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12.13 언양골
언양골
행동팀117-지리90
2020 중경팀 송년산행
일시:2020년 12월 13일 (일요일)
산행자:연하,황순진,김은의,최옥희,이광용,이종철,최미희,최정남,성주숙,수야. 산유화,뽓대,본드 (총13명)
걸어간 길:달궁마을회관-언양우골-개령암지-언양좌골-달궁
산행시간:08시 11분~15시 58분 (07시간 47분) 8.62km
나는 할 수만 있다면 (누구나 마찬가지겠지만) 가슴이 설레는 일 만 하며 살고 싶다.
하고 싶지 않은 일을 어쩔 수 없이, 할 수 없이, 하며 사는 것은 고역이다.
그러나 설레는 것만 하고 살 수 있는 인생이 어디 있겠는가.
사람과 사람, 그 인연도 그러하더라.
살다 보면 일생 두 번 다시 만나고 싶지 않은 사람도 생기기 마련이고, 자주 만나고, 보고 싶어 지는 사람도 생기더라.
내 의지대로 어떻게 되지 않는 인연도 수두룩 하며, 한 평생 살아가다 보면 피할 수 없는 인연도 있다.
그러니 인생의 즐거움과 괴로움의 주요 원인이 여기에 있기도 하다.
“그리워하는데도 한 번 만나고는 못 만나게 되기도 하고, 일생을 못 잊으면서도 아니 만나고 살기도 한다.”
아주 오래전 읽었든 피천득의 수필 <인연>에 나오는 글이다.
살아오면서 가슴 아린 사람들과의 인연도 있었기에 새기듯 공감하는 글이다.
나는 지리산에서 맺어진 인연들을 소중히 여긴다.
그런 까닭에 다른 어떤 인연보다 우선순위가 된 지 오래이다.
중경팀 송년 산행에 초청 전화를 드렸더니 뽓대 형님은 위에 내가 장황하게 늘려 놓은 말들을 딱 한마디로 줄여 답해 주시더라.
"오라고 찾아 줄 때가 좋은 때이다. 고맙다."
같은 이유로 산유화님도 이번 산행에 불려 오셨다.
08시
만나기로 한 달궁마을 회관에 정확하게 8시에 모두 도착하였다.
차에서 내리자마자 빠르게 완벽한 채비를 한 뽓대 형님과 산유화 누나는 더디고 어수선한 중경팀의 준비과정을 보고 있었다.
중경팀 산 대장은 아직도 등산화를 신고 있었고, 출발은 언제 하려고 저러나 하는 표정으로 기다리고 있었다.
그래도 산을 올라가기는 간다.
뽓대 형님은 거제에서 같이 오신 본드 님을 소개하셨고, 중경팀에 처음 만나게 되는 분들과도 인사를 간단하게 했다.
08시 16분 마을회관을 출발하여 언양골로 향했다.
중경팀에서는 산 대장 이외에는 전원이 언양골은 초행인지라 이 코스는 게스트인 뽓대 형님이 안내를 하게 되었다.
워낙이 걸음이 빠른 형님을 앞에 세웠으니 초반부터 따라가기가 숨이 찼다.
한 줄로 13명이 길게 늘어서서 걷게 되니 맨 앞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언양골 옆 매막봉 능선은 한 번 걸어 본 적이 있어 장터 길이 생각났고, 와운 천년송 말고 이곳에도 천년송이 있었다는 생각이 났다.
내려올 때 배낭 없이 올라가서 보고 가자고 연하 형님과 약속하였다.
산행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나중에 다시 보러 가자고 하는 것은 잘 안 되는 것이 다반사 이더라.
이 날도 어김없이 그랬다.
하산 때 보기로 한 천년송은 이후 까마득하게 잊어버렸으니, 산에서는 무엇이든 어떤 것이든 뒤로 미루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또 들었다.
08시 34분
언양골 우골로 들어가는 길이 위쪽에도 있지만 상태가 별로 좋지 않고, 이 길이 진입하기에 편하다고 안내하는 뽓대 형님을 따라
계곡 옆 산길을 버리고 계곡으로 몰려들어갔다.
물이 많지 않은 계곡이지만 계곡물이 깨끗하고 맑았다.
바위 위에 쌓인 낙엽들 때문에 미끄러지지 않으려 조심하였다.
이미 저 앞에서 한 사람이 풍덩 하였고 양말을 바꾸어 신고 있었다.
