서럽고 힘들었던 군복무 시절
제대만 하면 세상을 제패할 수 있을 것 같았던
내 욕망의 신록이 지금 때절어 쓸쓸한데
길 잘못 들수록 오히려 무모하게 빛났던 들끓음도 그만 한풀 꺾였는가,
미처 다 건너지 못한 저기 또 한 고비 신기루처럼 흔들리는 구릉이여
이제는 눈앞의 고비보다 그 다음 줄줄이 늘어선
안 보이는 산맥도 가늠할 만큼은 나이 들었기에
내내 웃목이고 냉골인 마음 더욱 시려오누나
따숩게 덥혀야 할 장작 하나 없이 어떻게
저 북풍 뚫고 지나려느냐, 길이 막히면 길을 버리라고
어차피 잘못 든 길 아니더냐고 세상의 賢者(현자)들이
혀를 빼물지만 나를 끌고가는 건 무슨 아집이 아니다
한때 명도와 채도 가장 빛났던 잘못 든 길
더 이상 나를 철들게 하지 않겠지만
갈 데까지 가보려거든 잠시 눈물로 마음 덥혀도
누가 흉보지 않을 것이다
잘못 든 길이 지도를 만든다
지난주 내려온 바로 옆에 한신 능선(곧은재 능선)보다 길이 나쁘지는 않았다.
풍도목이 간간히 길을 막아 잠깐씩 우회를 했다.
선명하든 길이 갑자기 희미해 지거나 묵어서 약간 헷갈리기도 했다.
산 길에서는 늘 있는 잠깐의 알바도 했다.
그러나 대체로 길을 잃거나 헤매는 일은 없는 능선길이었다.
선답자들의 표지기도 여럿이 요소마다 잘 매달려 있었다.
능선 끝머리에서는 지난번 능선처럼 계곡으로 급경사를 이룬 벼랑을 조심히 내려왔다.
계곡을 건너고 등산로로 올라가는 짧고 쉬운 길을 찾아 쉽게 올라섰다.
공터 삼거리 아래로 트랙과 거의 일치하는 지점이었다.
10시간 20분, 14km의 산길을 걸었다.
개인별 차이가 있겠으나 최근 들어 가장 멀고, 가장 긴 산행이라 힘든 표정들이 숨겨지지 않았다.
그런데도 카메라만 들이대면 표정들이 바뀌었다.
번의 산행으로 이 궤적이 그려졌다.
남아 있는 길도 시간이 문제 일 뿐, 우리는 끝끝내 무사히 완주할 것이다.
머릿속에는 이미 또 다른 계획 궤적을 그리고 있지만 나는 말하지 않았다,
살면서 절대로 앞서 가서는 안 될 것이 말이라는 것을 나는 경험으로 절실히 깨달았기 때문이다.
백무동 주차장에는 벽소령을 올라갔다 온 팀장 부부가 기다리고 있었다.
회복 단계에 있는 상태라 무리한 산행을 할 수 없어 벽소령에 다녀왔다고 했다.
11명이 저녁을 거하게 먹었다.
다른 사람들은 저녁이었고, 나는 산에서 아쉬웠든 것을 이 자리에서 다 해소했다.
이후의 기억이 별로 없다.
새벽녘, 침대맡에 앉아서 아무리 생각을 해도 차는...?
배낭은...? 어떻게 집에는...? 무슨 말을 한 건지...? 내 지갑 속에 돈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기억되지 않는 기억들.....
아침에 잔소리가 없었다. 지갑 속 돈의 경로는 잔소리가 없으니 확실해졌다.
그러나 나는 아직도 진짜로 나머지는 기억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