일주일 동안 오늘이 다섯 번째 산행이라는 유화 누나는 피곤한 기색 하나 없이 몸놀림이 유연하였다.
몸뿐만이 아니라 마음 씀도 그러하여 오래전부터 중경팀인 듯 구분되지 않았다.
계곡에서는 앞사람과 뒷사람이 자주 바뀌었다.
앞서서 걷다가 뒤로 물러서기도 하고 뒤에 있었든 사람이 빠르게 앞으로 지나가기도 했다.
은의 님은 저 멀리 뒤에 있다가도 어느 사이 맨 앞으로 가 있기도 했다.
산행 회수가 거듭 될수록 그녀의 체력은 계속 업그레이드가 되는 듯하였다.
08시 56분
좌우 골로 나뉘는 합수부를 지나 우골로 들어섰다.
굳이 저 높은 곳을 어렵게 통과하지 않아도 약간만 산 사면으로 우회를 하면 길이 있었다.
신체적 길이가 뽓대 형에게 미치지 못하는 나는 미련 없이 우회로를 선택했다.
뽓대 형님을 뒤에서 가만히 지켜보든 대부분은 나를 따라 우회를 하였지만 끝끝내 저 모습으로 따라가는 자도 있었다.
09시 18분
올라가면 계곡 옆으로 경작 터와 마을 터가 넓게 있고 여름에 이곳에서 며칠을 보내기도 하였다고 뽓대 형이 말해 주었다.
언양 우골은 오룩스 맵 지도에 절부 골, 점복 골로도 함께 표기되어 있었다.
10시 03분
은의 님이 이 바위를 보고 여러 형태로 보인다며 신기해하였다.
부처님의 모습이 보이는가?
나는 모르겠다.
12시 34분
계곡은 급하게 고도를 세우지 않아 오르기에 무리가 없었고 간혹 계곡에서 벗어난 산 쪽 길을 따르더라도 우골에서 멀리 벗어나지 않았다.
최근까지도 경작을 한 것 같은 넓은 터가 연이어 있었고 돌축대가 쌓인 곳을 많이 지나갔다.
계곡을 따라 완만하게 오르든 길은 고도 900m 부근에서 좌우로 또 한 번 계곡이 갈라지는데 계곡길은 모두 버리고 능선으로 붙었다.
오래된 표지가 몇 개 보였다.
제법 장딴지가 뻐근해지도록 한차례 오름 짓을 한 후 고도는 1,000m를 넘고 있었다.
위 쪽으로 능선이 가까이 다가와 있었고 옴폭하게 바람이 들지 않는 넓은 곳에 자리를 잡고 점심상이 펼쳐졌다.
언제나처럼 느긋하게 오래 앉아서 점심을 먹었다.
중경팀 송년산행에 맞게 바람직한 여러 인사의 말과 감사의 말이 뒤섞여 오고 갔다.
마주치는 잔에는 술이 담긴 것과, 물이 가득한 잔도 있었고, 급한 나머지 빈 잔을 갖다 댄 것도 있었다.
뽓대 형님의 유머에 박장대소하였고, 중경팀 산 대장과 순진 형님의 티격태격하는 모습은 계속 웃음을 만들어 냈다.
즐거움은 자리를 정리할 때까지 오래 깊었다.
개령암지 마애불상을 향해 다시 걸었다.
배 부른 포만감 때문에 잠깐 숨이 차 올랐으나 길이 좋아지며 금방 잦아들었다.
13시 23분
길은 넓고 또렷하게 잘 나 있었고 걷기에 매우 안정적이고 편안했다.
점심을 먹으며 나눈 이야기의 여운이 아직 남아 있는 사람들끼리 이야기를 하며 걷다 보니 뜻하지 않게
능선 쪽으로 걷는 사람과 사면을 따라 걷는 사람들로 잠시 나눠지기도 했다.
앞사람만 보고 따라 걷다 보면 일어나는 현상이었다.
산성 터를 옆으로 지나치며 걸었고 얼마 가지 않아 잣나무 숲을 만나게 되었다.
능선 방향 위 쪽으로 일부가 나누어졌든 일행들도 이곳에서 다시 만나게 되었다.
아래 위로 또렷한 길들이 있었다는 말이겠다.
13시 26분
정령치 습지가 나타나고 테크에 올라서서 습지를 둘러보았다.
13시 30분
정령치 습지를 지나자 바로 개령암지 마애불상군이 보였다.
개령암지에 관해서도 마애불상에 관해서도 아는 것이 전혀 없어 여기저기 찾아보아도 명쾌한 것이 별로 없다.
지리 다방 깊은강 님의<개령암지 마애불상군 관련글 >을 읽어 보는 것이 도움이 되겠다.
http://www.jiri99.com/bbs/board.php?bo_table=jiri11&wr_id=91537&sfl=wr_subject&stx=%EA%B0%9C%EB%A0%B9%EC%95%94%EC%A7%80&sop=or
부처님을 찾느라 모두들 깊이 심취하였다.
내 눈으로는 아무리 보아도 3개 정도만 또렷하게 보일 뿐이었다.
13시 37분
단체로 사진을 찍었다.
산유화 누나가 나와 자리를 바꾸어 또 한 번을 찍었다.
이 번이 두 번째 산행에 참여하는 이광용 님은 중경팀에 합류한 지가 얼마 되지 않았지만
혼자서 지리산행을 오랫동안 한 산꾼이다.(뒷줄 오른쪽에서 세 번째)
직장일로 매번 참석할 수가 없어 자주 같이 하지는 못하였다.
단체사진을 찍고 하산을 서둘렀다.
정령치 휴게소 방향의 트랙을 따르지 않고 바로 언양 좌골로 내려갔다.
트랙이 없어 초반 약간 헤매다 앞서 내려간 뽓대 형님의 뒤를 따라 계곡으로 모두 내려섰다.
뽓대 형님은 순식간에 사라졌고, 앞서 가면서 달아 놓은 형님의 표지를 따라 트랙과 일치시켰다.
하늘에서 간간히 눈발이 날리더니 점점 굵어져 갔다.
제법 눈답게 내리든 것이 어느 사이 빗방울과 함께 내리기 시작했고, 조금 시간이 지나자 완전한 비로 변하기 시작했다.
차가운 겨울비는 걸음에 속도를 붙였고, 속도가 날수록 넘어지는 사람이 많아졌다.
아마 산 높이가 제법 낮아졌으리라.
사진 찍기를 포기할 때부터는 빗물이 깊이 스며들어 축축했다.
겨울비를 맞고 내려오며 산행기를 쓸 때 끼워 넣어야 되겠다 싶었든 것이 있었다.
조선의 3대 천재 시인으로 불리는 백호 임제가 평양기생 한우(寒雨)와 나누는 멋지고 고급진 이 시(詩)가 그것이다.
북창이 맑다고 하기에 雨裝(우장)없이 길을 가니
산에는 눈이 오고 들에는 찬비로다.
오늘은 찬비 맞았으니 얼어 잘까 하노라.<寒雨歌 임제>
어이 얼어자리 무슨 일로 얼어자리
원앙침 비취금을 어디두고 얼어자리
오늘은 찬비 맞았으니 녹아잘까 하노라 <기녀 한우(寒雨) 화답시>
한우의 순수한 우리말은 '찬비'이다. '찬비'는 기생 '寒雨(한우)'를 은유한 것이다.
이에 대한 한우의 화답이 뛰어나다.
'무엇 때문에 찬 이불속에서 혼자서 주무시렵니까. 저와 같이 따뜻하게 주무시지요' 한다.
멋지지 아니한가.
14시 52분
계곡이 아닌 산길로 내려 서고 난 뒤 후미를 기다려 내려갔다.
사실은 산유화 누나가 뒤 따라오는 사람들 챙겨 오라고 하길래 기다렸다. (밥 얻어먹고살려면 그래야 한다고 했다.)
빠르게 내려갔었든 뽓대 형님은 우산을 몇 개나 들고 산길을 되돌아 다시 올라오고 있었다.
15시 58분 산행 종료
비를 흠뻑 맞은 뒷정리는 출발할 때 보다 더 많은 시간이 걸렸다.
송년 산행이라 팀장님께 연락을 했더니 마천까지 달려와 주었다.
마천에서 고기를 굽었다.
중경팀 산행 초청에 먼 길 달려오신 형님 누나에 대한 감사함은 저녁 한 끼가 전부였다.
운전 때문에 술은 또 몇 명만 마셨다.
마신만큼 기분이 좋아진 나는 뭔 소리를 얼마나 지껄였는지 다음 날 아침에 아내에게 묻지 않았다.
술 먹고 하는 말들에 대해 신경 쓰지 않아도 될 만한 사람들과 함께 하였므로.
사람 만나는 일이 거리낌 없고, 반갑게 포옹하여도 아무렇지 않은 그런 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